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그

[스크랩] 하이델베르크신앙교육서 23

baromi 2007. 9. 3. 09:09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하여 제 23 문: 사도신경은 어떤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까? 답: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천지의 창조자를 믿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그의 독생하신 아들, 우리 주님을 믿습니다. 이 주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었고,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태어 났으며,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되어 음부까지 내려갔다가 제 3일에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스며, 하늘로 올라가서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았다가 거기로부토 오셔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나는 성령을 믿습니다. 나는 거룩한 우주적 교회를, 성도들의 교제를, 죄사함을, 육체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Quod est illud Symbolum? -Credo in Deum patrem, omnipotentem, creatorem coeli et terrae. Et in Iesum Christum, filium eius unigenitum, Dominum nostrum, qui conceptus est de Spiritu sancto, natus ex Maria virgine, passus sub Pontio Pilato, crucifixus, mortuus et sepultus, descendit ad inferna, tertio die resurrexit à mortuis, ascendit ad caelos, sedet ad dextram Dei Patris omnipotentis, inde venturus est iudicatum vivos et mortuos. Credo in Spiritum sanctum. Credo sanctam Ecclesiam catholicam, remissionem peccatorum, carnis resurrectionem et vitam aeternam. (해설) 기독교인들이 바르게 신앙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들이 섬긴은 하나님이 누구인지 확실하게 인식하고, 인정하며 나아가 고백하는 일일 것이다. 교회가 서고 넘어지는 것, 교회가 복음을 불신자들에게 확신있게 전달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어느만큼 인식하고 섬기는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기독교가 불신자들로부터 여러 측면에서 핀잔을 받고 있는 이즈음 우리 한국 교인들은 스스로 바른 신관을 확립하고 신앙고백적으로 살고 있는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바른 신관을 확립되지 않는 경우 시대 정신에 휩싸이는 것은 물론 다른 종교나 이단집단의 유혹에 쉬이 넘어가 버린다. 복음은 우리를 위해 모든 선한 일을 하신 하나님에 대한 소식이라 해도 무리는 아닐 정도로 복음은 하나님에 대한 계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사실 그동안 한국 교회는 다른 복음을 전했다. 한국교회의 형편은 마치 사무엘이 등장하기 직전의 엘리 제사장 가문이 이스라엘을 지도하던 당시와 모든 면에 비슷하다. 우리는 그 당시 형편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살펴 볼 수 있다. ① 형식적 종교생활: 종교가 형식적이라는 것은 종교지도자가 주어진 제사 의식규율에 따라 제사의식을 수행할 뿐, 제사의 중심내용, 복음의 내용을 확실하게 파악해서 그 율법을 주신 자의 마음을 가지고 생동감있게 그 임무를 수행하여 하나님의 규례가 확신있게 지켜지고 또 그것이 백성들의 사랑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외식적인 종교생활을 의미한다. 엘리는 그와 같이 영적으로 무능한 지도자이었다. 그는 단지 제사장 이름 뿐 율례를 가르치지도 않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그가 살진 것을 보면 자기의 몸을 위하는 일에는 매우 열심이었던 것 같다. 엘리는 힘없는 구경꾼이었다.(NBD p. 287) 그는 나라에 대해, 민족에 대해 사명감과 별로 책임감을 느끼지 못한 것 같다. 그는 단순히 보신주의식의 삶을 살았다. “(삼상3:13) 내가 그 집을 영영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이른 것은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이니 이는 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단지 하나님에 대해 약간의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종교지도자들의 이런 삶의 자세로부터 사회의 모든 죄악이 독버섯처럼 돋아 나오는 것이다. 종교지도자들의 이런 형식주의적인 삶의 태도가 위험한 것은 사회에 여러가지 문제를 야기시는 계기를 마련하기 때문이다. 이런 신학은 성경을 깊이있게 연구하는 일에 무관심하고 맨너리즘에 빠지기 때문에 그 당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를 제공하지 못한다. 이런데서는 한편으로는 고정된 틀로부터 해방되려는 감성주의적인 운동이 일어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민중신학같은 운동이 일어나는 법이다. 그리고 성경을 버리기 때문에 무법천지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② 성막에서 율법 경시: 역사는 율법을 경시하는 풍조가 형식적인 종교생활로부터 오는 법임을 가르친다. 이런 아버지 밑에서 자라난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흡니와 비느하스의 행위가 하나님을 짓밟는 무서운 죄를 범했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형식주의적인 분위기에서 말씀의 풍성함을 맛보지 못하는 경우 반작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짓밟는 일이 야기되는 법이다. “(삼상2:12)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삼상2:13) 그 제사장들이 백성에게 행하는 습관은 이러하니 곧 아무 사람이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을 때에 제사장의 사환이 손에 세살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 (삼상2:14) 그것으로 남비에나 솥에나 큰 솥에나 가마에 찔러 넣어서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제사장이 자기것으로 취하되 실로에서 무릇 그 곳에 온 이스라엘 사람에게 이같이 할 뿐 아니라 (삼상2:15) 기름을 태우기 전에도 제사장의 사환이 와서 제사 드리는 사람에게 이르기를 제사장에게 구워 드릴 고기를 내라 그가 네게 삶은 고기를 원치 아니하고 날것을 원하신다 하다가 (삼상2:16) 그 사람이 이르기를 반드시 먼저 기름을 태운 후에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취하라 하면 그가 말하기를 아니라 지금 내게 내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였으니 (삼상2:17)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삼상2:22)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우리는 이들의 만행으로부터 창 4장에 나오는 가인의 후예들, 하나님을 향하여 반항하고 활을 쏘며 인간의 생명을 파리목숨처럼 경시하는 괴물같은 인간의 만행을 보는 것이다. 이 두아들은 니물롯이나 하나님을 향해 참람한 말을 하는 적그리스도 또는 짐승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들에게는 더 이상 구원의 가능성이 없음을 명확하게 말씀하신다. (삼상2:30)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③ 마술신앙: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을 이용하는 마술신앙에 빠진다. 이 두 아들은 하나님을 섬기지는 않으면서도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법궤를 전장으로 가져갔다. 하나님을 자기의 목적으로 이용하는 사람은 대개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 구축되어 있다. “(삼상4:3) 백성이 진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로 오늘 블레셋 사람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삼상4:4) 이에 백성이 실로에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 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 있었더라(삼상4:5)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에 들어 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 요컨데 바른 신관을 정립하지 않으면 이런 오류를 범하는데 어느 시대에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는 섬김의 대상인 하나님을 사도신경에 정리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이방의 어떤 신관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신관이다. 사도신경은 바로 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고백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1) 성부 하나님, 2) 예수 그리스도, 3) 성령 하나님. 기독교의 가르침은 사실상 삼위일체 하나님이 역사속에 하신 일에 대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의 가르침은 하나님에 대한 계시와 하나님의 사역의 대상인 인간실존 문제에 대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사실 신학작업은 크게는 이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이 말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실존문제와 연관이 없다면 思辨신학으로 추락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가 “음부까지 내려갔다”는 내용이 우리 한국 번역에 없음을 지적한다. 짐작컨데 초기 교회 지도자들이 한국인의 사고방식을 고려해서 고의로 빠뜨렸을 것이다. 무당 내지 샤마니즘에 젖어 있던 한국인에게 이것까지 말했을 경우 무리하게 공상을 일으켜 더욱 많은 이단을 속출할 우려가 있었을 것이다. “성도의 교제 ”는 우리 말 번역에는 “성도의 교통”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떼며 모든 그리스도인이 한 몸이라는 사실을 가르치는 성찬식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실 여기에는 “거룩한 성찬식”이라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출처 : 백석대학교 권호덕교수
글쓴이 : 권호덕 Herma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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