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의심자료

[스크랩] 변승우 목사님의 저서에서 살펴보는 구원론은 행위구원이 됩니다.

baromi 2009. 1. 30. 17:07

1.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 설교에 나오는 글입니다.



1]우리는 이 말씀들에서 그것은 바리새인들의 율법 이해는 행위의 순종에서 멈췄으나,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의 순종을 요구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은 미움, 음란, 거짓 등으로부터 마음의 정결을 요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2]그렇다면 율법은 어떻게 지켜야 합니까? 우리는 그것을 21~48절 말씀에 나오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율법 해석과 예수님의 재해석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율법을 몸으로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는 십자가 공로가 주는 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실생활에서 몸과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의가 없는 자는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3]고린도전서 6장 9~10절에 의하면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받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즉 의가 없는 자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뒤에 나오는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라는 말씀을 볼 때, 그 의는 실생활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의를 가리킵니다. 그렇다고 제가 지금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1] '한 마디로 예수님은 미움, 음란, 거짓 등으로부터 마음의 정결을 요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 하나님은 자발적인 순종을 원하십니다. 그러나 B목사님이 말씀하시는 이 기준은 천국가는 기준입니다.



2] '율법을 몸으로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 예수님 믿는것이 물론 율법을 폐하는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안에서 율법을 지키는것은 아무것도 문제될것이 없습니다. 여기에는 양자됨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생활에서 몸과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것'을 '의'라고 한 B목사님의 기준에서 보면,

이것은 신자가 마땅히 사는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천국가는 기준"이 됨을 알수 있습니다.

왜냐면 '이런 의가 없는 자는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여기 부분에서는 중생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는 십자가 공로가 주는 의가 아닙니다.'

->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는 인간의 의가 아닙니다.

중생의 은혜를 주십니다. 중생한자가 갖게 되는 의는 인간의 의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의롭다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자에게는 예수님 자체가 의와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시는 겁니다.

인간은 부패했고 타락했기 때문에 주님께서 십자가 지신겁니다.

십자가 공로가 주는 의는 신자에게 중요한 것입니다. 삶과 죽음을 나누는 것입니다.

내 의로 구원받는게 아닙니다.



3] 의가 없는 자는 천국에 갈수 없다고 하면서 이 말씀을 인용하시네요.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그러시면서 '그 의는 실생활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의를 가리킵니다.' 라고 하십니다.

-> B목사님이 말씀하시는 의는 전적으로 인간의 의입니다. 인간이 의가 없으면 천국에 가지 못한다고

하시는 겁니다. 인용하신 말씀으로 말씀하고자 하는 의미는 '음란', '우상숭배', '간음', '탐색,' 남색',

'도적', '탐람', 술취함', '후욕', '토색' 이 열거된 죄를 하나라도 완전히 끊지 않으면 천국가지 못한다고

하시는 겁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게 죄를 지어야만 죄입니까? 마음으로 짓는죄는 죄 아닙니까?




인간은 죄인이에요!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주님의 거룩함을 사모하고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천국가기 위해서 하는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그 은혜안에서 사는 삶입니다. 거기에는 정죄가 없어요! 기쁨이 있는겁니다! 넘어지기도 하고 실족하기도 합니다. 때론 잘못가서 징계도 받아요! 그러나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되시고 나를 인도하신다는 말입니다! 주님이 나의 선한목자이고,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찌라도 해를 받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내가 나중에 주님앞에 설때도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어요! 다 주님의 은혜인 겁니다!





2. '진짜 구원받은 사람도 진짜 버림받을 수 있다' 책에 나오는 부분입니다.



'바울도 버림이 될까 두려워했습니다'라는 챕터 부분이구요.



P. 39 끝에서 부터 참고하시면 됩니다.

보니까 캐더린 쿨만 책을 인용하셨네요! 아래는 캐더린쿨만이 쓴 글을 퍼오신 겁니다.



갈 5:17~18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여러분과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직면하게 될 끊임없는 싸움이 있다는 사실을 바울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는 믿지 않는 자들이나, 거듭나지 아니한 사람들에게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형제들(갈 5:13)에게 이 글을 보내는 것입니다.


솔직히, 그리고 단도직입적으로 여러분께 말씀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만일 당신이 육의 어떤 어려움도 느끼고 있지 않다면 그리고, 만일 당신이 육과의 싸움을 전혀 경험하고 있지 않다면, 어딘가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처음부터 거듭나있지 않거나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죽어있으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있던가 둘 중의 하나입니다!"



--> 여기까지 인용문입니다.

그 아래 바로 변목사의 설명입니다.




: 이와 같이 복종은 절대로 예수를 믿었다고 혹은 거듭났다고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자기의 몸을 칠 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의 몸을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 여기까지인데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다시 인용문을 적어보지요.


'솔직히, 그리고 단도직입적으로 여러분께 말씀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만일 당신이 육의 어떤 어려움도 느끼고 있지 않다면 그리고, 만일 당신이 육과의 싸움을 전혀 경험하고 있지 않다면, 어딘가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처음부터 거듭나있지 않거나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죽어있으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있던가 둘 중의 하나입니다!"'


-> 인용한 여기 내용은 거듭난자라면 육의 어려움을 느끼며, 육과 싸우게 된다라고 말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변목사의 주장대로, 거듭난자가 육과 싸우지 않는자라는 말이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왜 변목사는 복종에 대해 말하면서 저절로 되지 않는다고 자기 몸을 쳐서 복종시켜야 한다고 하며 안그러면 버림받는다고 합니까?




이어서 P. 41에 있는 내용입니다.


리처드 백스터의 '회심'이라는 책에서 인용했다고 하시는데요.

인용문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육신을 다스리지 않으신다면, 그것을 구원하지도 않으실 것입니다."



변목사는 이것을 인용하면서 좋아하고 있습니다.

: 이것은 진리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성경을 통해서 거듭 확인할 수 있습니다.



-> 그러나 여기서 잘 좀 보십시오!

리처드 백스터는 거듭난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자가 거듭난 자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내 자신 스스로가 내 몸을 치고 애써야 천국간다는 의미는 아니잖아요! 이것은 리처드 백스터가 말한것과 정 반대입니다. 행위구원입니다.




그 증거가 있습니다.

그 책 P.47에 나오는데,

'복종은 자신의 궁극적인 구원을 위한 일입니다' 하시고

끝에는 마 23: 15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인용하면서,

(마 23: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P. 48에 이렇게 넘어갑니다.



'그런데 자기 몸을 쳐서 복종시키지 않는 사람이 전도하면 전도받은 사람도 그렇게 신앙생활 하다가 지옥에 던져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대로 자기 몸을 쳐서 복종시키는 사람이 전도하면 전도 받은 사람 역시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다가 천국에 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 아니! 거듭난자가 천국가는 것이지, 행위가 천국가게 합니까?!

가족이 구원받는다고 해서 나도 구원받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거듭나야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 글에는 하나님을 빼놓고 있네요! 쉬지 않고 일하시는 하나님을 말이죠!

이스라엘 백성 역사를 보십시오! 하나님이 가만히 계셨습니까?

심지어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했는데, 그렇게 된 자기 자녀들을 그냥 놔두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까?

깨달을때까지 징계하시는 분이 아닙니까?! 징계가 없으면 사생아라고 했습니다.

변목사의 말이 정답이 아닙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 전도하더라도, 그 사람의 전도를 받고 나온 새신자는 주님의 은혜로 예수님 영접하고 거듭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옳습니다.

 

 

한가지 더 적습니다.

인용한 마23:15의 바리새인은 중생하지 않은 자로써 인간의 의를 중시한 사람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몰랐습니다.

(로마서 10: 2-4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중생하지 않으면' 의를 행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것은 '중생'입니다. 그러나 '중생'이 강조되지 않으면, '행위구원'이 됩니다.

 

 

변목사는 '중생'에 대해 언급하지만, 정작 필요한 부분에는 '인간의 의'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 '의'는 천국가는 기준이 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중생'입니다.

근본이 바뀌지 않으면 행위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 때문에 열매가 나타나는 것이지만,

이 열매는 천국가는 기준이 아닙니다.

'새로운 피조물(중생)'이 되었기 때문에 천국가는 것입니다.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아이네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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