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찬송가, "치명적 오류 있다" | ||||||||||||||||||||||||
전 한국찬송가공회 공동회장 한명수 목사, "심사위원이 쓴 곡을 넣은 건 말도 안 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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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 사람이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를 줄곧 외치고 있다. 작은 목소리지만 무게가 실리는 것은 그가 2003년까지 한국찬송가공회에서 9년간(공회에 확인해야 함) 공동회장과 대표회장 등을 지낸 한명수 목사(창훈대교회 원로)이기 때문이다. 한 목사는 그 누구보다 한국찬송가공회의 속사정을 훤히 꿰뚫고 있다. 무엇보다 그는 <21세기 찬송가>보다 전에 만들어진 <새 찬송가>를 폐기하는 일을 주도한 인물이다. 당시 <새 찬송가>는 수억 원어치나 찍어놓은 상태였지만, 곡 선정 작업에 참여한 위원들이 지은 노래가 포함되어 있다는 ‘결함’ 때문에 한국교회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 이후 한 목사는 <21세기 찬송가> 제작을 추진했고 6년 동안 이 일을 주도했다. 그리고 그가 한국찬송가공회를 떠난 지 3년만에 결실을 맺었다. 한 목사는 이 소식을 가장 반겨야 할 사람이지만, 되레 가장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뉴스앤조이>는 그가 무슨 이유로 <21세기 찬송가>를 반대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11월 22일 수원시 연무동 창훈대교회 원로목사실을 찾았다. 한 목사의 주장은 간단하고 명쾌했다. 찬송가 후보곡을 심사하는 위원의 곡이 <21세기 찬송가>에 들어갔다는 거다. 그는 마치 미술대회에 자신의 작품을 내놓고 자신이 심사하는 격이라고 설명했다. 한 목사는 양심이 있다면 그런 일을 못할 것이라는 말했다. 같은 이유로 한 목사가 <새 찬송가>를 폐기를 주도했고, 자신이 한국찬송가공회 안에 있을 때는 절대 그런 일을 못하게 했는데, 자신이 자리를 떠난 사이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인터뷰는 곧 쓰러질 것 같은 책 더미 속에서 한 시간 정도 진행했다. 인터뷰 중간 한 목사는 이곳저곳을 뒤져 여러 자료를 내놓았다. 한 목사는 담임목사직에서 은퇴하면서 그의 서가에서 2만 1500권을 수원대에 기증했지만, 원로목사실은 다시 책으로 넘쳤다. 해마다 1000권씩 모아 이제 3000권이 넘는다고 한다. 원로목사실 입구에서는 집사 두 분이 신문 스크랩을 하고 있었다. 때마침 그들은 <21세기 찬송가>에 관한 교계 신문들의 기사를 정리하는 중이었다. 한 목사님 때문에 고생이라고 했더니, 이들은 “예전에는 한 목사가 혼자 날을 새면서 스크랩을 했는데 이제는 몸이 좋지 않아 가끔 와서 돕는다”고 설명했다. 인터넷만 서핑하면 쉽게 찾을 자료를 일일이 오려서 파일에 정리하는 수고를 하는 한 목사의 정성이 고집스러웠다. 자료마다 한 목사가 그어놓은 형광색 밑줄이 눈에 띄었다. 특히 찬송가에 대한 기사에서는 형광색과 빨간색 줄이 길게 늘어졌다. <21세기 찬송가>의 핵심적인 문제는 어떤 것인가. <21세기 찬송가>를 제작한 한국찬송가공회 임원들과 위원들이 작사·작곡 노래가 대거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자기들이 지은 노래를 21세기 찬송가 후보로 내놓고 자기들이 심사했다. 공정성도, 타당성도, 신뢰성도 없다. <21세기 찬송가>는 공정하다는 평가도 얻지 못할 것이고, 한국교회의 신뢰와 사랑도 얻기도 힘들 것이다. 그 문제는 목사님이 공동회장으로 계실 때도 논란거리였다고 알고 있다. 내가 대표회장이나 공동회장으로 있을 때도 임원과 위원이 만든 노래를 <새 찬송가>에 넣느냐가 늘 논란거리였다. 당시 <새 찬송가>가 나왔을 때 찬송가공회 임원과 위원들이 지은 노래가 여러 곡 들어갔다. 내가 끝까지 싸워서 이미 찍은 찬송가를 폐기했다. 덕분에 수억 원의 손해를 보았다. 그렇지만 돈 때문에 옳지 않은 일을 묵과할 수는 없었다. 우리 교단(예장합동)은 한국찬송가공회에 파송한 위원을 전원 교체하기로 결의했다. 그렇게까지 해서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려 했다. 심사하는 사람의 노래는 넣지 말자는 거다. 미술전, 음악전에 가봐라. 서예전에 가봐라. 작품을 내놓은 사람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게 말이 되는가. 사회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내가 회장에서 물러나면서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깨지기 시작했다. 냉정하게 선정한 게 아니다. 이성적인 작업도 아니었다. 하나님 앞에 정도를 걷지 않았다. 목사님이 21세기 찬송가 작업을 시작한 당사자로서 심정은. <새 찬송가>를 폐기 처분하고 한국찬송가공회 임원도 전원 교체하는 혼란 속에 내가 공동회장으로 부임했다. 그리고 새롭게 <21세기 찬송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같은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위원들의 작품은 심사 대상에 넣지 않았다. 안팎에서 반대가 심했지만 그 원칙은 내가 있는 8년 동안 흔들리지 않고 지켰다. 내 심정은 중요하지 않다. 본질적인 문제만 이야기하자. 절대로 임원과 위원이 지은 곡을 넣어서는 안 된다. 정 그러고 싶으면 자리를 사임하고 자기 곡을 넣어야 한다. 사실 그것도 우스운 일이긴 마찬가지이지만. 한국찬송가공회는 전문위원의 작품을 전문위원이 심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게 말이 되느냐. 그럼 그들의 작품은 누가 심사했다는 말인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논리를 대려면 제대로 대야 한다. 한국찬송가공회는 상식 이하의 말은 제발 그만해야 한다. 그렇지만 찬송가공회는 찬송가 후보 곡들은 작사자와 작곡자의 이름을 삭제한 뒤 심사했다고 설명했다. 그 말도 조금만 생각하면 우스운 주장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심사위원들이 하루 이틀 작업했다면 그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몇 년을 모여 작업했는데, 그동안 작사자와 작곡자가 누군지 모른다는 게 말이 되는가. 웃기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말라고 해라. 억지스러울지 모르지만, 전문위원들이 그 분야에는 워낙 유명한 전문가들이어서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노래가 들어갔다고 볼 수는 없을까. 그것도 타당하지 않다. 우리 교회 강당에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라는 붓글씨가 걸려있다. 유명한 서예가의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그분 수준의 솜씨를 가진 서예가들이 얼마나 많겠나. 찬송가의 곡 선정도 이와 같은 이치다. 전문위원이 나름대로 자기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심사하는 자리에 앉았을 때는 자기 노래는 빼야지. 자신 못지않게 유명한 이들이 어디 한둘이겠나. 그들을 발견하려고 노력하지는 않고. 비교적 젊은 층이 지은 노래와 각 교단의 총회장급 인사가 작사 작곡한 노래가 상당수 들어갔다. 젊은 사람이 지은 노래를 <21세기 찬송가>에 넣는 일은 심각하게 숙고해야 한다. 물론 그들이 전문성을 갖추고 곡도 뛰어날지라도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가령 찬송가를 지은 사람이 이단에 빠진다면 어떻게 할 텐가. 그가 지은 노래를 나중에 뺄 것인가. 작사자와 작곡자는 중후해야 한다. 그래서 예전부터 죽은 사람의 노래만 싣자는 논의가 있었다. 그 인물에 대한 평가가 확실하니까 안심하고 곡을 선정할 수 있다. 한국찬송가공회 회장인 임태득 목사는 여성을 비하한 일명 ‘기저귀 발언’ 설교로 사회의 지탄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가 작사한 노래 ‘성령의 봄바람 불어오니’가 찬송가에 들어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다른 교단에서 알았다면 당장 문제를 제기했을 텐데 그런 세부적인 일까지는 몰랐을 것이다. 그러니 그냥 넘어가는 거다. 다들 무관심해서…. 특정 개인을 지칭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가 지켜야 할 큰 원칙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자. 자신이 심사하고 임원으로 참여하면서 자기 노래를 <21세기 찬송가>에 넣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수준을 알 수 있다. 한국찬송가공회 주변에는 자신이 지은 노래를 찬송가에 넣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이 우글거린다. 감수위원 명단에 한 목사님이 이름이 올라있던데, 그럼 목사님은 내부에서 문제를 제기했나. 내가 감수위원이란 것은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이 내게 묻지도 않고 이름을 넣었다. 내게 회의에 나오라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감수위원에게 감수하라고 자료 하나 보내주지도 않았다. 그래도 내가 감수위원인가. 내가 껄끄러워서 자료를 보내지 않았다는 소리가 들리더라. 내가 하고 싶다고 한 것도 아닌데, 내게 그런 감투를 주었으면 내가 일할 수 있도록 해야지. 한국찬송가공회는 직무를 유기했다. 그럼 처음부터 내 이름을 넣지 말던지. 내가 먼저 그들에게 연락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들이 하는 대로 두었다. 그래서 지난 13일 열린 21세기 찬송가 출판 기념 예배에 참석하지 않은 건가. 나보고 표창장 받으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일도 시키지 않고 수고했다고 표창장을 준다니…. 내가 왜 가겠나. 그들이 감수비 등을 주겠다며 찾아온다고 했지만 오지 말라고 했다. 만나지도 않을 것이고, 그런 것 받으면 돌려줄 생각이다. 내가 문제가 있다고 여겨 <새 찬송가>를 폐기하고 <21세기 찬송가>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내가 떠난 뒤 그들이 예전의 못된 방법으로 회귀했다. 그들은 역사의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리고 있다. 그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다. <21세기 찬송가>는 총회에서 사용하기로 결의했지만, 지금 한 목사님은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럼 이전처럼 폐기해야 한다고 보는가. 사용하느냐 안 하느냐는 <21세기 찬송가>를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와 다르게 논의해야 할 사안이다. 무슨 일에든지 옥에 티처럼 문제가 있긴 하다. 이번에도 전체를 폐기해야 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그럴 위치에 있지 않다는 말이다. 이것만 말하겠다. 나는 신앙 양심상 그런 일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 그렇지만 총회가 동의했는데 소속 교회와 교인은 따라야 하지 않나. 창훈대교회는 사용할 계획인가. 깊이 고민 중이다. 흐름을 지켜보고 있다. <21세기 찬송가>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다. 나는 내 주장에 모두가 동의해달라고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왜 이렇게 잠잠할까. 나는 이런 분위기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불만이 쏟아내지 않는다. 그저 의아하게 생각한다. 왜 우리는 우리가 부를 찬송가에 대해 무관심할까. 교회 안의 많은 사람들은 개혁과 정의, 원칙보다는 현실 안주를 추구한다. 적당히 타협하고 익숙하고 자기에게 직접적인 유익을 주거나 눈에 보이는 해를 끼치지 않으면 도대체 움직이지 않는다. 방관자적 자세가 몸에 배었다. 어디 찬송가 문제뿐이겠는가. 통일과 평화와 같은 시대적 과제와 정치와 경제 문제는 물론, 교단 내부 이슈와 이단 문제까지 무슨 일에든 알려고 하지 않는다. 공공에 대한 무관심은 기독교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현대 사회의 흐름이다. 철학과 의식 없이 살고 있다. 진리가 힘이 되어야 하는데, 힘이 진리가 되었다. 힘이 진리고 여론이고 다수인 시대다.
어쩌면 우리 시대의 대중은 부패한 권력자들이 생산한 제품에 무관심하고 무시하는 것으로 저항하는 건 아닐까. 총회가 결의하면 안 쓸 수 없다.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문제를 제기하고 싸워야 한다. 그저 무시하겠다는 생각은 현실을 기피하는 행위다. 역사의 변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태도다. 그렇게 주인의식이 없는 자세로는 대안을 만들어낼 수 없다. <21세기 찬송가>의 내용에 대한 평가는 잠잠하지만, 판권을 놓고는 논란이 있었다. 이권에 대해서는 내가 잘 모른다. 찬송가 시장이 작은 규모는 아니기에 이권 다툼이 일고 있겠지. 그러나 찬송가의 이권을 논의하는 건 지엽적인 문제다. 상업 이전의 본질적인 문제를 놓고 싸워도 부족할 판이다. 한 목사님은 한국찬송가공회에서 활동하던 시절 자신의 노래를 <새 찬송가>에 넣고 싶은 유혹은 없었나. 난 양심상 그렇게 못하겠더라. 나도 책을 60권이나 냈는데, 작사를 못하겠는가. 내가 작사한 찬송이 3곡 있다. 내 곡을 21세기 찬송가에 넣으라고 권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옳지 않은 일이다. 공직을 떠난 다음에도 안 될 것 같더라. 꼭 내 비호 아래 다른 이들이 일을 처리하는 것 같지 않나. 내가 아니라고 해도 누가 믿어주겠나. 그런 욕망을 버려야 한다. 특히 공직에 있는 사람은. 인터뷰 끝에 한 목사는 "안 찾아봐서 그렇지, 잘못된 방법으로 만든 <21세기 찬송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교회의 양심 세력이 어디선가 활동하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 대단했다. 그래서 인터뷰 도중에 왜 이렇게 잠잠한지 모르겠다던 모습과는 영 딴판이었다. 한 목사는 "나 같은 이들은 원칙 수준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지만 나서서 싸우는 것까지는 하기 어렵다"며 "정의롭지 않을 일이라고 여긴다면, 젊은 층이 나서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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