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에 대한 소고
송영찬, 기독교개혁신보 편집국장
빌립보서 2장 12-16절은 1장 27절부터 시작된 복음에 합당한 삶이 무엇인가를 주제로 빌립보 교회를 향한 권면을 마무리 짖는 결론이다. 앞서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높이 되심을 통해 겸손의 모범을 제시한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복음에 합당한 교회의 삶으로써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살 것을 권면하고 있다.
이 권면 부분을 시작할 때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빌 1:27)고 제시한 바울은 "이는 내가 너희를 가 보나 떠나 있으나 ①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②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빌 1:27-28)고 함으로써 이 권면 부분의 주제를 밝힌 바 있다.
이 두 가지 주제에 대해 언급한 바울은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고 권하면서 결론을 맺고 있다.
1. 복음에 복종하는 교회
바울은 자신이 언제나 빌립보 교회와 함께 하고 있음을 전제하고 있다. 바울의 개인적인 존재가 빌립보 교회와 함께 있을 때나 지금처럼 떠나 있는 부재중이거나 바울의 사도적 존재는 항상 빌립보 교회와 함께 하고 있다. 이것은 바울의 부재중에서도 일종의 사도적 임재(The Apostolic Parousia)를 통해 빌립보 교회가 두려움과 떨림으로 하나님의 임재하심(presence)을 경험하기 위함이다(Fred B. Craddock).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느슨하게 놓아주기보다는 하나님께 강력하게 매여 있게 함으로써 자신의 부재가 오히려 성도들의 삶과 관계에서 더 많은 충성과 순종을 기대하고 있다. 바울과 교회와의 뗄 수 없는 관계(inseparable bond)를 통해 빌립보 성도들과 바울은 동역자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바울이 부재중일지라도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 받는 바울의 삶은 그들에게 소중한 영향을 주며 승리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경험이 될 것을 의심치 않았다. 이것은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처럼(빌 2:6-11) 성도들에게 행동의 모범이 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에 근거하여 바울은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고 강력하게 촉구하면서 이 구원은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심이라"(빌 2:13)고 독려하고 있다.
12-13절은 한 문장이며 '그러므로'를 통해 1장 27-30절의 단락과 연결시켜 주고 있다. 특별히 그리스도의 찬송시(빌 2:6-11)에 예시된 그리스도의 모범과 연결시켜 주고 있다. 따라서 "그러므로"는 그리스도께서 복종하셨다는 사실에 비추어(빌 2:8) 빌립보 교회 역시 바울의 가르침에 복종해야 한다(빌 2:12)는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그들이 항상 복음에 복종하였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바울은 복음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요구를 맨 처음 전달했을 때 그들이 보여 주었던 태도(행 16:14, 32, 33)를 기억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빌립보 교회는 지금도 자신의 사도적인 명령을 계속해서 따를 것을 의심치 않는다.
그들의 복종은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살후 1:8)과 그 말씀을 따르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전에도 복음에 복종했던 것처럼 지금도 계속 복종할 것을 바라면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권하고 있다(Gerald F. Hawthorne).
2.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의 의미
'너희 (자신의) 구원을 이루라'는 말은 빌립보서 1장 27절부터 전개된 교회가 추구하는 '복음에 합당한 삶'과 연결된다. 즉 여기에서 구원( )은 개인 영혼의 영원한 구원에 대한 것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가 내분과 핍박을 경험하는 상황에서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감으로써 교회 외적 요소들에 대항하고 그리스도를 본받아 겸손과 사랑으로 공동체의 일치와 화합을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김세윤).
이것은 '너희 자신'과 '구원을 이루라'는 동사가 모두 복수형으로 한 개인에게 속한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공동체로서 공동으로 행동하고 공동으로 노력하라는 말 속에서 확인된다.
여기에서 '이루다'( )는 단어는 '성취하다, 도달하다, 초래하다'는 뜻으로 계속적인 행동을 지시한다. 이것은 빌립보 교회가 교회의 안녕, 즉 교회의 화평을 이룰 때까지 계속해서 힘쓰며 나태하지 말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바울은 두 가지로 보충 설명을 하고 있다.
① 하나는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계속 이루어 나가기를 기대한다. 이 말은 내가 다시 너희들에게 갈 것을 생각해서 그렇게 할 뿐 아니라 지금 내가 너희들 곁에 없는 동안에도 교회 공동체 안에서 영적인 건강을 이루는 데 더 힘쓰라는 의미이다.
② 다른 하나는 '두려움과 떨림'으로 이루어 나가기를 기대한다. 이 말은 경외와 존경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여기에서는 하나의 관용구로 공동체 안에서 상호간의 존경과 경의의 태도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모범에 따라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거나 자기를 낮추는 태도와 잘 어울린다.
따라서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말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영적인 건강을 이룸에 있어 서로 순종하고 힘쓰라는 의미를 가진다. 예수의 삶에서와 마찬가지로 교회의 삶에서도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대한 복종이 행동의 가장 강력한 동기가 되기 때문이다(Gerald F. Hawthorne).
그러나 빌립보 교회가 힘써 이루어야 할 이 영적 목표는 그들 자신에게만 맡겨진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빌립보 성도들 가운데 역사하셔서 그들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 즉 교회의 일치와 화합을 통해 이루는 영적 건강을 이루어 드리고자 하는 의지(will)를 발동시키시고 이룰 수 있는 능력(energy)을 주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빌립보 교회가 자신들의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 즉 그리스도를 본받아 겸손과 사랑으로 교회 공동체의 일치와 화합을 이루는 것은 그들이 무슨 일을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하심으로써 가능해진다. 이러한 권면이야말로 빌립보 교회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교회 공동체의 구원을 이루어 가게 하는 동기를 부여해 준다.
3. 복음 안에서 하나인 교회
이제 빌립보 교회는 하나님께서 그들 안에서 역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자신들의 삶을 통해 나타내어야 한다. 신자들의 외적인 삶은 내적인 하나님의 감화에 의해서 인도하심을 받고 능력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음에 합당한 실천적인 삶은 이기적인 욕망들에서 벗어나서 완전하게 되는 것과 죄과(罪過)로부터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삶이 된다(I. Howard Marshall).
이러한 삶을 이루어 나감에 있어 바울은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빌 2:14)고 덧붙인다. 빌립보서 2장 14-16절은 모세의 고별 설교(신 31:24-32:3)를 모델로 삼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원망과 시비'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끊임없이 하나님을 향해 보여주었던 불신의 태도를 연상시킨다(출 15-17장; 민 14-17장; 고전 10:10).
하지만 여기에서 바울은 모세의 부정적인 면은 취하지 않고 긍정적인 면으로 바꾸어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빌립보 성도들이 '원망과 시비'를 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과거 이스라엘이 보여주었던 원망과 시비로부터 벗어날 것을 제시하고 있다. 원망과 시비는 교회 공동체를 와해시키는 요소들이다.
아마 빌립보 교회는 거짓 교사들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빌 3:2). 그 결과 사도가 전하지 않은 다른 교훈으로 말미암아 공동체에 분열의 위기를 가져다 줄 수 있었다. 바울은 이로 말미암아 발생된 무익한 논쟁들로 인해 성도들 사이에 상호간 불평과 무익한 논쟁으로 하나됨의 화합과 연합에 문제가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단호하게 교회 내 분열을 조장시키는 모든 행동들을 제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Gerald F. Hawthorne).
이처럼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향해 권면하는 것은 그들의 영적 성장을 위함이다. 때문에 바울은 다툼과 허영(빌 2:3), 원망과 시비(빌 2:14)와 같은 교회의 하나됨을 깨뜨리는 요소들을 제거할 것을 강력하게 명령하고 있다.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빌 2:15-16).
'흠이 없고 순전하여'란 사람에게나 하나님에게서 비난이나 야단을 맞을 것이 없을 정도로 흠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하나님의 요구에 대한 인간 의지의 겸손하고도 적극적인 응답이 있을 때 가능하다. 더불어 하나님께서 이러한 것들을 요구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총의 창조적인 힘과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12, 13절).
4. 흠 없고 순전한 교회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대한 자신의 열망을 더 완전하게 표현하기 위해 그들을 향해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들'이 되어 하나님께 드려지기에 적합하게 될 것을 제시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이란 하나님의 본성을 나누어 가진 자녀들이라는 의미이며 흠이 없다는 것은 완전한 희생 제물만이 하나님께 드려질 만한 가치가 있음을 지시하고 있다(히 9:14; 벧전 1:19).
이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이다. 이 표현은 '모세의 노래(The song of Moses, 신 32:5)에서 나왔다.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불려지면서도 흠이 있는 자녀들이며 하나님을 저버린 사악한 종류들이었음을 상기시킨다.
때문에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이 사실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비난을 받는 일이 없어야 할 것과 나무랄 데 없는 자녀로서 이스라엘의 특권을 누려야 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지 않음으로써 특권을 빼앗긴 과거 이스라엘은 세상의 비뚤어지고 타락한 무리 속에 섞여 들어갔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함으로써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그들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경고하고 있다(William Handrikson).
교회는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모든 것, 즉 예수 안에서 진리와 조화를 이룰 수 없는 모든 것들로부터 구별되어야 한다. 마치 빛들이 세상의 어두움을 몰아 내듯이 성도들은 영적이며 도덕적인 어두움을 물리쳐야 한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날에 그러한 목표가 이루어졌음을 봄으로써 그의 복음 사역이 옳았음을 입증받음과 동시에 그로 인하여 크게 기뻐할 수 있기를 소망하고 있다.
바울은 자신에 대한 자서전적인 보고를 마치면서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를 인하여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빌 1:26)라고 말한바 있다. 여기에서 바울은 자신의 귀환, 즉 사도적 임재(Parousia)를 예고하면서 바울의 고난받는 삶이 빌립보 교회의 자랑이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마찬가지로 빌립보 교회를 향한 권면을 마치면서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빌 2:16)고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임재(Parousia)를 예고하고 있다. 그리고 그 날에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자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보여주고 있다(Fred B. Craddock).
5. 마치는 말
교회 공동체는 모든 특권을 빼앗기고 세상의 비뚤어지고 타락한 무리 속에 섞여 들어갔던 과거 이스라엘처럼 그들의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한다. 교회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날'까지 계속해서 일치된 신앙 안에서 성장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바울은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권면하고 있다.
바울의 권면은 한 개인의 영원한 구원에 대한 내용이 아니다. 이 권면은 바울이 그들과 함께 있든지 없든지 바울의 가르침, 즉 사도적 전승에 근거한 그리스도의 복음이 제시하는 것처럼 고난을 받으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겸손과 사랑으로 교회 공동체가 일치와 화합을 이루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런 점에서 교회 공동체는 ①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하나의 신앙을 고백한다는 사실을 통해 일치한다는 교회의 보편성을 확인해야 한다. ② 이 복음은 사도적 전승과 이 전승으로 확인된 복음이어야 하며 사도의 가르침이 아닌 거짓 교사들의 교훈을 단호하게 배격함으로써 교회가 분열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점에서 교회의 통일성을 확인해야 한다. ③ 이 복음은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들'이 되게 함으로써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드려지기에 적합하게 한다는 점에서 교회의 거룩성을 확인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교회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날'까지 연합과 일치를 통해 하나의 교회로 보존되어야 하며 성장해 나가야 한다. 이때 비로소 바울은 자신의 삶을 헌신해서 수고했던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않게 될 것이다.
바울은 종말론적 관점에서 자신과 빌립보 성도들이 그날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 있음을 내다보고 있다. 그날에 가서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교회의 일치를 이룬 성도들은 바울의 면류관이 될 것이다. 여기에 바울의 자랑도 비로소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거짓 가르침에 빠짐으로써 교회의 일치와 화합을 깨뜨리게 된다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바울은 자랑대신 저주를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은 바울이 전한 복음의 순전성과 완전성을 의미하고 있다. 따라서 교회 공동체는 오로지 바울이 전한 사도적 전승에 근거할 때 비로소 '그리스도의 날'까지 일치와 화합을 이룰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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