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질문자료

[스크랩] 성도의 견인을 부정하는 박창진 님의 히6:4-6절의 해석에 대한 반론

baromi 2006. 10. 17. 21:20
 

모든 성경의 구절을 해석할 때는 성경해석의 기본 전제인 앞뒤 전후의 문맥을 파악하고 그 문맥의 흐름대로 해석해야 합니다. 특별히 서신서의 경우, 왜 이 서신서가 쓰여 졌는지 그 기록의 배경과 이유도 충분히 고려해야 본문을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모든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이므로 성경해석자는 부단 없이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도서관에서만 되지 않고 기도의 무릎이 없이는 불가능한 이유도 그것일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서신서입니다. 서신서는 편지를 쓴 사람이 편지를 읽어야 할 사람에게 이유가 있어서 쓴 편지입니다. 그 이유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히브리서는 고난 중에도 예수를 믿는 믿음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을 붙잡아 주고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서 쓰여 진 서신서입니다.(특별히 F.F.Bruce같은 학자들은 이들을 고난과 배교의 위험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있는 유대인 성도라고 봅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쓰여 진 히브리서는 크게 3부분으로, 서론부분인 1:1-3:1, 본론부분인 3:2-10장, 그리고 결론인 11-13장으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먼저 서론부분인 1:1-3:1절까지는 예수그리스도가 얼마나 탁월하신 분인가를 설명하면서 독자들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론인 3:1-10장은 또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서 3:2-6:20절까지는 안식과 성숙의 주제로 성도들을 격려하고 7-10장은 새 언약의 도래라는 주제로 고난 중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그의 독자들을 붙들어주고 있습니다. 물론 본론의 두 주제도 서론에서 밝힌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로 해서 펼쳐집니다. 그리고 마지막 결론 부분인 11-13장은 서론과 본론에서 다룬 내용을 교회 공동체와 개인의 삶으로 적용하면서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잘 달리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박창진 님이 성도의 견인을 부정하는 근거구절로 제시하신 히6:4-6절도 이와 같은 히브리서 전체의 문맥과 구조 속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그 부분만 따로 뽑아내어서 해석하면 마치 이미 구원을 얻은 사람이 얼마든지 자신의 의지로 타락해서 그 구원을 읽어버릴 수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박창진 님처럼 주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이 구절이 신약성경의 대표적인 난해구절이기는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박창진 님의 해석이 히브리서 전체의 문맥을 고려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보지 못해서 나온 해석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히6:4-6절은 히3:2-6:20절까지의 주제인 안식과 성숙의 주제로 고난과 배교의 유혹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있는 성도들을 때로는 경고하면서, 때로는 격려로 위로하면서 붙들어주기 위해 선포된 말씀 중에 등장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3장과 4장에서 안식을 다루고, 5장과 6장에서 성숙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이 편지를 받는 독자들에게 경고와 위로의 이미지를 교차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영원한 심판이라는 강한 경고로, 안식과 성숙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또 한편으로는 우리를 영원한 안식과 성숙으로 인도하는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면서 지금 믿음을 지키고 있는 그의 독자들을 소망 가운데 붙들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6:4-6절도 이런 문맥적 상황 속에서 다루어져야 합니다. 특별히 성숙을 다루는 5-6장의 내용은 이렇게 구성이 됩니다. 5:1-10절은 대제사장 예수를 소개하고 있고, 5:11-6:8절까지는 성숙을 향한 강력한 도전의 내용이 배교의 경고로 주어지고, 그리고 6:9-20절은 구원의 확실성을 제시하는 내용으로 끝이 납니다.


그렇다면 히6:4-6절의 본문도 성도가 한번 구원을 받았다가 자기의 의지 여부에 따라 그 구원에서 떨어질 수도 있고 영원히 타락할 수도 있다는 배교의 가능성을 지지하는 구절이 아니라 그런 상황을 가상함으로 오히려 역으로 배교가 얼마나 엄청난 죄이며, 성도에게는 결코 이런 배교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하게 경고하는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6:4-6절은 5:11-6:8절까지의 성숙을 도전 중에도 가장 극단적이고 강력한 도전입니다. 너희가 성숙하지 않고 믿음의 초보 수준에 머물러 있으면 그 믿음이 과연 구원 얻은 믿음이 맞는가? 너희가 생명이 있다고 하면서 그 생명이 자라지 않는다면 그 생명이 정말 생명이 맞는가? 하는 것을 마치 구원을 영원히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극단적인 설명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이 실제적인 상황이 아니라 (비록 경고의 내용은 실제적인 내용이지만) 가상적인 상황인 것이 분명한 것은 다음과 같은 문맥적 분석에서 더 확실하게 드러납니다. 본문의 앞 뒤를 감싸고 있는 6:1-3절과 6:9의 인칭은 ‘우리’입니다. 그런데 본문인 6:4-6절은 ‘그들’입니다.(한글개역 성경에는 ‘그들’이라는 단어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본문의 ‘그들’은 히브리서 독자인 ‘우리’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 배교한 자들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다른 ‘그들’을 가정해서 배교하는 자로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6:9에서 더 확실하게 입증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나은 것과 구원에 가까운 것을 확신하노라” 확신한다고 합니다. 배교하는 그들과는 달리 너희는 구원에 가까운 것을 확신한다고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의 독자들을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부르면서 그들이 배교하는 ‘그들’과 같지 않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6:10-12절에서는 이 편지를 읽는 독자들이 하나님이 기억하는 형제를 섬기는 선행자들과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라는 것을 말씀하고 나서 6:13-20절까지는 독자들의 견인을 격려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맹세로 보증하셨기에 결코 취소될 수 없는 하나님의 확고한 약속을 소개함으로 그들을 위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히6:4-6절은 실제적인 배교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가상적인 배교상황을 다루어서 고난 앞에 낙심해서 배교의 유혹을 느끼고 있는 성도들을 경고하고 격려하기 위한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의 견인은 진공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매일 치열한 영적인 전투 상황 속에서, 때로는 배교의 유혹을 받고, 때로는 좌절과 낙심의 시험 중에서 힘들어 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살아가는 역동적인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간섭과 열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지금 히브리기자는 그 역동적인 믿음의 현장에서 살아가는 그의 독자들을 이렇게 생생하게 붙들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생생한 성경의 외침 속에서 우리는 성도의 견인 교리가 성도의 삶을 나태하게 해주고 미성숙 상태에서 머물러 고착되게 하는 해악이 아니라 실제적인 고난과 어려움의 연속 속에서 믿음을 지키고 살아가는 성도들을 너무나 힘있게 위로하고 소망가운데 붙들어서 계속 믿음으로 살게 하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음성임을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솔라 그라치아!. 솔라 휘데!..솔라 글로리아!...오직 성삼위 하나님께 영광을!!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한우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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