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물자료

[스크랩] 존 스토트의 율법이해

baromi 2005. 9. 10. 12:29

아래의 내용은 존 스토트(J. Stott) 의 [로마서 강해(The Message of Romans)], I.V.F, 1994. 로 부터 인용한 글입니다. 참고가 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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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에 대한 바울의 언급은 거의 전부(로마서 1장-6장, 필자 주) 경멸적인 것이었다. (생략)(P.246)

 

그렇다면 사도바울은 어떻게 율법이 의보다는 죄를, 생명보다는 죽음을 촉진한다고 모독 할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자신이 율법으로부터 벗어났다고 선포 할수 있는가? 우리가 더 이상 법 아래 있지 아니하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이 폐지 되었다고 단언하는 것인가? 그의 말은 명백히 도덕률 폐기론처럼 들렸을 것이다. (P.247)

 

그들은(역자 주:도덕률 폐기론자- 여기서 도덕률 폐기론자는 율법 폐기론 자를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율법이라는 범주는 폐지 되었으며 유일하게 남은 절대적인 것은 사랑의 계명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이와 비슷하게,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율법이 차지할 자리는 전혀 없다고 선언하면서 현대판 거룩을 가르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지지하기 위해,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롬10:4)는 구절과 너희가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롬6:14-15)를 인용한다. 마치 이러한 말들이, 도덕법이 폐기 되었다는 듯이 말이다. (P.247)

 

하지만 율법이 더 이상 우리에게 어떤 종류의 요구도 하지 않는다거나, 우리가 (역자 주: 구원 받은 성도) 율법에 대해 더 이상 아무런 책임도 없다는 의미에서 율법과 완전히 절연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와 반대로 도덕법(역자 주: 율법의 한 기능)은 여전히 하나님의 뜻-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의 의와 사랑의 삶으로서 성취하기를 기대하시는- 에 대한 계시이다(롬8:4, 13:8,10). 이것이 바로 종교개혁가들이 율법의 제3의 용도라고 불렀던 바이다.(p.248)

 

도덕률 폐기론자들은 반대 극단으로 간다. 그들은 율법이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 비난 하면서 율법을 완전히 거부하며, 자신들은 율법의 요구의 요구에 대한 모든 책임에서 벗어낫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자유를 방종으로 바꾸어 버렸다. 율법을 성취하는 자유인들은 균형을 유지한다. 그들은 칭의와 성화를 이루는 면에서는 율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지만, 율법을 이루기 위한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두 가지 사실 모두를 즐긴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계시로서 율법을 기뻐하지만(롬7:22), 그것을 성취하는 능력은 율법을 두려워하며 그것에 속박되어있다. 도덕률폐기론자들은 율법을 미워하며 그것을 거부한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는 자유인들은 율법을 사랑하며 그것을 성취한다. (p.249)

 

(역자 주: 바울은 다시 한번 롬7:1-6에서 율법이 더 이상 우리를 주관하지 못함을 역설한다) (그러나 이어지는) 롬7:7-13에서, 율법이 죄와 사망을 가져온다는 부당한 비난에 대해 율법을 변호한다. 그는 죄와 사망은, 율법이 아니라 우리의 타락한 본성으로 인해 생겨난다고 말한다. 율법자체는 선한 것이다. 이것이 그가 도덕률 폐기론자들에게 주는 메시지이다. (p.249) (이하 생략)

 

율법이 여전히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속력이 있는가 그리고 우리가 아직도 여기에 순종해야 하는가? 대답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죄를 짓기 위한 자유가 아니라 섬기기 위한 자유라는 의미에서 여전히 우리는 종이다(롬7:6). 곧 하나님의 종이며 의의 종인 것이다 (롬6:18,22). 하지만 우리의 섬김의 동기와 수단은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에 우리는 종이 아니다. (역자: 그렇다면, 왜 우리는 아직도 율법을..) 우리는 왜 섬기는가? 율법이 우리의 주인이고 우리가 그것을 섬겨야만 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우리의 남편이고 우리가 섬기기 원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순종이 구원을 이끌기 때문이 아니라, 구원이 순종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p.255-256) (이하 생략)

 

율법이 죄냐? (롬7:7), 선한것(즉 율법)이 네게 사망이 되었느뇨? (롬7:13) 즉 율법이 죄와 사망 둘 다에 대해 책임이 있으며, 그것이 너무나 해로운 영향을 끼치므로 완전히 거부해야 하는가? 이것이 바울이 가르치는 바인가? 두 질문에 대해 바울은 즉시 격렬한 부정문으로 답한다. 그럴수 없느니라 (롬7:7). 그럴수 없느니라 (롬7:13). (p.257)

 

(이하 생략-역자 주: 오히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율법은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고(롬7:12) 신령하다(7:14)고 부를 뿐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이라고 언급한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율법의 본질적인 선함을 인정 할 뿐 아니라, 그것을 사랑하고 그 안에서 기뻐하며 그것을 간절히 바라고 스스로 그것의 종이 된 것으로 여기는 한 사람이 있다. (역자 주: 그는 율법 주의자가 아닌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곧) 중생하지 않은 사람은 이런 말을 할수 없다. 바울은 율법에 대해 적의가 아니라 사랑을 느끼며, 그것에 대해 반항하지 않고 순종한다.(p.268)

 

(역자 주: 결론적으로 스토트는 율법의 궁극적인 목적을 이렇게 언급한다.)

율법.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는 것이다. (4절 하).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그 열매란 거룩함의 열매 곧 성령의 열매이다. (P.253)

 

출처 : 부흥과 개혁
글쓴이 : 고드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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