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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Re: 한번구원영원구원?(2장-5)-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오해?

baromi 2007. 7. 23. 06:27

도슨은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을 반대하기 위해서, 탈취(usurp)해서 사용하고 있는 이름인 그 '복음주의'의 전제들 다섯가지 중에서 그 마지막 번째인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판을 다음과 같이 하고 있다.

 

" '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과 관련된 아주 핵심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즉 현재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일부인 모든 사람이,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도 분명히 속할 수 있을 것인가?...현재의 시작된 국면을 나타내는 가장 일반적인 단어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다'는 단어이고, 미래의 완성의 국면을 위해 사용되는 단어는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얻는다'라는 동사이다(요3:5,마25:34).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하나님 나라에 이미 들어간 사람이 이제 그것을 후에도 기업으로 받을 것인가?'라고 다른 식으로 질문 할 수 있다"(p.59-60).

 

"그 대답은 신약의 편지들에 흩어져 나타나 있는 신자들을 향한 많은 경고 안에서 발견된다. 만일 그들이 계속해서 고집을 부리고 이전의 생활인 육신의 일로 돌아간다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는 경고를 엄하게 들었다(갈5:21). 따라서 우리의 기업은 자동적으로 불가항력적으로 받는 것이 아니다"(p.60).

 

도슨이 하나님의 나라의 문제를 '들어가는' 문제와, '기업을 얻는' 문제로 구분하는 것은 잘 한 일인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것을 분리시켜 버린 것은 크나큰 실수이다. 왜 그런가?

 

먼저, 그는 기업은 '자동적으로 불가항력적으로 받는 것이 아니다'고 한다. 여기서, 그는 '자동적'이라는 말과 '불가항력적'이라는 말을 동일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앞에서 개진해 온 그의 비판을 참고하면, 여기서의 '자동적'이라는 말은, 승강기에 올라타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자기가 올라가고 싶은 층에 올라갈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문제는, '불가항력'이라는 말이 그렇게 '자동적'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을 믿는 자들은, 자신들의 은혜를 "불가항력적' 은혜라고 한다. 여기서의 '불가항력적'이라는 말은 '저항할 수 없는'이라는 의미의 'irresistable'이라는 말의 번역이다. 문제는, 과연 이 말이 우리 말의 '저항할 수 없다'는 말의 뉘앙스에서 느껴지는, '저항할 수 없게 때문에 강제적인'이라는 뜻이고, 나아가서는 '자동적인' 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Irresistable이라는 말은, 결코, 죄인의 저항을 부정하지 않는다. 죄인은 믿지 않으려고,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혜인데도 부정하려고 애를 쓰고 힘을 다해서 저항한다. 그것이 죄인의 본성이고, 죄인의 죄인됨이다. 그는 저항한다. 강하게, 힘을 다해서, 온힘으로 저항한다. 하나님을 거역하려고 하고, 부인하려고 하고, 부정하려고 하며, 대적하려고 한다. 오만 가지 꾀를 써서 하나님을 벗어나려고 한다.

 

Irresistable이라는 말은, 그렇게 죄인들이 저항하는 것을 전제하면서, 그런 저항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로, 그 저항하는 마음에 부드러움이 깃들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발견하고, 자신의 무지와 고집과 대적하는 마음을 회개하는 역사가 있음을 의미한다. 그것을 두고 '저항할 수 없는 은혜'라고 말하고, "불가항력적 은혜"라고 하는 것이다.

 

전혀 인간의 의사와 동기 속에 저항할 마음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거니와 인간은 저항하려고 하고, 실제로 저항한다.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게 저항하고 저항하고 또 저항하는 인생들 중에서, 그 마음을 꺽으시고, 하나님을 발견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과 은혜와 거룩과 위엄을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게 되는 역사가 있다. 그것ㄷ이 바로 '불가항력적 은혜"인 것이다.

 

이런 불가항력적 은혜가 자동적인 은혜라니...?

 

참으로 망발이고, 망언이며, 망상이다.

 

인간을 기계처럼 생각하는 천박함이며, 어리석음이고, 둔한 이치에서 생겨난 비판이다.

 

둘째, 하나님의 나라가 얼마나 오해되고 있는가?

 

하나님의 나라가 들어가고 나갈 수 있는 그 어떤 건물이나 영토라고 생각하면, 참으로 오해가 크다. 마치 교회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도 같다. 교회는 교회당이 아니다. 그런데, 교회당을 교회라고 생각한다면, 옳은 생각일까? 천국이 어떤 물리적 영토인가? 천국에 들어간다고 해서, 그렇다면, 한 번 들어간 천국에서 다시 빠져나와서 지옥을 가게 되는가? 그렇게 천국과 지옥 사이를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것인가?

 

귀 있는 자는 들을찌니,

 

성령은 그냥 보증이신 것이 아니라, 바로 기업의 보증이시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엡1:13-14상).

 

구원의 복음은, 곧 믿음로 '약속의 성령'으로 인쳐지는 것이며, 영원한 그 기업의 보증으로서의 성령을 받는 것이다.

 

그 성령은 결코 분리되는 분이 아니다. 과거의 구원, 현재의 구원, 미래의 구원이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소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비록 구분은 되어도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에 한 번 소속이 되면, 그 소속은 영원하게 되는 소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의 능력과 재능과 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영, 성령의 역사하심에 달려 있는 것이다.

 

한 번 믿게 하시는데 역사하신 성령께서, 한 번 그렇게 역사하심으로 만족하시고, 뒷짐을 지고 있으실 것인가? 성령님은 믿는 자의 속에 내주하시면서 무엇을 하시는가? 그 내장을 파먹고 계시는가? 그 소화기간의 소화를 돕고 있으신가? 어리석은 자들아, 생각 좀 해봐라. 한 번 믿는 자들의 속에서 그는 보증으로 계신다. 무엇을 보증하시는가? 그의 믿음이 바로 영원에까지 이르도록, 믿음을 강화시키시고, 소망을 갖게 하시며, 또한 사랑의 영으로 주장하신다.

 

이런 성령님을 믿지 못하겠는가?

 

이런 성령님이 그대 속에 있지 아니한가?

 

그대가 믿음에 있는가 확인하고 점검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임을 믿지 못하는 자들은,

바로 구원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자들이고, 잘못된 구원을 추구하는 자들이다.

 

성도의 기업의 영원한 소유를 보증하시는 성령님을 결코 모독하지 말라

구원을 제발 왜곡시키지 말라.

 

지금 도슨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님을 알 것이다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holyjoy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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