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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나는 선지자, 내 예언 안 따르면 망한다" 해괴한 주장 계속하는 대구 빌라델비아교회 김정자씨(펌)

baromi 2007. 12. 29. 17:10

나는 선지자, 내 예언 안 따르면 망한다"
확인취재/ 해괴한 주장 계속하는 대구 빌라델비아교회 김정자씨
장운철 kofkings@amennews.com

“한국교회 신학을 한 목사들은 회개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나, 김정자는 선지자입니다. 내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으면 재앙이 옵니다. 나는 분명히 선포했습니다.”



▲ 자신이 전도사라고 주장하고 있는 김정자 씨

김정자 씨(62, 대구 빌라델비아교회)의 엉뚱하고 해괴한 주장이 계속되고 있다. 김 씨의 주장은 한 마디로 자신이 선지자라는 것과 한국교회 목사들은 자신의 말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김 씨는 전국의 잘 알려진 목회자들을 찾아다니고 있다. 자신의 주장을 그들에게 전하는 것이 사명(?)이라고 한다. 김 씨는 이제껏 자신이 찾아갔다는 교회와 목회자들의 명단까지 정리하여 가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162곳이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김 씨는 대통령을 비롯하여 국가 고위 공직자들도 만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신의 주장을 들어야 국가가 안녕하다는 것이다.

기자는 지난 12월 19일 대구에서 김정자 씨를 만났다. 그 자리에는 김영준 목사(대구 온누리교회) 등 대구 지역 목회자 4명이 동석했다. 목회자들은 이미 김 씨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김 씨도 그 자리를 반겼다.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한 모양이다.

김 씨와 목회자 4명과의 대화는 처음부터 삐그덕 거렸다. 김 씨가 돌린 그의 명함의 내용 때문이다. 김 씨는 자신을 ‘전도사’로 소개해 놓았다. 그 명함을 받은 목회자들은 ‘어느 교단 소속 전도사냐’, ‘교단 소속 없이 어떻게 전도사가 될 수 있느냐’, ‘지금이라도 제대로 직분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등으로 교훈하려고 했고, 김 씨는 ‘교단 총회장이 성경책을 나에게 증정하면서 전도사라고 했다’, ‘하나님이 직접 그 직분을 감당하라고 했다’, ‘하나님이 나에게 신학을 하지 말라고 했다’는 등으로 자신 직분의 정당성을 입증하려고 노력했다. 김 씨의 직분에 대한 지루한 공방이 약 30분 동안 흘렀다.



▲ 김정자 씨(맨 오른쪽)와 대구 지역 목회자들이 만났다

목회자들은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김 씨의 주장을 들어보기로 했다. 직분에 대한 토론은 결론이 없었다. 김 씨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이 대통령을 만났다는 사건을 설명했다.

“통치자에게 가는 것도 제 사역이에요. 하나님이 ‘왕 앞에 서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김영삼 대통령 시절 그분을 찾아갔었어요. 1998년 2월 16일이었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7가지 죄를 전달했어요. 나는 선지자입니다. 그리고 나라를 사랑합니다.”

김 씨는 대통령과 고위 공직자들을 만났던 일들을 자랑스러운 듯 길게 말했다. 이야기 도중 김 씨는 미리 가지고 온 옷 한 벌을 꺼내보였다. 가운 같은 검은 색 옷이었다. 대통령을 만날 때 입었던 옷이라고 했다. 색깔과 디자인 등을 하나님이 직접 자신에게 말해주었다는 것이다. 김 씨는 그 옷을 예복, 선지자 옷이라고 표현했다. 기자가 한 번 입어봐 달라고 요청을 하자, 대통령을 만날 때 외에는 입는 것이 아니라며 그는 거절했다.

김 씨는 계속해서 희한한 주장을 펼쳤다. 1993년 6월 17일 자신이 재앙을 선포했다는 것이다. 한국교회 종들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재앙은 물, 불, 죽음으로 나타난다며 과거 삼풍백화점 사건, 대구 가스 폭발 사건 등이 자신이 선포한 재앙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김 씨는 자신이 직접 타이핑해서 정리한 몇 가지 복사물을 기자에게 건네주었다. 신문 방송 등 언론을 통해 알려진 과거의 각종 재난 기사들을 날짜별로 정리한 것이다. 김 씨는 이 모든 사건들이 자신의 재앙 선포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교회가 나의 예언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회개를 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분노가 일어난 것입니다. 나의 예언대로 이 나라가 움직여지고 있어요. 아무도 믿지 않기 때문에 나만 답답한 것이지요.”

이쯤되자 동석했던 목회자들이 한두 명 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대화의 시간도 1시간이 훌쩍 넘었다. 그러나 김정자 씨는 갈수록 더욱 열의를 냈다. 상대방의 지루한 표정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더욱이 김 씨는 교도소에 수감됐던 이력까지도 서슴없이 설명하기도 했다. 김 씨는 자신의 주장을 대통령에게 제대로 전달해 주지 않는다며 검사를 고소했다고 한다. 이것이 몇 차례 반복되자 결국 김 씨는 정신질환자들을 위한다는 치료감호소에 2년 8개월간 수감되었다는 것이다. 김 씨는 자신의 옥살이도 하나님의 인도라고 주장했다.

“저는 나라와 민족을 구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것으로 인해서 요셉처럼 철장에 갇히게 된 것이죠. 이제는 심판입니다. 애굽의 10가지 재앙과 같은 것이 선지자를 통해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김 씨는 계속해서 몇 가지 복사물을 기자에게 건네주었다. 자신이 최근에 유명 목회자들에게 보낸 편지 사본이라고 한다. 회개를 목적으로 쓴 것이라고 했다. 김 씨는 지난 5월 서울 여의도에서 목회를 하는 한 목회자 앞으로 보내진 편지를 특별히 가리켰다. 자신의 주장과 사회적 재앙과의 관계를 설명해 보려고 한 것이었다. 즉, 그 목회자가 자신의 편지 내용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 핵 미사일 사건이 일어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계속해서 그는 최근 사회적 문제로 알려지고 있는 겨울철 식중독 사건, 조류 AI 사건 등도 모두 자신의 예언과 관련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 먹물잔을 들고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김 씨의 극단적인 주장은 10년 전 본 기자가 취재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주장의 강도가 더 심해진 듯해 보였다. 기자가 쓴 지난 기사는 ‘드보라와 에스더를 겸한 사명을 받았다는 자칭 전도사 김정자 씨’(월간 <교회와신앙> 1996년 12월호, p.163)였다. 김 씨는 기자의 10년 전 기사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김 씨의 불만은 기사 내용에 대한 사실 여부보다는 자신을 ‘김 씨’라고 호칭했다는 표현에 관한 것과 전반적인 내용이 자신의 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감정적인 것 등이었다. 다시 말해 10년 전의 본 기자의 기사가 현재 자신의 활동을 방해하고 있다는 말이다. 바로 김 씨의 답답함은 여기에 있었다. 그가 여러 목회자들을 만나 자신의 주장을 펼치려고 할 때, 일부 목회자들이 과거 기자의 기사를 자료로 사용하여 김 씨를 만나주지도 않고 있다는 것이다.

김 씨와 목회자들과의 대화는 3시간 가까이 되어서 마쳤다. 김 씨는 목회자들의 마지막 충고가 귀에 거슬렸던지 ‘그들은 구원을 못 받았다’며 극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또한 본 기자를 향해 기사를 잘 써야 한다고 부탁(?)을 했다. 그렇지 않으면 ‘큰일을 당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김 씨는 다양한 신앙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신앙생활은 ‘천주교 - 불교 - 무당 - 교회’로 이어진다. 김 씨는 무당이 되기 위해 소위 ‘신 받기 춤’을 추기도 했다고 한다. 이날 모임에 참석한 김영준 목사는 “김 씨가 신앙의 방황을 끝냈으면 좋겠다”며 “그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김 목사뿐 아니라 김정자 씨를 위해 시간을 허락한 4명의 목회자들 마음이 모두가 동일하다.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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