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슨이 새언약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집을 위해 계획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소위 '대체신학'(Replacement Theology)를 그가 비판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있어야 할 듯 싶다.
'대체신학'이란, 신약의 경륜 하에서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에 대한 예언은, '교회'로 '대체'되어 버렸고, '유대인'들에 대한 예언은 '교회'에 대한 예언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여기에 묘한 긴장이 있음을 우리는 간파할 수 있다. 이 '대체신학'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교회'가 도대체 누구를 의미하는가 하는 점이다. 이 '대체신학'의 문제점은, '교회'를 언급할 때에 유대인과 대립된 의미로서의 '이방인'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본다.
홀리죠이는 이런 류의 '대체신학'을 비판한다. 성경에서는 분명히 '교회'를 '유대인'만도 아니고, '이방인'만도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이 연합하고 화목하게 된 그 무엇으로서의 '교회'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예, 엡2:11-22, 골3:10-11).
유대인없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있을 수 없고, 이방인 없는 그리스도인 유대인들이 있을 수 없다. 유대인과 이방인들을 대립된 대상으로 파악하려고 하는 '대체신학'은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포슨이 이런 '왜곡된 대체신학'을 비판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하지만, 그가 '대체신학'이라고 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하게 여기는 대목이 바로 그가 이 '대체신학'을 운운하면서, 바로 예레미야31:31의 예언이 유대인들에게만 적용된다고 주장하는 부분이다. 예레미야31:31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집과 유다집에 새언약을 세우리라" 면서, 바로 '이스라엘집과 유다집'을 언급하고 있다는 이유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그의 주장이 과연 타당한가? 예레미야31:31에서 말하는 "새언약"이 정녕 '이스라엘집과 유다집', 곧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바로 다음 구절에서 예레미야가 말하기를, "이 (새)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고 있으며, 그 언약을 33절에서 구체적으로 명시하기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이 구절들이 포슨의 견해를 반박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예레미야가 31절에서는 새언약의 대상이 "이스라엘집과 유다집"이라고 명시해 놓은 뒤에, 33절에서는 "이스라엘 집"만 언급하고 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왕국이 하나의 '이스라엘'로 통합되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만이 아니다. 과연 이 구절의 '이스라엘집'이 과연 누구를 가르키는가 구구한 논의가 있음을 전제하고, 그 어떤 논의라 하더라도, 호세아1장에 등장하는 '로암미'(나의 백성이 아니다), '로루하마'(긍휼을 얻지 못하였다)라는 구절과 이것을 받아서 베드로사도가 말하고 있는 '선택된 백성들'이 이전에는 '로암미'였고, '로루마하'였던 자들이었음을 언급하고 있는 벧전2:10을 빼놓아서는 안될 것이다.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로암미)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로루하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곧, 이전에는 백성이 아니고, 긍휼을 얻지 못하였던 이방인들이 이제는 '선택된 백성'이 되었고,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께 긍휼을 얻은 자들'이 되었다는 것이 바로 유대인사도였던 베드로의 영감받은 선언인 것이다.
포슨은 바로 이 베드로의 영감받은 선언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감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예레미야의 예언 중에 나오는 '이스라엘'은 결코, 유대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하고 있는 바로 '교회'인 것이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이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진 바로 그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교회'야말로, 새언약이 성취된 자들의 모임이다. 곧, 하나님의 법이 그 마음에 새겨진 자들인 것이다.
이러한 홀리죠이의 주장은, 결코 '왜곡된 대체신학'이 아니다. 오히려 '성취신학'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신약이 바로 구약의 성취라고 해야 하지 않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것을 비아냥거려서, 그것을 '대체신학'이라고 놀린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성취를 비아냥거리는 일이다.
이 '성취신학'은 결코, 새언약의 대상들에 '유대인'이 포함되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복음이 온세상의 복음이 되는 것은, 그 마음에 하나님의 법이 새겨지는 축복이 유대인에게만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온 세상에 흩어져 있는 선택된 자들, 곧 이방인들 중에서 택하심을 받은 택자들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곧, 유대인과 이방인들 중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택자들이 바로 '이스라엘'인 것이다.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함을 받게 되는 이들이 바로 '이스라엘'인 것이다. 육적인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이 아니고, 바로 영적인 이스라엘이야말로 진정한 이스라엘인 것이다.
이것은 결코 '대체신학'이 아니다.
'성취신학'이다.
이 하나님의 '성취'를 '대체'로 폄하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포슨이, 비록 이런 의미로서의 '이스라엘'을 인정하면서도, 새언약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것을 그가 제시하고 있는 신약성경의 순서를 따라서 비판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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