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신학자료

칼빈주의 메소디즘과 웨슬리안 메소디즘

baromi 2005. 8. 23. 08:35
 
열매 돌트레히트의 교회회의의 정당성은 칼빈주의 5대 교리를 확립한 데 있으나, 알미니안을 이단으로까지 정죄한 것은 큰 실수였다고 봐야 합니까? 아니면, 알미니안도 이단이고 알미니안 신학을 강조하는 감리교나 침례교도 이단으로 봐야 합니까? 삭제 꼬리말에 코멘트 2005/08/20
holyjoy 알미니안과 웨슬리안을 동일시하는 것 같군요. 서로 다릅니다. 그리고 침례교도 알미니안이 있고 칼빈주의가 있습니다. 알미니안도 알미니우스의 책 한 권 읽지 못한 사람들도 많이 있구요. 너무 "이단"인지 아닌지 따질려고 하지 마십시오. 머리카락을 나누는 것 같이 나누려고 하는 것보다는 "머리"라는 것 그 전체를 생 삭제 꼬리말에 코멘트 2005/08/21
holyjoy 각해 보십시오. 머리는 그리스도입니다. 칼빈주의를 주장하면서도 "머리"와는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 기억하십시오. 삭제 꼬리말에 코멘트 2005/08/21
열매 그렇다면, 홀리죠이님께서는 알미니안을 이단으로 정죄한 돌트회의의 결정이 정당하다고 보십니까? 제가 묻고 있는 바는 "칼빈주의 5대교리를 확립한" 돌트회의의 결정이 아니라... "알미니안을 이단으로 정죄한" 돌트회의의 결정이 정당한 것이냐는 것입니다. 삭제 꼬리말에 코멘트 2005/08/21
열매 홀리죠이님께서 지적하신 바와 같이 개혁신학에 동의하면서도 개혁신학의 원리와 상관없이 살 수 있는 사람도 있겠고, 웨슬레안 안에서도 개혁신학에 동의할 수 있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교리적 일치를 이루지 못해도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도 함께 갈 수 있는 차원이 있는데... 이단으로 정죄까지 하는 것은... 삭제 꼬리말에 코멘트 2005/08/21
열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칼빈주의 5대 교리를 확립한 돌트회의는 의의가 있는 것이지만, 교리적으로 일치하지 않는다고 다양성의 차원은 생각하지 않고, 알미니안을 이단으로까지 정죄한 것은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조금은 성급해 보인다는 것입니다. 삭제 꼬리말에 코멘트 2005/08/21
열매 도리어 일관성 있는 태도를 견지하려면, "알미니안 신학도 이단적이고, 알미니안 신학을 수용한 분파들도 함께 이단적이라 하든지" 아니면, "알미니안이 개혁신학과 교리적 일치를 이루기는 어려우나 함께 갈 수 있고(교리적 타협이 아닌), 알미니안을 수용한 분파들도 다양성 안에 고려가 된다"고 해야 일관성이 있습니다. 삭제 꼬리말에 코멘트 2005/08/21
열매 그렇치않고, "알미니안은 이단적인데 알미니안을 수용한 분파는 다양성 안에서 고려가 된다"면 과연 일관성 있는 태도라고 보여지지가 않습니다. 제가 분리적인 태도를 취하려는 게 아니라,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삭제 꼬리말에 코멘트 2005/08/21
열매 그런데, 윗글에 의하면 알미니안은 이단인데... 웨슬레가 알미니안 교리를 채택하여 감리교의 신조로 삼았고, 침례교도 알미니안 교리를 따른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삭제 꼬리말에 코멘트 2005/08/21
holyjoy 윗글을 쓰신 분은 약간 혼동하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존 웨슬리는 알미니안을 채택하여 감리교의 신조로 삼았으며 오늘날 침례교 교단들도 알미니안주의를 따르고 있다"는 것을 올바른 역사적 평가가 아닙니다. 실상, 소위 칼빈주의자들이 칼빈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 경우들이 허다한 것처럼, 소위 알 삭제 꼬리말에 코멘트 2005/08/21
holyjoy 미니안주의자들이 알미니우스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칼빈주의자로 자처하는 사람들이 칼빈의 기독교강요나 그의 인간의지에 관한 책자들을 제대로 소화시키고 있지 못하는 것처럼, 알미니안주의자로 자처하는 사람들이 알미니우스의 전집을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사람이 수두룩 합니다. 삭제 꼬리말에 코멘트 2005/08/21
holyjoy 가령, 웨슬리가 알미니우스의 책자들을 모두 다 읽은 것이 아니고 웨슬리 당시 영어로 번역되어 있던 알미니우스의 저작들 중의 몇권이었습니다. 현금 학자들은 웨슬리의 신학의 애매모호함을 지적하면서 웨슬리신학을 알미니안신학과 구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감리교"라는 말은 methodism이라는 말의 정확한 번역이 아 삭제 꼬리말에 코멘트 2005/08/21
holyjoy "메소디즘"에는 "칼빈주의 메소디즘"과 "웨슬리안 메소디즘"이 있습니다. 저는 "칼빈주의 메소디즘"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저를 감리교신학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하시겠습니까? 저와 같은 입장을 추구하는 사람들로서는 조지 휘필드, 하웰 해리스, 다니엘 롤란드, 최근에 오자면 로이드 존스같은 분입니다. 도르트회 삭제 꼬리말에 코멘트 2005/08/21
holyjoy 의에서 알미니우스를 직접 이단으로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도르트회의 당시에는 알미니우스는 생존인물이 아닙니다. 알미니우스의 가르침을 받았던 사람들의 주장들을 정죄하였습니다. 그 사람들이 알미니우스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했을 지는 역사적 의문들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알미니우스가 비판한 칼빈주의는 칼빈 삭제 꼬리말에 코멘트 2005/08/21
holyjoy 의 칼빈주의라기 보다는, 칼빈의 후예인 베자의 칼빈주의였습니다. 엄밀하게 이야기 하자면, 알미니우스가 비판한 것은 베자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칼빈과 베자가 얼마큰 신학적인 주장에 차이가 있느냐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이것에 대해서 논란이 학계에서 많습니다. 저는 그렇게 큰 차이가 있다고 보지 않는 견해를 삭제 꼬리말에 코멘트 2005/08/21
holyjoy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신학적 주장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주장하는 스타일이나 분위기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고, 그 사람마다 다른 것을 그 주장을 직접 듣는 이나 읽는 이들이 "전적으로 다른 것"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습니다. 제가 이런 설명으로 대답을 회피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들을 " 삭제 꼬리말에 코멘트 2005/08/21
holyjoy "이단"으로 정죄하는 것은 나의 몫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의 "사상"이나 "신학"을 구체적으로 거명하면서 논의한다면, 저의 입장을 더욱 분명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알미니안신학"도 너무나 다양하기만 합니다. "칼빈주의신학"도 그런 것 처럼 말입니다. 이차식목사의 글은 너무 단정적인 부분이 많아서 신중히 취할 삭제 꼬리말에 코멘트 2005/08/21
holyjoy 것이 아니라는 것이 저의 견해입니다. 삭제 꼬리말에 코멘트 2005/08/21
열매 네, 알겠습니다. 사실 홀리죠이님의 답글보다는 이차식 목사의 일관성없음에 반박하려는 것이 저의 의도였습니다. 그 분이 돌트가 알미니안을 이단으로 정죄했다고 하면서 알미니안과 웨슬레를 함께 거론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일관성없는 모습이라 여겨졌던 것입니다. 홀리죠이님,답변 감사합니다. 삭제 꼬리말에 코멘트 2005/08/21
열매 그런데, 칼빈주의 메소디즘이 있고, 웨슬리안 메소디즘이 있다고 하셨는데... "칼빈주의 메소디즘"이 무엇인가요? 간략한 설명 부탁 드려도 될까요? 삭제 꼬리말에 코멘트 2005/08/21
holyjoy "칼빈주의 메소디즘"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신앙하면서도 구체적인 삶의 양상에서 하나님의 대의를 성취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method)의 추구를 장려하는 메소디즘입니다. 일반적인 칼빈주의는 '방법'에 대해서 거부감을 갖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과 구분해서 "칼빈주의 메소디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웨일즈의 칼  삭제 꼬리말에 코멘트 2005/08/22
holyjoy 빈주의, 특별히 조지 휘필드, 다니엘 롤란드, 하웰 해리스 등의 칼빈주의가 이런 칼빈주의 메소디즘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삭제 꼬리말에 코멘트 2005/08/22
열매 그렇다면, 저도 칼빈주의 메소디즘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삭제 꼬리말에 코멘트 2005/08/22
박창진 역시 이러한 부분에서는 조이님, 정말 탁월하시네요. 잘 배웠습니다.  삭제 꼬리말에 코멘트 2005/08/22
holyjoy 님께서 보시기에 "탁월"(!)한 제가 님에게 한 수 훈수를 뚤 때 귀를 열고 경청하십시오. 몰라서 제가 님의 생각에 비판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아시길 바랍니다. 진심입니다.  삭제 꼬리말에 코멘트 2005/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