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회 논쟁들

[스크랩] [대담] 기독교 악플러, 목사를 만나다(2)

baromi 2007. 9. 12. 08:05

                                                                               하민지 명예기자 shiny_signal@hanmail.net

 

 

‘기독교 악플러, 목사를 만나다 (1)’에 이어 조성돈 교수와 박대범씨의 대담내용의 뒷부분을 연재한다. 지난 1부에서는 이번 아프간 피랍사태에 대해, 각각 개신교와 안티기독교의 시각을 가진 두 사람의 공방이 전개되었다. 2부에서는 악플 문제와 개신교 내부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대담내용이 이어진다.

 

편집장: 언론에서는 반기독교 악플러들의 댓글 내용이 과하지 않았냐는 의견이 있는데.

 

목사: 우선 자신이 책임질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자제하고, 엉뚱한 논리들은 없었으면 좋겠다. 추측이 마치 현실인 것처럼 확산되고, 또 그것들이 조합, 재생산된다. 예를 들면 9.11 테러가 미국의 자작극이라는 얘기도 있지 않은가(웃음). 또 하나, 극단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대한민국이 어떻게 사람 목숨이 걸린 문제에 대해 그렇게 쉽게 얘기를 하고 돈 문제 얘기를 하고, 생명에 대해서 이렇게 매몰찰 수 있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기독교 악플러들의 악플에 대해 박대범씨는 "댓글을 달 수 있는 공간이 한정되어 있어 생각의 결론만 밝힌 것 뿐"이라며 "다들 나름의 논리와 이유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뉴스미션


사신: 네티즌들이 댓글을 달 수 있는 공간은 대체적으로 한정되어 있다. 어떤 결론을 내린 것에 대해 분명 나름의 논리와 이유가 있는데 그런 내용을 다 쓸 수가 없다. 그것이 타인의 눈에 비치기에는 단순히 결과만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악플이 아니라, 나름대로 자신이 생각한 것의 결론만을 밝힌 것이다. ‘무조건 죽어라’, ‘그들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편집장: (사신에게) 그러나 실제로 피랍자들이 죽기를 바란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어떤 이유에서든 사람을 죽여도 된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사신: 글이 길면 사람들이 잘 읽지 않는다. 때문에 생각의 결론을 먼저 밝힐 수밖에 없다. ‘죽이자’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그 안에는 피랍자들이 아닌 아프간 현지인들과 다른 사람들의 정신과 생명도 구해주자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것이 ‘차라리 이 사람들을 살리지 말고 죽이자’라는 식의 악플로 왜곡된 것 같다.

 

편집장: 악플 뿐만 아니라 사실이 아닌 내용에 대해 확대·재생산 되는 것도 문제가 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여행 자제를 권고한 횟수가 몇 회에서 이야기가 돌고 돌다 보니 20여회까지 불어난 경우가 있었는데.

 

사신: 여행 자제 권고 횟수에 관한 것은 프리존 뉴스에서 보도된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없는 사실을 지어내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대부분의 네티즌들은 언론의 보도내용을 믿고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편집장: (사실의 왜곡 현상에 대해)어느 정도 인정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악플’의 저변에 깔려 있는 정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개인적으로는 네티즌들의 생명 경시 사고에 무척 놀랐다. ‘그들은 그들이 잘못했으니 죽어도 된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분명 그런 의사 표출이 있었던 것 같다.

 

사신: 생명 경시라고 볼 수 없다. 생명이라는 것은 서로 다른 생명 두 개가 마주쳤을 때에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사태로 아프간에서의 의료 수술이 8월에만 100건 정도가 모두 취소되었다고 들었다. 수술을 하지 못해 생명에 위협을 받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위험한 생명이라는 건 한 쪽만 있는 것이 아니다.

 

편집장: 일종의 생명에 대한 상대주의 같은데. 생명 상대주의가 개신교에서 용납 가능한 개념인가?

 

목사: 지금 당장 우리에게 닥친 것은 우리 국민이지 않은가. 구제해 줄 수 있으면 구제해 줘야 한다. 이것 역시 유괴범의 논리와 비슷하다고 본다. 내 아이가 유괴되었을 때, 대의명분 적으로는 내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 돈을 주어선 안 된다. 그로써 모방범죄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 생명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 아니지 않는가.

게다가 아프간의 병원들도 대부분 개신교 측에서 세운 것이고, 개신교의 헌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경황이 경황인 만큼, 닥친 상황이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국민에 집중이 되어있는 것뿐이다. 우리가 아프간의 상황에 관심이 없다는 주장은 옳지 않은 것 같다.

 

사신: 관심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피랍자들만을 살리기 위해 다른 상황을 너무 덮어두는 것 같다는 것이다.

 

목사: 우리가 이야기를 ‘아프가니스탄에 무엇을 하러 갔느냐’부터 시작했다. 우리가 그 곳에 해 놓은 것이 있기 때문에 간 것이다. 굿네이버스나 기아대책(국제구호단체) 등 개신교 단체들이 모두 아프간이 어려운 곳이기 때문에 그 곳에 집중하고 있다. 초기에 저변확대의 의미로 아프간에 나아가는 사람들이 나타나야 그 곳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고아원이나 학교, 병원 등이 계속 생겨나지 않겠는가. 우리가 피랍된 스물 한명만을 구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 그것은 틀린 얘기다.

 

편집장: 경제적인 가치 때문에 생명을 경시하는 듯한 내용도 있었는데.

 

사신: 정부가 탈레반에게 몸값을 지불했다는 것이 맞는다면, 결국은 국민들의 세금이 쓰인 것이다. 그 돈이 쓰이지 않았다면 국익을 위해 쓰였을 것이다. 국익과 생명의 문제가 섞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것이기 때문에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는 말 할 수 없지만 생명만이 절대적 가치는 아니는 아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돈을 생명보다 중시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나라고 국가이다. 생명을 중요시한다고 해서 돈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줘선 안 되지 않느냐. 그런 입장조차도 침해해선 안 된다.

 

목사: 생명과 돈이 비유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국가가 국민을 지켜줘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닌가.

 

사신: 국가에서 모든 국민을 지킬 수는 없지 않은가. 국가의 입장은 객관적이어야 한다. 그 사람들을 살리는 것도 국가 위상을 높이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국익의 득실을 따져야 한다. 이번 사태는 국익의 실추라고 생각한다.

 

목사: 국가에서 차례로 죽일 때까지 손 놓고 기다린다고 하면, 세계가 대한민국을 우습게 볼 것이다. 어느 누가 제 나라 국민 하나 못 구하는 나라를 존경하겠는가?

 

편집장: 정리해보면 악플러들의 논지는 그들(피랍자들)이 정부의 권고를 무시하고 아프간으로 갔기 때문에, 그리고 국익이 손실되었기 때문에 비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 안에는 반기독교적 감정이 저변에 깔려져 있기 때문은 아닐까.

 

사신: 그럴 수밖에 없다. 우리가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교회’라는 옷을 입고 가지 않았는가. 그들을, 선교를 목적으로 아프간에 간 교회 단체로 보는 것은 당연하다.

 

편집장: 개신교의 공격적인 선교가 문제가 되는 것 같은데.

 

목사: 선교라는 것은 상당히 장기적인 것이다. 외국에 나가 한 명을 전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특히 이슬람권에서는 더 그렇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사회와 집단에서 떨어져 나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곳에 가서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도움을) ‘퍼주는 것’ 뿐이다. ‘그렇게 도와주다 보면 예수를 믿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겠다’라는 전제 의식은 있지만 아프가니스탄 사태의 본질은 그런 것이 아니다.

선교학의 주류는 그저 도와주는 것뿐이다. 왜냐하면 그 곳도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님의 땅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들이 그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 아파하고 도와주려고 하는 것뿐이다.

 

사신: 개신교인들은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 선교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순수한 봉사를 행함으로써 현지인들로 하여금 감동과 존경을 느끼게 해 교회를 찾아오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봉사하러 간다는 명목으로 교회를 찾아오라고 외치는 종교적인 포교라고 본다.

 

목사: 우리는 전도와 선교를 구분한다. 전도라는 것은 말 그대로 직접적으로 ‘예수 믿으라’고 끌어당기는 것이다. 나도 교계에 있지만 전도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전도가 개신교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신교의 본질은 보통 ‘믿음, 소망, 사랑’이라고 하고 개인적으로는 ‘사랑, 정의, 평화’라고 생각한다. 이것들이 예배, 봉사, 가르침, 설교 등으로 실천되어야 하는 것이다. 전도는 이런 절대적인 본질에 들지 않는다. 전도와 선교는 분명히 다르다.

 

편집장: 선교라는 것이 여전히 목적지향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은데.

 

목사: 아무런 목적 없이 봉사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현지의 선교사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약 1만5천 명의 선교사가 전 세계에 퍼져있다. 사실 필리핀이나 몽골처럼 전략적으로 선교할 수 있는 나라도 있다. 그러나 그런 곳에서조차 봉사를 함으로써 비로소 ‘전도’라는 열매가 맺어지는 것이다.

 

사신: 선교사들이 만 오천 명 나가있다고 하지만, 전도하는 사람들 즉 단기선교 팀이 수천 명 나가있지 않은가. 그 사람들도 어쨌든 교회 자격으로 보낸 것이다. 그들이 스스로가 개신교의 목적을 흐리고 있다.

 

                                     

▲ 조성돈 목사는 "단기봉사에 대한 교육만 잘 이루어진다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변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며 "단기봉사의 가치에 대한 시각 교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뉴스미션


목사: 단기선교라는 말은 (엄밀히 말해서)선교의 의미를 담을 수 없기 때문에 한계가 있어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단기 봉사’라는 말로 표현하고 싶다. 실제로 많은 젊은이들이 오지로 나아가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고생을 하면서 봉사를 한다. 청년들이 놀러갈 생각 안하고 자비를 들여 어려운 사람을 돕고 오는 것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렇게 봉사를 다녀온 사람들은 돌아온 후에도 계속 그 나라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려고 한다. 실제로 직장을 그만두고 오지로 가서 현지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들도 봤다.

과연 대한민국 국민들 중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교육만 잘 된다면 우리나라의 가치를 변화시키고 세계에 대한 새로운 시야를 열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한다.

 

사신: 여전히 개신교적 관점으로 생각하고 있다. ‘개신교에서 이만큼 하니까 인정해 줘야 한다’고 하는데, 마음에서 우러나 봉사를 가는 사람들의 계기가 ‘개신교’인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별 다른 교육 없이 이벤트적인 형태로 가서 문제를 일으키는 일이 발생하고 있지 않은가. 교육 없이 가는 사람들도 결국엔 교회의 이름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개신교가 비난 받는 것이다.

 

목사: 보통 단기봉사를 가려면 6개월 정도 팀원들이 함께 공부를 한다. 봉사를 가려는 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 종교, 생활, 언어 등에 대해 공부하고 무엇을 어떻게 도와줄지 연구한다. 그러나 지적한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인정한다. 그러나 그런 일부의 사람들 때문에 기독교 전체가 욕먹는 상황은 조금 억울하다(웃음).

또, 교회의 다른 면도 좀 봐주었으면 좋겠다. 교회가 자주 듣는 말이 ‘왜 봉사하지 않느냐’는 것인데 실제로는 상당히 많은 일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구호단체도 거의 대부분 기독교단체이고 사회복지사의 50~60%가 기독교인이며, 사립봉사기관들의 80~90%가 기독교단체라는 통계도 있다. 성경에 나오듯 우리의 기본적인 생각은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것’이기 때문에 잘 밝히지 않는 것이다. 때로는 개신교가 너무 지탄만 받으니, 속상한 마음에 (이런 내용들을)밝히고 싶을 때도 있다(웃음).

 

편집장: 선교사나 단기선교의 배타성에 대해서도 할 얘기가 있을 것 같은데.

 

사신: 아프간의 사람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돈이나 병원, 학교 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필요한 것을 준다는 것을 미끼로 ‘우리가 이것들을 주니 종교도 가져가라’는 식의 면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다. 봉사를 빌미로 종교를 강요하는 것은 배척이라고 생각한다.

 

목사: 바로 그것이 오해다. 중동에서는 그런 일이 없다. 가끔 단기봉사팀이 객기를 부려 그런 일이 있다고는 하는데, 그 때문에 선교사들이 속상해 한다고 들었다. 그들에게 예수를 믿게 만든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사신: 그러나 그런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 않은가. 예상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교계의 대책은 도대체 무엇이 있었나? 수많은 사람들이 평화대축전에도 참가하지 않았나.

 

목사: 평화대축전을 끝까지 말리지 못한 것은 후회되는 부분이다. 큰 단체가 주관했지만, 일반적인 선교단체들은 대부분 말렸다. 평화대축전과 같은 것이 기독교계의 일반적인 정서는 아니다.

사신: 그렇더라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 아닌가. 어쨌든 그 사람들도 ‘교회’라는 하나의 이름에 묶여있다. 그 책임은 개신교에서 교인들을 관리하지 못하고 교육하지 못한 것에 있다.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다.

 

목사: 개신교 내의 교회라는 단체는 각자의 주권을 가지고 있고 상당히 민주적이다. 마치 네티즌들과 비슷하다. 통제가 안 되지 않는가(웃음). 여러모로 억울한 점은, 그런 식으로 ‘튀는’ 사람들에 대한 지탄이 개신교 전체로 온다. 그러나 그런 이들이 결코 교회의 주류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으면 좋겠다.

 

사신: 일부라고 보기에는 너무 많다. 우리나라 내에서의 전도행위도 마찬가지다. 나도 일주일에 서너 번 잡힌다. ‘주류’가 아니라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존재하는데 그것이 기독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기독교가 개선할 부분이 있는데도 그대로 이끌고 나가는 것이 문제다.

‘소수’라고 하기에는, 문제가 있는 교회나 교인들이 너무나 많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는 말이 있다. 남들에게 베풀기 전에, ‘수신(修身)-본인을 다스리고, 제가(齊家)-‘교회’라는 집안을 다스려야 하는데 개신교는 그걸 못하고 있다.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그 책임을 회피하는 걸로 보인다.

 

목사: 그런 교회는 꼽을 수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에 교회가 수 만개 있다. (문제가 있는 교회가)많은 수 존재한다고는 하나, 성도의 비율로만 따져도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분명히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고쳐야 하는 부분이다.

 

편집장: 한국 교회에 대한 비판이 이루어진 것 같은데, ‘개신교’라는 종교 자체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사신: 타 종교에 대해 배타적이다. 일부라고는 하지만 단군상 등 타 종교의 동상이나 건축물들을 훼손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개신교는 근본주의적이기 때문에 시작이 같아도 끝이 다르면 다르다고 본다. 심지어는 이슬람의 알라도 기독교 여호와의 다른 이름이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목사: 우선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모든 것들이 다 유대교 사상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뿌리가 같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대한민국은 세계 종교학계의 ‘연구 대상’ 중 하나이다. 그들은 한 나라에 뚜렷하게 3대 종교가 있는데 별 다툼 없이 지내는 것이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생각한다. 종교가 다르다는 것은 신념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인데, 그 ‘다름’을 어떻게 관용하고 사는 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서로가 다르다는 것은 인정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신교가 다른 종교와 다르게 봐달라고 바라는 것은 그것대로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종교가 다르기 때문에 너와 나는 적이다’라는 판단은 잘못된 것이다.

 

편집장: (사신에게) 오히려 안티기독교인들이 배타적으로 개신교의 신념을 배타하는 것은 아니냐는 의견 같은데.

 

사신: 개신교를 배타시키자는 이유를 보면, 개신교에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있고 종교로서의 가치가 떨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 양면성이 있다고는 하나 ‘개신교’라는 것은 절대적인 신앙이지 않은가. 수많은 분파가 있다는 것은 분명 논리적인 모순이 있다는 것이고 종교로서 갖는 가치에 문제가 있다고 여겨진다.

기독교안티들이 개신교를 싫어하는 것은, 대부분 한국의 개신교가 싫다는 것이다. 싫은 이유에는 물론 각자 개인적인 이유를 갖고 있다. 개신교를 무조건적으로 배타하자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부분 때문에 배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름 정당한 배타라고 생각한다.

목사: 우리가 교인들의 인성을 훈련시키는 부분에 대한 교육이 부족했다. 한국의 개신교는 80년대부터 비로소 성장했다고 본다. 이제 겨우 이십 년 사이에 이 정도 성장한 것이다. 이제부터 많은 것들이 변화될 것이다.

 

편집장: 서로 대담을 해 본 소감이 어떤지.

 

사신: 개신교에 대해 알고 있던 그대로였다. 우리의 입장과 주장을 말하다 보니, 개신교의 의견을 말하지 않았을 뿐,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목사: 교회에 대한 오해 같은 것들은 좀 풀렸으면 좋겠다. 교회에 대한 지적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가 있는 사람들의 잘못이 개신교 전체의 잘못으로 비춰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식의 고리는 좀 끊어졌으면 한다.

 

                           

                 

  ▲개신교와 안티기독교의 관계가 개선될 수 있을 것인지에 관한 가능성은, 서로를 이해해 보려는 양 측의 노력 여하에 달려있을 것이다.©뉴스미션

 

이번 대담은 양 측이 각자의 생각을 밝히고 서로의 의견을 들어봄으로써, 절대 화해될 수 없을 것 같은 개신교와 안티기독교의 관계의 개선 가능성을 모색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개신교와 안티기독교는 이번 아프간 피랍 사태를 기점으로 서로 정면으로 마주보게 되었다. 앞으로 이들이 이 마주침을 계기로 더욱 멀어질지, 아니면 한 발짝이라도 가까워질지는 서로가 서로를 조금이라도 이해해 보려는, 노력 여부에 달려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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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NewsMissi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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