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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유해무교수의 변질된 `개혁교회론`

baromi 2007. 6. 13. 10:27
 

유해무교수의 변질된 ‘개혁교회론’


‘개혁교회론과 가정교회’ 2005년 5월 21일 서울영동교회당에서 열린 미래교회 월요포럼에서 강의한 강의 제목이다. 먼저 내용을 살펴보면 전체적인 요지는 우리가 고백하는 웨스트민스트신앙고백서에 바탕을 둔 교회론(교회정치)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일전에 올린 글의 결론이 아래와 같다고 인정한다면 유해무교수의 주장은 코닷의 주장과 상반되는 것임이 분명한데 무엇을 덧붙이려 그곳에 갔을까? 그것이 정말로 고신교회,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해 옳은 발걸음이었을까? 


“실체 없는 가정교회 논의를 가정교회 논의를 가정교회 논의는 고신교회의 정체성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해 본다. 웨스트민스트 표준문서에 기반을 둔 ‘고신헌법’(장로교정치)가 뛰어나 보이지만 굳이 이것을 바꾸려 하는 것은 분명 세속적인 이유에서 일 것이다.”


코닷은 가정교회의 사례를 중심으로 ‘성경적수용’이라는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유해무교수가 주장하는 ‘개혁교회론’과 거리가 멀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이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유해무교수가 그곳에서 강의한 이유가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라면 가지 않았을 것을....굳이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발제의 특징과 한계’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유해무교수가 주장하는 결론은 이것이다.


“장로교회는 은혜의 방편론, 직분론, 예배와 교회정치에서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그럴 때에야 우리 주변에 있는 다양한 목회 방법론을 단적으로 배제하지 않고 창의적으로 수용하고 정체성을 바로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 참석한 이들이 이것과 저것을 고려하여, 창의적인 목회 방법을 계발하며, 동시에 장로교의 전통을 존중하고 자매교회와 협력 사역자의 면모를 확보하기를 바란다.”/ 유해무교수 ‘개혁교회론과 가정교회’ 中


유해무교수의 강의안을 세밀히 살펴보면 그는 목회를 성령의 사역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장로교회 은혜의 방편론, 직분론, 예배와 교회정치 성령의 은사, 성례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언급하고 있다. 특히 가정교회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 ‘위로부터의 교회론’(개혁교회론)을 주장하고 있어 그가 지난날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걸어왔던 길(구약, 신약)의 의미를 잘 알고 있음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목회의 방법론을 단적으로 배제하지 않고 창의적으로 수용하자는 그의 주장을 보면 다소 의문이 간다. 무엇을 어떻게 창의적으로 수용하고자 하는 것일까? 그가 주장하는 개혁교회론이 이것을 담보하지 못하는 것일까? 무엇이 새롭게 수용되어야 한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개혁교회론’ 자체가 새롭게 되어져야한다는 전제를 가진  마당에.....


잠깐 미뤄두고 ‘코닷’의 평가를 살펴보자 ‘가정교회 창의적으로 수용하자’ 유해무박사, 월요포럼에서 주장 이라는 제목으로 유해무교수가 가정교회 논의를 긍정적으로 수용한다는 뉘앙스풍의 기사를 게제하고 있는데, 핵심적인 인용구 3가지를 살펴보자.


“교회는 전도에 지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면서 이런 맥락에서 가정교회를 상당부분 인정하는 주장을 폈다.”


“그는 가정교회는 장로교회의 목사직뿐만 아니라 장로직에 대해서도 강한 반성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장로가 가정교회의 목자가 된다면 가정교회가 지닌 장점도 살리고 회중교회론도 극복할 수 있으며, 목자를 선발하는 인선위원회도 당회이면 되고 안수하는일도 장로로 세우면 해결 될 것이라고 구체적인 수용안을 제시했다.”


“유박사는 결론에서 장로교회는 은혜의 방편론, 직분론, 예배와 교회정치에서 정체성을 확립하여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그럴 때에야 우리 주변에 있는 다양한 목회방법론(가정교회를 포함한)을 단적으로 배제하지 않고 창의적으로 수용하고 정체성을 바로 확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의를 결론 짓고....” /코람데오닷컴


물론 그의 글을 통해서는 목회방법론(가정교회를 포함)을 어떻게 창의적으로 수용하자고 하는 지에 대해서 언급이 없다.(동영상을 보면 그 의미를 이해 할 수 있으려나)... 분명한건 유해무교수의 글 속에서 ‘개혁교회론’의 입장에서 볼 때 ‘가정교회’가 다분히 성경에서 벗어나있으며 그 역기능 또한 만만치 않다는 논조를 들리건만 유독 코람데오닷컴은 이 글을 유해무교수가 수용하고 옹호하는 논조를 글을 쓰고 있다. 과연 유해무 교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나 같으면 즉시 문제를 제기 했을 법도한데.. 잠잠한 유해무 교수를 보면서 그의 우유부단함이 새삼 새롭지 않게 느껴진다.



가정교회논의는 중요하다. 교회를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것이 이 문제에 잘 나타나있기 때문인데, 사실 유해무교수의 말처럼 우리는 ‘개혁교회론’이 성경적인 교회관임을 고백해왔지만, 새로운 ‘가정교회’논의에 휩쓸리면서 우리의 교회론을 낡은 것, 목회현장에 새롭게 바뀌어야 할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물론 코람데오닷컴이 여기에 앞장서고 있고.....  사실 ‘가정교회’란 교회의 거대화 세속화를 통해 나타난 현대교회의 문제점 중  하나의 극복 방법론에 불과한 것인데, 이것이 마치 성경적인 교회관으로, 창의적 수용대상으로 여겨지는 우리시대 교회의 모습들이 애처롭다. 특히 위로부터의 교회를 믿고 있는 예장고신이 이에 앞장서고 그 교회의 신학교수가 들러리나 서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하다.


유해무교수의 ‘개혁교회론과 가정교회’ ‘신학과 현장’의 괴리를 주장하면서도 그 원인에 대한 이해가 다른 것이 우리가 문제를 다르게 보는 근본 원인은 아닐까? 한국장로교회가 그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을까?(교세적인 측면에서)


“미국의 장로교회가 400만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통계는 충격 그 이상이다. 31년간 미국 유니온 신학교(Union Seminary in Richmond, Virginia)에서 교수하였던 리쓰(John Leith)는 한 출판사의 의뢰를 받고, 신학교육의 관점에서 미국장로교회 안의 위기를 진단하였다. 그가 말하는 교회의 위기는 미국장로교회의 교인이 줄고 목사와 선교사와 특히 남성 신학생 수가 격감하는 상황을 말한다. 그는 이 위기를 신학교육과 바로 연결시키면서, 장로교회의 위기는 신학교가 교회의 효율적인 지도자를 양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충분한 단서가 된다고 말한다1). ‘교육받은 목회’(an educated ministry)의 위기이기도 하다.


       


비록 감소하고 있지만 장로교회의 정체성을 고수하는 미국 장로교회와는 달리 한국의 장로교회는 그 정체성을 유지하지 않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장로교회가 왕성한 지역은 한국이지만, 한국의 장로교회가 순수한 장로교회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지는 않다. 감리교회나 침례교, 또는 종파적인 교회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기 때문이다. 목회의 현장에서 그 영향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다. 안타깝게도 신학은 이런 현장에서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으면서 교회보다는 학당의 영향을 더 받고 있다. 신학과 현장의 괴리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었지만, 현재는 그 정도가 아주 심각하다.”/ 개혁교회론과 가정교회 中


        

출처 : 부흥과 개혁
글쓴이 : 광주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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