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드 존스의 성령론에 대한 논쟁(8) | | | 성령 하나님 |
2007.02.19 00:08 |
아래는 로이드 존스의 <성령세례>와
존 스토트의 <성령세례와 충만>에 대한 서평들입니다.
<성령세례>
D.M.로이드존스
*성령세례는 중생과 분리된 제2의 체험이 아니다
로이드 존스는 웨일즈에서 개혁주의적인 가르침과 설교를 했던 인물로 정평이 나 있는 사람
이다. 그분의 설교는 영감있고 논리적이면서도 성경의 본문을 충실하게 강해하고 설교했던
분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분은 성령론에 있어서 말년에 자신의 입장 변화를 일으켰다.
그의 성령론에 대한 입장 가운데 핵심적인 주장이 바로 이 책 {성령세례}에 나타나 있는 내
용이다. 그의 주장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성령세례란 중생 이후에 나타나는 것으로서, 복
음 전도와 사역의 능력을 위해서 주어지는 놀라운 체험이다"로 정리할 수 있다.
특별히 사도행전의 여러 기사들을 근거로 그는 성령세례라는 것
- 중생의 세례를 성령의 '기본세례'라 한다면
그가 이 책에서 말하는 성령세례는 성령의 '능력세례'라고 할 수 있는데 -
이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자가 된 사람에게 2차적으로 주어졌으며, 그 능력을 받을
때에 부흥을 경험할 수 있고 하나님의 복음을 능력있게 전할 수 있다 라고 주장한다. 하지
만 그의 주장은 이 시대에 매우 필요한 주장이고, 시의적절한 주장일 수 있고, 처방적인 주
장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성경적인 주장이 아니다. 우선 그의 주장 가운데서 오류를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로 로이드 존스는 사도행전의 케이스를 성급히 일반화하고 있다. 그가 중생 후에 성령
세례가 주어진 경우라고 주장하는 사마리아 신자들의 경우(행8:5-17), 그들은 중생한 이후
에 즉각적으로 성령세례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의 케이스는 역사적으
로 특수한 상황이었다. 사마리아 교회 성도들이 유대인 교회의 대표, 즉 사도들의 검토 없
이 성령세례가 주어지는 일로 인해서 유대 기독교인들과 사마리아 기독교인들의 위험스런
분열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인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주장
은 잘못된 헬라어 지식과 잘못된 번역에 의존하고 있다. KJV 번역성경은 사도행전 19:2와
에베소서 1:13 등에서 '아오리스트 분사'(aorist participle)를 한 시제 앞선 것으로 잘못 번
역하고 있는데, 불행하게도 오순절주의자들 뿐만 아니라 로이드 존스 목사 조차도 이 오역
을 토대로 '믿음 후에 성령을 받음'을 주장하고 있다.
둘째로 로이드 존스는 오순절 성령세례의 단회성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비하하고 있다. 오순
절 성령이 사도들에게 임하셔서 신약 교회를 굳게 하시고 신약 성경을 기록하도록 하셨다.
오순절 사건을 지금의 성령님의 사역과 아무런 차등없이 동일하게 생각해야 한다면, 지금도
성경에 버금가는 혹은 그 이상 가는 권위의 계시를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이는 성경의 진리에 어긋나는 주장이다. 로이드 존스의 성령세례론은 성경의 권위에 심각한
도전을 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셋째로 성령세례와 성화와의 관계의 모호성이다. 성령세례와 성화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고 하면서도, "간접적 관계"라는 말로 자신의 주장을 흐리고 있다.
넷째로 로이드 존스는 성령세례의 체험이 성경을 넘어설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것
은 위험하다. 수세기에 걸친 성인들의 경험이 이를 증명한다고 하지만, 결코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말씀과는 별도로 신자에게 직접적이며 즉각적으로 임할 수 있다"는 주장
은 성경의 권위에 심각한 훼손을 가져다 주는 주장이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라는
종교개혁의 표어에서 이탈한 이 주장은 경험을 통한 교리가 성경의 교리보다 우선될 수 있
다는 것을 사실상 인정한 셈이며, 과연 개혁주의 교회 목사가 할 수 있는 주장인가 하는 의
구심까지 낳는다.
하지만 로이드 존스의 주장 가운데 긍정적인 면도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선 그는 성령을
주시는 주체가 '그리스도'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성령론이 강세를 띄면서 "성령의
기름부으심", "성령의 충만" 등의 표현이 복음성가 등을 통해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그 표현은 "기름을 부어주시"고, "충만케 하시"는 주체가 성령인 것처럼 생각하기 쉽게 만들
고 있다. 그러나 사실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시고, 충만케 하시는 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혹 성부 하나님이 주어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점을 로이드 존스가 강조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성령은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 받는 것이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로이드 존스는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성령을 받는다는 것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필자가 이해하는) 성령의 세례와 성령의 충만
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삼위 하나님의 사역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개혁주의 신학에서 이 점은 반드시 강조되어야 하며, 또한 명백한 성경의 진리이
다. 또한, '부흥'을 성령세례를 받아야 할 목 눈에 띈다.
흔히 개혁교회/장로교회는 차가운 교리에 경도되어 열정이 없고 냉랭한 지성적 교파로 알려
져 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그도 인식하고 있는 듯, 그는 이 책의 마지막에 이르러서 '부흥'
이라는 시대적 비전을 제시하면서 이 비전에 참여하기 위해서 성령세례가 반드시 필요하다
고 이야기하고 있다. 부흥을 위해서 성령세례가 필요한 것인지, 성령충만이 필요한 것인지
에 대해서 로이드 존스와 필자의 견해는 일치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부흥이 지금 이 땅에
필요하다는 점에 있어서는 로이드 존스와 필자는 의견을 달리할 수가 없다. 비록 로이드 존
스가 성령세례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는 성경이 말씀하는 바를 정확히 짚어내지 못하고 오해
하였지만, 그의 부흥에 대한 열정과 능력과 은사에 대한 사모함은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점이라 생각한다.
Christian Revie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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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세례와 충만>
존 스토트
IVP(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성령세례는 제2의 능력 세례가 아니다.
존 스토트와 마틴 로이드 존스의 성령론의 차이에 대해서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 두 위대한 영국의 복음주의자의 저서를 직접 읽은 사람은 많지 않다. 주위
사람들의 야이기를 주워 들은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이야기이다. 로이드 존스
의 <성령세례>와 함께 이 책을 읽어 보기를 권한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존 스토트의 성령론
을 지지하지만, 두 권의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어느 성령론이 더 성경적인지는 자신이 판
단해야 할 것이다.
존 스토트의 주장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성령세례는 중생과 분리된 체험이 아니다.
(오순절파는 중생과 성령세례를 분리함)
2. 성경에서 말하는 성령세례는 회심하여 중생할 때 성령이 주어지는 것을 말한다.
3. 중생한 자는 성령세례를 받은 자이다. 그러므로 다시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오류이다.
4. 오히려 이미 우리가 받은 성령께서 더욱 충만히 역사하시도록 간구해야 한다.
5. 성령충만은 성령의 열매를 통해서 검증될 수 있다.
6. 성령충만은 성령의 은사를 통해서 발휘되어야 한다.
마틴 로이드 존스의 성령론은 성령의 역사가 약화된 오늘날과 같은 긴급한 상황에 있어서
적절한 처방처럼 보인다. 차가운 이 땅의 교회와 성도들의 심령에 로이드 존스의 성령세례
는 만병통치약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아 보인다. 하지만 그의 성령세례관은 철저한 성경의
주해에 기반하지 못하고 있다. 오역된 KJV번역과 잘못된 성경주해에 그의 주장이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의 성령세례관의 약점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바를 주장해야
하는 것이지, 우리에게 필요한 방향으로 성경을 끼어 맞출 수는 없다. 그러므로 나는 로이
드 존스보다는 존 스토트의 성령론, 성령세례관이 더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성령론
논쟁은 우리가 얼마나 더 성령충만할 수 있는가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가 되어야 하며, 교회
의 유익과 관계없는 지적인 논쟁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Christian Revie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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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세례와 충만>
존 스토트
IVP(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다.
사도행전의 오순절 성령세례가 이 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질 수 있는지 아니면 그것은 당시의
구속사적 맥락에서 이해해야하며 이 시대와는 관련이 없는지 이 두가지는 성령세례의 연속
성과 단절성을 나타내는 견해이다. 이 두 견해는 첨예한 대립을 하고 있는 견해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책을 읽을 때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성령세례'도 함께 읽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존
스토트 목사님의 견해는 단절성이고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견해는 연속성이다. 이 두가지
대립되는 견해를 함께 비교해가며 읽어본다면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책을 읽는 독자의 생각에 따라서 존 스토트 목사님을 옳게 생각할 수도 있고, 로이드존스
목사님의 견해를 옳고 여길 수도 있다. 사실, 본인은 존 스토트 목사님의 견해에 더 가까운
편이다.
두 권의 책을 읽으며 느낀점은 정반대의 견해를 가지고 있는 영국의 훌륭한 두 목사님이지
만 그 두 목사님이 서로에 대해 적대관계로 여기지는 않는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이런 두
견해가 대립되었으면 어땠을까? 치열한 대결구도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국의 교회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 한편으로 이점이 부럽기도 하다.
두 권의 책을 함께 읽어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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