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문제자료

[스크랩] 관상기도가 무엇인지 알기나 하는가의 말에대하여

baromi 2007. 7. 1. 18:02

굳이 그 내용에대해 알 필요가 있을까요 , 하지만 조금의 이해를 위해 이 글을 한번 적어 봅니다.

오래전 인도의 베다의 문헌에 "쁘라나(prana)-팔리어로 모음은 적지못함, 컴에 없어서- 란 개념으로 정착 되었고 인도의 종교사에 지배적 공언을 해왔던 "리그베다'에는 들숨과 날숨으로 _호홉- 으로 세계의 근본 원리와 동일한 의미로,  Atharva-Vada (아타르바 베다) 에서는 최고의 원리이자 창조주인 Prajaapati  와 동일시 하는 경향으로 나아간다. 즉 기도는 호홉을 관찰하게 되고 신과의 합일의 경지로 간다는 말이다. 후대 우빠니샤드 시대에는 개인의 주체인 Atman 이라든가 최고원리인 Brahman 으로 나타나기에 이르렀고 진리를 증득해 나가는 다섯 단계 중의 하나인 숨으로 이루어진 자아(pranamayatman) 가 되었으며  이후에 체계화된 요가학파에서는 요가수련의 여덟 단계 중의 하나인 호홉의 조절이라는 용어를 정착 시킨다. 이것이  무념의 기도를 그 바탕에 깔고있다.

지금으로 부터 2500년전 인도의 불교 에서 석가에 의해 더 발전되어 그것을 기본으로 여러가지 기도의 형태가 등장하게되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Hathaayogapradipika (2:39)에서는 이런 말도 있다, 조용히 앉아 자신을 보라 " 범천을 비롯한 신들도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호홉수행에 몰두했다 그러므로 인간도 호홉법을 수행해야 한다, 이 완전 호홉이야말로 삼계에서 얻을수 없는것이 아무것도 없다. Gherandasamhita (5:56)에 기술된 내용에는 자신을 관찰하고 더 나아가 무념의 자리에서 호홉에 성공하면 3가지의 증상이 나타나는데 하급에는 땀이나고 중급에는 척추에 진동이 오고 상급에는 공중 부양현상이 나타난다 . 이것을 수행하면 이 윤회의 세상에서 업보가 소멸되며 신들과 즐길수 있고 선악의 행위에 물들지 않고 다시는 때어나지 않는다(Sivasamhita3:82) . 아마 그들은 하나님을 대상으로 하는 기도인데  그것과는 분명히 다른것이라고 하겠지만 과연 그럴까?  덧 붙여서 기독교의 관상기도의 역사가 얼마나 되었을까, 확실하지는 않지만 AD3-4 이 정도가 아닐까  그것도 사막의 은둔자 들이라는  그들이 이런 기도를 즐겼지 않았을까,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과의 인격적 대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박 창진 님께서 더 물어보면 조금더 말할수 있을것 같다. (위의 단어들은 고대 인도의 팔리어로 사정상 모음과 복수 표시가 생략 되었습니다)

출처 : 부흥과 개혁
글쓴이 : 산마루강나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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