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된 체험과 참된 체험
우리가 숙고해야 할 다음 문제는 이 체험과 거짓된 체험들 사이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확실히 따져 봐야 하는 것은 우리가 성경에서 가르쳐지는 어떤 것의 체험적인 또는 체험적인 국면을 강조하는 순간 즉각적으로 기만이라는 위험에 스스로 노출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수 마귀는 언제나 이용을 하려들고 특별히 그것이 체험의 문제요 감정이나 느낄 수 있는 국면이 수반되는 문제일 때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점을 알고 우리를 보호하는 것은 긴박하고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신약은 우리로 하여금 영들을 '시험하고 검증하고 따져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영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하나님께 속한 것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적그리스도의 영이 있고 거짓 영들이 있습니다. 이 거짓된 영들은 초대 교회들로부터 횡행하였습니다. 영들을 시험해 보는 것은 사도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부가된 일일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일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이것을 하라고 강권하고 있을뿐 아니라 기독교회 역사가 그 점을 강력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긴 교회의 역사를 읽어보면 어떤 사람들이 지나쳐 전체 그리스도인을 욕되게 했던 방종으로 넘어가기도 했는데 그 점이야말로 교회가 당한 가장 빈번한 고통의 원인이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일은 종교 개혁시대에도 나타났습니다. 17세기의 청교도 부흥 시대에도 더욱 더 현저히 나타났습니다. 청교도 운동의 막판에 성령의 체험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옳게 출발은 했지만 너무 멀리 나아가 신비주의로 떨어지고 지나친 면을 드러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일은 그 시대에 일어났던 초기 퀘이커 교도들 많은 사람들에게도 일어났습니다. 다른 말로 해서 체험을 강조하기 시작하는 순간 마귀는 어떤 사람을 극단으로 몰고 가려고 가진 애를 쓸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체험들을 검증해 보고 시험해 보아야 하는 것은 절대적인 진수입니다. 그 후에 18세기의 복음적인 부흥 운동은 체험과 구원의 확신에 큰 강조점을 두었습니다. 휫필드나 웨슬레의 형제들은 확신의 중요성과 성령의 살아있는 체험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들은 Henry Scougal로부터 기독교란 "인간 영혼 속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들의 설교 결과어떤 사람들은 방종과 무절제에 빠져 들어가는 경향들이 있었습니다.
19세기에도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특별히 미국에서는 수 개의 '별난' 신앙 운동들이 일어났습니다. B.B.Warfield의 『완전주의』라는 두 권의 책 중 한 책에 보면 이 점에 대해서 잘 기술되어 있습니다. 또한 Ray Strackey가 쓴 『그룹 운동과 체험에 관한 안내서』(Group movement and experiments in Guidence)라는 책에 보다 대중적으로 진술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조심스럽게 우리 자신들을 검토해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마귀는 만일 우리에게 거짓된 체험을 주고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참된 체험을 가지고 있다고 설득하는데 성공한다면 우리가 더 이상 참된 체험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보여 드리고자 합니다만 그 뿐만이 아니라 우리는 성경을 저해하는 자기 만족 상태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강해 5권 / 4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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