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자료

[스크랩]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요한계시록 2:1-7)/김홍전목사님

baromi 2008. 2. 16. 20:30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요한계시록 2:1-7)
김홍전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 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치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부터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귀 있는 자는 성신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어떤 교회든지 눈으로 볼 수 있는 교회에는 거기에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는데, 단점 가운데 있어서는 아니 될 것들이 끼어들면 그 교회가 그로 말미암아 상해를 입게 되는 것이올시다. 성경에서 그런 것을 잘 정록(整錄)해서 실례로 가르친 것이 이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입니다. 요한계시록의 기법이 상징적이요 환상적인 형식인 까닭에 보통 그냥 읽어 가지고서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전체의 서론과도 같은 2장과 3장에 있는 일곱 교회를 향한 서신을 보면 주로 가시(可視)의 교회가 현실적으로 어떠해야 할 것인가, 특별히 어떤 결점을 가지고 있을 때에 그 결점을 그대로 방치해 두는 것이 어떤가, 하는 것들을 우리에게 실례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일곱 교회의 서신의 첫째가 2:1-7에 있는 에베소 교회인데 에베소 교회에도 잘하는 것이 있었고 또 책망을 받은 잘못된 것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잘하는 점을 내가 ‘안다’ 하고 예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첫째 “내가 특별히 네 행위를 안다.” 행위에 의해서 이루어 놓은 사업이 있을 것이므로 ‘네가 일한 것을 안다’ 하시는 말씀과 비슷한 말입니다. 또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 일을 해 나가려니까 수고하게 되고 괴롬도 받게 되는 것이오. 또 참고 특별히 핍박이 왔을 때 그 핍박을 견디고 나가던 것이오. 이런 것들을 아실 뿐 아니라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을 안다. 항상 사상상, 신앙상 표준이 확호하게 서 있어서 그 표준에 비추어 보아서 옳지 않을 때에 그것을 용납지 아니하였고 악한 자들을 참고 내버려 두지 아니한 것이올시다. 이런 것을 여기에 특별히 표시한 것을 보면 에베소 교회는 교리(敎理)상 문제를 잘 분별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그 다음에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서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을 내가 안다.” 지금은 사도라 할 때는 분명히 열두 사도를 의미하는 것이지만 원래 사도라는 말뜻이 예수께서 일을 시키시려고 메시지를 주어서 보냈다는 뜻인 까닭에 그때는 꼭 열두 사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명령을 간접으로나 직접으로 받아서 가서 전파하는 사람이 사도였습니다. 그런 의미로서 사도 바울도 “내가 사도가 아니냐?” 했던 것입니다. 열두 사도의 하나라는 의미는 아니에요, 사도 바울이 자기가 사도라고 한 것은. 바울 선생의 1차 여행을 보더라도 바울과 바나바를 가르쳐서 두 사도라 그랬거든요. 그때는 사도라는 말을 광범위로 쓰던 시대였습니다. 그런고로 사도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수난과 부활, 즉 복음의 내용을 증거하는 사람들인데, 사도의 권위에 힘입어 존경을 받고 싶어 한 자들이 자기네가 사도라 하면서도 사실상 복음의 내용이 없는 것을 전할 때, 무슨 종교적인, 철학적인 내용을 전하니까 에베소 교회는 ‘그런 것이 아니다’ 하고 그 거짓된 것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리고 ‘네가 교리상 분명한 태도를 늘 취하고 있을 뿐 아니라 환난과 고통이 임할 때, 핍박이 있을 때라도 네가 내 이름을 위하여 거기서 견디고 참고 나아갔고 그것 때문에 템포를 늦추거나 게으름 피우는 일이 없이 부지런하게 늘 나를 섬긴 것을 내가 안다.’ 이렇게 여러 가지 것을 안다고 하셨어요. 이것은 주께서 그들이 잘한 것을 인정해 주신다는 뜻이올시다.


그런데 잘한 것만을 말하지 않고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들이 잘못한 것을 지적하신 내용입니다. 4절에 보면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으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처음에 나왔을 때 예수님께 대하여 가지고 있던 열정과 사랑, 그것을 버리고 종교적으로 유형(類型)화 해 나간 것이에요. 그러기가 쉬운 것인데 그쪽으로 빠져 들어갔다는 거예요. 예수님께 대한 처음 사랑을 버렸는데 이것은 형제끼리의 사랑이라는 것이 먼저가 아니고 개인의 예수께 대한 사랑과 그 사모함을 먼저 세워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버렸다. 그동안 교리상 문제로 다툼도 많고 변론도 많았을 텐데 그러는 동안에 어느덧 이론적으로 변해서 그리스도를 사모하는 간절한 심정이 그전과 같지 않고 딱딱해졌다는 거요. 그것이 자꾸 심화되어 가는 것인데 거기에 대해서 “그런고로 너희가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회개하여 처음에 가졌던 정신과 내용으로 일을 해라 하는 것입니다.


무슨 행동을 잘못했다는 것도 아니고 파렴치한 죄를 범한 것도 아니지만 마음을 들여다보시는 예수님이 보실 때 그 마음 가운데 그리스도에 대한 간곡한, 간절한 사랑이 없이 종교적으로 딱딱하게 변하여 유형화하고 한 타입이 됐다 그 말이오. 그런데도 만일 회개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겠는고 하니 “내가 네게 임하여 네 등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묵시록 1:20 보면 일곱 교회를 일곱 촛대로 혹은 등대로 표시하였습니다. 그런고로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지 아니하면 네 교회의 참된 내용을 옮겨 버릴 것이다”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는 권고를 충실히 듣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돌아왔느냐 하면, 한때 그랬을는지 알 수 없어요. 왜냐하면 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그렇게 에베소를 사모해서 정력을 기울여 세웠던 교회이고, 그 다음에 사도 요한이 거기 말년에 있으면서 영향을 끼치고 가르치던 데이고, 또 유명한 교부 폴리갑(Polycarp: 69?-155? 서머나 주교), 요한의 제자였던 그이도 거기 있었으므로 그 역사로 보아서 혁혁(赫赫)한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처음 사랑을 가지는 것은 그런 훌륭한 역사적인 인물이 있는 것으로 되는 게 아니고 그리스도 앞에 자복하고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바를 이루어 주시기를 바라며 그리스도에게서 힘을 얻어서 자기를 헌신해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없이 그냥 지낸 모양인데, 그 후에 에베소 교회는 오늘날 자취도 없어요. 그러나 그런 교회가 에베소 교회 하나만은 아니에요. 많은 교회가 처음 세워질 때에는 큰 힘을 들여서 세우고 또 왕성할 때에는 굉장히 찬양을 받지만 시대가 지나면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도 그렇게 해서 없어져서 오늘날 그 자취도 찾기 힘든 처지올시다. “그 촛대를 옮긴다” 했으니까 참된 교회는 네게서 떠나간다는 뜻입니다. 볼 수 있는 가시의 교회는 원래 하늘과 땅에 뻗어서 있는 보이지 않는 교회의 구체적인 표시인데 참된 교회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다면 그 교회는 종교 단체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또 한 가지 특별히 말씀한 것은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는 6절입니다. 니골라 당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학자도 자세히 알아내지 못하였고 모두 짐작만 무성합니다. 혹시 니골라라는 사람의 시작으로 된 것이 아닌가 하는 한 단체를 생각하지만 그야 니골라가 시작을 했든지 안 했든지 이름은 니골라 당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요. 아무튼 에베소 교회 안에 그런 것이 있어 가지고 내부에서 교리적으로 부패케 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상은 잘 알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니골라 당이라고 하면 밖에서 공격해 들어오는 그릇된 사상이나 이단이 아니고 내부 안에서 부패케 하는 요소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을 특별히 가르친 것이올시다. 그런 ‘니골라 당의 하는 짓을 네가 미워한다 하는데 나도 그것을 또한 미워한다. 네게 그런 것이 있음을 내가 인정한다.’ 그런 것 보면 에베소 교회는 대단히 교리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던 교회입니다. 많이 알고 많이 이론하고 많이 생각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많이 배워서 많이 알고 많이 생각했으면 그만큼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더 깊었어야 하는데 사랑이 깊지를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즉 그것을 네가 회개해라 회개를 하지 않으면 참 교회 자태를 네게서 거두어 갈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촛대를 옮기는 이유가 꼭 첫사랑을 버린 것만이라고는 우리가 단정할 수 없으나 에베소 교회는 첫사랑을 버리므로 그와 같은 결과를 나중에 입게 되었습니다. 그릇된 신학과 신앙 가운데 빠져 들어가면, 그릇된 종교관 가운데 빠져 들어가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항상 하나님의 말씀의 터 위에서 참된 신앙 사상을 견지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형식만 자꾸 커지고 내용이 없어질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뿐 아니라 많은 교회가 그런 일을 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


거룩하신 주님이시여, 주께서 에베소 교회에 하신 말씀, 첫사랑을 버렸다 하는 말씀에서 처음 믿었을 때 가지고 있던 주께 대한 열렬한 사랑을 차츰차츰 둔화시키고 또 그것이 차츰차츰 식어서 나중에는 종교 형식만 남고 또 종교적인 감정 가운데 들어가서 그것을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인 것같이 잘못 생각하는 일도 생기고 했겠습니다만 그런 모든 형태가 후세에도 많이 남아서 많은 교회가 부패하고 타락해 나가는데, 이제 저희들도 항상 주의하고 정신 차려서 거룩되이 살게 하여 주시고 중심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는가 없는가, 얼마만큼이나 있는가를 늘 헤아려서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을 사모하고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주께서 은혜 베푸시는 대로 거룩히 살기를 원하옵나이다.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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