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문제자료

[스크랩] 레노바레 영성 세미나 /옥성호

baromi 2008. 9. 8. 07:24

얼마 전에 들은 레노바레 영성 세미나에 대해서 한 마디 해야겠습니다. 이 세미나가 다른 곳이 아닌 영락교회에서 열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오늘날 한국 교회가 어디를 향해 질주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리챠드 포스터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기회가 되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저도 한때 리챠드 포스터와 달라스 윌라드에 ‘심취’했던 사람으로서 할 얘기가 좀 있는 편이지요. 이 세미나가 세부적으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확실한 점은 대부분의 청중이 목회자들이었다는 점과 이 세미나에서는 포스터와 윌라드 외에 6번의 주제 강의를 한국의 대표적 목회자들이 진행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 6번의 주제 강의를 테이프로 들었습니다.

이 세미나가 영성 세미나인 만큼 이 6번의 강의에는 ‘영성’이라는 말이 수도 없이 등장합니다. 제가 대충 살펴보니까 ‘무슨 무슨 영성’이 한 50가지 이상 나오더군요. 뭐,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지난 100년간 한국 교회는 성장 영성을 추구했다. 이제는 내면적 영성으로 바꿔야 한다.”
“채움의 영성 대신 비움의 영성을 추구하자.”
“부흥 영성보다는 각성의 영성을 갖자”
“방언기도 영성보다는 묵상의 영성을 갖자.”
“한국의 새벽기도 영성은 참으로 훌륭하다.”

뭐...끝이 없습니다. 6개의 주제 제목들 자체가 다 그냥 뒤에 ‘영성’을 붙인 것이니까요.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요즘 이명박 후보가 추구하는 영성은 무엇일까요?

“대세론 영성” 또는 “경제 영성”이겠지요. 이회창 후보는 요즘 ‘무소속 영성’을 추구하고 계시고요. 전두환씨가 추구한 영성은 “학살 영성, 쿠데타 영성”, 노태우씨는 “우유부단 영성과 뇌물 영성”, 박정희씨는 “독재 영성”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군요.

어떤 단어에 대해서 제대로 개념을 정리하지 않은 채 그 단어를 마구 쓰는 것은 그 단어에 대한 ‘강간’입니다. 한 마디로 ‘언어 강간’이지요. 이런 식의 ‘언어 강간’은 한국 교회 속에서 수도 없이 발생합니다. 끝없이 난무하는 ‘은혜 받았다’라는 말이 대표적인 또 하나의 경우이지요.

레노바레의 주제 강의 중에 하나가 ‘묵상의 영성’이었습니다. 이 강의 전체 내용을 해당 목사님은 이렇게 요약하시더군요.

“묵상은 하나님과 하나 되는 영성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예수님께서 항상 묵상하는 삶을 사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시더군요. 물론 농담 차원이었지만 행동파 베드로는 묵상을 별로 안해서 빨리 죽었고 사도 요한은 묵상의 삶을 살아서 장수했다고도 부연하셨습니다.

묵상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 된다....우리가 신이 된다는 가르침은 결코 기독교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이 분들이 주장하듯이 소위 말하는 렉티오 디비나를 통해 성경 구절을 ‘주문화’하라는 가르침이 없습니다. 렉티오 디비나를 너무 하면 인생이 ‘디비지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어디 예수님이 묵상을 통해서 하나님과 하나되었다고 성경이 가르칩니까?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이신 이유는 그 분이 성삼위의 2위이신 성자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저는 이런 ‘헛소리’에 앞에서 ‘아멘’으로 화답하는 수천 명의 목회자들을 보면 가슴이 뒤집어집니다.

또 제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한 목사님은 이 세미나에서 사도행전 10장에 등장하는 베드로의 환상을 예로 들면서 교단이 나뉘고 교리 차이로 서로 갈라지는 현실을 개탄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더럽다고 생각한 그 동물들을 먹도록 하신 하나님을 언급하면서 그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절규’하셨습니다.

“당신이 무언데 감히 하나님이 깨끗하다고 한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합니까? 왜 서로 비판합니까? 당신이 무어라고 하나님께서 인정한 다른 사람을 비판합니까?”

위의 본문이 이 목사님이 말하고자하는 요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이라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저는 그 말을 들으면서 결국 이 레노바레 영성 세미나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결국 최고의 영성이란 ‘내가 믿는 것이 옳다’라는 생각을 벗어던지고 나와 다른 모든 이와 하나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가장 편하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대세가 되면 됩니다.

지금 한국 교회의 대세가 무엇입니까? 개인의 체험과 감정을 중심으로 한 체험주의와 감정주의입니다. 내가 느껴서 좋고 내가 체험했다고 하면 거기서 모든 논의는 끝입니다. 이와 더불어 ‘각자의 체험에 근거해’ 서로 판단하지 말고 하나 되자는 ‘아름다운’ 주장입니다. ‘성령님 고맙습니다’, ‘하늘의 언어’와 같은 책들을 놓고 목회자나 신학자들이 반론을 제기하거나 의문을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글을 보신 적 있습니까?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책들의 주장은 오늘날 대세를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대세가 되면 검증도 판단도 의문도 제기하지 않습니다. 대세에 속하는 순간 상식도 사라집니다. 레노바레 영성 세미나 속의 수많은 말도 안 되는 가르침에 그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그게 바로 오늘의 대세이기 때문입니다. 왜 부족한 기독교에 대해서는 여러 곳에서 반론들이 제기됩니까? 그 책은 대세를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상식이 아닌 대세에 함몰되는 한국 사회....그게 오늘 우리의 현실입니다.

정치권이나 교회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대세를 성경은 무엇이라고 표현했습니까? 바로 ‘넓은 길’입니다.

 

 

 

부흥과개혁사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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