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강요- 들머리 2
ICR[기독교강요]!
이 보배를 올바로 받아들이고 제 것으로 만들어 한 걸음 더 내디디려면, 깔뱅에 대하여 여러 가지를 곁들여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개혁자의 한살메에서 인위조작을 도무지 찾아보기 어렵다.
오직 성령님의 이끄심에 모든 것을 맡기면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도록 하셨다.
결과보다 원인이 선재한다는 원칙을 여러 곳에서 힘준다.
성경 중에서도 시편을 그토록 깊이 통찰했는데 그 가운데 시 39편을 아주 좋아했다고 한다.
9절에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하옴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연고니이다[개역],
<나는 잡아매였어요 나는 내 입을 꼭 열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그대야말로 해내셨어요[직역]>"
그분은 24살 때쯤 회심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 뒤부터 하나님의 손길은 놀랍다.
1536년부터 1560년까지 오직 ICR을 기록하는데 신학과 신앙의 모든 것을 쏟았다.
10대와 20대에 법학, 철학 같은 인문학을 훈련하고 특히 라틴어, 히브리어, 헬라어를 공부했다.
이것들은 여러 좋은 스승을 만나서 이루어졌는데, 뒷날 성경으로 개혁하는데 결정적이었다.
기독교강요를 올바로 공부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분야이다. 라틴어로 먼저 적었다.
강요 안에는 히브리어가 4 낱말, 헬라어가 83 낱말 나온다. 매우 조금 사용한다.
1539년 개정판부터 제 나라말인 프랑스말로 강요를 옮긴다.
이런 부분을 마련하고 강요를 연구해야 이른바 칼빈주의 학자라고 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1539년부터 출판하기 시작한 주석작업과 1538년경부터 주력하기 시작한 교회의 말씀선포 사역,
게다가 그 많은 신학논쟁과 회의, 그리고 4천통에 이르는 주고받은 편지를 반드시 함께 읽고 소화해야 ICR이 제대로 보인다.
누가 이런 작품들을 모두 읽었는가? 이런 작품들의 성격과 내용을 알지 않고는 강요를 제대로 알기 어렵다.
설교도 25년동안 4천편이 넘는다! 철저하게 성경을 해석하면서 선포하는 형식이다. 신약과 구약을 두루 드러냈다.
중요한 것은 보통 주석작업을 먼저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말씀선포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깔뱅의 설교를 아직도 잘 모른다.
깔뱅을 제대로 알려면 구약 주석과 구약 설교를 섭렵해야만 한다!
우리나라는 구약에 어둡다. 깔뱅을 안다면서 어찌 구약을 제대로 모르는가?
기독교강요에서도 구약의 많은 부분을 직접 간접으로 넘나든다.
성경과 교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작업이 ICR이다. 성령님께서 성경을 어떻게 다루시는지 누구보다 충만하게 가르친다.
per verbum[말씀을 통하여]만 아니라, cum verbo[말씀과 더불어]라는 진리관을 수많은 작품들과 수많은 성구들로 수놓는다.
25년간 강요를 손보고 또 손본 것은 성경을 찾고 또 찾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섭리 가운데 마련하시고 강요작업에 신학논쟁, 주석집필, 설교, 편지들이 맞물려 돌아간다!!!
보통 기독교강요를 어떻게 번역하는가?
적어도 1559년에 끝마친 라틴어판과 1560년에 번역한 프랑스어판을 번역해야만 한다.
그러나 아직 이 두가지를 따로 번역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초판을 개정한 판부터 라틴어로 먼저 쓰고, 이어서 반드시 프랑스어로 계속 번역을 마치기까지 병행했다!!!
원어판과 제 나라말판의 관계를 깊이 생각하자! 깔뱅이 국수주의자인가? 말씀선포를 프랑스말로 했다.
놀라운 것 하나는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와 도르트신조를 뺀 모든 개혁신조는 깔뱅이 살아있을 때, 기독교강요와 더불어 이곳 저곳에서 작성되었다.
더우기 바른 원어성경에서 겨레마다 성경을 번역했고, 개혁자들은 하나같이 이 일에도 관여한다!!!
왜 라틴어판과 불어판의 ICR을 따로 모두 번역해야만 할까?
두 언어를 통해, 진리와 그 해석의 보편성과 통일성을 다양하게 이해하는데 정말 중요한 길잡이이다!
보기를 들면, Corpus Reformatorum[종교개혁전집]에서 두 판본을 분량면에서만 견주어도 차이가 크다.
라틴어판은 1118쪽이고, 프랑스어판은 1774쪽이다. 아무리 라틴어의 특성을 고려 해도 프랑스어판에 기울이는 깔뱅의 마음과 생각을 알게된다.
1권에서 4권까지 갈수록 내용이 불어난다.
놀라운 것은 우리가 1-2권에는 반짝 공부하는 것같으나, 보통3-4권에 무지하거나 곡해한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개혁신학, 칼빈주의란 무엇인가? 게다가 선생으로서 가르치려면 어떻게 해야 마땅할까?
또 하나, 두 판을 모두 읽어야 하는 까닭은 인용하는 성경구절에도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덧붙여 장과 절로 구분한 것과 절마다 소제목을 붙인 일을 그냥 지나치면 안된다.
장과 절은 섭리 가운데 깔뱅이 붙인다. 그러나 절의 제목은 깔뱅이 붙이지 않았다. 그러니 소제목을 무시하고 읽어야만 한다.
성구도 번역자들이 마음대로 갖다 붙인 곳이 많다!
우리는 큰 흐름에서 각권의 주제와 80개 장의 주제를 아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마음 기울여 통독하고, 코에 땀흘려 일하면서 읽고, 교회의 사명을 따른 전투 가운데서 깊이 정독해야만 한다.
성경과 교리의 어울림을 이토록 철두철미하게 가르치는 책이 어디 또 있는가?
다시 한 번 돌아보면서 기독교강요와 깔뱅스승을 생각한다.
그분을 성령님은 어떻게 이끄셔서 미리 무엇을 마련시키셨고, 깔뱅은 한살메 변함없이 그리스도를 닮아갔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
교회를 세움에서, 지체로서 거룩한 삶에서, 보편의 사명을 따라 전투하는 교회로서 뚜렷이 드러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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