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물자료

조나단 에드워즈 부인의 공중에 뜨는 현상을 경험한 것에 대해서...

baromi 2018. 10. 24. 07:57



(http://blog.daum.net/londonhorace/15860512). 이 글을 보면, 사라 자신의 체험을 기술하는 중에 levitation(레비테이션: 공중에 뜨는 현상, 곧 공중부양)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와 비슷한 단어인 ‘transport’(트랜스포트)와 부속어들이 여러번 등장합니다. 제 블로그에 붉은 색으로 칠한 다섯군데에서 ‘transport’(트랜스포트) 연관어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transport’(트랜스포트)라는 단어는, 1)운송(수단), 2)황홀경,무아경이라는 두 가지 뜻을 기본적으로 가집니다. 이 두 가지 뜻을 대조해 가면서 사라의 체험을 진술하는 부분들을 해석해 가게 되면, 사라는 1)의 뜻이 아니라, 2)의 뜻을 담아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금방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I could scarely refrain from leaping with transports of joy.” 라는 문장을 해석할 때, “기쁨의 운송수단으로 뛰는 것을 거의 억제할 수 없었다”라는 것보다, “기쁨의 황홀경으로 팔짝 뛰는 것을 거의 억제할 수 없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욱 자연스럽습니다. 다른 문장들도 다 이렇게 대조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사라의 특별한 체험을 진술한 글을 해석할 때, 그중에 나오는 “transport”(트랜스포트)라는 단어를 “황홀경”으로 해석해야지, “운송(수단)”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운송(수단)”의 의미를 갖는 것으로 해석하게 되면, 그것은 “공중에 뜨는 현상”으로 쉽게 연상되어집니다. 윗문장의 leaping(폴짝 뛰어오는 것)이 마치 ‘공중부양’인 것처럼 오독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은사주의와 현상에 대해서 정통개혁주의에서 인정하는 것보다 좀더 많이 열려 있었던 로이드 존스목사가 사라의 체험을 ‘levitation’(레비테이션-공중으로 뜨는 현상)으로 오해하게 된 소이가 여기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아래 손성은 목사의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