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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프란시스 쉐퍼/ 이성에서의 도피

baromi 2006. 9. 7. 11:37

최근 일부 복음주의자들이 명제의 옳고 그름을 판가름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복음주의적인 그리스도인은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스도인이 그런 식으로 말할 때, 그는 분석적 형태로든 비분석적 형태로든 상층부로 도약한 것이다. 

 

                  비합리적 - 예수와의 만남                            

          합리적-명제의 진부를 가리지 않는다

 

만일 우리가 어떤 현대의 사상 논재의 압력에 눌려 절대적인 성경을 제쳐 두고 단순히 상층부에다 예수체험이니 하는 말을 갖다 붙인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아 마땅하다. "이렇게 하는 것과, 세속 불신자들이 의미론적 신비주의에서 하는 것이나 급진주의 신학이 하는 일이 다를 바가 무엇인가?" 그런데 아직 두드러지게 눈에 뜨일 정도는 아니지만, 그게 다 동일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다음 세대에 가서는 그것이 다 같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농후해질 것이 확실하다.

 

만일 상층부의 것이 합리성과는 별개의 것이라면, 또한 성경이 우주와 역사에 관하여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 검증 가능한 것으로 논의되지 못한다면, 복음주의에서 말하는 상층부와 극단적인 현대신학이 말하는 상층부가 다를 것이 무엇인가? 무슨 근거로 선택을 할 것인가? 힌두교의 비슈누의 이름하에 만나는 것과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다를 것이 무엇인가? 또한 이러한 말을 사용하지 않고 약물을 사용함으로써 어떤 체험을 추구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오늘날 우리에게 시급한 일은 현대 사상의 전모를 이해하는 일이다. 즉 이원론과 이분법 그리고 도약의 의미를 잘 파악해야 한다. 전술한 바와 같이 상층부는 여러 형태를 취할 수 있다. 종교적인 것, 세속적인 것, 추한 것, 정결한 것, 무엇이든 가능하다. 현대 사상의 골자를 케 들어가면 상층부에 무슨 말을 적용시키든 상관이 없다. 즉 예수라는 애호되는 말까지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결론을 얻는다. 

 

내가 예수라는 말을 들을 때 -역사적인 예수와 그가 하신 일로 인하여 내게 예수라는 말이 너무나 큰 의미를 지니므로- 주의하여 듣는 이유는, 현대 세계에서 사용되고 있는 어떤 다른 말 보다도 "예수"라는 말의 사용을 두려워하고 유감스럽게 여기기 때문이다. 이 단어는 아무런 내용 없는 표상으로 사용되면서 우리 세대에게도 그것을 따르라는 요청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시비를 가릴 합리적, 성경적 내용이 없고 보니 예수께서 가르치신 것과는 정반대되는 내용을 가르치는 데에 사용되고 있다. 사람들은 대단한 열심으로 이 말을 따르도록 요구받는다. 급진주의 신학을 따르는 새로운 도덕에서 더욱 그렇다. 자기를 원하는 이성(異性)과 동침을 하는 것도 예수와 같은 행위라는 것이다. 인간답게 되려고 노력하는 한, 예수께서 가르치신 특정 도덕을 어기더라도 다른 사람과 동침하는 것은 예수와 같은 행위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예수의 교훈은 문제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층부의 합리적인 성경 내용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예수라는 말이 참 예수의 적이 되었으며 예수님의 교훈에 대한 적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이 "예수"라는 내용없는 표상을 경계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분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내용없는 표상과 싸워야 한다. 이것은 실로 큰 매력을 가지고 인류의 기억 속에 깊이 뿌리 박고 있으며, 또한 사회학적 형식과 통제를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의 영적 자녀들에게도 이것과 싸우도록 가르쳐야 한다.

 

이와 같이 악화 일로에 있는 경향을 보면, 예수께서 말세에 적그리스도들이 등장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나타날 큰 적은 적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는 비그리스도의 적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적이다. 지난 수년동안 성경의 내용과는 동떨어진 예수라는 말이 점점 역사적인 예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시고 다시 오실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의 적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심해야 한다. 만일 복음주의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이분법에 말려들어 예수와의 만남을 성경의 내용과 분리시키기 시작한다면(고의는 아니라 하더라도), 자신들과 다음 세대를 현대 사조의 소용돌이 속에 내던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현대 사조는 거의 한 덩어리가 되어서 우리를 포위하고 있다.

 

(프란시스 쉐퍼, 이성에서의 도피 pp.82~84/ 본문의 내용 그대로를 옮겼습니다. 쉐퍼의 책을 읽는 가운데 온몸에 "전율" 비슷한 것을 느꼈습니다. 그의 통찰에 깊이 탄복했다고나 할까요? 가격은 4000원, 최신에 나오는 것은 5000원인데, 충분히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기독교 철학 및 문화관이라는 제목으로 거기 계시는 하나님, 이성에서의 도피, 거기 계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 다시 자유와 존엄으로가 묶여서 단권으로도 출판되었습니다. 크리스챤 다이제스트와 생명의 말씀사에서 출판된 것 같습니다.)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열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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