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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찬에 관한 칼빈의 견해 -대구 개혁교회에서 퍼온 글

baromi 2009. 5. 18. 11:23

주의 만찬(성찬) 입회에 관한 칼빈의 견해

by  리머 파버(Riemer Faber)

김범현 목사(부산어언교회)


* Riemer Faber, “John Calvin on Admission to the Lord’s Supper,” in Clarion, Vol. 48, No. 21 (1999).

** 이 글은 http://spindleworks.com/library/rfaber/calvin_supper.htm에서 찾아 보실 수 있습니다.

*** 리머 파버 박사는 캐나다 온타리오 주 워터루 대학교의 고전학 교수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신앙문답Heidelberg Catechism」에 따르면 주의 만찬에 대한 정당한 참석은 두 당사자의 책임이다:

개별 신자와 제정된 교회(‘제정된 교회the instituted church’란 그냥 세워진 교회가 아니라 직분을 가진 교회를 의미한다, 역자).

개인에게서 시작되는 질문은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진다: “누가 주의 만찬상에 나아오는 것입니까?”

교회에서 시작되는 질문은 다음의 말들로 표시되어 있다: 누가 “허락되어지는 것입니까?”

첫 번째 질문은 바른 자기살피기에 관한 것인 반면, 두 번째는 성례의 순결성을 보존하기 위하여

임직된 직분자들의 의무에 관한 것이다.

「신앙문답」에 나오는 개인적인 성찰과 교회의 훈육(discipline 치리)이라는 이러한 결합은

장 깔뱅과 그의 동료 목사들에 의해 1537년에 작성된 제네바 교회 질서에서 예견되었던 것이다.

거기서 우리는 성만찬의 떡과 잔이 “감히 아무도 자신을 헌신함(devoutly 하나님께 드림) 없이,

또 그(it 떡이나 잔)에 대한 참된 경외함 없이, 대담하게도 자신을 [성만찬 석상에] 제출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그러한 선한 감독 하에서” 받아져야 한다는 말을 읽는다,

“이런 까닭이다, 곧 교회를 그 원상태대로 보전하기 위해서는 훈육…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성만찬에의 바른 참여는 개인적 책임과 공동적 책임의 실행에서 나온다.

  성만찬 기념을 준비함에 있어서 개인은 자신을 살필 것이 요구되어진다.

고전 11.28-29는 이 중요한 자기살피기를 명령하며,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judgment 심판)를 먹고 마시는 것”이라는 경고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을 판별하는 것은 개인의 의무가 아니다.

깔뱅은 성경이 “우리로 하여금 무리 중에서 그의 더러움이 우리를 오염시키는 어떤 이가 있는지 어떤지

조사하라고 명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강요, 4.1.15).

주의 식탁에의 입회 허락에 관하여 그는 이렇게 쓴다: “개인들은 누가 받아들여지고

누가 거절되어야 하는가를 결정할 권위를 가져서는 안된다.

이와 같은 승인의 권리는 전체로서의 교회에 속한 것이며,

합법적인 질서 없이 시행되어질 수 없다”(4.1.15).

다른 말로, 모든 신자 하나하나는 자신이 고귀한 방식으로 떡과 잔에 참여한다는 것을

확신해야만 하는 반면, 주님의 살과 피가 더럽혀지지 않도록 지키는 것 또한 감독자들의 임무이다.

이 구별은 기독교 훈육이 개인에게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훈육의 책임이 개인적인 반면, 그것의 성만찬 석상에서의 실행은 공동적이라는 것이다.

성례의 순수성을 유지하는 것은 개인과 교회가 각각의 의무를 가지는 것이다.


“각 개인은 성례가 회중 속에서 시행되어질 때면 언제나 [성례를] 받을 수 있도록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자기 자신을 준비해야 한다.”

──깔뱅의 Short Treatise on the Holy Supper에서.


  골 1.24는 교회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실을 가르친다. 교회와 그리스도는 하나이다.

그것은, 깔뱅이 말하는 바, “그리스도께서 몸의 머리로서, 파괴할 수 없는 마디(knot 매듭)로

그의 교회와 결합하시는 바, 그분은 그의 교회로부터 떼내어지지 아니하려 하시며,

또 떼내어지실 수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무도, 동시에 교회에 복종하는 일 없이, 그리스도 앞에 복종적으로 엎드릴 수 없다.”

물론 홀로 자신의 교회를 모으시며 보호하시는 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하지만 머리이신 그는 몸인 그의 교회를 통하여 자신의 권세를 행사하시는 바,

그분은 교회에게 하늘 나라로 들어가는 열쇠(keys)를 수여하시었던 것이다(마16.19, 18.17-18, 요20.22-23).

  깔뱅에 따르면 교회적 권세의 첫 번째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과 영예를 증진시키는 것인데,

이것은 성례의 기념에서 예시되어진다(강요, 4.12.5).

교회는 이 성례가 시행되어질 때에 특별히 감독(監督 oversight)을 실천해야 하는 바,

깔뱅이 쓰기를,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몸이 “그와 같은 추잡하고 부패한 지체들에 의해 더럽혀지면

반드시 어떤 불명예가 그 몸의 머리에 떨어지게 되기” 때문이다(4.12.5).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그분이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하라고 명한다.

고전 5.7-8은 회중에게 괴악하고 악독한 묵은(old) 누룩을 제거할 것과 “명절을 지키되…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할 것”을 명한다. 그러므로 1537년 교회 질서는

성만찬 식탁에의 부끄러운(unworthy) 참여로 인한 “이 불결은 이렇게 하나님에 대한 불명예로 가득찬 바,

이러한 불결이 우리의 태만으로 인해 우리 사이에 들어오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은

우리에게 당연한 의무”(50)라고 한다. 이것은 성만찬 식탁이 유다와 같은

위선자들에 의해 더럽혀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이것은 자기 살피기에 대한

엄중한 경고로서 그런 사람들에게 그들의 거짓된 말과 행동이 그들의 전지하신 창조주와

또 그들 자신의 마음에는 알려져 있다는 사실을 회상시키는 것이다.

공동적 훈육의 범위는 공적인 고백과 행동을 넘어서까지 닿지는 못한다.


“만약 하늘이나 땅에 우리 주님의 살과 피보다 더 가치롭고 존엄한 것이 없다면,

그것을 경솔하게 또 잘 준비됨 없이 받는 것은 결코 작은 잘못이 아니다.”

──깔뱅의 Short Treatise on the Holy Supper에서.


 깔뱅은 성만찬 식탁의 입회 판별은 “교회의 관할을 통하여” 시행되어야 한다고 한다.

성례는 “가리지 않고 무분별하게 시행되어짐으로 더럽혀져서는 안된다”(강요, 4.12.5).

따라서 큰 책임이 임직된 직분자들에게 놓여지는 바, 그들은 “건전한 교리와 거룩한 삶이 있어야 하고,” 또 “그들로부터 권위를 박탈하며” 말씀과 성례의 “사역을 수치스럽게 할 어떤 과오로도 알려진 사람이어서는 안된다(딤전3.2-3, 딛1.7-8)”(4.3.12). 「하이델베르크 신앙문답」은 만약 어떤 이들의 고백과 삶이 불경건한 것으로 드러난 사람들이 성만찬 식탁에 허용되어진다면, 그때 “하나님의 언약은 더럽혀질 것이고 그의 진노는 전 회중을 향하여 불타오르게 될 것이다”(82문답)라고 말한다. 성례에의 불법적 참여의 결과가 그렇게나 무섭기 때문에, 제네바 교회 질서는 “규정들을 만드는 권한을 가진 자들은 이 성만찬 교제에 나아오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인정된 지체들이어야만 한다는 것을 규칙으로 삼는 것이 필수적이다”라고 결론짓는다.

  그리스도의 승인된 지체들은 그들의 고백과 삶이 그들이 그분에게 속함을 보여주고,

그들이 믿음으로 “그의 살과 피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들이다.

그리스도는 오직 그의 신자들만을 위하여, 그의 말씀을 들음으로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의 신앙을 확고히 하시기 위하여 성만찬을 제정하시었다. 성례가 “보이게 되어진 말씀”인 한, 그것은 복음을 강화한다. 따라서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시행되는 것이 허용되는 세례의 성례와는 달리, 하나님은 “성만찬을 이런 식으로 모두가 참여하는 것으로 주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주님의 살과 피를 분별할 수 있는 자들, 그들 자신의 양심을 살필 수 있는 자들, 주님의 죽으심을 전파할 수 있는 자들, 그 능력을 생각할 수 있는 자들만을 위해서 내어놓으신다”(강요, 4.16.30). 신앙이 성만찬 식탁에의 입회 선결요건인 한, 그의 고백과 행동 그가 믿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자는 “그가 그의 회개의 증거를 보이기까지는 한동안 성만찬 교제에 허용되어서는 안된다”(4.12.6).

마르틴 부처(Martin Bucer)는 콜로뉴(Cologne 독일 쾰른) 교회 질서의 주요 저자인데, 주 예수께서 “성만찬을 단지 열두 제자와만 기념하셨고 그것도 그가 그렇게나 많이 설교하신 이후에였다, 그는 그것을 단 한 번만 거행하셨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주의 만찬이 오직 그리스도에게 완전히 복종하고 복음적 교리에 관한 철저한 지식을 확실히 가지며 이것을 온전히 믿으며 공개적으로 그 반대의 것을 입증하지 않는 자들에 의해서만 기념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직 그리스도의 인정된 지체들만이 주님의 식탁에 다가서도록 허용되기 때문에, 제네바 규정(1541년)은 일요일에 기념에 앞서서 외부인이나 새로 도착한 사람들은 “먼저 와서 자신을 교회 앞에 세우도록 권면을 받아, 그들이 가르침을 받고 그리하여 아무도 자기 자신의 저주에로 다가가지 않게 해야 한다”는 선언이 주어져야 한다고 한다. 간단히 말해 “아무도 그가 먼저 자신의 신앙고백을 하지 않았다면 성만찬에 받아들여져서는 안된다.”


“자신에게 좋아 보이는 대로 [누군가를 성만찬에, 역자] 입회 허락하거나 거절하기 위하여 판단하고 분간해내는 것은 각 개인의 직무가 아니다, 이 특권은 일반적으로 교회에, 또는 더 낫게는, 목사에게, 즉 목사가 교회의 다스림에 있어서 도움을 받기 위하여 있어야만 하는 장로와 함께 목사에게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깔뱅의 Short Treatise on the Holy Supper에서.


  성만찬의 올바른 기념은 하나님의 영광 그의 교회의 순결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만이 누리는 일치도 증진시킨다. 이 일치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와 신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의 띠(bond 결속, 연대)에 근거해 있다. 「하이델베르크 신앙문답」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달리셨던 몸을 먹고 그 흘리신 바 피를 마시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우리 양자 안에 사시는 성령님을 통하여 그의 거룩한 몸에 더더욱 연합하는” 것을 의미한다(76문답).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그의 몸인 교회 간의 사랑의 띠는 지체들 자신 간에 ‘수평적’ 결속을 산출한다. 고전 10.17은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고 한다. 따라서 깔뱅은 쓰기를, “하나의 거울”에서처럼, 성만찬에서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단지 우리 속에 거하신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가 또한 우리 중의 모든 사람 하나하나 안에도 거하신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성만찬의 기념은 그리스도의 한 몸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성만찬 기념에서 전시되어지는 그리스도의 몸의 일치는 감독자들뿐만 아니라 개개 신자들의 의무에도 영향을 끼친다. 자기살피기의 과정에서 신자는 “자신이 그리스도에 의해 한 지체로 세어지는 것처럼, 이번에는 그가 그렇게 그의 모든 형제들을 그의 몸의 지체들로 생각하고 있는지, 자신이 그들을 그 자신의 지체들로서 보살피고 보호하고 간절히 도우려 하고 있는지”를 반드시 물어보아야만 한다(강요, 4.17.40). 주의 만찬은 참 신자들로 하여금 한 몸의 지체들을 이롭게 하는 자비와 협조를 계발하도록 격려하는 교제의 축제이다. 깔뱅에 의해 1537년에 작성되어진 제네바 신앙문답은 성만찬 식탁에서 표출되어진 일치가 어째서 개개의 신자들과도 관련되는가를 설명한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면서 그분의 모범으로 우리를 초청하시어 우리 자신을 서로를 향한 서약으로 묶으시고 서로에게 주게 하실 뿐만 아니라, 마치 그가 자신을 모두에게 공통되게 하신 것처럼, 그렇게 모두를 그분 자신 안에서 하나가 되게도 하신다는 것보다 더 통렬하게 우리 사이에서 상호간의 사랑을 일깨우는 자극제는 있을 수 없다.”

출처 : 광주개혁교회(Gwangju Reformed Church)
글쓴이 : 주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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