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서적추천

[스크랩] 천로역정/청교도연구사이트에서 펌

baromi 2008. 4. 24. 09:21

천로역정

 

번연은 그의 60평생에 60권의 저술을 하였다. 그 중 천로 역정, 죄인의 괴수에게 넘치는 은혜, 거룩한 전쟁은 기독교 문학사의 금자탑이라 할 수 있다.

 

(1) 천로 역정의 구성

천로 역정은 저자의 변명에서 볼 수 있듯이 은유(metaphor), 비유(parable), 풍유(allegory), 상징(symbol)을 수없이 사용한다. 번연은 이러한 것들이 자신의 글을 더욱 명료하게 해준다고 믿었다.

 

그는 구약의 선지서와 신약의 복음서, 바울 서신에서 상징이나 암시 그리고 은유가 폭넓게 사용되었음을 알고 있었고 상징이나 은유 체계 속에 진리의 빛과 은혜가 넘친다고 고백하고 있다.

 

비유나 상징은 그 자체로 모든 것을 입증할 수는 없다. 예를 들면 수학으로 1+3=4이다. 오직 하나의 답, 즉 4가 된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합리적인 답이다. 그러나 “1”, “3”의 부호가 상징으로 주어질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독자의 시각과 상상에 따라 “1”, “3”은 1+3, 13, B 등 다양한 해석이 여러 가지의 풍부한 내용을 함유한 채 나타난다.

 

보다 구체적인 예를 천로 역정에서 찾아보자. 번연은 “죄는 폭군”이고, “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무지개는 하나님의 언약”이며, “펠리컨은 그리스도”라고 은유의 언어를 사용한다. 문자적으로는 “죄=폭군, 약=하나님의 말씀, 무지개=하나님의 언약, 펠리컨=그리스도”라는 공식이 결코 성립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죄는 종교적이거나 도덕적인 원리를 침해하는 것이고, 약은 질병을 치료하는 물체이며, 무지개는 창공에 나타난 여러 색깔을 가진 궁형의 형체이고, 펠리컨은 조류의 한 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은유는 간단히 해설하거나 번역될 수 없는 “언어와 의미의 복합적 사건”인 것이다.

 

현대 해석학의 대가 리쾨르에 의하면, 은유는 문자적으로 그 의미를 해독하기가 이상하고 기묘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큰 효과를 나타낸다고 한다. 그리스도는 문자적으로 펠리컨이라는 새가 될 수 없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정말 기이하고 이상 야릇할 것이다.

 

바로 이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기능을 은유가 한다. 이 기능에는 은유를 보여 주거나, 읽거나 듣는 자가 해석하는 작업이 반드시 뒤따른다.

은유의 해석에 필수적인 것은 은유를 문자적으로 번역하지 말고 다른 뜻으로 변용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펠리컨으로 번역하거나 무지개를 하나님의 언약으로 번역해서는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펠리컨이라는 새의 특징이나 상징이 주는 의미를 찾아야 하고, 무지개의 상징이 주는 또 다른 의미 체계를 발견해야 된다는 말이다.

 

번연은 펠리컨이라는 새가 “제 부리로 제 가슴을 쪼아” 대는 것은 “어린 새끼를 자신의 피로 먹여 살리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들을 사랑하셔서 그들을 죽음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하여 자기 피를 아낌없이 흘리셨다”고 해석한다.

 

“그리스도=펠리컨”이란 은유는 이러한 해석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이해된다. 펠리컨은 피를 흘리는 새로 해석되고 이 피를 흘리는 펠리컨이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상에서 피흘리셨던 그리스도로 상징되는 언어의 변용(paraphrase)을 거친다. 이 변용의 과정 속에서 은유가 가진 혁신적 의미의 영원성이 포착된다.

 

은유는 언어의 일시적 노리개가 아니라 어떤 중요한 주제를 새롭게 열어 주는 특이한 언어 기술이다. 좋은 은유는 다양한 해석을 불러오고 어떤 현실을 확실히 개념화시켜 주는 능력을 가진다. 이런 의미에서 은유는 감추어진 것을 개방시키는 기술이며, 불확실한 것을 확실하게 하는 참조(reference)이다.

 

번연은 이와 같은 상상 언어의 창조적 광채를 발견한 것이다. 상징 언어의 “진리는, 그것이 비록 갓난 아기의 기저귀 같은 말투로 표현되었다 하더라도 인간의 판단력을 고취시키고 마음을 바로잡으며, 즐겁게 이해하게 해주고 의지력을 좌우할 수 있게 하며······추억을 채워 주고 그리고 우리의 고통을 가라앉는 방향으로 이끌어 준다.”

천로 역정은 대화식의 글이다. 번연이 소년 시절에 일상 언어로 나누는 도덕적인 대화록을 즐겨 읽었다는 것과 첫 결혼 직후 아내 마리아가 가져온 덴트의 평범한 사람이 하늘에 이르는 좁은 길과 베일리의 경건의 훈련에서 대화 형식의 글들이 아름답고 예리하다는 것을 배웠음을 기억하자.

 

번연은 이들로부터 배운 대화의 묘미를 천로 역정에서 유감없이 발휘한다.


천로 역정은 목적이 있는 글이다. “무력하고 의지할 데 없는 자”에게 커다란 위안을 제공하고, “무관심한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불어넣으며, 우울한 자를 유쾌한 상태로 이끌며, 무엇보다도 영원한 진리를 획득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한다. 따라서 번연의 천로 역정은 처음부터 선교적이다.

 

(2) 천로 역정의 내용

천로 역정은 전반부와 후반부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전반부에서는 한 남편의 신앙 문제가 다루어지고, 후반부에서는 그의 부인과 아이들의 순례 행진이 그려진다. 전반부는 등에 무거운 짐을 진 크리스천이 한 책을 펴서 읽고 큰 깨달음을 얻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크리스천은 “아,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비탄의 절규를 시작한다. 크리스천이 읽은 책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해석할 수 있고, 크리스천의 절규는 등에 짊어진 죄로 인해 절망할 수밖에 없는 영적 상태라고 짐작할 수 있다.

 

크리스천은 자신이 죄로 인하여 고통받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살고 있는 죄악의 도성이 머지않아 불 심판을 받게 될 것도 알게 된다. 이러한 고통을 치르던 중, 어느 날 크리스천은 전도자를 만나 장차 올 징벌을 피하는 방법을 알게 된다. 그 방법은 죄악의 도성을 떠나 천상의 도성을 향해 가는 것이었다.

 

크리스천은 천상의 도성으로 가기 위해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하는 희생을 치러야 했고, 그의 여행이 어리석고 위험하다고 조소하는 이웃들의 반대를 물리치는 용기를 가져야 했고, 한때 그의 여행의 동반자로 천상을 향했던 유순의 자포 자기를 보고도 좌절하지 않아야 했으며, 속세 현인의 달변과 철학의 유혹을 극복해야만 했다.

 

한마디로 크리스천은 진리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모형이라 할 수 있다.


신학적으로 크리스천의 순례 과정(가족과의 이별→속세 현인의 유혹→마귀 아폴리온과의 조우 →허영의 시장→죽음의 계곡→청년 무지(Ignorance)→죽음의 강을 건너 천상에 이름)은 성도의 일생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중생 하여 그리스도를 통해 의롭게 되고, 양자가 되며, 일생 성화의 과정을 거치다가, 죽어서는 하나님 나라에 가듯이 천로 역정도 비슷한 내용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번연은 천로 역정에서 칭의론을 설명할 때 바울과 종교 개혁자들의 신학에 충실하여 오직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이신 칭의론을 일반 영국인의 정서에 맞게 민담의 형식으로 재진술한다. 활력과 재치가 넘친 그의 글을 직접 살펴보자.

[크리스천:이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는 것이야말로 바로 내가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 혼자 힘으로는 벗어버릴 수가 없어요. 온 나라에 이 짐을 내 어깨에서 벗겨 줄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말씀드린 대로 이 짐을 벗어버리기 위해 지금 이 길을 가고 있는 중입니다.

 

속세 현인:누가 당신에게 짐을 벗으려면 이리로 가야 한다고 말했죠?

크리스천:······전도자라는 이름으로 기억됩니다.

 

속세 현인:그따위 충고를 한 그 사람을 나는 저주하오. 그가 당신에게 가르쳐 준 길보다 더 위험하고 험한 길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오······당신이 이 길을 계속 가다 보면 싫증, 아픔, 굶주림, 위험, 헐벗음, 칼, 사자들, 용들, 뱀들, 어둠 등 다시 말하면 죽음을 비롯한 온갖 재난을 만나게 될 것이오······.

 

크리스천:저는 제가 잡으려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어요. 그건 내 무거운 짐을 가볍게 하는 것입니다.

 

속세 현인:하지만 왜 하필이면 이런 식으로 짐을 가볍게 하려는 것이오? 눈앞에 수많은 위험이 있음을 빤히 보면서. 내 말을 명심하고 들어 줄 용의만 있다면, 당신이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에 놓여 있는 여러 가지 위험들에 봉착하지 않고서도 당신이 그렇게도 열망하는 것을 잡을 수 있도록 가르쳐 주리다······

 

저쪽 건너편 마을에 합법(合法)이라는 이름의 신사 한 분이 살고 있소. 그는 매우 사리가 분명하여 명성을 크게 떨치는 분으로 당신처럼 등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이들의 짐을 벗겨 주는 기술이 있지요······

 

그의 집은 여기서 1마일도 안 돼요. 그리고 만일 그가 집에 있지 않으면 그의 젊은 아들을 찾으시오. 이름은 예의(禮儀)라고 하지요. 내 장담하는데, 거기 가면 당신은 반드시 짐을 벗어버릴 수 있을 것이오······.]

 

크리스천은 속세 현인의 말을 믿고 합법(도덕)이 사는 언덕으로 가 보았지만 언덕은 너무 높고 길에 접한 까마득한 절벽은 금방 무너질 것 같았다. 더 괴로운 것은 합법이 사는 곳으로 가면 갈수록 등의 짐은 더 무겁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언덕에서는 타오르는 불꽃들이 크리스천을 위협하였다. 이 위기의 순간 전도자가 나타나 크리스천을 꾸짖고 바른 길을 제시하였다.

 

[지금부터 내가 일러주는 말에 주의를 기울이시오······당신이 만났던 그 사람은 속세 현인이라는 자인데······그는 이 세상의 신조와 교훈에만 집착하기 때문이오(그래서 그는 언제나 도덕(道德) 읍내의 교회에만 나가지요). 그리고 그 신조를, 그것이 십자가 없이도 자기를 구원해 준다고 생각하여 최상으로 사랑합니다······.

 

[합법이란 사람 역시] 당신의 짐을 벗겨 줄 수가 없단 말이오······법대로 행동한다고 해서 당신이 의로워질 수는 없어요. 율법의 행위로 등에 진 짐을 벗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속세 현인은 결국 문외한이고, 합법이란 자는 사기꾼이며, 그의 아들 예의 역시 겉으로는 선한 웃음을 웃지만 위선자에 불과합니다.]

 

여기서 번연은 인간의 노력과 공로에 기초한 율법의 허위성을 폭로하지 않는가! 아무리 고상하고 아름다운 도덕이나 철학, 심지어는 믿음 없는 종교 생활도 구원을 가져올 수 없다고 못을 박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풍자를 함으로써 행위 교리를 강조하는 영국 교회를 비평하고 있는 것도 주지해야 할 것이다.

 

교회 비평에 관하여 재미있는 비유를 쓰고 있는 번연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도 유익할 것으로 생각된다. 크리스천이 순례 길에 비리(非理)라는 사람을 만났다. 비리는 교언(巧言) 마을에서 나와 하늘 나라를 순례한다며 크리스천과 동행하기로 했다. 두 사람은 길을 걸으며 대화를 시작했고, 크리스천이 교언 마을 사람들에 대해 비리에게 물었다. 비리는 이렇게 대답했다.

 

[마을 사람 전체가 거의 다 친척이죠······기회주의자경, 교언경, 기생 오라버니씨, 표리 부동씨, 팔방 미인씨, 그리고 우리 교구의 목사로 일하시는 일구 이언(一口二言)씨는 외삼촌이죠······나의 아내는······허위 부인의 딸이지요.

 

그러니까 아주 지체 높은 가문에서 태어난 것입니다······우리[도] 종교가 순탄한 길을 걸어갈 때 가장 열심히 믿고, 태양이 밝게 비추고 모든 사람이 그 종교를 찬양할 때에만 함께 길을 걸어다니길 좋아합니다.]

 

여기서 비리의 입을 통해 얼마나 종교가 세속 인간과 결탁하여 가장 고상하고 신령한 듯이 가장을 잘 하는가를 번연은 폭로하고 있다. 번연은 세속적인 성직자의 모습도 돈을 사랑하는 세속인의 눈을 통해 신랄하게 비평하고 있다.

 

[어떤 훌륭한 목사가······더 많은 보수를 받기 위해 좀더 공부하고 자주 설교하고······그리고 사람들의 기질이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자기가 갖고 있던 어떤 주장, 주의들을 희생시키기까지 합니다······

 

결론을 지어 말하자면 한 목사가 적은 보수를 큰 보수로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 자체가 탐욕적인 행동으로 비판받기보다는 오히려 그 때문에 자기 직분이나 일을 도모함에 있어 개선을 보이는 것이므로, 자기 직무에 충실하고 선한 일을 할 기회를 놓치지 않는 점에서 오히려 찬사받아야 한다고 하겠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세속인의 입에서도 당시 목사들이 돈을 사랑하고 시대 조류에 부합하며, 목회직을 사업으로 생각하고, 또 소신 없이 변덕스럽게 신학 사상을 바꾸어 간다고 말하지 않는가! 번연 시대의 목회자의 타락상이 오늘날 한국 교회에도 만연되어 있지는 않은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천로 역정의 전반부는 많은 고통과 위험 속에서 승리하는 전투적 그리스도인을 풍자하지만, 후반부는 크리스천의 아내를 등장시킴으로 보다 부드러워진다. 남편 크리스천의 영적 행로를 뒤쫓는 아내 크리스티아나는 단체적이고 여유 있는 순례하는 교회를 상징한다.

 

이러한 차이는, 전반부가 번연이 회심과 종교적 탄압 속에서 체험했던 것을 기술한 것이고, 후반부는 종교 박해에서 해방되어 어느 정도 안정된 마음으로 사역했을 때의 신앙 정서를 기술한 것이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번연은 일상 언어로 전하는 설교를 통해 청중을 사로잡았지만, 천로 역정과 같은 글을 통해서도 독자들의 심령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학식 있는 자나 무식한 자나, 늙은이나 젊은이나 그 누구도 번연의 글에 매혹당한다.

 

상징, 은유, 비유를 무한정으로 사용한 그림과 같은 대화체의 글 속에 사람을 감동시키는 무엇이 잠재하고 있다. 단순하고 소박한 삶에 대한 인식을 성경 언어와 접목시켜 표출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깊은 내면 세계를 바라볼 수 있었다.

 

얼핏 보면 17세기 영국 특유의 서민 생활을 작품화한 것 같지만, 천로 역정에는 17세기 영국을 뛰어넘는 초월성이 있다. 정욕, 물욕, 권력욕, 교회의 부패는 단지 그 시대만의 문제가 아니요 바로 오늘날의 문제이자 아마도 영원한 인류의 문제이기 때문이리라.

 

(3) 천로 역정의 영향력

천로 역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성경을 해석하는 입장에 있다. 단지 그것을 영국식 서민 문화에 연결시켜 보다 쉽고 재미있게 기록했을 따름이다. 천로 역정이 베스트 셀러가 되어 영국 사회에 널리 읽혀졌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보다 확실히 이야기하자면 천로 역정은 교단이나 교파를 초월하여 영국 사회 전반에 보급되었다.

 

번연 생전에 100,000부 이상이 판매되었다.


이 말은 천로 역정으로 말미암아 청교도 신학과 신앙이 일반 대중에게까지 알려질 가능성이 컸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겠다.

 

더 나아가서는 천로 역정으로 성경의 권위가 더 한층 높아지고 성경의 가치 판단이 일반인의 가치 판단이 될 수 있는 문화적 혁신의 기능을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천로 역정은 1909년에는 세계 112개의 나라에서 번역 출간되었고, 현재는 전세계 거의 모든 나라가 자국어 번역본을 소유하고 있을 정도이다.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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