교회문제자료

[스크랩] 종교다원주의자 정현경교수/차라리 기독교인이라고 하지말기를 !!

baromi 2008. 7. 17. 08:27

하지 마라'가 아니라 신물이 날때까지 '해봐라'!!
유니온신학대학교 정현경교수, '왜 나는 기독인이면서 불교인인가?' 여성목회연구소 강연
입력 : 2008년 07월 09일 (수) 20:28:37 / 최종편집 : 2008년 07월 10일 (목) 12:13:22 [조회수 : 545] 송양현 song-1002@nate.com

사람들이 내게 자주 묻는다. 불교인이냐? 기독교인이냐?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어디를 가나 기독교인 것은 확실한데 타종교에도 진리가 있다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다만 내 입맛에 기독교가 맞을 뿐이다. 한국사람에게 다른 음식이 몸에 좋지만 김치가 입맛에 맞듯이...    강연 中

   
▲ 정한경 교수 ⓒ 당당뉴스 송양현
미국에서 기장측 목사안수과정을 다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포기했다. '예수만을' 이라는 고백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예수도'라는 깨달음이 정교수의 길을 달리 이끈 것이다.... 강연 中

최근 불교에서 선사라는 칭호를 듣고 있는 그녀가 지난 월요일(7월 7일)에 여성목회연구소(노경신 목사)에서 강연을 갖었다. 약 40여명이 참석한 이날 강연에는 여성목회자와 평신도, 남성 목회자 등 다양한 계층의 청중들이 시작 전부터 장소를 가득메웠다.

이날 강연에서 정교수는 불교에 있는 처음 1년 동안 싸움이 아니라 세워야 되는 것을 깨달았다며, 정말 내가 살아나는 곳에 가서 일을 하고, 그리고 내가 정말 살아나면 내 주변도 살아나고, 또 내 주변이 살아나면 내 주변의 주변이 살아나고 더나아가 주변이 살아날 때 세상이 살아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전했으며, 종교를 음식으로 비유하는가 하면, 불교와 기독교를 한약과 양약에 비유하면서 종교의 다양성과 장단점을 조화롭게 설명하였다.

다음은 이날 강연의 주요 부분을 발췌 요약한 것이다.

불교를 우연히 접하다...

박사과정에서 담당교수중 한사람이 너무 좋게 평가를 하자 나머지 교수들이 오히려 아무 이유없이  불공평하게 억압하고, 박해를 하고, 그 덕에 받을 수 있는 장학금도 못받으면서 그 교수를 날마다 살해하는 상상을 하며 지냈다. 

그러다 동양인 신부 한 분을 만났다. 그 신부를 만나서 상황을 얘기하다 어떻게 죽일까요?라고 물었을 때 그는 먼저 자신과 불교식 명상을 매일 한시간씩 한달을 하자고 제의했다. 당황스러웠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끌렸고 매일 한시간씩 명상을 하였다. 죽이고 싶은 사람을 떠올리며 친절과 자비의 명상을 매일하였지만 명상이 끝나고 나면 그래도 죽여야겠다는 마음이 가득했다.

그런데 약속한 한달간의 명상 후에 그렇게 죽이고 싶었던 그 교수를 만났을 때 나 자신도 모르게 그 분을 따뜻하게 껴안을 수 있었다. 스스로 놀랬다. 정말 따뜻하게 그분을 안아주었다. 그리고 그 동양인 신부에게 가서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다고 전하자 그분이 하는 말이 그것이 바로 불교식 명상의 힘이라고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신부를 통해 불교의 명상을 배웠다.

한번은 WCC에서 주제강연을 맡아서 나름대로 열심히 각 나라의 민속춤과 전통의상 등을 보여줬다. 그랬더니 무당이라는 협박편지와 별의별 괴롭힘을 당했다. 그리고 70년대 운동권이었던 남편이 결혼을 하더니 갑자기 근본주의로 돌변하였다. 보수적인 목사들과 한패가되서 정말 회개해서 복종하는 아내로 기독교로 돌아오라고 협박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다미선교회에 들어가 종말을 부르짖었다.

이런 내면의 고통이 너무 크다보니 아침에 눈을 안뜨고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렇게 괴롭게 지내던 어느 날 집앞에 순산스님이 지은 대각사라는 절이 있었고, 때마침 향수병도 느끼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절 안으로 들어갔다.

보통 목사들과 상담을 하면 당신의 남편이 당신의 십자가다. 예수님이 부활할 때 고생하고 십자가 진것에 대한 보상받을 것이라고 얘기들을 하는데, 순산스님은 '왜 너는 너만이 특별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었다. 기독교 상담심리에서 말하는 A, B, C도 모르는것 같아 화가났었다. 그동안의 힘들었던 과정을 얘기했으면 먼저 위로해야되는게 보통이고 상식인데 상식밖의 답변이었다.

스님이 덧붙여 말했다. 너의 고통의 원인을 알고 싶으면 구석방에 가서 하루 10시간씩 앉아있으면 네 안에서 답을 찾을 것이다라고 했다. 화가나고 오기가 나서 하루 10시간씩 벽을 보고 앉아 있었다. 남편이 너무불쌍해서 이혼을 못하겠다고 했더니 불교에서는 무자비하게 끊는 것이 자비일수 있다고 하였다. 가장 큰 인연은 서로에게 가장 큰 가르침을 준것이 가장 큰 인연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교수를 살해할까 말까, 이혼을 할까말까를 고민하다 명상을 하면서 불교와 인연을 맺었고 계속해서 이어오고 있다. 

종교는 우리의 음식이다.

아침엔 간편히 먹는다. 씨리얼을 먹고, 점심이나 저녁때는 먹고싶은 음식을 먹는다. 21세기의 종교는 먹고 싶을 때 먹는 음식과 같다. 말로하는 대화, 침묵의 대화, 액션의 대화 등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자신의 입맛에 맞게 골라 먹으면 된다.

그러나 진정한 평화를 말하려면 말로하는 대화, 액션으로 하는 대화, 침묵의 대화가 아니라 삶을 살아보는 대화를 시도해야한다. 상대를 악마화하기 보다 그 사람을 이해하면서 친구가 되려고 하는 것은 바로 삶을 살아보는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동안 기독교에서 자라면서 기독교식 음식만 먹었다. 약장사가 약을 팔 때 내 약만 듣는다고해야 팔리 듯 지금까지 기독교에서는 오직 기독교만이 음식을 팔았지 다양한 음식을 체험하지 못하도록 했다.

독일사람은 치즈를, 한국사람은 김치를 먹어야 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그러나 독일사람이 김치를, 한국사람이 치즈를 먹는다고 해서 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이 결코 몸에 해가되지 않고 몸에 참 좋은 음식들이다라는 것이 확실하다.

스위스에서 자란아이들은 3-4개국어를 자연스레 넘나들며 대화한다. 그러나 말이 막히면 자신의 입맛에 가장 맞는 언어를 이용해 말한다. 왜 우리는 처음부터 다양한 음식이 아니라 한가지 음식만 먹으며 고집하여 살고 있는가?

사람들이 내게 자주 묻는다. 불교인이냐? 기독교 인이냐?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어디를 가나 기독교인 것은 확실한데 타종교에도 진리가 있다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다만 내 입맛에 기독교가 맞을 뿐이다. 한국사람에게 다른 음식이 몸에 좋지만 김치가 입맛에 맞듯이...

종교는 치유의 약으로 쓰인다.

사람들이 왜 불교를 좋아하냐고 묻는다. 불교는 얼음인 내가 물이 돼서 녹으면 흘러흘러가 더 큰 대양이 된다. 즉 포용을 가르친다. 반면, 기독교는 얼음을 깨서 이어 붙이려한다. 평등한 사람들의 잔치인 복음 전통은 죄의 사슬을 끊는 해결방법을 추가한다.

기독교는 양약인것 같다. 교통사고 나서 팔이 부러지면 병원가서 깁스하고 꿰메야한다. 기독교가 마치 이러한 양약같다. 반면, 기독교는 양약이라면 불교는 한약이다. 병원가면 아무 이유없고 정상이라고 하는데 기운없고 힘들다. 그래서 한의원에 가면 기력이 없고, 몸의 균형이 안맞아서 그렇다는 것을 진단한다. 양약과 한약의 차이가 아마도 기독교와 불교의 차이일 것이다. 둘다 필요하다. 그러나 특별히 내면의 고통에 있어서는 양약보다 한약이 더 좋은 것 같다.

사회운동의 첨단이었던 내 남편이 다미선교회에 들어갔을 때 나는 하나님에게 사기당한것 같았다. 예수 때문에 결혼했는데, 예수 때문에 이혼하게 되었던 것이다. 몇 월 몇 일에 예수님 오신다고 하고, 난 안온다고 하고... 그래서 각서를 하나 썼다. 정해진 날짜에 예수님 오시면 같이 휴거되고, 안오시면 이혼도장 찍어달라고 했다. 왜 우리 남편이 그렇게 되었고, 그 길을 택했을까? 이러한 풀수 없는 마음의 아픔을 풀어주는 것이 불교였다. 죽고싶고 내면의 아픔있는 사람들에게 큰 위로를 주는 것이 불교다.

기독교에서는 너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이다. 특별히 선택받은 존재다. 이런 말들을 통해 특별성을 강조하다보니 상대적으로 내면의 상처를 입었을 때 나처럼 배신감을 많이 느낀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인생에 왔다는 것이 실수다. 그래서 네가 고통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0에서 시작하다보니 조금만 좋은 것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불교다.

<다음은 이날 강연 후 질문과 답변이다>

Q: 선명상 말고 기독교적인 수행방법을 수행해 보셨는가? 불교에서 답을 얻었다고 했는데 기독교에서도 자기수행 방법은 없는가? 나는 불교인이다라는 비중이 큰 것같은데 차라리 기독교 포기를 하지 않는가?

N: 치즈와 김치를 같이 먹고 자랐다면 과연 한국사람이 김치만 먹을까? 28세까지 완전히 기독교 삶이었다. 29세에 쓰리랑카 스님을 만났다. 그리고 지금 기독교적 수행과 불교의 수행이 반반이었다. 반면, 내가 만약 가톨릭에서 자랐다면을 생각해보자. 그랬다면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자란 기독교는 내면을 들여다보고 침묵을 하는 종교가 아니었다. 내가 한국사람이었기에 불교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불교를 어떻게 받아들였느냐에 따라서 다를 것이다. 오히려 내가 불교를 이론으로 공부했다면 지금 불교인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느 학생이 있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안가 누구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나는 피터(이름)다!라고 답했다. 우리는 남자가 있고 여자가 있듯 뭔가를 하나 택해야 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가장 나 다운것은 내가 피터라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어떤 일에든 이런 저런 이유로, 혹은 위험하기에 하지마라 하지마라가 아니라 신물이 날때까지 해봐라!! 그러면 알 것이다.

   
▲ 여성목회연구소 교육장이 가득찰 정도로 관심이 높은 강연이었다. ⓒ 당당뉴스 송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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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양무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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