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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Re:웨슬리 구원론의 일반적 특징

baromi 2008. 2. 19. 16:31

웨슬리 구원론의 일반적 특징

 

(1) 복음적 신인협조설(evangelical synergism) :

 

웨슬리의 복음적 신인협조설에 입각한 구원론은, 동방교회의 닛사(Gregory of Nyssa, John Chrysostom), 서방교회의 어거스틴(Augustine), 그리고 알미니우스(James Arminius)의 영향 등에 의해 형성되었다. 이 웨슬리의 '복음적 신인협조설'을 간략하게 요약 정리하면..., 구원의 과정에서 펠라기우스나 반(半) 펠라기우스가 주장하는 것처럼, 인간이 본성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본성적 자유의지'로 인간이 먼저 주도권을 갖고 구원을 위한 선행을 실천하면 그 다음으로 하나님이 은총으로 찾아오시는 것이 아니라, 이와는 반대로 하나님이 먼저 주도권을 갖고 '선재적은총'(prevenient grace, 100%)으로 인간에게 다가오시면 인간이 선재적은총으로 '회복된 자유의지'(free will, 100%)를 가지고 하나님의 구원의지에 응답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선재적은총인 자유의지에 있어서는, 칼빈의 불가항력적 은총론, 제한된 속죄론 무조건적인 예정 견인의 은총을 모두 거부하였던 알미니우스적 자유의지론을 받아들이면서, 인간은 선재적은총인 자유의지로 열심히 구원을 사모하고, 그리스도를 향하여 마음의 문을 열도록 하는 결단을 하며, 구원을 받은 성도라 할지라도 자유의지로 인해 타락할 수도 있기에 두려움과 떨림으로 지속적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도록 해야한다고 한다.

 

(2) 행동주의 (activism) :

 

웨슬리의 행동주의 신학은 1738년 5월 24일의 올더스게잇 체험이 루터와 강한 연속성을 지닌다 할지라도, 루터의 신앙제일주의(solafideism)와 정숙주의(quietism, stillness)를 비판할 뿐만 아니라, 루터적 모라비안주의의 신앙제일주의, 정숙주의, 법적 의인화(imputed justification), 율법폐기론적 경향(antinominianism)을 비판하였다.

 

이는 좋은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맺히듯이 선행은 의로워진 크리스천의 자동적 결과라고 해석하는 루터(주의)를 완강히 거부하는데, 웨슬리는 선행과 사랑은 저절로 맺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의지적 참여에 의해 신인협조적(神人協調的)으로 이루어지는 행위로 보았기 때문이다. 루터가 그의 주장 곧 '신앙의인화(信仰義認化)'를 강조하는 로마서를 중시하고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복음이라고 평가절하 하였지만, 웨슬리에게 있어서는 로마서와 함께 야고보서의 선행도 동등하게 중요시 여긴다.

 

(3) 객관적 은총(imputation)과 주관적 은총(impartation) :

 

루터가 객관적으로 전가되고, 수동적으로 옷 입혀지는 은총(imputation)만을 강조하는 대신, 웨슬리는 루터의 수동적인 은총(imputation)을 수용하면서 나아가 어거스틴의 은총의 양면성과 동방교회적 영성 이해에서 배웠던 - 주관적이고 능동적인 은총(impartation)도 강조하여,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으로만(義認化, 의로운 사람, righteousness) 머무르지 않고 의로운 사람이 되기까지 변화되는 은총(義人化, 거룩한 사람, holiness)을 설명한다.

 

이것이 웨슬리의 의인화(justification)와 성화(sanctification)의 종합을 이루는 구원론적 특성이다.

 

(4) 개인적 성화와 사회적 성화 :

 

웨슬리의 구원론의 핵심은 개인적일 뿐 아니라 사회적인 '성화(聖化)'에 있다. 회개는 종교의 현관(porch)이요 믿음은 종교의 문(door)이라면 성화는 종교 자체(religion itself)이다.

 

웨슬리의 개인적 성화는 세속성과 죄악성으로부터의 철저한 분리(separation)와 성별(聖別)을 뜻하며, 사회적 성화는 성육신적인 요소(incarnational factor)로서 세속성으로부터 분리된 성별의 힘을 갖고 세속을 찾아가는 성육신의 참여, 곧 사랑의 적극적 행위를 세상 속에 실천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이다. 결국 성결은 소극적인 성화의 방법이고, 사랑은 적극적인 성화의 방법이다.

 

(5) 은총의 낙관주의(Optimism of Grace) :

 

웨슬리는, 우리의 죄악성의 깊이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의 은총의 높이가 크시기에 크신 은총으로 '성화의 완성'이 죽기 전에도 가능하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절대적인 완전은 죽음 후에 '영화'(Glorification)에서 이루어진다.

 

지상의 완전은 의식적인 죄를 범하지는 않는다 하여도, 무의식적인 죄(involuntary sin)의 상태는 남아있기에 상대적 완전이다. 그리고 이 완전은 정지 상태가 아니고 계속적으로 달려나가는 과정(continuous process) 속에 있다.

 

웨슬리는 은총의 낙관주의에 의해서 사회적으로도 지상의 천국을 실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신학적인 통찰은 한국의 통일 희년 운동의 신학적인 기초가 될 수 있다

 

 

선재적 은총

 

웨슬리는 인간의 구원을 예정에서 출발하지 않고 선재적은총에서 출발한다.

 

구원의 첫 여명인 선재적은총에서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하는 영화(glorification)까지를 구원의 완성을 향한 순례의 과정으로 이해한다. 선재적은총이라 함은, '믿음보다 앞서는 은총'이라는 뜻이다.

 

(1) 선재적은총으로서의 이성(reason) :

 

그 동안 이성은 교회 앞에, 믿음 앞에서 감추어져야 했고, 과소평가 되어 왔다. 그러나 인간은 이해의 눈이 열릴 때에 - 이성으로 - 영적인 것을 깨달을 수도 알 수도 있는 것이다. 이성은 믿음이 서야할 토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성이 강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이성을 찬양하는 것 또한 올바르지 않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신격을 부인하는 사람들이다. 기독교적 계시에 대한 배타적 편견을 갖고 있거나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아 보통 극단으로 빠지게 된다.

 

웨슬리는 이성에 대한 과대, 과소 평가에의 두 극단의 중용이 존재한다고 한다. 진실된 종교의 기초는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지만, 이성은 살아있는 말씀으로 우리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에게 설명하는데 사용될 수 있고, 이성이 없이는 말씀에 담겨 있는 근본적인 믿음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성은 믿음, 소망 사랑, 선한 의지(good-will)을 생산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지 않을 지라도 이성을 과소평가해서도 안 된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확실히 이성은 선재적은총, 그 이상의 것도 이하의 것도 아니다.

 

(2) 선재적은총으로서의 양심(conscience) :

 

웨슬리는 우리들의 도덕 감각(양심)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선재적은총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다라고 한다.

 

즉 본성이 아니라, 선재적은총이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기독교적 양심이란, 하나님의 선재적은총의 영광스런 도우심에 힘입어 우리 자신의 성질과 삶, 생각, 말, 행동의 본질 우리가 지향하는 규칙 거기에 수반되는 찬성 혹은 반대하는 태도 등을 한 번에, 그리고 동시에 보게 하는 능력이라고 설명한다.

 

(3) 선재적은총으로서의 자유의지(free will) - 선재적은총과 구원의 관계성

 

웨슬리는 선재적은총인 자유의지에 의하여 구원의 준비 단계에 이른다고 주장한다.선재적은총 자체가 구원은 아니다. 구원의 첫 여명이요,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는 첫 발걸음이요, 하나님의 첫 이끄심이다.

 

이 선재적은총으로 구원을 향하여 마음의 문을 열 수도, 열지 않을 수도 있는데, 자유의지의 결단으로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다. 그리고 선재적은총으로 구원의 은혜를 열심히 사모하게도 된다.

 

웨슬리의 선재적은총이 구원의 과정에서 갖는 역할은 구원을 열심히 사모하는 열심 마음의 문을 여는 결단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는 자유의지적 참여 등이다.

 

이러한 입장은 당시 영국 성공회 성직자였던 웨슬리도 자연스럽게 알미니우스적 자유의지론을 받아들였는데, 이것은 칼빈의 불가항력적 은총론을 거부한다.

 

웨슬리 구원론의 영국 성공회와 로마 카톨릭의 배경

 

웨슬리는 옥스퍼드 시절에 심취하였던 영국 성공회와 로마 천주교회의 신비주의의 선행의인화(justification by good works)와 성화(sanctification)를 루터의 신앙의인화(justification by faith)에 의해 올더스게잇을 체험한 이후로 거부하였다.

 

그러나 성화와 완전 이해를 전개하는 과정에서는 성공회와 로마 천주교회의 신비가들의 사상을 다시 끌어들인다.

 

웨슬리의 성화 이해와 완전 이해에서 영국 성공회와 로마 천주교회의 신비주의적 요소가 나타난다. 곧 그리스도처럼 본성이 실제로 의로움과 참 거룩함으로 변한다는 사상(impartation)은 계속 견지한다.

 

결국 웨슬리는 '성결에 이르도록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faith working by love leading to holiness)을 영국 성공회와 로마 천주교회의 신비주의로부터 배웠다.

 

웨슬리는 죽는 날까지 자신을 영국 성공회 목사라고 늘 생각했고, 영국 성공회의 성경, 전통, 이성의 세 가지 신학 규범에다가 체험을 추가하였다. 또한 영국 성공회의 39개조 신조를 모두 받아들이는 등, 영국 성공회와 연대하려는 노력을 계속 추구하였다.

 

또한 분열을 막기 위해서 '감리교회'(Methodist Church)라고 이름하지 않고 '감리교 신도회'(Methodist Society)라고 이름 붙이면서 영국 성공회를 개혁하고 갱신하는 신도회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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