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칸 가지 말라고 했다는 말은 거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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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선교전문가 전호진 박사(한반도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인터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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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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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칸 피랍 사건이 있은 지 반년이 지났다. 사건 이후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확산 됐다. 또 해외 선교에 대한 문제점도 많이 지적됐다. 그리고 이슬람 선교의 특수성에 대한 고민도 새롭게 대두됐다. 사건 이후 불거진 문제들이 반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해석되고 있을까? 이슬람 선교 전문가 전호진 박사(한반도국제대학원 교수, 아시아종교연구소 소장)를 만났다.
▲ 이슬람 선교 전문가 전호진 박사. © 뉴스파워 권유나 | | 전호진 박사는 “아프칸 사태 이후 반기독교시민연대가 정체를 드러냈다.”고 우려했다. 공산주의에도 없는 것을 우리 사회가 용인하고 있다고도 했다. 또한 “이슬람이 우리 사회에서 엄청나게 성장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전 박사는 “이슬람 사회가 반기독교, 반민주주의였다. 결과적으로 무신론이었지만 공산주의 이념이나 경제제도를 체질적으로 도입하게 되어있었다.”며 “개인의 인권이나 권익보다 공동체를 강조하는 것” 그 가치관에서 이슬람과 공산주의가 닮아 있다고 주장했다.
아프칸 피랍 사태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도 비판했다. 전 박사는 “우리 사회는 잡힌 사람을 욕하는 사회”라며 “다른 해외 국가들은 도리어 한국은 이상한 사회라고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이슬람과 좌익이 가깝다는 것을 노무현 정권이 보여줬다.”고 주장했다. 전박사는 또한 "정부가 나사지 않아도 돈 안주고 협상을 할 수 있었다."며 "정부가 나섰다는 점은 석연치 않다. 더군다나 190억을 줬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 됐다."고 밝혔다. 이어 전 박사는 "신동아 1월호 제목에 보면 100억이 탈레반을 통해 북한에 갔다는 내용 나와 있다."면서 "정부가 여기에 대해 해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아프칸 피랍 사건에서 정부가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전 박사는 “(샘물교회가) 정부에서 가지 말라고 했는데 갔다는 말은 거짓”이라며 “2007년 2월 5일자 정부가 아프칸에 있는 13개 단체에 보낸 공문의 내용은 페샤와르에서 아프칸 수도인 카불까지 국도를 이용하지 말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전 박사는 “따라서 샘물교회는 그길로 가지 않고 다른 길로 갔다.”며 이 또한 조작이라고 주장했다.
이슬람 사회가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 박사는 “이라크 침공은 부정적인 면도 있지만 그로 인해 민주화의 도미노 현상이 일어났다.”며 그 예로 중동에서 여성이 투표권을 가지게 된 것을 들었다. 또한 "이슬람 사회에서도 청년 지식인들이 독재, 부정부패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 이슬람 사회에서도 청년 지식인들이 독재, 부정부패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 뉴스파워 권유나 | | 앞으로의 선교 방향에 대한 견해도 밝혔다. 전 박사는 한국에 무슬림들이 많다며 국내 무슬림들을 개인 전도 할 것을 재안했다. 또한 중동국가 내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소개하며 “어느 국가에도 숨어있는 기독교인이 있다.”고 말하고 “그 사람들을 제자화 하고 양육하면 이슬람 선교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슬람권 선교를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 했다. 전 박사는 “진보 교계의 문제가 거기에 있다.”며 “한국 기독교는 성경적 기독교를 중시 하느냐, 토착 문화를 중시 하느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있다.”고 말하고 “선교는 모든 종교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전호진 박사와의 인터뷰는 지난 28일 저녁 광화문의 한 커피숍에서 한시간 반가량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Q. 아프칸 사태 이후 한국에 이슬람을 확산시켰다는 의견이 있다. 이슬람에 대해 개방적이고 반기독교적인 흐름에 대해 말해 달라.
아프칸 피랍사태 이후 여러 가지 문제들이 등장했다. 첫째, 반선교적, 반기독교적인 비판이 심했다. 우리 사회가 그동안 이념적으로 기독교를 거부하는 좌익이라든가 반기독고, 반미, 반자본주의 성향의 청년 지식인들이 많다는 것이 들어났다. 이번에 반기독교시민연대가 정체를 드러냈다. 불행한 것은 다른 나라 어디에도 반기독교시민연대와 같은 단체는 없다. 유독 한국사회에만 노골적으로 존재한다. 물론 반기독교적인 지식인이나 흐름은 많다. 그러나 반기독교시민연대라고 하는 정식 조직은 공산주의에도 없다. 이것을 우리 사회가 용인하고 있다.
둘째, 기독교 안에서도 기독교 선교를 비판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것은 결국 신학적으로 보수와 진보의 간격이 더 벌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다보니 복음주의 선교단체들은 노골적으로 전통적 복음주의 선교를 거부하는 진보에 대해 불만을 표현했다는 자체는 결국 한국 기독교가 보수와 진보의 골이 깊어졌다고 본다.
셋째, 복음주의 안에서도 선교에 대해 이대로 안 된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럼에도 선교 자체를 포기할 수 없다. 그것이 중요한 문제로 부각 됐다.
넷째, 우리 사회가 기독교 선교에 대해서는 아주 부정적인 입장을 표했고 반면에 이슬람이 엄청나게 선교하고 있다. 거기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나 교회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이슬람도 엄청나게 선교하고 있다.
▲ 반기독교시민연대, 공산주의에도 없는 것을 우리 사회가 용인하고 있다. ©뉴스파워 권유나 | | Q. 사무엘 헌팅턴이 문명의 충돌을 이야기 했었다. 이슬람과 기독교 근본주의의 충돌이라는 해석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이슬람과 우리사회가 많이 친해졌다. 왜 그렇게 됐느냐. 사무엘 헌팅턴이 ‘문명의 충돌’을 말할 때 유교와 이슬람 커넥션이란 말을 썼다. 유교와 이슬람은 친하다. 왜 친하냐. 유교의 권위주의와 이슬람의 권위주의, 같은 권위주의가 서로 친하다.
그런데 예를 든 것은 유교가 아니라 공산주의인 북한이었다. 북한 김일성은 유교가 아니다. 헌팅턴은 종교를 도식화 하다 보니 김일성을 유교에 포함시킨 것이다. 사실은 공산주의와 이슬람과의 커넥션이다. 그것은 2차 대전 이후에 이슬람 세계가 정치제도와 경제제도를 공산주의 내지 사회주의를 도입했다. 그것은 왜 그런가.
이슬람 사회가 반기독교, 반민주주의였다. 결과적으로 무신론이었지만 공산주의 이념이나 경제제도를 체질적으로 도입하게 되어있었다. 개인의 인권이나 권익보다 공동체를 강조하는 것이다. 이슬람국가나 공산주의에서는 엄밀하게 말하면 개인은 중요하지 않다. 공동체, 국가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그 가치관에서 이슬람과 공산주의가 친하게 됐다. 그래서 대부분 이슬람 국가들의 경제제도는 사회주의 제도를 도입했다. 힌두교나 불교 국가들 까지도 사회주의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다 실패했다.
Q. 9.11 테러 이후 이슬람 근본주의와 기독교 근본주의의 충돌로 보고 있다.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비서구 학자들과 우리나라에서는 그 이론을 반대한다. 현상을 정확하게 객관적으로 보기보다는 감정적 대응이라고 본다. 반미, 반서구 우월주의에 대한 감정적 대응이다. 이미 헌팅턴이나 여러 학자들이 모든 테러의 1/3이상은 전부다 이슬람 국가에서 일어나고 있다. 또 국제 분쟁의 1/3이상은 종교분쟁이다. 현상은 분명 있는데 아니라고 하는 것은 현실을 정확하게 보기보다도 자기의 어떤 편견이나 감정을 우선시 하고 있다고 본다.
▲ 이라크 전쟁은 기독교 원리주의, 유대교 원리주의, 이슬람 원리주의가 서로 싸운 것 © 뉴스파워 권유나 | | Q. 9.11테러 사건 이후 이슬람 근본주의인 알카에다가 있는 이라크를 공격한 것이 대표적인 예인데, 기독교 근본주의적인 시각에서 선교를 위해 전쟁을 했다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첫째, 부시가 이라크를 침공한 것은 기독교 선교를 강조했다기보다도 미국적 가치관을 중동국가에 심으려는 의지가 강하게 작용했다고 본다. 이념적으로 부시 자체는 신앙적으로 원리주의에 속한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는 이슬람 한 학자가 ‘본질적으로 이라크 전쟁은 기독교 원리주의, 이슬람 원리주의, 유대교 원리주의 전쟁이다.’라는 말을 했는데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왜냐하면 부시는 이념적 기독교 선교를 위해서라기보다도 민주주의의 가치이자 미국적 가치인 자유, 인권, 평등의 가치관을 강제적으로라도 심어야 한다.
그 이론적 배경은 네오콘이다. 기독교 원리주의와 네오콘(신보수 강경파)의 결탁이다. 네오콘의 핵심 인물들은 다 유대인이다. 결국은 기독교 원리주의, 유대교 원리주의, 이슬람 원리주의가 서로 싸운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네오콘의 사상이 UN을 통하지 말고 미국의 무력을 이용해서라도 자유, 인권, 평등, 민주주의를 강제로 중동에 심어야 한다는 것이 부시의 철학이었다.
Q. 그렇다면 미국의 이라크 공격과 그 여파로 나타난 아프칸 피랍 사태. 이것을 연관 시킬 수 있나?
미국의 이라크 침공의 여파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양면성을 가진다. 첫째, 긍정적인 면은 내가 2003년 9월 이라크 바그다드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바그다드대학 출신 지식인 장로와 2시간 인터뷰를 했다. 그것 때문에 한국 영사한테 꾸중도 들었다. 그런데 그 분의 말은 노골적으로 미국의 공격을 ‘이라크 해방으로 본다.’는 것이었다. 후세인으로부터 기독교인과 이라크 국민들이 엄청난 수난을 당했다. 거기에 대한 해방으로 본다. 그러나 미군들이 오래 있어서는 안 된다고 진단했었다. 정확한 진단이었다.
둘째, 제일 긍정적 결과는 쿠르드 족이다. 이라크 북쪽에 있는 500만의 쿠르드 족이 이라크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가 됐다. 쿠르드는 지금 완전히 해방국이다. 선교적으로 쿠르드족들에게 지금 엄청난 선교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 하루에 수백 명씩 개종하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 현재, 한국선교사만 못 들어가고 있다. 서양의 선교사들이 쿠르드에 가서 엄청나게 활동하고 있다. 명성교회(김삼환 목사)가 그곳에 교회당 지어주기로 했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이라크 자치구 지도자가 교회를 세워주시오. 이것은 엄청난 결과다.
셋째, 지금 중동에는 민주화의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것도 이라크 침공 이후의 일이다. 내가 이미 2005년도에 책을 통해 언급한 바 있다.
▲ 지금 중동에는 민주화의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 뉴스파워 권유나 | | Q. 이런 쿠르드족의 선교모델이 이슬람 선교의 사례로 모델로 제시가 될 수 있을까?
모델이 아니라 우리도 해야 하는데 우리는 못 들어가고 있다. 쿠르드족이 복음에 대해 수용적인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 것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쿠르드족들은 이슬람 반대 운동이 일어났었다. 왜냐하면 같은 이슬람 국가들이 쿠르드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다. 터키가 해방 전에는 노골적으로 쿠르드 독립 국가를 약속했었다. 쿠르드는 인구가 3천만인데도 불구하고 이라크나 이란 등 모든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이 국가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두바이나 쿠웨이트는 인구가 몇 백만도 안 되는데 독립국가가 됐다. 그러자 쿠르드족 내부에서 ‘우리는 이슬람에 배신 당했다.’는 인식이 생겼다. 그 결과 반발감이 형성 돼 있었다. 그래서 이미 미국이나 서방 기독교 단체에서는 20년 전부터 예수 영화를 보급했었다. 지금은 상당수가 노골적으로 크루드 사람들을 대상으로 전도하고 있다.
Q. 중동과 이슬람 선교에 관한 책 <전환점에 선 중동과 이슬람>을 펴냈다고 들었다. 여기에 이런 내용들을 담고 있나?
그렇다. 이라크 침공은 부정적인 면도 있지만 그로 인해 민주화의 도미노 현상이 일어났다. 사우디나 중동에서 여성들의 투표권을 가지게 되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할 당시에 이란에서는 그날 그때에 청년들이 ‘미국이여! 테헤란도 침공해 달라!’라고 벽보를 붙였다. 카이로에서도 동시에 청년들이 ‘우리 카이로도 때려달라!’라고 했다. 그것은 독재, 부정부패에 대한 반발을 청년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반미는 정치 이데올로기로 말하고 있지만 그 표면에 반대되는 이면을 가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말하고 있지 않을 뿐이다. 쉽게 말하면 우리만 민주화에 대한 욕구를 가진 것이 아니고 어느 나라든지 지식인 청년들은 민주주의, 개인의 권리에 대한 욕구를 다 가지고 있다. 단지 발표하거나 말하면 죽으니까 말하고 있지 않을 뿐이다.
Q. 아프칸 사태 이후 무리한 해외선교에 대한 비판이 강하게 들끓었다. 분당샘물교회 선교 방식이 비판받을 내용이었다고 보는가?
물론 잘못된 선교에 대한 비판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회가 이미 반기독교적 정서가 형성되어 있었다. 쉽게 말하면 깡패가 있고 깡패한테 잡힌 사람이 폭행을 당했다고 치자. 그러면 어느 사회이든 깡패를 뭐라고 해야한다. 그런데 도리어 우리 사회는 잡힌 사람을 욕하는 사회가 되어있다. 잘못이다. 거기에서 벌써 한국사회가 이미 뭔가 비정상적인 사회임을 해외에 보여줬다.
다른 해외 국가들은 도리어 한국은 이상한 사회라고 한다. 윤리적, 도덕적으로 중대하게 비틀어진 사회라고 염려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잘못한 것은 이슬람과 좌익은 가깝다는 것을 노무현 정권이 보여줬다. 납치당한 사람을 오히려 비방하고 탈레반을 욕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 자극하지 말라고 했다.
샘물교회는 해마다 3번씩 갔다. 선교 자체의 문제를 놓고 보면 직접 한 것도 아니고 한국 복지제단을 통해서 병원을 세워줬으면 외부에서 한 번씩 가서 봉사해주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중요한 것은 ‘가지 말라고 했는데 갔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가지 말라고 한 적이 없다. 위험지역이라고 말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2007년 2월 5일자 정부가 아프칸에 있는 13개 단체에 보낸 공문의 내용은 페샤와르에서 아프칸 수도인 카불까지 국도를 이용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붙잡힌 탈레반이 한국 사람들을 납치해서 석방교환을 하기 위해서 노리고 있다는 것을 통보해 준 것이다. 그게 내용이다. 따라서 샘물교회는 그길로 가지 않고 다른 길로 갔다. 이미 4개 단체가 집단으로 갔고 많은 개인들이 그 도로를 다녔다. 그 시간이 타이밍이 맞는 시간이었고 사막이어서 그길 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 비행기를 타기에는 비싸고 쉽지 않다. 그 길 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배형규 목사는 가지 말자고 했는데 운전기사가 고집을 했다. 결국 30분 만에 붙잡혔다. 영국에 뉴스위크에 나온 기사를 보면 출발 30분 후에 탈레반들이 접근했다. 오토바이 2대가 벌써 순찰을 돌았다. 한국사람들을 납치하려고 순찰을 돈 것이다. 의도된 납치였다. 납치범이 ‘중국사람이냐’라고 묻더라는 것이다. ‘한국사람이다.’라고 하니까 납치됐다. 일부러 한국사람을 납치하려고 했다.
Q. 한국인이 납치의 타깃이 된 이유가 뭔가?
아프칸 에서 NGO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서방 NGO도 음모로 본다. 이슬람을 무너트리는 적대세력으로 본다. 이슬람 과격분자들은 음모론, 종말론을 믿는다. 기독교, NGO는 다 이슬람을 무너뜨리기 위한 적대세력으로 본다. NGO도 이슬람 과격분자들에게는 반갑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기독교인이 자기들 땅을 밟는 자체를 싫어한다. 기독교인들이나 유대인들이 이슬람 땅을 밟는 것은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도 이슬람 땅을 종교라는 이름으로 밟는 것은 그들의 저항을 산다. 정치와 종교의 양면을 동시에 봐야 한다.
Q. 한국에는 해외 선교를 앞두고 유언장을 쓰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선교사가 현장에서 납치됐을 경우 절대로 돈으로 해결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유언장은 개인의 신앙으로 각오를 단단히 하려는 차원으로 본다. 그리고 돈을 주고 협상했다는 자체는 결국은 더 납치를 당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탈레반은 앞으로도 계속 할 수 있다. 또 정부가 나섰다는 자체가 잘못이다. 정부가 직접 나서기보다 제3자가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했다.
그다음 중요한 것은 샘물교회 납치 때 우리보다 더 빨리 석방하라고 했던 단체가 이슬람 세력이었다. 한국에 있는 이슬람들도 14만 명의 이름으로 성명서를 발표 했다. 그들이 더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섰다. 모든 중동 이슬람 국가들이 납치를 석방하라고 성명서를 냈다. 왜 그랬느냐. 결국 이슬람세계는 암암리에 한국을 이슬람화 시키겠다는 목표 설정이 돼 있다.
88년도에 이란의 신문에 나왔고 사우디가 이미 행동을 하고 있다. 이슬람 선교 사우디가 주도하고 있다. 사우디무슬림협회라는 연맹이 보이지 않게 움직이고 있다. 그렇게 때문에 정부가 나사지 않아도 돈 안주고 협상을 할 수 있었다. 탈레반들이 더 괴로웠다. 자주 옮기면서 한계를 느꼈다. 그런데 정부가 나섰다는 점은 석연치 않다. 더군다나 190억을 줬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 됐다. 그리고 신동아 1월호 제목에 보면 100억이 탈레반을 통해 북한에 갔다는 내용 나와 있다. 정부가 여기에 대해 해명을 해야 한다.
▲ 신동아 1월호 제목에 보면 100억이 탈레반을 통해 북한에 갔다는 내용 나와 있다 © 뉴스파워 권유나 | | Q. 그렇다면 한국교회는 앞으로 이슬람 선교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구체적으로 제안하겠다. 첫째, 한국이 선교의 각축장이다. 이태원에서 이슬람 국가에서 온 개종한 청년을 만나 주일마다 모임을 시작했다. 이 친구와 함께 이태원 거리를 한번 다니면서 한글을 가르쳐 주겠다고 하니까 7명이나 왔다. 물론 다 개종한 것은 아니다. 간단히 기독교를 소개하고 돌려보냈다. 중동에서는 이런 일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무슬림들을 개인 전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태원에 가보면 많은 무슬림 청년들이 개별적으로 교회에 나가는데 자기도 모르는 아랍어 하는 친구들이 겁을 준다. ‘어디 갔다 오느냐.’, ‘어디 있느냐.’. 이게 말이나 되나. 벌써 한국에서도 개인의 활동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종교의 이름으로 사람을 억압하고 공포를 주느냐. 여기에 대해 우리가 싸워야 한다. 한국이 더 좋은 이슬람 선교지다.
둘째, 작년도 5월에 시리아 장관급 지식인 무슬림을 만났다. 그가 좋은 방안을 제시했다. 왜 한국교회가 안 되는 아랍 무슬림을 상대로 전도하느냐. 중동국가에 기독교인들이 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기독교 집안에는 도장이 찍혀있다. 중동국가는 주민등록증에 종교를 기제 하도록 되어있다. 기독교로 도장 찍혀 불이익과 보호를 동시에 받는다. 그 교회 안에서는 얼마든지 활동해도 괜찮다. 나도 세미나를 3번이나 했다. 어느 국가에도 숨어있는 기독교인이 있다. 그 사람들을 제자화 하고 양육하면 이슬람 선교가 가능하다.
Q. 이슬람교도들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뭔가?
이슬람 교리 자체에 문제가 있다. 코란에 보면 이슬람에서 다른 종교로 개정하면 알라신에 대한 배신이다. 알라신에 대한 배신은 엄청난 형벌을 받도록 되어있다. 이슬람 교리 자체가 배신자는 죽여도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슬람 교리가 무섭다. 종교의 자유가 이슬람에게는 없다. 민주적 사회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종교 집단주의, 전체주의다. 공산주의 안에서 공산주의를 반대하면 생존할 수 있나.
Q. 올해 NCC 사업의 방향중 하나가 이슬람과의 대화다. 어떻게 생각하나?
대화는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할 수 있다. 한 사회에서는 대화해야 한다. 문제는 신학적 대화는 안 된다. 예를 들면 61년도 뉴델리 대회 이후에 파키스탄은 기독교 이슬람 대화 채널이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이 신학적으로 종교적 문제를 대화하고 책을 내고 논문을 낸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이슬람은 기독교를 자유롭게 비판한다. 그러나 그 대화에 참여하는 기독교인들은 이슬람에 대해서는 비판의 자유가 없다. 이것은 일방적이다. 더군다나 중동국가에 있는 오랜 기독교 기관은 NCC, WCC인데 대화를 강조한 나머지 비 선교적이다. 선교하는 교회를 도리어 비방하고 있다. 스리랑카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스리랑카 NCC교회는 복음주의 교회를 도리어 박해하고 있다. 그런 양면성이 있다. 순수한 사회적 대화는 해야 한다. 신학적으로 깊이 이해한다는 것은 어렵다. 평화적 공존 할 수 있느냐. 순수한 일대일의 대화는 어렵다.
그리고 문제는 지금 대화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온건주의 무슬림 세력이다. 극단주의자들은 대화에 참여하지 않는다. 극단주의자들에게 기독교인은 다 사탄이다. 사탄과는 대화 할 수 없지 않겠느냐. 우리가 문제 삼는 것은 온건주의 무슬림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과 대화 자체가 불가능 하다. 물론 학문적으로 대화하는 사람들도 있고 종교 잡지도 있다. 그러나 지금 대화하고 있는 것은 하나의 대외적 형식을 갖추는 것이다.
▲ 이슬람과 기독교의 종교간 순수한 일대일의 대화는 어렵다. © 뉴스파워 권유나 | | Q. 지난해 12월 11일 NCC 주관으로 열린 ‘해외선교와 신학토론회’에서 한국일(장신대 선교학) 교수는 “대다수 교회들의 선교 행태가 개인구원과 교세확장에 치중되어 진정한 선교의 의미를 상실했다.”며 잘못된 선교관을 비판했다. 이에 동의하나?
자유주의 신학과 우리는 신학적 전재가 다르다. 작년 12월 달에 미국 콜롬비아 Mark Milla라는 작가가 ‘유산된 하나님’ 이라는 책을 썼다. 서구의 자유주의 신학이 서양의 문명을 망쳤다고 하는 놀라운 책이 나왔다. 합리주의와 성경적 기독교가 결탁한 서양의 자유주의 신학이 성경적 하나님을 서구 문명에 탄생시키지 못하고 성경적 신은 도로 유산시키고 말았다는 내용이다.
그 책에 보면 독일의 자유주의 신학이 카이제르 같은 독제를 만들었고 히틀러를 만드는데 기여했다고 나와 있다. 하로낙이라고 하는 자유주의 신학자가 1915년 8월에 독일 군국주의 성명서를 초안하는데 기초를 놨다. 거기에서 히틀러가 나왔다. 아드롤프 하로낙을 위시로 해서 많은 자유주의 신학자를 거명하며 그들이 도리어 독일의 군국주의와 히틀러를 낳도록 만드는데 기여했다고 한다.
자유주의가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것은 서양에서는 도리어 하나님의 주권사상이 실현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이슬람이 서구 사회를 침식해 가고 있다. 내가 한국일 교수를 안다. 그러면 개인 구원을 안 하면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구원은 개인적이다. 지금 70%이상이 텅빈 교회다. 어떻게 하란 말인가. 이제는 내가 노골적으로 자유주의와 이슬람과 선전포고를 한다.
Q. 오늘날 한국 교회의 해외 선교에서 가장 큰 문제점이 뭐라고 보는가?
선교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선교지의 필요에 따른 선교를 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필요에 따라 선교지에 간 사람들이 많다. 국내에서 교회가 성장하지 못하니까 많은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이 선교지로 가고 있지만 언어가 준비된 사람은 극소수다. 아랍어 국가에서 아랍어로 유창하게 설교 할 수 있는 사람은 10%도 안 된다. 러시아나 중앙아시아도 마찬가지다. 언어가 잘 소통 되어야 완벽한 선교가 되는데 90%가 언어도 안 되고 있다. 다른 것을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면 언어도 안 되는 사람들이 해외에 나가 있느냐. 그것은 선교비 때문이다. 국내에서 얼마든지 저비용으로 선교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잘해도 선교비를 지원받지 못한다. 국내 선교활동에 대해서는 인색하다. 밖에 나가야 된다. 왜냐 선교지 방문도 해야 하고, 이름 내는데 더 좋고. 이게 오늘날 한국 교회의 모습이다.
Q. 아프칸 사태 이후 드러난 주장중 하나는 무슬림들을 개종시키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것은 기독교를 전하지 말라는 주장과 같다. 우리 사회 진보 교계의 문제가 거기에 있다. 선교를 앞세우느냐 다원적 문화를 앞세우느냐의 문제다. 성경은 다른 종교의 우상에 대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 한국 기독교는 성경적 기독교를 중시 하느냐, 토착 문화를 중시 하느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있다. 다원주의를 강조하는 사람들의 말은 자기 신앙일 뿐이다.
작년 8월 20일 온누리교회가 일본에서 LOVE소나타를 했다. 8월 20일 자로 일본산케이신문은 한국의 선교를 비방했다. 한국의 열정적인 문화적 기질로 단정하고 그런 열광적 기질로 한국 사람들은 남에게 강요하는 버릇이 있다. 그런 입장에서 일본 선교에까지 손을 미친다고 비방했다. 일본 종교도 한국에 많이 퍼져있다. 일본도 한국에서 전도하는데 왜 남만 비판하느냐. 선교는 모든 종교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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