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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인정을 받는데 평생동안 에너지를 쏟아 붓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른 말로는 "체면" 때문에 인생을 걸고 생명을 겁니다. 이민 와서 자녀교육과 생존을 위해서 세탁소, 델리가게, 음식점, 주유소, 생선가게, 야채가게..... 어려운 일을 한 번씩은 전부 겪게 됩니다. 소수민족인 우리들로서는 미국 사회에서 인정을 받을 길이 그렇게 많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한국사람들이 가장 잘 사용하는 카드가 있습니다. 바로 내 아들이, 내 딸이 아비리그대학에 다닌다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본인들이 아이비리그대학에 들어간 것도 아닌데,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를 당할 때 "저 사람 아들은, 저 사람 딸은 아이비리그대학에 다닙니다" 라는 칭송을 받습니다. 1970년대 못살 던 한국사회 속에서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서울에 올라와서는 온갖 고생을 다 하면서 아이들을 일류대학에 넣고서는 "우리 아들이 일류대학에 다닌다, 우리 아들이 사법고시시험에 합격했다" 는 것이 무슨 대단한 사회적인 지위가 본인도 함께 올라간 것처럼 착각하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다 키워 놓으니까 결혼하면 농부출신에다 시골출신이라고 해서 부잣집에서 시집 온 며느리에게 구박을 당합니다. 사법고시에 패스하거나, 대기업이나, 대학교수, 박사, 의사가 되는 것은 인구전체에 1%도 되지 않는데 결국 나머지 99%는 열등한 아들 딸을 둔 자녀를 잘못 키운 부모로 손가락질 당하는 시대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한편. 미국에도 그러한 일들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습니다. 세상적인 가치관과 의식이 눈에 보여지는 것을 최고로 여기기 때문에 그럴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아비리그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여도 다른 방법으로 인정을 받을 방법을 찾습니다. 그것이 바로 "돈" 입니다. 죽어라 일해서 분명히 형편이 되지도 않는데, 오직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비싼 집을 사고, 비싼 차를 굴리고, 비싼 가구를 넣고, 비싼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이라도 있어서 인정을 받아야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 오는 것이 바로 "명예" 입니다. 한 자리 해서 이름을 알려보겠다는 것입니다. 이민의 삶을 살면서 전혀 의미나 가치가 없는 자리인데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요리조리 얼마나 머리를 돌리는지 모릅니다. 세상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눈에 보여지는 체면을 위해서 목숨을 걸든, 돈을 벌든, 아이들을 최고의 대학에 보내든, 빚을 내서라도 비싼 집을 사고, 비싼 차를 몰고, 비싼 옷을 입든 상관이 없습니다. 남에게 "인정" 을 받고 살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런데 교회에 와서도 세상에서 형성된 가치관과 의식을 그대로 가지고 와서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안수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는 것을 무슨 대단한 계급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친구 남편은 "때가 되어 피택장로나 피택안수집사가 되는데 당신은 우엇하고 있느냐?" 고 남편을 은근하게 공박하고 있는 여성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여고동창생들이 한 교회에 다니면서 한쪽 남편은 직분자가 되는데 한쪽 남편은 직분자가 되지 못하면, 서로 견원지간이 되어버리는 일도 있습니다. 목회자들은 목회성공을 위하여 교인들 속에 있는 경쟁심리와 역학적인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합니다. "내 말대로 죽도록 충성하지 않으면 장로, 안수집사, 권사가 될 수 없다" 는 것을 슬쩍 슬쩍 흘립니다. 소리없이 "십일조와 감사헌금액수, 새벽기도출석율, 예배참석률, 건축작정헌금액수....." 의 자료를 들고서 사람들을 조종하고 카운트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조종과 카운트로부터 자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목회자는 교인이 헌금을 열심히 하고 예배출석률이 높으며, 적당히 촌지로 옆구리에 찔러주면서, 자기에게 대접을 융숭하게 하면, 그 사람 속에 구원의 확신이 전혀 없어도, 10년이 지나도 성경묵상 한번 한적도 없으며, 전도를 단 한명 해 본 적이 없고, 세상에소 손가락질 받으며, 인격에 큰 문제가 있어도, 살이 제대로 토실 토실하게 붙어 있는 건강한 교인으로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여도 하나님께 인정이라고 받고 싶다고 나온 불쌍한 영혼들을, 세상에서 인정을 받는 방법보다 훨씬 저질적인 수법으로 때로는 겁주고, 때로는 얼르고, 때로는 달래고, 때로는 한없이 공중부유를 시키고, 때로는 한없이 추락시키는 체인지업으로 사람들을 다룹니다. 사람들이 서로 인정을 받는 일에 경쟁을 하도록 부추기는 목회자들이 존재하는 곳을 도대체 네트웍 판매회사로 불러야 합니까? 아니면 세련된 컬트집단으로 불러야 합니까? 아마 조금 머리가 돌아가고 이성이 있는 사람들은 그 해답을 잘 알 것입니다. 네트웍판매회사는 오직 경쟁밖에 없습니다. 판매원들 사이에 교묘한 경쟁심리와 역학적인 심리를 이용합니다. 철저하게 물건을 팔았던 만큼 이익을 부여하고 인정을 받도록 합니다. 교회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러한 인정받겠다는 심리를 이용하고서 사람들에게 드라이브를 걸려고 하는 속물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교회에 가면 기쁨이 없습니다. 황폐하고 메마를 심령만이 남습니다. 더욱 행위주의자들이 됩니다. 많이 바치면 기분이 좋아지고, 적게 바치면 우울해집니다. 이렇게 평생을 보냅니다. 이런 상황에 목회자가 간통등의 사고를 치면 절망하기보다는 체념해버립니다. 항거할 힘조차도 잃어버리고, 영성과 이성이 이미 상당히 마비되어 있기 때문에 돌아볼 마음의 여유나 분노조차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 인정을 받기 위해서 교회에 나왔다기 보다는 목사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 달려왔기 때문에 그 우상이 무너지는 것이 도리어 자기부정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고린도후서 10장 18절에 보면 진정으로 인정을 받는 자는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자이며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는 자입니다.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고린도후서 10:18)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 (디모데후서 2:15) 주님께 칭찬(인정)을 받는 자는 거룩한 자입니다. 주님께 칭찬(인정)을 받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는 자입니다. 주님께 칭찬(인정)을 받는 자는 진리의 말씀으로 매사를 바르게 분별하는 자입니다. 주님께 칭찬(인정)을 받는 자는 부끄러울 것이 없는 삶을 사는 자입니다. 주님께 칭찬(인정) 을 받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과 더불어 아픔을 나누는 자입니다 |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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