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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부산에서 신앙생활하고 있는 강성모 형제에게 보내는 이광호 목사님의 서신입니다) 강성모 형제께, 안녕하세요? 저의 홈페이지 '질문란'에 형제께서 올리신 글의 내용을 잘 보았습니다. 내용을 살펴보면서, 어떤 은사집회에서 있었던 희한한 광경(?)들을 보며 충격받은 형제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운집한 집회장 앞쪽에 놓인 대형 무대위에서 어떤 능력(?) 있어 보이는 자가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 모습은 제가 보기에도 대단한 것 처럼 보였습니다. 그러한 유형의 집회는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우리 한국 기독교 가운데도 적잖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신앙이 어린 많은 사람들은 그런 집회를 통해 질병을 치유받고자 할 것입니다. 고치기 어려운 질병에 걸린 사람들이나 그 가족들은 그런 은사집회에 참여하여 질병을 치유받기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에는 '은사집회'라는 말을 들으면 누구나 질병을 치유하기 위한 특별한 집회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은사집회라는 말이 이미 보편화되어 있는 우리의 시대에는, 그 내용들이 말씀을 통해 잘 검증되어야만 합니다. 그런 집회를 주도하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과 그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여 말하고 있기 때문에 여간 민감하지 않습니다. 신앙이 어린 사람들일수록 '예수'라는 이름이 많이 등장하고 '믿음'이라는 단어가 많이 말해지면 그것으로 곧 대단한 신앙적 집회인양 잘못 생각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우리가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은, 어떤 질병에 대해 주님께서 바로 치유하지 않고 다른 특별한 사람을 끼워넣어야만 한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기독교에 대한 '신(新)중재자적 입장'이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사실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 만이 우리의 유일한 중재자이신데 병고치는 일에 있어서는 또 다른 중재자가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예수 그리스도 만이 유일한 중재자임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주변에는, 병 고치는 일에 있어서는 하나님과 병자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 이외의 또 다른 능력있는 어떤 사람이 중재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며 주장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매우 잘못된 위험한 생각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들을 고치신 기록이 여러군데 나옵니다. 베드로나 요한, 바울 등도 많은 병자를 고쳤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에 대해 명확한 이해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예수님을 비롯한 그의 제자들이 여러 사람들의 질병을 치유하신 것은 일차적으로 그 병고침을 받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보여 주시기 위해서였다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교회 당시에도 오늘날 처럼 질병을 앓은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나 그의 제자들은 그 모든 병자들을 고치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사도들 가운데도 그런 질병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도바울 같은 사람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갈4:13,14. 참조). 그러나 남을 치유했던 바울 조차도 자신의 질병을 치유 받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바울의 기도가 부족했기 때문이었을까요? 우리가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모든 질병이 기도를 통해 치유되는 것이 아니며, 사도들이 여러 병자들을 치유했던 것은 개별적 판단이 아니라 공인으로서의 판단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성경에 나타난 그러한 치유는 예배시간을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교회가 예배시간을 통해 병자들을 치유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길가시다가 병자를 고치시거나 개인의 가정을 방문하셨다가 질병을 고치기도 했습니다. 베드로, 요한 바울 등도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질병있는 자들을 한 곳에 모아두고 그들의 병을 치유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에 대한 관심보다 병고치는 일에 더많은 관심을 가지게 될까 견제하셨던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시대에 병자들을 한 곳에 불러모아 놓고 '은사집회'라는 이름으로 모이는 것은 건전한 집회라 할 수 없습니다. 병자를 고치는 것이 마치 하나님의 목적인 양 말하고 가르친다면 그것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더구나 찬송하고 기도하며 설교하는 예배모임 형식을 가진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병자가 치유되는 모습을 보아야만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면 지극히 유치하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병고치는 것을 확인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파악하고자 하는 것은 죄의 결과입니다. 이방종교에서도 질병을 치유하는 일은 자주 일어납니다. 이슬람교나 힌두교는 물론이고 우리 주변의 한국 무속에서도 그런 일은 자주 일어납니다.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많은 질병을 치유한다고 해도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아님을 우리는 잘 기억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적을 행하고 질병을 고친다해도 실상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고 '할렐루야'를 외치며 찬송을 한다해도 그것은 주님과 아무런 관계없는 행위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신명기 13:1-5을 조심스럽게 읽어보면 그런 일은 이미 오래 전에도 일어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7:22,23을 보면 동일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누구의 기도는 더 잘 들어주시고 누구의 기도는 잘 안들어 주시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소위 병고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이 기도해야만 질병을 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신앙입니다. 사실 '은사집회'라는 말 자체에 문제가 있습니다. 모든 은사는 주님의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며 개인에게 어떤 혜택을 주기 위함이 아닙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 시대에 병고치는 것 등은 '은사'의 범주에 들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시대에 있어서 '은사집회'라는 말이 대단한 신앙적 집회인양 오해되고 있는 것은 심히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는, 복음을 아는 어린 성도들이 그런 형태의 집회에 현혹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능력을 믿는다면, 그런 집회에 참석해야만 치유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불신앙은 제거해 버려야 하리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조용히 골방에서 기도하며, 그 질병 때문에 고통당하는 이웃을 위해 기도하는 여러 성도들로 인해 신령한 힘을 얻는 것이 더욱 중요하겠지요. 설령 병세가 전혀 호전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며 고통중에도 즐거워하는 방법을 익혀야 할 것입니다. 죄 가운데 살고 있는 인간들은 이미 커다란 암덩어리를 안고 살아가는 것과 크게 다를바 없음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래야만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더욱 가까이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인간이 이미 육체 가운데 가지고 있는 질병적 내용들을 잘 인식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잘 체험하는 신앙인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이 정도로 그칠까 합니다. 안녕히 계세요.2001. 1. 30 이광호 목사 |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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