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이 쓰신 글에 대해서
"천지"님께서 연중론에 대해 아래 처럼 설명을 하셨더군요.
중생은 "성령의 공작으로 단독사역"입니다. 즉 성령께서 "말씀의 씨(원)을 통해 순간적으로 중생(거듭나게)케 하는 사역"입니다. 다시 설명을 하면 "중생과 회심(회개와 믿음)과 칭의, 그리고 양자는 동시적인 사건으로서, 논리적으로 말하면 중생, 회심(회개와 믿음), 칭의, 양자의 순서로 설명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연속적 중생론(연중론)은 알미니안주의 사상으로 조심해야 합니다. 이유는 연중론은 "하나님의 단독사역이라고 하나 인간이 협력을 해야 한다"는 사상입니다. 그래서 알미니안주의 사상을 가진 것입니다. 연중론을 처음으로 거론할 때에 성령께서 "말씀의 씨로 중생을 시작하여 회심과 칭의, 그리고 중생의 마침이라고 하여 연속적 중생론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래는 <알미니안주의 중생에 대한 견해>입니다.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알미니안파>는 중생을 하나님의 단독사역이 아닌 인간과 서로 협력해야 중생 한다고 하는 신인협동의 사건으로 본다. 인간이 진리의 방편을 따라 선을 택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질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협력하므로 이루어진다고 하는 중생의 원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인간은 범죄하여 자유의지에 치명적인 손상은 입었으나 완전히 상실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웨슬레파 알미니안주의>는 인간의 의지보다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나 인간은 그 성령의 역사를 거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P.S 피터 마스터스의 "영혼의 의사"(부흥과개혁사)라는 책은 전도설교에 관한 책이라고 하나 개혁주의 사상에는 맞지 않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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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1. 상대 견해의 "포인트"를 이해하지 못함으로 인해 나온 오류
연중론이 말하는 "인간의 협력(회개와 믿음에 대한 애씀)"은 "인간 스스로가 독단적으로 만들어낸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로 인한 인간의 반응으로서의 행위"임을 반복 천명했으나, 천지께서는 연중론이 "인간 스스로가 독단적으로 만들어낸 행위" 라고 해석함.
연중론이 알미니안 사상인 이유가..
이유는 연중론은 "하나님의 단독사역이라고 하나 인간이 협력을 해야 한다"는 사상입니다. 그래서 알미니안주의 사상을 가진 것입니다. 연중론을 처음으로 거론할 때에 성령께서 "말씀의 씨로 중생을 시작하여 회심과 칭의, 그리고 중생의 마침이라고 하여 연속적 중생론이라"고 말했습니다. |
상대의 말의 "포인트"를 이해하지 못하면, 이렇게 상대의 글을 완전히 다른 글로 해석을 하게 되어버리는 경우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겠습니다.
연중론이 "인간이 협력을 한다" 즉 "인간이 믿음과 회개하려고 애쓴다"는 이러한 "인간의 행위"에 대해서 처음 소개할 때마다 이러한 "인간의 행위"의 근원은 절대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인간의 행위"임을 분명히 천명했습니다.
연중론이 만약 "인간의 행위"가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낸 애씀"이라고 했다면 알미니안주의 사상이 맞을 것입니다. 그러나 연중론이 언제 "인간의 행위(혹 애씀)"가 "사람이 스스로만들어낸 행위"라고 했습니까? 단 한 번이라도 그런 소리를 한 역사가 없습니다.
회개와 믿음은 사람의 행위임을 개혁주의신학에서는 전통적으로 늘 천명해 올때, 이러한 사람의 행위인 "회개와 믿음"의 "원인"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알미니안주의"가 되고, "개혁주의"가 되기도 한다는 것에 대해서 분명히 언급을 했었습니다. 즉
회개와 믿음이라는 인간의 애씀(혹 행위)가 나타나는 원인이
(1) 인간 스스로(혹 일부 공헌해서)에게서 나온 것이다: 펠라기우스와 알미니안 주의
(2)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로 인한 인간의 반응으로서만 나온 애씀 혹 행위다: 개혁주의
어떤 사람들 즉, 초기와 후기의 펠라기우스의 모든 추종자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은 후 인간에게 있어서 구원의 길은 그의 믿음과 회개의 행위로 시작되고, 따라서 이러한 믿음과 회개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최종적이고 가장 깊은 원인을 두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성경의 증거를 통해 그리고 자기 자신들의 경험을 통해 믿음과 회개의 행위를 선행하는 내적인, 강력한 하나님의 은혜, 달리 표현하자면 중생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중생은 단지 유아들만이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순서상 믿음과 회개보다 앞서게 되었다. …. 만일 중생이 전적으로 믿음과 회개로부터 분리된다면, 중생은 인간의 의식과 의지와는 전적으로 독립된 단지 영적 능력의 주술적 주입으로만 드러날 것이다. -바빙크 개혁교의학 4권 p66- |
이에 대해 그 누구도 반대의 여지가 없습니다. 만약 이러한 사실을 모른다면 과연 그가 "개혁주의 구원론"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연중론은 초기부터 믿음과 회개의 행위가 "사람에게서 나온 행위"가 아님을 늘 천명해왔으며, 되려 "하나님의 은혜"에서 "중생이 그 원인이 되어서 나오는" 인간의 반응이란 개념의 "애씀, 행위, 협력"이라고 분명히 포인트를 강조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포인트를 이해하지 못하고 천지님과 같이 설명하는 것은 오해라기 보다는 "전통적인 개혁주의에서 말하는 회개와 믿음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잘 연구하지 못해서 나온 오류라 봅니다.
오류2. 천지 본인은 상대의 견해의 문제성을 똑같이 자신도 언급하면서 상대만 알미니안주의사상이라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천지님께서 연중론이 알미니안사상이라고 말한 원인에 대해서 아래처럼 말합니다.
연중론을 처음으로 거론할 때에 성령께서 "말씀의 씨로 중생을 시작하여 회심과 칭의, 그리고 중생의 마침이라고 하여 연속적 중생론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천지님의 견해를 보자: "중생과 회심(회개와 믿음)과 칭의, 그리고 양자는 동시적인 사건
천지님이 연중론을 알미니안사상이라고 말한 원인이 위의 견해를 비교할 때에
중생의 시작과 마침이란 <과정> 속에 사람의 행위인 믿음과 회개의 과정이 있기 때문. 이러한과정이 없이 "오직 순간적"이라면 그것은 알미니안이 아니란 소리로 자연스럽게 이해가 됩니다.
위의 천지님의 중생에 대한 이론(즉 중생사건이 아닌, 중생론) "중생과 회심(회개와 믿음)과 칭의, 그리고 양자는 동시적인 사건 에 대해서는 굳이 제가 설명하지 않아도 천지님의 이러한 견해가 "순간적 중생론"의 대표적인 견해임을 말씀드립니다.(참고. 중생사건은 중생한 사건, 중생론은 중생한 사건을 해석하는 이론)
이에 대해서 전통적인 개혁주의의 중생론과 순간적 중생론의 차이점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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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개혁주의 대표적인 신학자들의 중생론에 대한 그분들의 글을 그대로 사용하여 마인드 맵으로 그린 것입니다.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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