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신학자료

[스크랩] 로마서7:1-3절의 의미

baromi 2009. 2. 13. 08:01

율법과 그리스도라는 주제로

롬7장과 갈3:25의 본문으로 앞서 이루어진 대화를 읽고난 후,,

참고로, 나름대로 정리해 본 것입니다. 표현이 부족한 점 양해바랍니다.^^

 

롬7:1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 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법의 지배 내지는 권위,  효력이나 용도에 있어서

법이란, 혹 율법이란, 살아있는 사람에게 해당될 뿐이라는 말씀이다.

다시  말해서, 죽은 자를 법이 "주관" (dominion:지배, 통치)하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더 쉽게 말하면, 죽은 자를 무슨 법이 이래라 저래라 하겠는가? 세상 법도 산자에게만 적용될 뿐이다.

 

1절에서, 사도바울이 의미하는 바는 이 논리대로,

율법에 관해서 죽은 자를 통치할 법은 율법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율법에 관해서 죽은 자는 예수를 믿는 자인데, 그들을 율법이 이래라 저래라 할 권리가 없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신자는 구원을 위하여 율법의 의무를 지고 살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제, 다음 절로 가보자.

 

롬7:2-3은 결혼한 부부관계를 통해서

율법, 예수 그리스도와 신자 와의 상관관계를 설명함이 분명하다.

 

이 대목은 앞선 절과는 달리 독자로 하여금 읽기에 다소 어려움을 준다. 까닭은,

1절은 법을 지키는 사람이 살고 죽는 내용이다.

 법은 죽지 않고 그대로 법이다. 그런데, 그 법을 지킬 사람은 살다가 죽는다.

 

 

 그런데, 2-3절은 법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법 내지는 율법, 그 지배가 죽게된다.

"남편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이르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부가 되지 아니하느리라."

 

칼빈은 "남편의 법"에서 "법"을 권위로 해석하는 것 같다. 참고로,

But further, the word law is not mentioned here in every part in the same sense: for in one place it means the bond of marriage; in another, the authority of a husband over his wife;

 

남편이 죽었는데 죽은 남편의 지배를 받는 여자가 없다. 반면에,

남편이 생생하게 살았는데 그 권위나 지배를 벗어나 다른 남자에게 가면 간음함이 된다.

그러나, 남편이 죽은 후에는 재혼할 수 있다는 말이니 이해하기에 어렵지 않다.

지극히 당연한 논리를 1-3절 까지 사도는 하고있다.

 

주목할 것은,

여기서 남편을 악하다거나 나쁘게 평하고 있지 않다.

합법적인 남편이라는 점 이외는 다른 의미가 없다.

우리가 옛 남편을 굳히 사단으로 적용,이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그렇게 해석할 경우,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는 말씀에 부닥치게 된다.

 

사도는 지금 율법과 신자의 관계를 먼저 말하고 있다.

이 관계는 남편 생전에는 매였으나 그 남편이 죽어 그에게서 자유케 된 상태라는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남편이 죽는 경우를 율법에 대비하여 율법이 죽는 식으로 이해하면 안된다.

 

그것은 1절에서, 이미 이는 확인한 바다.

율법은 죽지도 살지도 않는 율법일 뿐이다.

율법은 악하지도 않다.  내가 살고 죽고 내가 악할 뿐, 율법에게 무슨 책임이 있겠는가?

율법을 주신 하나님이 선하시듯 율법도 선한 것이다.

 

그럼에도, 2절에서 남편을 율법으로, 남편을 죽는 경우를 율법의 폐지로 이해한다면,

본문을 오해한 것이다. 본문은 율법이 죽지 않고 그대로 있다.

남편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여자의 경우처럼

신자는 율법의 요구, 지배에서 구원론적으로 벗어나 자유롭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실제, 신자는 율법에서 자유로운 구원을 누린다.

우리는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주 예수를 믿음으로 받았으니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해도 율법이 우리를 더 이상 정죄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나아가, 더 이상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니며,

이는 결코 신자에게 죄를 더 짓도록 장려하는 의미는 더더욱 아니다.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롬6:1)

 

덧붙여, 갈3:24-25에서는,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본문은 몽학선생의 의미를 분명히 하면 그 뜻이 명확해진다.

몽학선생 아래, 율법 아래는 본문의 문맥에 따라서 의미가 변하는 것을 보게된다.

이를테면, 갈3:23에서는 "율법아래 매인"이라고 했다. 이는 그 다음 "갇혔느니라" 말에서

보듯이 죄수가 감금된 상태로서 율법 아래다. 여기서 율법아래는 율법의 지배다. 부정적 의미다.

 

반면에, 본문의 비유는 그렇지 않다.

몽학선생(schoolmaster, leader of a child, instructor)은 감옥도 간수장도 아니다.

그는 한 가족의 아이들이 성장하기 전 까지,

일시적으로 아이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통학하는 길을 보살펴 준다.

이를테면, 미국에는 부모가 멀리 타국이나 다 지방에 있는 경우의 아동들이 학교를 다니고 싶으면 

후견인(guardian)을 받드시 필요로 한다. 몽학선생은 후견인 정도다.

그래서, 몽학선생 아래 있다는 것은 보호를 받는 상태라는 의미가 된다. 

이는 율법이 지배가 아니라 인도하는 역할로서 긍정적 의미다.

 

그래서, 몽학선생으로서 율법의 역할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것이다.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Pablo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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