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교회와 논쟁

[스크랩] Re: 본질을 보시길 바랍니다

baromi 2006. 7. 20. 14:08
 

1.(폴의 질문)

1) 홀리조이 님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 괜히 서로 다른 것처럼 떠보시지 마십시오. 분열의 영이 역사함을 봅니다.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2) 홀리조이 님은 '광야교회'도 에클레시아로 보는 듯 한데, 그렇다면 '광야교회'도

    신약 교회(에클레시아)인가요? (아니라면 위 동의어라는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 광야교회도 에클레시아입니다. 광야교회 중에는 신약교회에 속한 이들이 있습니다. 모세도, 여호수아도 다 신약교회 안으로 부름받았습니다.


(폴의 질문)

1)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다 신약교회다...'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의 의미는?

☞ 그리스도께서 그 모임과 사람들 안에 계신다는 말입니다.


2)  우리는 언제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는가?

☞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거함으로!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창세전부터 그리스도 안에 있었습니다.


3) 구약의 사람들도 그리스도 안에 있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안에 거함으로!


4) 위 우주교회(그리스도의 몸) 안에는 구약교회는 포함되지 않는가?

☞ 구약교회에 속했던 전원이 포함되는 것은 아닙니다.


5) 그렇다면 구약교회는 하나님 앞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 하나님의 언약공동체로서 하나님의 주권과 영토와 법을 계시하시고, 장차 나타내실 그리스도의 신부를 선택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크게 쓰임받은 공동체입니다.


6) 위 고전 1:2는 두 부류의 수신인을 말하고 있다 즉 하나는 <고린도에 있는 ...교회>이고 다른 하나는 <고린도뿐 아니라 각처에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이 그것이다.


(1) 혹시 위 구절을 '고린도에 있는' 이라는 한정 수식어를 무시하고 그 뒤의 '하나님의 교회 곧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 지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는 표현만을 주목하여 이것을 우주교회로 착각한 것은 아닌가?


(위 문맥은 보편적인 하나님의 교회를 말한 것이 아니다. 대신에 <고린도에 있는>이라는 지역적 제한을 갖는 하나님의 교회이다. 그러므로 이 표현은 우주교회의 근거가 될 수 없다.)


☞ 천만에요. 헬라어로 보시면 <고린도 교회>와 <모든 장소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로 분명하게 나누어집니다(전치사 συν).

게다가 마지막 문장에 <모든 자들>은 헬라어로 <그들과 우리들/3인칭복수+1인칭복수>로서 고린도 교회와 바울뿐만 아니라 제 3의 교회들까지 포함함으로써 분명하게 고린도교회에 국한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2)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 단순히 주님의 이름을 입으로 소리내는 것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주님을 찾고 부르며 그 분과 교제하고 사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3) 각처에서 거듭났으나 주의 이름을 안 부르는 경우는 이 서신서의 수신인에 포함되나 안 되나?

☞ 거듭나서 주님과 화해한 사람이 주님의 이름을 안부르는 경우가 있던가요? 금시초문입니다^^


(4) 빚진 자님과 그 소속된 교회(목양교회?)는 지금 주의 이름을 부르는가?

(소위 구약교회라고 볼수 있는 오늘 날의 유대인들과 그 선조들은 절대로 예수를 주라고 고백하지 않는다는 점을 우린 알아야 한다 . 그들은 여전히 지금 이 시간에도 오실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고 예수가 그 메시아 주이심을 인정하지 않는다(즉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심지어 예수가 주이심을 시인하여 거듭난 사람들도 실제 생활에서는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사울이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을 잡으로 다메섹으로 가다가 빛 가운데 고꾸라 진 기록이 사도행전 9장에 잘 나와 있다. 특히 행9:14, 21은 다른 이들이 아니라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를 집중적으로 잔해했음을 말해 준다.)

☞ 폴 형제님 이론의 한계가 여기서 나타납니다. 모세와 다니엘이 부른 <아도나이-메시야>라는 히브리어는 바울이 말하는 <퀴리오스-크리스토스>라는 헬라어만 아닐 뿐이지, 그 이름의 실체는 절대 동일합니다.


그리고, 거듭났는데 실제 생활에서 전혀 주님의 이름을 안부른다? 불가능합니다. 아기가 태어나서 젖을 빨고 엄마를 찾는건 학습이 아니라 생명의 자연스런 특징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이가 하나님을 전혀 찾지 않는다는건 생명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폴의 질문)


1) 위 설명은 신약교회와 구별되는 구약교회란...<육신의 혈통상의 이스라엘> 즉 '유대

   인들'을 가리킨다는 말인가?

☞ 모든 유대인들이 아닙니다. 협의적인 의미에서 특별히 언약공동체로서 존재했던 이스라엘 공동체를 말합니다.


2) 구약교회의 정의를 묻는 질문에 '광야교회'를 언급한 구절을 제시한 것은 '광야교

    회'가 구약교회에 해당된다는 말인가? 이 주장도 홀리조이님과 일치하는가?

☞ 구약교회 중에는 “광야교회도” 있습니다. 구약교회의 대표주자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전 글에서 “협의적 의미의 구약교회”라는 단서를 붙였지요? 알고보면 창세기의 아담스 패밀리도 하나의 구약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있는 구약의 공동체는 모두 구약교회(카할)입니다.


3) 홀리조이 님은 구약교회 신약교회를 나누는 자체를 세대주의적인 발상으로 보아 반대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로 그러한가?

☞ 구약의 약속 중에는 전부는 아니더라도 신약의 약속과 연결된 부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끝까지 참여한 자들은 모두 신약교회에도 속합니다.

세대주의의 치명적인 약점은 구약의 모든 약속을 혈통적 이스라엘에만 국한시킬 뿐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에는 적용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4) 광야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 있었는가 없었는가?

☞ 광야교회 중에 모세와 여호수아 같이 언약의 동참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폴의 질문)


1) 신약교회는 언제 생겼는가?

☞ 오순절에 성령이 부어질 때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관점에서는 창세전부터 존재했습니다.


2) 신약교회는 언제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었는가?

☞ 위 답변과 같습니다.


3) (제가 프린트 할 때는 "구약교회는 그리스도와 상관없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임입니다." 라는 표현이 있었는데 지금 다시 보니 어디로 사라져버렸네요. 아마도 그 사이 재 수정을 하신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하겠습니다.)


(1) 구약교회가 율법공동체라면 이들은 어떻게 구원받는가?

☞ 하나님과 그 분의 약속을 믿고 동참하므로


(2) 구약교회라고 불리웠던 사람들도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신약교회 안으로 부름받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에 떨어져 멸망할 수도 있는가?

☞ 얼마든지요. 고라와 그 추종자들을 비롯하여 광야에서 하나님을 대적하였던 모든 이스라엘입니다.


(3) 구약교회는 그리스도와 전혀 상관이 없는가?

☞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있다면 상관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습니다.


    (4) 구약교회 안에서도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신약교회 안으로 부름 받은 사람들은 소위 "성령공동체'의 일원이라는 말인가?

☞ 그렇습니다.


    (5) 그렇다면 <성령공동체>라는 말의 의미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 성령께서 그 위에 함께 하셔서 인도하시고 먹이시는 공동체입니다.



5.(폴의 질문)


1) 구체적인 지역교회(0성교회)가 신약교회인지 아닌지 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지 없는지를 분별할 수 없다면 어떻게 그것이 성경적인 지역교회를 판단하는 원칙이 될수 있다는 것인가?

☞ 교회치리에 관한한 성경적인 실행을 해도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은 공동체일 수 있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요. 그래서 <영적 분별력>이 요구됩니다.


성경과 일치하는 많은 의식과 실행들이 있고, 표면적으로는 예수님의 이름이 넘치지만 실제로는 생명이 없는 공동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생명이 있다 하더라도 실제로 그리스도의 인도를 받지 못하고 있다면 그 역시 죽어가고 있는 교회일 수 있습니다.


2) 목양교회가 그리스도를 붙들고 있다는 객관적인 증거가 무엇인가?

☞ 실생활에서 예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합니다. 그런 증거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이것은 이 에클레시아가 완전하다는 애기가 아닙니다. 아직 부족한 부분이 훨씬 더 많지만 그럼에도 그리스도를 따릅니다. 와서 함께 생활하시면 압니다.

잘 보십시요. <그리스도에 관해 아는 것>과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다릅니다. 교회치리와 운영에 관한 성경적인 실행을 아무리 행해도 그리스도께서 모르는 교회가 있습니다.


3)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그리스도를 붙들고 있다면....신약교회다" 라는 말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누가 봐도 그렇다고 할수 있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객관적인 증거, 그리스도를 붙들고 있다느 객관적인 증거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 그리스도 안에 있어도 그리스도를 붙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계속 그 분 안에 거해야 하고 그 분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붙들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형제사랑입니다.


(요 15: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들을 지켜서 그 분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나의 계명들(서로 사랑하라)을 지키면 나의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일 3:14) 『우리가 사망으로부터 생명으로 옮겨간 것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형제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라.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사망 안에 거하느니라.』


그리스도를 붙들고 있다는 증거는 <지역교회범위>따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획일화된 도시교회범위로는 지역교회들을 하나되게 할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절대로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많은 교파들의 분열은 교리의 분열이 있기 전에 반드시 한 가지 현상이 선행되는데 그것은 바로 형제사랑이 식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실제로 형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모임은 <침/세례>같은 실행이나 교리가 달라도 서로 갈라지거나 분열하지 않습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면 보입니다.


6.(폴의 질문)


1) 호칭과 범위가 제한이 없고 자기 마음대로 나가서 별도의 모임을 가지고 아무 호칭이

    나 붙이면 되는데 왜 바울은 게바파, 바울파, 아볼로파에 대해서 책망을 했는가?

☞ 영적으로 분열되었기 때문입니다. 게바파, 바울파, 아볼로파 등의 호칭은 단지 영적 분열의 결과물에 불과합니다. 본질을 꿰뚫으시길 바랍니다.


2) 왜 몸의 하나를 관심하는 신학자들 목회자들은 교파가 너무 많고 너무 하찮은 일들로

   나가서 분열 즉 그리스도의 몸을 찟는 일을 했다고 탄식하고 있는가?

☞ 탄식하는 건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나뉘었기 때문입니다.


3) 호칭과 범위가 아무 문제가 없다면 왜 우리 안에 계신 그영은 이토록 탄식하시는가?

☞ 호칭과 범위 이전에 이미 그리스도의 몸이 분열되었기 때문에 주님의 영께서 그토록 탄식하고 계십니다.


4) 왜 성경은 그영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거듭 하나됨을 강조 하는가?

☞ 왜냐하면 몸의 분열은 한 분 그리스도가 나뉘어지는 것 같은 아픔이 있기 때문입니다.


5) 왜 호칭과 범위가 아무 문제가 없다면 분열되어 각자의 호칭을 가지고 있고 자기들의

    고유 영역을 가진 교파들이 성령의 인도가 있기만 하면 그런 호칭과 그런 고유 교단

    범위를 버리고 하나 되려고 하는 것일까? (작년에도 예장 합동 교단에 이런 일이

     있었지요? )

☞ 먼저 영의 분열이 때문에 그 열매로 분열의 호칭과 분열의 모임들이 생겨나는 것일 뿐입니다. 진정한 영의 연합은 교파를 초월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형식적이고 제도적인 연합의 시도는 <에큐메니즘>이나 <한도시-한장로체계 가설>같은 돌연변이를 낳습니다.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빚진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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