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의 구조..
(1) 1-2부 회심을 위한 예비과정
(2) 회심(뼈대)
(3) 3부 감사의 삶(율법과 주기도문)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크게 3가지 파트로 나뉜다.
1부는 11문까지로 우리의 죄와 비참함에 대해서이며..
2부는 85문까지로 우리의 죄와 비참에서의 구속에 관한 것이며..
3부는 129문까지로 이러한 구속에 대한 우리의 감사에 관한 것이다.
이때에 회심이 3부의 첫번째에 자리를 잡은 이유에 대해서 우르시누스의 설명을 보자.
____________ p738 _____________
그러나 참되이 회심하지 않으면,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을 보일 수도 없고 스스로 그것을 인정할 수도 없다. 회심하지 않은 자들이 무슨 일을 하든 그것은 믿음이 없이 하는 것이요. 따라서 하나님 보시기에 죄와 가증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께 회심하는 문제에 관한 내용이 순서 상 맨 먼저 오고, 그 다음에 선행의 주제가 이어진다. 왜냐하면 참된 회심에는 선행이 없을 수가 없으며, 또한 우리는 특히 선행을 통해서 하나님을 향한 감사를 보여드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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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의 3파트는 1-2부와 3부 이렇게 나뉘게 되는데,
회심은 엄밀히 말해서 <감사에 포함 된 것이 아니라> 위의 우르시누스의 설명과 같이, 회심하지 않고는 감사가 나올 수 없기에 순서상 <감사에 대한 교리> 맨 앞부분에 위치를 한 것이다.
그렇다고 회심이 2부 끝에 위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왜냐하면, 1부와 2부의 교리들은 우르시누스 회개의 교리의 설명에서(p746~747)의 말대로 <회심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 1부와 2부는 회심 사건 앞서 일어나는 우르시누스의 표현대로 회심의 예비 단계>라 할 수 있고
* 회심이 일어난 후 그 회심으로 인해 감사에 대해서는 3부에서 가르치고 있다.
그러므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구조는 회심의 교리를 중심으로
회심교리 전에는 1-2부 교리들이..
회심교리 뒤로는 감사의 교리가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이다.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의 이러한 구조에 대해서는 이미 아메스의 예비은총론에서도 언급된 바 있다.
________ 아메스의 예비은총론 _______
[개혁주의예비론의 논증]
논제8. 이 진리의 증거는 너무나도 많아서 이 교리를 발끈한 심정으로 거부하는 사람은, 하이델베르그문답의 첫 번째 대부분과 두 번째의 많은 부분을 삭제해 버리는 사람과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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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가르칠 때에.. 이러한 중요한 분깃점을 먼저 잘 파악한 후에 3부에 들어서기 전.. 1-2부를 간단히 정리 요약한 후, 3부의 감사의 삶이 가능한 것이 바로 <회심>임을 86~90문을 통해 잘 알려준 후에 본격적인 회심을 통한 감사의 교리를 전해야 할 것입니다.
자칫 86-87을 서론으로 하고 88문부터 3부로 넣는 오류를 범할 수 있겠는데요.
우르시누스의 회개교리(88문~90문)의 내용들을 보면.. 1부와 2부를 모두 언급하고 있고 또한 회심이후의 회개의 삶자체까지 언급하기 때문에 90문까지를 3부의 서론으로 위치해야지만 합니다. 그래야지 3부의 서론부분에서 우르시누스가 언급한 감사의 교리의 뿌리가 회심에서 나온다는 설명과 일치하는 구조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86-87문을 준비하면서.. 갑자기 든 생각을 잊기 전에 두서 없이 적어 보았습니다.
참고___________________
우르시누스는 3부 감사의 교리를 <진실>과 <정의> 이렇게 두 부류로 구분을 합니다.
3부 서론에서 이것을 설명하는데(이 3부 서론을 안읽으면.. 회심의 위치를 감사의 뿌리가 아닌, 감사의 열매로 자칫 잘못 자리 잡는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먼저 <참된 그리스도인의 감사>에 대해서 설명한 후에...
이러한 감사가 <진실>과 <정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말합니다.
<진실은> 우리의 값없는 구속의 은덕을 시인하고 고백하며, 그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으로 <기도의 교리-주기도문>를 이에 속한 것으로 설명하고..
<정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을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순종과 선행으로 그를 참되이 예배하는 것이다-되돌려드리는 것이라 하면서 <선행의 교리-십계명>가 정의에 속한 것으로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것들의 뿌리가 바로 <하나님께로의 회심>이라고 설명합니다.
내 말이 의심되면.. 우르시누스의 3부 서론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사랑-> 죄를 미워함 -> 회심 사건... 이 순서가 우르시누스의 설명입니다.
우르시누스의 회심에 대한 해설 부분p748-749 을 읽을 수록 점점 확신이 차는군요..
"회심의 이 두 부분(옛 사람을 죽이는 것과 새 사람을 살리는 것)은 믿음에서 생겨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죄를 미워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회심의 이 두 부분에서 믿음에 대한 분명한 언급은 나타나지 않으나, 그것은 믿음이 회심에서 제외되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결과가 있을 때에는 거기에 반드시 그에 합당한 원인이 전제 되어 있는 것처럼 회심과 감사의 교리 전체가 믿음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재반론: .... 생략.. 믿음에 앞서서 특정한 비애가 있는 법이다.
답변: 믿음 이전에 특정한 비애가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 비애가 회심의 일부인 것은 아니다.
* 불경한 자의 경우 믿음 이전에, 또한 믿음이 없이 비애가 있는데,.. 생략.. 이것은 회심과 전혀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 그러나 택한 자가 경험하는 후회와 비애는 이미 논한 바와 같이 회심의 예비 단계요 회심에로 이어지는 것이다." p748-749
너무 명확하다...
우르시누스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는 죄를 미워하는 것"이 일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난 후 죄를 미워하는 것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는 칼빈이 말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회심사건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회심 사건 전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먼저 생겨난 후 회심 사건을 위한 죄를 미워하는 회심의 예비단계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정리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죄를 미워함 -> 회심사건(돌이킴) -> 회개의 열매의 삶
우르시누스의 위 문장은
회심 전에
죄를 미워하기 전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 생긴다는 것을
너무 자연스럽게 추측하게 한다. 그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는 그 사건은 무엇인가?
p750를
"회심의 또 하나의 수단 원인, 혹 내적인 원인은 믿음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도 없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면,
절대로 회심이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고, 옛 사람을 죽이는 것도, 새 사람을 살리는 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깨끗해지기 때문이다(행15:9).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안에서 누리는 참된 기쁨도 즐거움도 없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믿음에서 나오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 죄다(롬14:25).
모든 선행은 믿음이라는 근원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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