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물자료

[스크랩] 어거스틴의 시간과 영원

baromi 2007. 2. 26. 21:42

http://www.seelotus.com/gojeon/bi-munhak/reading/book/augus.htm

 

님의 오늘은 곧 영원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제10장

낡은 사상에 젖어 있는 무리들 이 우리에게 묻기를, "천지를 창조하기 이전에 하느님이 무엇을 하고 있더냐?"고 합니다. 저들의 말은 이렇습니다. "아무 일도 아니하면서 한가로이 지냈다면 항상 그래야 하고, 처음 그대로 아예 일에 손을 대지 말아야 했을 것이 아니냐? 만약에 창조를 하기 위하여 새로운 뜻을 세웠다면 어느 곧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은 이전에 비겨 하느님 안에 그 어떤 변동이 있는 것이요, 이렇다면 전에 없던 듯이 새로 세워지는 만큼 참다운 영원성이 어떻게 잇다 하겠느냐. 하느님의 의지는 피조물이 아닐뿐더러, 피조물 이전에 존재하는 것이니 창조자의 뜻이 앞서 있지 않는 한 아무것도 창조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의 본체 안에 일어났다면 그의 본체가 영원하다 이르는 말이 타당치 않을 것이니, 피조물을 만들고도 하느님의 뜻이 영원하다면 어찌하여 피조물 역시 영원하다 못하겠느냐?"


 

제11장

 

이런 소리를 하는 자들은 아직 당신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 하느님의 예지, 모든 얼의 빛이시여, 저들은 당신으로 해 당신 안에 되는 일들이 어떻게 되는지를 모르는 채 영원이라는 것을 알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허나 이미 된 일과 될 일들의 어름에서 그들 마음이 퍼덕거릴 뿐, 헛된 노릇인 것입니다. 그 누가 마음을 걷어잡고 저 상주 무변하는 영원의 빛을 찰나인들 멎게 하고 앗을 수 있으오리까? 또한 이를 변전 무상한 것들과 비겨볼 수 있으오리까? 그는 곧 비교가 될 수 없는 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길다 함은 동시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많은 운동의 흐름이 길다 함이지, 영원에선 흘러가는 아무것도 없이 모두가 현재인 것임을 알 것입니다.

 

따라서 시간이란 순수 현재일 수 없고, 과거란 미래에게서 밀려나는 것, 미래란 과거에 뒤따르는 것이며, 모든 과거와 미래란 항상 현재인 그 분들한테서 만들어져 흐르는 것이 아니겠나이까?

그런즉 누가 인간의 마음을 걷어쥐고 저 과거도 미래도 없는 영원히 요지 부동한 채 과거와 미래를 지시하는지 지켜보라 할 수 있겠나이까? 내 손이 이를 할 수 있으오리까? 이 거창한 일을 내 입의 손이 말로써 다 할 수 있으오리까.


 

제12장


 

이젠 대답하리라. "천지를 배포하시기 전엔 하느님이 무엇을 하셨는냐?" 는 자에게 대답 하오리다. 하오나 문제의 초점을 농으로 흐려 버리면서 "깊은 것을 캐려는 자들을 위하여 지옥을 만들고 계셨다."고 대답하더라는 그런 답변이 아니오이다.

 

보는 것 다르고, 웃는 것이 다르오니 나는 이렇게 대답하느니 보다는 차라리 모르는 것은 모르다 할지언정 깊은 것을 묻는 자가 조롱을 당하고, 거짓으로 대답하는 자가 칭송을 받는 그런 짓은 아니하오리다.

 

아무튼 나는 주여, 당신을 온갖 피조물의 창조주라 부르옵니다. 그리고 온갖 피조물이 하늘과 땅의 이름으로 표현되는 것이라면 하느님이 천지를 배포하시기 이전에 딴 무엇을 아니하셨다는 것을 감히 말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셨다 친다면 피조물을 지으시는 일 이외에 무엇이 또 있었겠나이까? 아, 내가 알아서 유익한 모든 일들을, 마치 피조물이 있기 이전에 아무것도 창조되지 않았음을 아는 것처럼 알았으면 얼마나 좋으리이까.

 

혹시 누가 생각이 들떠, 창조 이전에 상상적 시간 속을 헤매이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것을 만드시고 모든 것을 쥐고 계시며, 천지의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 이 거창한 일을 하시기 전엔 영겁을 그냥 지내신 줄로 안다면 그 거짓이 앎에서 깨어나 사리를 분별케 해주시옵소서. 왜냐하면, 제아무리 장구한 시간이기로 당신이 짓고 마련하셨거늘 당신께서 아니 만드신 영겁이 어찌 흐를 수 있으오리까? 당신이 마련치 아니하신 시간이 있기라도 하단 말이니이까? 본디 없었던 것이 흘러갈 수 있다는 말이오니까?

 

모든 시간을 만드신 분이 당신이신데도 천지를 내시기 이전에도 무슨 시간이 있다 친다면 어찌하여 당신께서 모든 일을 쉬셨다 일컫나이까? 시간조차 당신의 하신 일이 아니오리까? 당신께서 시간을 내셨으니 만큼 영겁마저 당신이 내시기 이전에 흐를 수 없던 것입니다. 이러므로 천지 이전에 아무런 시간도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땐'엔 무엇을 하고 계셨더냐는 질문이 도대체 무엇이오니까? 시간이 존재치 않았을 적엔 '그때'란 것이 있지 않았던 까닭이옵니다. 또한 당신은 때로 때를 앞서시는 것도 아니오니, 그렇다면 모든 때를 앞서시는 것도 아니오니, 그렇다면 모든 때를 앞서신다 이를 수 없음이니이다. 하와도 모든 과거를 앞서시기는 늘 현재하시는 영원성의 초절로 하심이요, 모든 미래까지 다 초월하시기는 그것이 있어질 일일 뿐더러 한 번 있고는 과거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오니 "당신이야말로 언제나 같으시고, 그 세월은 다함이 없으리이다." (시편 101, 28)

 

님의 세월은 가지도 오지도 않건마는 우리네 것은 오기 위해 가고, 또 흘러가 버리나 이다. 님의 세월은 가지도 오기도 없건마는 우리네 세월은 다 가고 없은 다음에야 다 있게 되기 마련입니다.

'당신의 세월은 단 하루 (2 베드 3,8)' 님의 날은 나날이 아닌 다만 '오늘!' 그 오늘은 내일로 옮기지 아니하고, 어제 뒤에 이어지지도 않는 날이니이다.

 

님의 오늘은 곧 영원! 이러기에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시편2,7)' 말하셨을 때, 함께 영원하신 그 분을 낳으신 것이니이다. 모든 시간이 당신이 내신 것, 영겁 이전에 당신이 계시오니 시간이 없던 적에 어느 시간도 아니 있었나이다.


 

제14장


 

시간마저 당신이 내신 바니 당신께선 아무것도 하시지 않은 그 시간이란 도시 없는 것입니다. 또한 어느 시간도 당신과 같이 영원할 수 없는 것이, 님은 항상계시기 때문이니 시간이 만일 항상되다면 이미 시간이 아닐 것이니다. 그럼 시간이란 무엇이오니까.

 

누가 이를 쉽고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까? 누구 있어 이를 생각으로 알아듣고, 적절한 말로 표현할 수 있으오리까? 그럼에도 우리의 대화 가운데 시간처럼 예사롭고 알려진 것이 또 어디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말할 때 이를 아는 것이 사실이요, 남한테 들을 적에도 알아듣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다면 도대체 시간이 무엇입니까? 아무도 묻는 이가 없으면 아는 듯하다가도 막상 묻는 이에게 설령을 하려 들자면 말문이 막히고 맙니다. 그러나 제법 안답시고 말을 한다면 이렇습니다. 흘러가는 무엇이 없을 때 과거의 시간이 있지 아니하고, 흘러오는 무엇이 없을 때 미래의 시간도 있지 아니할 것이며, 아무것도 없을 때 미래의 시간도 있지 아니할 것이며, 아무것도 없을 때 현재라는 시간도 있지 아니할 것이다.

 

그럼 과거와 현재의 두 가지 시간이 어찌 되어서 생기는 것이며, 그 과거와 있지 않게 되는 적은 언제이며, 미래가 아직 있지 아니한 때는 또 언제이냐? 현재가 늘 현재로 있다면 과거로 지나갈 리 없으니, 따라서 시간은 없고 영원만이 있게 될 것이다. 이런즉 만약에 현재가 시간이기 위하여 과거로 흘러가 버려야 될 수 있다 치면 어찌 이것을 '있는 것'이라 일컬을 수 있겠느냐.

그의 존재 이유가 차라리 없어지는 데에 있는 만큼 시간이 존재한다고 말하기보다 '이니 있음'에로의 흐름이라 일컬어야 하지 않겠느냐.


 

제15장


 

그럴지라도 우리는 긴 시간이니 짧은 시간이니 하고 과거와 미래를 들어 말하고 있습니다. 긴 과거란 이를테면 백 년 전, 또 긴 미래란 백 년 후를 가리키고, 짧은 과거이면 열흘 전,또 짧은 미래이면 열흘 후, 이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허나 본디 있지도 않은 것을 길다. 짧다는 터무니가 무엇이오니까? 과거는 이미 아니 있는 것 미래는 아직 있지 않은 것이고 보면, 과거에 대하여 '길다' 해서는 아니 되는 대신, '길었다'해야 옳고, 미래에 대해선 '길으리라'가 옳은 것입니다. 주여, 내 빛이시여, 이 점에서도 당신의 진리는 인간을 웃고 계시는 것이 아니오리까.

 

그렇습니다. 과거가 길었다 하니 흘러간 뒤가 길었다는 것입니까. 현재로 있을 적이 길다는 말입니까? 길었다면 그 있던 때가 길 수 있었을 터이요, 그때 과거란 있지도 않았을 것이오니 도시 있지도 않을 것이 길 수 있는 터무니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과거 시간이 길었다는 것은 안될 말. 지나가 버리면 다시 있지 않은 것이니 길었다 할 무엇이 없는 까닭입니다. 차라리 '그 현재 시간이 길었다'면 말이 될 것이니 현재로 있는 동안이 길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직 흘러가지 않은 채 없어짐 것이 아니라면, 있었던 만큼 길 수 있었다가 흘러간 다음에는 '길음'도 '있음'도 한꺼번에 다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보자꾸나, 인간의 영혼이여, 현재 시간이 정말로 길 수 있는지를. 동안을 느끼기와 재기가 네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 무슨 대답을 내게 해주는지 보자꾸나. 백년 하면 그 현재가 길다 하겠느냐? 우선 백 년이란 것이 현재할 수 있는 것부터 생각해 보라. 그 첫 해를 두고 생각해 보면 아흔아홉 해는 미래이니 아직은 없는 것이다. 둘째 해를 놓고 보자. 한 해 는 벌써 지나갔고, 또 한 해만 현재, 그리고 나머지 해들은 다 미래로구나.

 

이렇게 백이라는 숫자의 해를 놓고 그 한 토막을 현재로 간주할 때, 혹은 그 이전의 과거, 혹은 그 이후의 미래가 있을 것이다. 하다면 백년이 현재로 있을 수 있게는 되지 못할 것이다. 아니, 한 해인들 현재하는 것인지나 살펴보자. 일 년의 첫 달이라 친다면 나머지는 모두 미래이요, 둘째 달이라도 첫 달은 이미 갔고, 나머지만 아직 없다. 이렇다면 지금 말한 이 일 년조차 그 전부가 현재가 아니요, 전부가 현재일 수 없다면 일 년도 현재일 수 없다.

 

일 년이 열두 달, 그 어느 한 달을 현재로 잡아 볼 때, 다른 달들은 과거 아니면 미래이다. 흘러가는 그 달조차 역시 현재가 아닌 하루뿐인 셈이니, 초하루라면 나머지는 미래, 그믐이면 나머지는 과거, 그 중간의 어느 하루라 치면 그것은 과거와 미래 사이에든 것이리라.

 

보라, 오직 하나 길다고 부를 수 있는 현재의 시간마저 고작해야 단 하루 동안으로 줄어 들었다. 허지만 이걸 한 번 검토해 보자. 하루나마 온전한 현재인가? 주야 이십사 시간이 찬 것을 하루라 한다. 허나 그 첫 시간에 비껴 딴 시간들은 미래요, 끝 시간에 비겨 딴 것들은 과거, 그리고 사이에 낀 시간은 제 앞에 올 시간을, 제 뒤엔 간 시간들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뿐인가, 그 한 시간조차 속절없이 흘러가는 한 토막! 흐른 것은 이미 과거요, 그렇지 않은 것은 미래인 갓이다. 만일 시간을 찰나의 찰나로 조갤 수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 한다면 이것만을 현재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허나 이것 마저 미래에서 과거로 흐르는 움직임이 너무나 빨라서 순간도 쉬는 틈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을 가리켜 길다 함은 무엇인가? 미래를 가리킴인가? 사람들은 아직 길다 할 만큼 존재하지도 않은 것을 가리켜 '길다' 하지 않고, '길 것이다'할 뿐이다. 길다 할 것이 미처 아니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아니 있음인 미래에서 나와 존재가 시작되고, 또 현재가 되어서 길다 할 수 있게끔 된다면 그때는 이미 위에 말한 바와 같이 긴 현재로 있을 수 없는 때인 것이다.

출처 : ImagoDei
글쓴이 : Ho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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