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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Re:Re:"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baromi 2008. 12. 29. 00:42

사도신경 강해(4)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입력 : 2006년 04월 21일 (금) 01:37:20 / 최종편집 : 2006년 04월 21일 (금) 13:02:24 [조회수 : 2066] 방철섭

성경은 예수님께서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이 세상을 떠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을 떠나신 것은 부활과 승천을 통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이 땅에 들어오신 것은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탄생과 떠나심은 예수님이 인간일 뿐 아니라, 인간 이상의 분인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지상생활은 온전히 인간적인 것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신성을 가지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창조의 일을 담당했던 그 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면‘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셨다’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요? 하이델 베르그 신앙고백서 제 35문을 보면 “그가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라며 물어보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에 대한 답은 "언제나 참되시고 영원한 하나님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동정녀 마리아의 몸과 피로부터 바로 인간의 본성을 취하시고 성령의 역사로 태어나셔서 다윗의 참된 후예가 되셨으나 죄를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 있어서 그의 형제들과 같다는 말이다”입니다.

 

예수가 동정녀를 통해 나심은 진실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이 땅에 오셨다고 하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진정한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유령이나 천사가 아닌 참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가현설(假現說, Docetism) 이라는 이단이 유포가 되었습니다. 가현설은 영지주의와 뿌리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영지주의의 특징은 이원론(二元論)입니다. 육과 영을 분리해서 육은 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진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이 아니라 단지 사람이 되신 것처럼 보일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4장 2~3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사람마다 하나님께 속한다. 그리고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하지 않는다. 이것이 적그리스도의 영이다. 그가 오리라 한 말을 들었는데 벌써 세상에 와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다는 것은 인간의 몸을 가지시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야만 했습니까? 이는 피 흘려 죽으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피 흘림 없이는 사함이 없다”(히 9:22)고 했습니다. 인간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죽으셔야만 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사람들의 죄를 씻기 위해서는 반드시 짐승을 죽여 피를 흘려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죄 사함의 방법입니다. 원래 죄 지은 인간은 자신이 피를 흘리고 죽어야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죄 지은 인간 대신에 짐승의 피를 흘리게 하는 죄 사함의 방법을 정하셨습니다. 이는 앞으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실 예수님의 피의 예표였습니다. 히브리서 2장 14절을 보면 “자녀들은 함께 혈육에 속하였으매 그가 또한 그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은 피 흘려 죽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인간을 입고 오신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보여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본성을 보여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동안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날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히 1:2)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요청하는 빌립에게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고 대답 하셨습니다”(요 14:9) 인간이 되신 하나님 대해 이해가 될 만한 좋은 예화가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예배에 참석한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동정녀에게서 탄생한 예수님에 대한 설교를 들었을 때 부인에게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어.” 그런데 그가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마침 함박눈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집 앞에는 몇 마리 새들이 추위에 떨면서 이리저리 몸을 움츠려 있었습니다. 새들은 눈에 날개가 젖어 날아가지 못할 정도로 힘이 없어 보였습니다. 이것을 그 남자는 가엾은 새들을 도와주고 싶어 집에서 먹이를 가져와 새들에게 가까이 갔습니다. 그러나 새들은 놀라 모두 이리저리 피했습니다. 그는 계속 가까이 갔지만 새들은 피해 도망갈 뿐이었습니다. 이 남자는 계속 가까이 가면서 “새들아 두려워 마라. 나는 너희를 도와주려고 그래.” 그래도 새들은 계속 도망가기만 했습니다. 이 때 그는 생각했습니다. “이 몸이 새라면, 새들과 말을 할 수 있다면.” 그 때 그는 성육신의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내가 내 마음을 전달하려면 내가 새가 되는 수밖에 없구나.” 이 예화가 정확하게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왜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는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동정녀 나심은 예수의 무죄함 입증

둘째,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은 예수님께서 죄와 상관없는 분이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동정녀의 몸을 통해 나신 예수님은 소위 원죄라고 일컬어지는 죄악의 오점을 물려받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하이델 베르그 신앙고백서 36문을 보면 “그리스도의 거룩한 잉태와 탄생에서 우리는 무슨 유익을 얻는갚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에 대한 대답은 “그가 우리의 중보자이시며 죄가 전연 없고 거룩하여 하나님 앞에서 내가 날 때부터 가졌던 죄를 덮어 주신다” 고 했습니다.

 

죄인은 죄인을 위해 대신 죽어줄 수가 없습니다. 죄인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람은 죄가 없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태어날 때부터 죄와 상관없는 분이어야만 했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의 인성에는 흠과 티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행동과 태도와 동기와 욕구에는 과오가 없으셨습니다. 누구도 예수님에게서 죄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신약성경은 예수님께서 아무런 과오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을 보시면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2절을 보면 “저는 죄를 범치 않으시고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7장 26절에는 “이러한 대 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8장 46절에서는 예수님 스스로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고 반문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죄인을 위해 죽으실 수 있습니다. 동정녀 탄생이 사도 신경에 포함되어 있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마리아의 영원한 처녀설은 거짓

그런데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이 구절은 예수님의 성육신을 증거 하는 것이지 예수님의 육신적 어머니인 마리아의 영광을 증거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로마 가톨릭 교회는 이 구절을 가지고 마리아 숭배의 교리를 발전시키는데 뒷받침을 하였습니다. 로마 가톨릭 에서는 말합니다. “마리아는 죄 없이 탄생하였고 죽은 후 즉시 영광의 부활을 했다.” 그리고 어디서인지 모르지만 그 후 마리아의 영원한 처녀설이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영원한 처녀설은 거짓입니다. 마리아는 오직 예수님이 탄생하기 전까지만 동정녀였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두 가지 면에서 반박할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에게는 예수님에게 형제자매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막 3:31, 6:3)

 

둘째, 마리아 자신의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장 47절을 보시면 “내 마음이 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이라고 했습니다. 마리아는 자기 자신을 죄에서 구속함을 받은 자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마리아의 믿음과 헌신은 우리에게 귀감을 줍니다. 마리아는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에 겸손히 응답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삶의 면에서도 뛰어난 모범을 보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구주이신 예수님을 잉태하는 복을 누렸고,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눅 1:38, 2:35)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한 인간에 불과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정상적인 성 관계 없이 출생이 가능했는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은 이성적으로는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C. S. 루이스는 이를 가리켜 ‘엄청난 기적’이라고 불렀습니다. 처녀의 몸속에 말씀이신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은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를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불가능한 일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가능했다고 말합니다. (마 1:18) 누가복음 1장 35절에서도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그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이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초자연적인 역사였습니다 그러기에 사도 신경은 고백합니다.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루이스는 그의 책에서 “요셉이 약혼녀인 마리아가 아기를 가졌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는 당연히 마리아를 거절하기로 마음먹었을 것이다. 성 관계 없이 아이를 갖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처녀가 아이를 낳는 것은 분명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자연을 초월하고 자연을 지배하는 어떤 분에 의해 행해진 일이라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성령은 우주 창조에 동참했던 분이십니다. 창세기 1:2절을 보면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셨다” 고 했습니다. 성령님은 우주의 창조자가 되십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님의 창조역사를 믿는다면 성령님으로 말미암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도 믿을 수 있습니다.

방철섭 / 시카고 개혁교회 목사

출처 : 양무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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