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에 대한 정통적인 견해들모음
1 성경통독세미나를 30년이상하신 목사님의 견해
성경을 읽을 때는 반드시 그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어느 정도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고린도에 보낸 편지에서 방언보다는 예언의 은사를 사모하라 하는 말씀은 오해하기 쉬운 구절입니다. 그 때 방언의 은사는 바울을 존경한다고 하면서 아볼로를 배척 내지는 무시하려 들었던 어떤 신비주의 여자들을 향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그 당시에 고린도 교회는 바울을 지지하는 파벌이 있었는데 대체적으로 이들은 방언의 은사를 받은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볼로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비교적 학문적이고 이론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신비주의적 체험이 있었던 바울 파 즉 방언파의 여인들이 아볼로를 멸시하여 아예 성령도 받지 않은 사람이라고 무시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문제는 수습하려는 의도로 고린도 전서를 기록하였습니다.
바울이 그 당시에 말하는 예언이라는 것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이 말씀을 전하는 것인데 요즘으로 말하면 설교하는 것과 비슷했습니다. 지금은 성경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성경 말씀에 의지하여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글 때는 신약 성경은 기록되지 않았던 때여서 구약 성경 중 일부분을 가지고 다니면서 성령님의 인도로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사역을 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사람들을 선지자 혹은 복음전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오늘 날은 무슨 예언 같은 은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성경 안에서는 역사도 있고 예언도 충분하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 와서 어떤 사람의 장래를 두고 예언한다고 하면서 이상한 소리를 해대는 사람들은 대부분 문제가 있었고 실수와 오류 가 많았습니다. 제 생각에는 아예 상종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저는 근 30년 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도들을 지도해 왔는데 예언한다는 사람 중에서 올바른 사람은 단 한사람도 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충분하게 읽어 두시면 성령께서 선하신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예언의 은사
초대 교회 시대에는 예언하는 사람이 있었고 권위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기도 하였으며 다스리는 사람들이 있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여러 가지 일들을 함께 감당하기도 했습니다. 에베소서에 나오는 여러 가지 직능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직능이나 직제가 분화되어가는 과정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는 많은 부분이 드러나 있지만 그렇다고 성경이 모든 것을 다 보여 주시지는 않습니다. 사도 바울의 초기 서신에는 금방 재림이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드러나 있습니다. 그 때는 예배를 마치고 서로 헤어질 때 서로 격려하면서 하는 인사가 "주께서 임하십니다" 하면서 헤어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바울 서신에서 재림이 먼 훗날에야 있을 것 같은 필치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림과 연계하여 논의하는 것도 많은 부분을 재검토해야 합니다.
저는 성경에 있는 모든 은사가 폐해졌다는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는 고리도 전서에 있는 것처럼 9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있다고 믿습니다. 구약 시대 브사렐과 오홀리압은 여호와의 신으로 감동된 자들인데 공교한 것을 만드는 기술이 있었습니다. 저는 음악의 은사도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저는 방언도 폐해진 은사라고 보지 않습니다. 지금도 성령의 은사로 방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언의 은사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성경 어디에도 예언의 은사를 폐해졌다고 하는 기록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완성된 후에는 예언이나 권면을 하는 분들이 거의 다 성경을 통하여 권면하고 성경을 통하여 가르치고 성경을 통하여 예언의 말씀을 전하여 온 것이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필요하다고 보실 때는 언제든지 어떤 사람에게 예언의 은사를 주셔서 그러한 사역도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성경이 완성된 후 그리고 신약 27권이 확정된 4세기 말에서 5세기 이후에는 교회사적으로 예언의 은사를 가지고 교회를 섬긴 사람들의 이야기는 거의 없습니다. 지금도 대체로 보면 예언한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신빙성이 결여되어 신뢰할 수 있는 수준의 예언가는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저는 5세기 이후 지금까지 예언자 혹은 예언가라는 사람들 중에 건전한 사람들을 거의 찾지 못했습니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단 한 사람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예언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그 예언이 적중되지 않게 되었을 때는 문제가 심각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1992년도 다미선교회 측에 휩쓸려 예언하던 그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에 예언했던 그 예언은 하나도 맞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지금 어디 가서 무슨 말을 전하고 있을까요 ? 그리고 기도원에서 예언해주고 돈을 챙기고 기도해주고 물질을 바라던 그러한 사람들이 지금은 점점 신뢰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이 엉터리였기 때문입니다. 참 예언자가 단 한사람이라도 있었다면 이름이 나든지 명성이 들리든지 했을 것이지만 금세기 들어와서 온 세상 어디에도 그런 예언자가 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습니다.
성경은 길흉을 말하거나 미래를 점치는 사람들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복술과 같은 수준의 예언들은 거의가 다 엉터리였습니다.
지금도 남미 여러 곳에는 카톨릭 점쟁이 같은 사람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들의 말하는 것이 그대로 이루어질지라도 그들을 따르지 말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의 말을 추종하는지 하나님의 계명을 추종하는지 시험하시려고 그런 사람들을 보내서 시험하시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목회 현장에서 실제로 나타나는 현상도 그렇습니다. 그러한 예언자나 방언하는 자, 방언 통역자를 추종하는 사람들 중에는 성경을 바르게 배워서 윤리적인 거룩한 삶을 살려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교회 역사가 진행되면서 어떤 직분은 사라졌습니다. 성경에서 폐한다는 정보가 없지만 지금은 선지자라는 직제나 예언자라는 직제는 교회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참 예언자가 한 사람이 있다면 거짓 예언자는 열사람 백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레미야 시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참선지자는 예레미야 한사람이 있었는데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냐, 바스훌, 스마야, 시드기야, 아합, 끝도 없이 늘어났습니다. 이와 같은 거짓 예언자가 있어서 참 선지자 예레미야의 사역을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거짓 선지자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듣기 좋은 말을 했습니다.
반대로 참선지자는 권력에 맞서 죄를 지적하고 회기를 촉구했습니다.
그리고 회개치 않을 때는 하나님의 징벌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당연히 사람들은 거짓 선지자의 말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 가서는 거짓선지자의 말을 믿었기 때문에 그들은 속았던 것입니다.
한 번 두 번 속은 사람들은 참선지자의 말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탄이 노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모든 예언은 그리스도에 안에서 모두 실현되었다는 것이 신약 기자들의 신념이었고 그들은 모두 예수님께서 말세에 오셨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증거의 근거는, 언제나 구약의 예언이 완전히 성취된 것으로 보았습니다 (마2:15,17-과 호 11:2,렘 31:15비교, 또한 막 14:21, 요 5:39). 신약성경을 기록하신 분들 중에 앞으로도 예언자들이 계속적으로 중요한 예언을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약성경 안에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는 예언과 그 때에 거짓 선지자들이 거짓된 예언을 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 있을 뿐입니다. 그 외에 개인의 길흉을 점치는 것과 같은 예언은 성경이 금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선지자의 활동이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는데(행 11:28,13:1,고전 14:1-5), 그들은 언제나 사도의 권위 하에 있었습니다(고전14:29-32,37-40). 그리고 그 당시는 아직 신약 성경이 완성도 안되었고 정경과 위경이 확정도 되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예언] 또는 [예언자](개역에서는 전부 선지자)로 역된 주요 원어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하-존 (chazon)]-[본자]를 뜻하는 말로 구약에 35회 씌어져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상( 異像 vision)]으로 역되는 히브리어 명사로(시 89:19,사 1:1기타), 무아의 경지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계시를 가리켜서도 씌어지고(삼상 3:1), [계시](vision)로도 역되어 있습니다(렘 14:14). 2. [네부-아-]-히브리어 명사로 후대의 용어인데(대항 9:29, 15:8, 느 6:12), [하-존](묵시, 잠 29:18), [이상](사 1:1,삼상 3:1), [예언](렘 14:14)의 동의어이입니다. 아람어의 동일한 어형 [네부-아(n bu'ah)]는 [권면]으로 번역 되어 있습니다(스 6:14). 따라서 신약 시대의 예언은 권면 즉 설교를 예언이라고 보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3. [프로페-테리아]-헬라어 명사로, 칠십인역이 히브리어 [네부-아-], 또는 [하-존-]의 번역어로 쓰고 있는 말입니다. 구약에 있어서의 예언에 대하여(마 13:14,벧후 1:20,21), 신약에 있어서의 예언에 대하여 인용하고 있습니다 (롬 12:6,고전 12:10,13:2,8,14:6,22, 살전 5:20,딤전1:18,4:14, 계 1:3,11:6,19:10,22:7,10, 18, 19). 4. [프로 페-테우오(propheteuo)]-칠십인역이 히브리어 [나-바(naba')의 역어로 쓴 동사인데, [예언한다](to prophecy)로 역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가 메시야에 대해 예언한 것에 대해(마 11:13,벧전 1:10), 또는 선지자의 일반적인 예언에 대해(마 15:7,막 7:6) 인용되어 있습니다. 신약에도 장래의 일을 예언하는 일에 인용되어 있는데(계 10:11,11:3), 대개의 경우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의 뜻과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경륜을 사람들에게 말하는 일에 대해 씌어져 있습니다 (행 2:17,18,19:6,고전 11:4,13:9,14:1-5,24,31,39). 그러나 성경이 완성된 후로는 실제적으로 예언자들은 점점 사라져 갔습니다. 한 때 예언한답시고 떠들던 사람들이 얼마 안가서 거의 엉터리로 판명이 났습니다. 특히 방언으로 예언하던 사람들의 경우는 거의 다 가짜였습니다. 진지하게 생각해 볼 일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예언이 필요한가 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어떤 사람이 글도 모르고 책도 읽을 수도 없고 하다면 혹시 예언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지금은 주님의 재림이라는 예언말고는 거의 예언이 필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일들은 성경에 충분하게 계시되어 있습니다. 만약 오늘날 너도 나도 예언을 계속하여 쏟아낸다면 설교자나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는 아무런 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너도 나도 성령을 받았다고 떠들며 예언을 한다고 나서게 되면 그 혼란은 아무도 감당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한 두 사람만 있어도 한국 교회가 몸살을 앓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환상도 대개 거짓 환상이 많아서 혼란을 초래하기도 했습니다. 사람에게 성경을 주시고 이성과 판단력과 양심을 주셔서 바른 길을 하게 하신 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이성을 다 무시하고 양심도 판단력도 필요 없이 어떤 예언과 환상을 따라 간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완성된 후에 가장 환상을 많이 보고 예언한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마호멧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몰몬교 창시자 요셉 스미스 그리고 안식교를 이끌어 가던 엘렌지 화잇 여사 그리고 오늘날 카톨릭 교단에서 걸핏하면 파티마의 이적이나 예언같은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다 잘 못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예언이라고 하던 사람들 중에 건전한 사람은 거의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
2 이광호목사님의 견해
오늘날 어린 교인들 가운데 보면, 대단한 예언의 은사가 있는 사람으로부터 예언을 받았다며 그것을 마음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 중에는 앞으로 목회자가 되겠다든지 목사의 부인(사모)이 되겠다든지 하는 내용의 예언을 받아두고 있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 예언의 말을 마음에 새겨두고 개인직업 생활을 하기 때문에 조그마한 어려움이 있어도 자기의 갈길은 목회자의 길이 아닌가 생각하여 우왕좌왕하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시대에는 '예언'(預言)은 끝났다는 점과, '예언(豫言)의 은사'라는 것은 있지 않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집사님께서는 아마, 고린도전서 12장과 14장 등을 통해 예언의 은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집사님 뿐 아니라 순진한 교인들 가운데는 성경에 예언의 은사가 있는데 왜 없다 하느냐는 물음을 던질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이제 이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예언'이라는 낱말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예언'이라 하면, 한자말로 '豫言'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대부분의 '예언'은 '豫言'이 아니라 동일한 음인 '預言'을 뜻합니다. 사전적인 의미를 살펴보면, '예언'(豫言)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헤아려 하는 말'이며 '예언'(預言)은 '신의 계시나 뜻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말'입니다.
집사님께서 기본적인 영어를 이해하실 것으로 생각하여 그에 해당되는 영어 단어를 설명드리겠습니다. 영어에 있어서도 예언(豫言)과 예언(預言)에 해당되는 말은 엄연히 다릅니다. 영어단어에'predict'(prediction)라는 단어와 'prophesy'(prophecy)라는 서로 다른 단어가 있습니다. 'predict'란 '미래에 있을 일을 미리 말한다'는 의미의 예언(豫言)을 의미하며, 'prophesy'란 '하나님의 계시나 뜻을 사람들에게 전한다'는 의미의 예언(預言)을 뜻합니다.
우리가 성경에 나타나는 '선지자'를 때로 '예언자'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 때 예언자는 '예언자'(豫言者)가 아니라 '예언자'(預言者)입니다. 즉 선지자는 미래에 일어날 어떤 사건을 미리 예언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나 뜻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구약성경 히브리어에서 예언자를 '나비'( )라고 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한다'는 뜻인 나바( )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리고 신약성경 헬라어에서도 예언자를 프로페테스( )라고 하는데 이 말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한다는 의미의 프로페테우오( )에서 나왔으며 이 말이 곧 영어의 prophet의 어원이 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한글성경 번역에는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성경 본문 가운데서 한자를 병기하지 않고 예언이라 할 때, 그 단어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 '예언'이 예언(豫言)인 것으로 오해를 하게 됩니다. 요즘에는 한자가 병기되지 않은 성경책이 훨씬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보다 더욱 우려할 만한 사실은 한자를 병기한 성경들 가운데서도 예언(預言)이라고 해야 할 부분을 예언(豫言)이라고 병기하고 있는 부분이 태반이라는 사실입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서 설명하겠습니다. 구약성경 선지서들에는 예언이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그 예언들은 거의 'prophecy'를 의미합니다. 선지자들의 예언(預言) 가운데는 예언(豫言)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사람의 예언(豫言)이 아니라 하나님의 예언(預言)이라는 점입니다. 신약성경 고린도전서 12장과 14장에 나오는 예언도 'prediction'이 아니라 'prophecy'를 뜻합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12:10과 14:1, 3, 4, 5, 6절에는 계속하여 '예언'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한자말로 한결같이 '豫言'이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어성경을 보면 한결같이 'prophecy'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豫言'이라는 한자어 단어는 '預言'으로 바뀌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신앙이 어리거나 잘못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예언'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함이라기 보다는 자기의 불안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것입니다. 불신자들이 주로 예언(豫言)에 관심을 가지지요. 서양에서 성행하는 점성술이나 우리 한국의 점쟁이들이 하는 것이 그런 예언(豫言)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우리는 이미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그 계시와 뜻이 온전히 드러나 있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예언(預言)된 말씀에 관심을 기울이면 되는 것입니다.
이제 결론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시대에는 더 이상 '예언'(預言)이 없습니다. 이것을 '계시의 종결'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인 신구약 성경 66권이 유일한 예언인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에 더하거나 빼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잘 알고 있는데 이는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시대에 '예언(豫言)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어지러운 우리의 때에 많은 사람들이 자기는 예언(豫言)의 은사를 받은 자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정말 하나님으로부터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한다면 '절대로 틀리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일부는 알아 맞추고 일부는 틀리면서 '사람이란 완전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식의 변명을 한다면 그것은 이미 거짓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 특히 고린도전서에서 말하는 예언의 은사는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요? 많은 설명을 필요로 하리라 생각됩니다만 간단하게 한 두어가지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의 은사'는 사도시대에 국한되는 은사입니다. 이는 성경말씀이 완전히 주어지기 전 하나님께서 자기의 거룩한 교회를 세우시기 위한 방편으로서 허락하신 은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시대에는 더 이상 그러한 '예언'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개혁주의, 보수주의 신학의 일반적인 가르침입니다. 둘째, 우리시대에 굳이 적용을 하려 한다면, '예언의 은사'의 의미를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잘 해석하여 교회 앞에 선포하는 은사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예언(預言)인 계시를 드러내는 은사라는 측면에서입니다. 그러나 예언의 은사라는 것이 미래에 일어나게 될 일을 예언(豫言)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님은 명백합니다.
말씀이 약한 시대에는 사람들이 기록된 하나님의 예언(預言)의 말씀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사람들이 하는 예언(豫言)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불신앙 때문입니다. 요즘처럼 교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시대에 살면서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려 허튼 자들의 미혹의 말에 넘어가지 않도록 잘 무장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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