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3
2003 11 26 권호덕 교수(천안대, 조직신학)
신학하는 사람이 가장 관심을 집중시켜야 할 것은 그 시대의 인간의 사고방식이 어떻게 변해하는가 하는 것이다. 동시에 이런 인간의 사고의 틀을 어떻게 성경이 제시한 방법으로 변화시켜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하는데 도움을 주는가 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학하는 사람의 동시대 인간의 사고방식을 정확하게 읽고 그 문제점을 파악한다는 것은 중요한 것이다.
인간의 사고방식이 묻어 있는 것에는 그 민족의 신화, 종교, 언어, 동화, 문화 등이 있는데 현대인들의 의식구조는 영화에 잘 반영되어 있다. 이는 현대인들이 좋아하고 흥미 있어 하는 영화는 고대인들의 신화의 경우처럼 현대인들의 염원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매트릭스 3’이라는 영화를 분석함을 통해 현대인들의 사고의 경향을 알아보려고 한다.
1. 현대인들의 신은 무엇일까?
이 영화에서 신으로 등장하는 것은 기계나라와 인간 나라 사이의 싸움에서 네오가 자기의 운명을 걸고 싸움을 하려고 할 때 음성으로 그것을 허락하는 어떤 실체이다. 이 신에게는 공정한 심판을 할 줄 하는 비교적 공의적인 신이다. 주인공인 네오가 싸움에서 이기면 그의 뜻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허락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 신의 인격성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매우 흥미로운 것은 여기에 등장하는 인간이 신적이라는 것이다. 즉 인간이 신의 의치까지 올라온 것을 그리고 있다. 오라클은 인식면에서는 거의 신과 같다. 그녀는 모든 것 다 알고 있다. 비록 그가 마지막 유토피아 상태에서 그런 상태로 될 것을 알지는 못했으나 믿었을 뿐이라고 말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것은 인식면에 있어서 인간이 신처럼 되기를 소망하는 현대인의 이원론적이 사고방식이 투영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매우 흥미로운 것은 성경의 하나님의 全知에는 항상 그의 仁慈하심이 동반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무한한 지식이 매우 잔인한 형태로 그 본색을 드러내는데 매우 사탄적임을 볼 수 있다. 마치 수학의 지식처럼 여기 오라클과 같은 인간의 지식에는 잔인함이 배어 있는 것이다.
이와 연관하여 볼 때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한 것은, 인간으로 순종을 배우는 일이 없이 얻은 단순한 지식이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2. 현대인의 인간 이해
이 영화가 말하는 인간 이해는, 방금 위에서 보았듯이, 한편으로는 신관과 연관되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랑을 갈구하는 인간다운 그런 인간상을 그리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간들은 인식에 있어서 고도의 단계에 있다. 이것은 진화를 통해 그렇게 된 것인지 아니면 스티븐 호킹스가 언젠가 제안한 인간과 컴퓨터가 연합하여 고도의 인식능력을 받아서 그렇게 된 것인지 아니면 생명공학을 통해 그런 고도의 인식 능력을 가졌는지 말하지 않으나 모두가 다 천재들이다. 여기에는 무한한 지식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의 열망이 배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가 인간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한 장면은 두 연인(네오와 트리니티)이 인간미가 묻어 나오는 진정한 사랑 나누는 장면이다. ‘너가 필요한 모든 것은 사랑이다’ ‘나는 사랑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하겠다’. 이 영화에서 이 둘 사이의 사랑과 신뢰는 완벽하다. 그 외에 사랑의 징표로 지니고 있는 목거리를 모든 상황 속에서도 목에 걸고 있던 한 戰士와 그의 애인 사이의 사랑도 매우 인간적이다.
또 네오를 믿고 자기의 우주선을 빌려주는 여자 우주선 함장의 인간적인 신뢰나, 함께 용감하게 싸우다 죽자는 의리로 뭉치 기계화 무대 군인들의 전우애. 이런 것들은 시대가 첨단과학으로 변해도 인간에게 남아 있어야 할 중요한 요소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여기에 등장하는 인간들은 아무리 위기에 처해도 인격적이며 능력있는 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인간이 신적인 존재로서 적들과 싸워 이기면 계속 생존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멸망하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이 영화는 전쟁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인간이 전쟁을 위해 훈련되고 인식력이 발전된 것 같다. 이것은 인류의 역사가 전쟁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매우 흥미롭개도 성경은 ‘전쟁’이라는 단어를 매우 많이 사용하고 인간의 역사가 전쟁의 역사임을 반영하고 있다. 마치 전쟁이 인간의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인 것처럼 이 영화는 전쟁을 중요한 구성요소로 다르고 있다.
또 이 영화는 기계들이 내뱉는 결정론과 인간들이 믿고 싶어하는 자유의지론 사이의 갈등을 다루고 있는데 이것은 인류의 모든 역사 부분에 등장하는 인간의 질문인 것이다. 아마 이것은 이 세상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3. 구원자
여기 주인공 네오는 사실상 인간을 위기로부터 구원해 내는 구원자로 등장한다. 그의 적수는 이 세상을 장악하려는 스미스이다. 우리는 이 스미스의 정복욕구 속에서 이 세상 임금으로 등장하는 사탄을 생각나게 한다. 네오가 이 적수 스미스를 이기면 인류에게는 미래가 있고 그렇지 않으면 인류의 역사는 끝나는 것이다.
이 둘 사이의 대결은 선과 악의 대결과 같이 보인다. 사실 이 영화에서 선과 악 사이의 구별이 완연히 드러나는 것은 이 둘 사이의 싸움이다. 우리는 여기서 빛의 세계과 어두음의 세계 사이의 대결을 중요하게 취급하는 조로아스터적인 이원론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와 관계없이 이 세상 나라에도 상대적이기는 하나 선과 악의 대결이 있다. 히틀러의 경우처럼 악한 요소들이 승리하는 경우 그 나라의 백성들은 노예 상태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 테러 정권을 파괴시키기 위해 연합군들이 노르망상육 작전을 편 것이다. 오늘날 인간 세상은 악과 선 사이의 갈등으로 가득하다. 이런 면은 911 테러 사건 이후 자유 국가와 테러집단 사이의 전쟁이나 야비한 어두움의 세력과 사회정의를 부르짖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에서도 나타난다.
그러면 네오는 어떻게 스미스를 이기는가? 이 둘 사이의 대결에서 네오는 역부족한 나머지 패배할 것만 같았다. 스미스에게는 아직 자기와 모든 면에 동일한 복제 세력들이 남아 있다. 한 사람도 버거운데, 그 모두를 이기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오라클이 스미로의 모습으로 변할 것처럼 네오가 스미스와 동일한 방법으로 변하고 그 자신이 폭발해 버린다, 동시에 스미스와 그의 복제인간들이 모두 폭발해 버린다. 그와 동시에 인간 세계를 거의 정복할 찰라에 불가항력적으로 시온의 기갑부대를 공격한 문어닮은 센티넬 무리가 더 이상 공격하지 않게 된다. 이로써 인간 세계는 구원을 받게 된다. 여기 인간이 변하는 방법은 뉴에이적인 흔적을 보인다.
인간의 이런 변화는 현실의 비참한 상태를 초월하려는 인간의 욕구가 반영된 것으로 판단된다. 마치 마약을 통해 현실을 초월해보고 싶어하는 그런 성향 말이다.
여기 구원자로 등장하는 네오는 그리스도와 닮은 점이 있을까? 그가 자신을 희생하는 마음으로 싸움에 임하는 자세는 그런 면을 약간 보여준다. 또 스미스처럼 변한 다음에 스스로 폭발해 버리고 그와 동시에 모든 스미스를 폭발하도록 만드는 방법으로 인간을 구원하는 방법은 육신인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육신이 되신 그리스도와 약간은 비교할 수는 있으나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그리스도의 경우 죽기까지 순종함을 통해 사탄의 권세를 깨뜨린 것이다. 그러나 상당히 그렇게 생각하도록 여운을 남긴다. 이 둘을 비교하기에는 네오의 경우 너무 범신론적, 유물론적인 방법으로 구원을 시도한 것이다.
성경은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요소를 육으로 표현한다. 육이란 자기 중심적인 사고방식을 또아리를 틀고 창조주 하나님을 거역하고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겠다는 그런 성향을 뜻한다. 이 육을 어떻게 제거하느냐가 구원의 관건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는 그런 것을 기대할 수 없다 육의 문제는 오직 성경만 알기 때문이다.
4. 종말론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평화로운 세상이다. 자연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인간들을 평화롭게 살아간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 인간 세상을 성경에서 낙원의 대명사인 시온이라는 용어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 전체는 전쟁도 없고 미움이나 더러운 것도 없는 그런 인간미 나는 세상으로 수렴하고 있다. 이것은 모든 인류가 항상 이런 유토피아를 사모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평화가 계속 지속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변해야 되는데, 이 영화는 그러한 면에 관심이 적다. 오늘날 인류가 평화를 열망하다. 그것을 이룰 수 없는 것은 그것을 방해하는 요소를 제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요소들이 있는 한 이 땅에 평화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 세상은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를 통해 육의 문제가 해결되고 삼위일체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이 연합을 이룰 때 비로소 참된 평화가 오는 것이다.
5. 결론
이 영화는 지금 이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종합한 느낌을 준다. 인도 사상, 중국사상, 기독교 메시지, 조로아스터교 등등이 관중들의 흥미를 유발시키는 시각으로 짜여져 있다. 매우 뉴에이지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저변에는 작가가 원하든 원치 않든 자연인의 사고방식이 깔려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유물론적, 범신론적, 이원론적인 사고방식.
인간이 아무리 그 이성으로 유토피아를 조작한다 해도 이 세상가지 사고방식이 해결되지 않는 한 참된 평화와 행복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출처 : 백석대학교 권호덕교수
글쓴이 : 권호덕 Herma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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