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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알파코리아 알파코스 정리 <2>

baromi 2007. 1. 12. 07:31
 
알파코리아 알파코스 정리 <2>

알파코스 긍정과 부정 종합정리 문제점 비판


 


이단연구가 이영호 목사의 알파코리아 알파코스 정리<1>에 이은 <2>로서 알파코스에 긍정과 부정 종합정리와 문제점을 비판한다. 이 내용중에 알파코스는 모든 참가자들을 모두 이단설로 알려진 양태론자들로 만들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니키 검불은『인생의 의문점들?』의 <성령은 누구신가?>에서, “성령은 유령이 아니라 인격”이라고 하면서 “어린이들의 수준에 맞게 정의 한다면, 성령은‘예수님의 또 다른 자기’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다른’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 주시리라고 말씀 하셨다.‘다른’이라는 말은‘같은 종류의’라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성령은 예수님과 똑 같다는 것이다.”라고 주장하니 문제가 심각한 것임을 지적하면서 니키 검블 저 이인수 역. 『인생의 의문점들?』서로사랑 간. 1997. p.128.

만일 알파 코스 참가자들이 이 교재대로 가르친다면 현재 2,350개 교회에서 참가 교인들을 졸지에 양태론 자라는 이단으로 만들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징후는 이미 모 교회 행정자료에서 나타나 있음을 밝힌다.


4. 긍정과 부정적 비판.

장로회신학대학 세계선교대학원에서 박보경 교수의 지도를 받은 석사학위(Th.M.M)논문<선교적 교회 관점에서 본 알파코스에 관한 비평적 연구>에서 백진석씨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몇 가지로 지적하고 있기에 이를 간추려 정리해 보기로 하겠다.(註는 필자의 소견이다.)

1) 긍정적인 면.

① 전방향 공동체로서의 소그룹형성.

다양한 방향을 지향한다는 의미의 전방향 공동체로서 하나님을 향해 있고, 세상을 향해 있으며 동시에 구성원 내부를 향해 전방향으로 열려있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註) 그러나 필자의 소견으로는 이것도 전천후형 신앙이어야 하지 종교다원주의적인 것은 곤란하다.

② 그리스도의 몸을 통한 복음전도.

알파코스는 그리스도의 몸을 통하여 전도하는 큰 특징이 있다.
그리스도의 몸을 통한 전도의 유익을 몇 가지로 정리하면, 먼저 기독교의 신앙과 내용과 의미, 그리고 적용을 개인적으로 탐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둘째, 서로 관심과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과 실천을 그리스도의 몸안에서 해결한다.

셋째, 그리스도의 몸은 상호협력적인 분위기에서 서로 알고 지낼 수 있는 자리가 된다.
넷째, 갈등이나 변화 그리고 결정 사항과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도록 도와준다.

다섯째, 영적인 면에 관심을 갖도록 도와준다.

여섯째, 평신도 리더십을 개발해주고, 영적 은사들을 발견하고 계발시켜준다.

일곱째, 경배와 찬양의 자리를 마련해 준다.

분명 알파코스의 가장 큰 특징은 복음 전도를 통한 영혼 구원에 있는데
그 전도는.
㉠ 인간관계를 통한 전도.
㉡ 문화를 통한 전도.
㉢ 교리 전도 3가지다.

註) 대사회관이 정립되어야 한다. 이것이 잘못돼 정부를 마귀의 집단으로 보는 여호와의 증인식이 된다면 안 되기 때문이다.

③ 평신도 역할의 재발견.

알파코스의 직임과 조직은 목회자와 평신도라는 전통적인 구조에 변화를 일으키고, 평신도의 역할을 재발견하게 만든다.
註) 반 성직적 태도는 비 전문가적 입장으로의 전락을 말해주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다.

④ 다양한 적용성.

알파코스는 각기 다른 유형의 성격을 지닌 사람들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다.
예를 들면 감각적, 감정적, 직관적, 사고적 유형의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한다.
註) 세상밖으로 나갈수 없는 그리스도인들은 그 어떤 이웃일지라도 내 몸같이 사랑해야한다.


2) 부정적 비판.

백진석씨는 논문에서, “알파코스는 긍적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함께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부정적인 면이 감추어져 있음을 간과 해서는 않된다” 고 하면서 5가지를 제시하고 있다.(註는 필자의 소견이다.)

① 성령에 대한 왜곡

대부분의 성령운동처럼 알파코스도 성령의 사역을 강조하고, 신유, 방언, 치유, 금이빨, 금가루, 넘어짐 등 가시적인 것들을 중요시 여긴다. 초자연적으로 일너나는 가시적인 표적들이 성령 충만의 시금석으로 인식되고, 포적이 보이지 않는 경우 은혜 받지 못한 것이며, 성령 충만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져 낙심하고 정죄감에 빠지는 부작용도 생길수 있다. 성령의 활동과 역사를 현상적으로 접근하고, 신비주의적 감정에 호소함으로서 광신주의라는 비판을 받을 여지가 있다.

註) 한편 알파가 성령을 강조하고 있는 이유를 “알파가 성령에 관한 주제를 강조하는 것은, 많은 이들이 살아게신 하나님의 성령에 대한 경험이 매우 부족하기 때문이다.” 라고 주장하고, 마이클 그린 저. 유용국 역. 『Alpha 코스』서로사랑 刊. 2004. p.255.

“머리에서 가슴으로,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라고 주장한다.마이클 그린 저. 유용국 역. 『Alpha 코스』서로사랑 刊. 2004. p.254.


② 평신도와 성직자의 관계 모호성.

알파코스는 대부분 평신도들이 중심이 되어 진행된다.
알파코스는 평신도들의 역할과 리더쉽에 무게중심을 둔다.
그러나 이것은 자칫 평신도와 성직자 간의 직임과 계급의 구분까지 모호하게 만들 수 있다. 성도는 계급에 있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서로 간에 구별이나 차이가 없다. 하지만 직임에 있어서는 각자의 부르심과 역량에 따라 구별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③ 사회적인 책임성의 결여.

선교적 교회가 하나님의 선교사역을 수행함에 있어서 그 범위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 차원까지 포함하는 통전적 선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알파코스의 사역은 사회적인 차원도 고려하는 통전적 선교 사역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알파코스는 개인 구원과 개인적인 체험이 주로 강조되기 때문에 사회적. 역사적 책임성은 거의 간과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④ 무비판적 수용.

알파코스는 교회가 없거나 개척 단계에 있는 지역에 알파코스를 통해 팀을 만들고 리더를 세워 도시선교의 교회 개척을 이루는 유용한 전략이다.
그러나 개교회의 목회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타교회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하는 식으로, 일회성 전도행사 혹은 무비판적으로 알파코스를 수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註) 이것은 불을 보듯 빤한 것이다.
작은교회, 개척교회는 성장에 목말라있다.
그만큼 사명의식이 강하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그만큼 성급한 성공을 꿈꾸고 있다는 병적인 현상도 되는 것이다. 이것은 대교회에 비교한 상대적 빈곤감에서 비롯된 면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성장 비결을 전수받는 길이 있다면 비록 사이비성이 있다는 목사라 할찌라도 <목회성장 세미나>라면 비결을 배우기 위해 물밀 듯 모여들고 있다.


⑤ 게토화의 위험성.

알파코스는 강력한 소그룹 공동체를 형성하기 때문에 교회내에서 오히려 게토화 될 위험을 안고 있다. 게토화의 위험성은 알파코스 원리라고 말할 수 있는 인간관계 전도는 오히려 교회 자신만을 향한 내향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게토화를 양성하는 통로로 전락될 수도 있다.


3) 종합적 정리와 비판.

초기 알파코스와의 비교가 어렵지만, 니키 검블이 <능력전도>를 주창하는 VCF(Vineyard Christian Fellowship)의 존 웸버와 그 교회팀을 HTB(Holy Trinity Brom pton) 교회로 초청하면서 부터, 1976년 찰스 만함(Charles Marnham) 신부에 의해서 시작했던 알파코스에 변화가 있었다고 보여진다.
니키 검블 저 이인수 역. 『인생의 의문점들?』서로사랑 간. 1997.p.225.


알파코스는 1976년 찰스 만함에서 기본 4주과정으로 시작돼 1981년 존 어바인에 와서 10주 과정으로 확대 되고, 1985년 니키 리로 와서 체게화 되었으며 이후 니키 검블에 와서 자료도 재정립하고 체계화 하여 전 세계로 확산됐다고 한다.

바로 이 니키 검블은 <능력전도>를 주창하는 존 웸버와 교회팀을 교회로 초청하였었다.
그렇다면 알파코스는 찰스 만함의 순수한 알파토크와 존 웸버의 능력전도가 혼합된 프로그램으로 재정립되어 제3의 물결을 타고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고 볼수 있다.

알파코스가 채택한 기본 틀로는 <능력전도>말고도 또 하나의 지나칠 수 없는 기본 이론이 있는데 그것은 레디 M. 러셀의 『현대신서 42 - 기독교 교육의 새전망』이 제시하는 대화교육 이론이다. 우리가 알파코스를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알파토크의 기본 틀이 되는 레디 M.러셀의『기독교 교육의 새 전망』이 제시하는 대화교육 이론과, 존 웸버가 주장하는『능력전도』라는 것이다.

(1) 존 웸버 의 『능력전도』.

능력전도의 대가로 통하는 존웸버는 누구인가?
그는 그의 저서『능력전도』의 <시작하는 글>에서, 4대째 불신자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하며, 째즈 연주자로 인기가 높았던 29세 때 결혼을 했고(15쪽), 1974년 <오르바 린다 형제교회>협동목사직을 사임하고(76쪽), <풀러 전도 및 교회성장 연구소>에서 일을 하다가(22쪽), 1978년 VCF(Vineyard Christian Fellowship -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 소재) 교회 담임목사를 맡고 있으며, 1982년 1월에 개설된 풀러신학교 「기적과 교회성장」이라는 과목(교수목록 번호 MC:510)의 강좌 강의를 맡고 있다고 한다.(11쪽)

주목되는 것은, 존웸버는 빈야드교회에서 <예수의 사람들>에 빠져있는 젊은 청년을 자신이 시무하는 빈야드교회로 초청한 후 ‘성령체험을 하게 하는 그를 필요로 했다’ 고 한다.존 웸버 저. 이재범 역. 『능력전도』나단 간. 1988.p.54.

캘리포니아에서 다시 일기 시작했던 이 청년의 <예수의 사람들 - Jesus People>에 대해서, 쿠르트 코흐는 『사탄의 전술 전략』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예수사람운동과 유사한 운동이 소위 성령은사운동인데 이것은 방언운동 보다는 훨씬 광범위한 영역이다.

성령은사운동은 비단 방언운동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신앙치료요법, 환상, 예언 등 성령의 모든 은사를 망라한다.”하고 “유사성령운동자들은 사탄의 엘리트 집단이자 전위부대이며 사탄은 이들을 이용하여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속해있는 진실된 양들을 공격하려고 한다.”며 주의를 요하고 있다. 쿠르트 코흐는 저. 이중환 역.『사탄의 전술 전략』예루살렘 간.1986.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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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웸버는 “능력전도란 합리적인 동시에 합리성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복음을 전하는 방법 - 복음을 선포함과 아울러 표적과 기사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이는 또한 성령께서 영감을 주시는 가운데 그 능력을 덧입어서 하나님의 임재를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드러내 보여 주면서 복음을 증거하는 것” 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존 웸버 저. 이재범 역. 『능력전도』나단 간. 1988.p.69.

존 웸버는, 예수께서 치유사역이나 귀신을 쫏아 내는 일에 그 사역의 대부분을 할애하셨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4복음서 3,774개의 절중 12%에 해당하는 484개의 절이 질병의 치유나 죽은 자를 살리신 사건을 기술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바울의 예를 들고 있었다.

바울이 아레오바고에서 웅변적 설교를 했을 때는 단지“몇 사람이 그를 친하여 믿었을” 뿐이었으나, 고린도에서는 많은 사람이 믿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는데(행18:10) 이것은 고린도에서는 아레오바고와는 달리 복음전도의 방법을 바꾸어 복음 선포와 아울러 성령의 능력을 드러냈기 때문이라고 고전1:1, 4, 5절 말씀을 인용해 주장했다. 존 웸버 저. 이재범 역. 『능력전도』나단 간. 1988.p.85-87.

웸버는 능력전도와 프로그램전도를 비교하기를, “프로그램 전도는 은사의 도움 없이 메시지를 중심으로 하여 삶의 이성에-때로는 감정에- 호소하는 전도방법으로서, 보통 미리 준비된 메시지를 청중들에게 전달하는 일방적인 의사 전달과정 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이전도 방법이 잘못된 것 이라고 보지는 않지만, 프로그램전도가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는 말씀을 따라, 사람들에게 미리 준비된 내용의 복음을 선포하지만, 능력전도는 프로그램 전도와는 판이하게 달라, 복음전도 활동의 시기와 장소와 대상은 모두 성령께서 인도하신 바에 따르게 되며, 특정 상황에 필요한 메시지를 그때마다 성령의 조명하심에 의해 받아서 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존 웸버 저. 이재범 역. 『능력전도』나단 간. 1988.pp.81-63.


이러한 능력전도를 와그너는 제3의 물결이라고 칭한다. 웸버가 말하는바에 의하면 와그너는, 제1의 물결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일어났던 오순절 운동으로, 제2의 물결은 1960년대에 시작되어 개신교 주요 교파들과 카톨릭교회에 영향을 미쳤던 은사 갱신운동으로, 제3의 물결이란 새로운 물결이라기 보다는 은사 갱신운동의 발전된 다음 단계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존 웸버 저. 이재범 역. 『능력전도』나단 간. 1988.p.169..


웸버가 평가하는 위의‘은사 갱신운동’은
“첫째, 무용, 연극, 개혁적인 성가, 그리고 방언으로 부르는 노래 등을 사용함으로서 새로운 형태의 예배양식을 개발해 내어 생동감 있고 환희에 찬 음악운동으로 교회에 공헌을 했다. …
둘째, 소그룹 활동, 개혁적인 제자훈련, 그리고 기독교적인 공동체의 형성 등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인 경험을 선도해 나갔다. …
셋째, 성령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일깨우는데 고무적인 역할을 했다. …
마지막으로 기도, 성경공부, 명상, 금식과 같은 개인적인 영성 훈련 방법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데 기여한 바가 크다.” 고 평가했으나, 동시에 위험성도 지적하고 있었다. 존 웸버 저. 이재범 역. 『능력전도』나단 간. 1988.pp.177-179.


(2) 레디 M. 러셀의 『기독교 교육의 새전망』.

알파코스의 기초 교육이론이라고 볼수 있는, 레디 M. 러셀의 『현대신서 42 - 기독교 교육의 새전망』(정웅섭 역. 대한기독교서회 간. 1972)의 교육 이론을 간추려 보기로 하겠다.

① 이 책은 뉴우요오크 시 이스트 하렘(East Harlem)프로테스탄트 교구에서 교사와 목사로서 일한 14년 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쓰여진 책이다. 하지만 이것은 하렘지구의 단순한 생활기록은 아니고 오히려 이런 경험들 속에서 이룬 신학적 반성의 산물이라고 한다. 레디 M. 러셀 저. 『현대신서 42 - 기독교 교육의 새전망』정웅섭 譯. 대한기독교서회 刊. 1972. p.10.

번역자 정웅섭 교수는 그에 대한 이력으로, “특히 러셀 목사는 오랫동안 WCC 선교위원회에 창설된 ‘교회의 선교적 구조 연구 위원회’의 연구원으로 활약하여 참신한 실험 경험과 풍부한 실천 경험을 쌓았다.” 고 소개하고 있다. 이것은 그가 저서에서 제시하는 교육이론이 WCC의 공인된 것이라는 점을 말해 주는 것이다.레디 M. 러셀 저. 『현대신서 42 - 기독교 교육의 새전망』정웅섭 譯. 대한기독교서회 刊. 1972. p.213.


② 레디 M. 러셀은 기독교 교육이 잘못된 첫 번째 오류로, ‘기독교 교육이 교회의 포로가 되어 버렸다’는 점을 지적하고, 누가의 사도행전 2:42-47에 ‘크리스챤 생활의 고전적 형태’가 나타나 있는데, 이에 대한‘잘못된 이해’라면, 삶의 스타일이 고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거나, 고정화된 패턴으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기독교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면,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에 참여 할 수 있는 그래서 참여자가 불어나는 증인 공동체’ 라고 주장한다.레디 M. 러셀 저. 『현대신서 42 - 기독교 교육의 새전망』정웅섭 譯. 대한기독교서회 刊. 1972. pp.20, 146-149.


③ 러셀은 이 저서에서 변화하는 교육 이념으로서의 3가지 실마리를 제시하고 있는데,
첫째실마리는 “우리는 해답이 아니라 물음을 지닌 채로 살아갈 자유와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
다음 실마리로는 우리에게는 기독교 신앙에 관한 직관적인 지식(이 세계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이 필요하다는 것.
마지막 실마리는 우리들이 하나님과의 관계, 세계와의 관계, 형제와의 관계에서 우리의 삶을 구가할수 있게 되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레디 M. 러셀 저. 『현대신서 42 - 기독교 교육의 새전망』정웅섭 譯. 대한기독교서회 刊. 1972. p.36 -.


④ 그에 의하면, <교회교육의 장으로서의 여러 교회의 구조>를 대화적 성격, 참여형태, 성서적 자유의 축하잔치로 구분하면서, “교회의 여러 가지 구조 형태에 대응하는 구체적인 교육프로그램은 세 가지 점에 기초해서 때에 따라 바르게 선택. 결정 되어야 한다” 고 한다.

그 세 가지란 공동체가 첫째로 하나님과 이 세계 사이의 산 대화의 과정 속에 주체적으로 참여 하는일. 둘째로 그 증인 공동체에 특유한 형태와 그 기능 내지 과제를 확인하는 일. 셋째로 섬기는 주체로서의 공동체와 섬김 받는 상대와의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추구하는 일이라고 한다. 그는‘기독교 교육은 대화’, 즉 ‘대화는 기독교 교육의 구조’라고 주장한다.레디 M. 러셀 저. 『현대신서 42 - 기독교 교육의 새전망』정웅섭 譯. 대한기독교서회 刊. 1972. p.86 -.


⑤ 그는 호켄다이크가 ‘church Inside Out'에서, 현대의 카테키즘을 논하여, 그것은 “물음에서 물음으로 무한히 심화되어 가는 문제를 철저하게 사고해 감으로써 우리 자신이 문제를 추구하는 존재가 되도록 이끌림을 받는 그 물음이어야 한다” 고 했는데, 러셀은 “미래를 향해 열린 마음과 무한히 깊어져 가는 물음을 안고 삶을 살려는 용기를 가지고 사색하며, 사는 길을 배우는 한가지 방법에 참여의 카테키즘이 있다고 할수 있다.”고 하면서, 이렇게 성립하는 참여의 카테키즘으로 공동체, 놀이, 성서 라는 학습 분야를 가진다고 주장한다.레디 M. 러셀 저. 『현대신서 42 - 기독교 교육의 새전망』정웅섭 譯. 대한기독교서회 刊. 1972. p.138 -.


⑥ 특별히 행2:42-47에서 누가가 보여주는‘하나님의 선물에 대한 응답의 형태로 보여주는 친교생활의 총괄적 표현’으로,
ⓐ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임재 앞에 모인다.
ⓑ 그리스도인의 상호 교제. 참여(공동생활에 참여하는 일)가 빈민과 더불어 소유물을 함께 하는 일 가운데 구체화 되어있다.
ⓒ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나눈 식사를 반복해서 행하는 일. 곧 떡을 떼는 일이라고 한다. 레디 M. 러셀 저. 『현대신서 42 - 기독교 교육의 새전망』정웅섭 譯. 대한기독교서회 刊. 1972. p.149 -.

알파코스는 위와같은 러셀의 교육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볼수 있다. 이 내용은 WCC의 공인된 이론에 근거한 프로그램으로 그 잘못됨이 없다고 할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3) 알파코스의 문제점들 - .

알파코스의 프로그램 이론이 WCC의 공인된 기초이론에 근거한 것이라면, 알파코스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필자는 몇가지 중요한 문제점을 지적해 보고자 한다.

① 한 네이버 불로그에에 올려진 류영모 목사의 <뜨레스 디아스>라는 글을 보면, 월간《현대종교》1992/8월호에서도‘T/D는 좋은 것’이라고 했듯이,‘T/D(뜨레스 디아스)는 아주 좋은 그릇’이라고 강변한다. 그 그릇에 무엇을 담느냐가 중요하다고 한다.

알파코스라는 좋은 그릇에다 방언, 쓰러짐, 금이빨 변화 등을 용납하고 있는데, 이것들은 이미 한국교회가 ‘주의’내지‘참여금지’등‘경계의 대상’으로 지목한 것들이다.(레마. 빈야드에 관한 결정 등)
그렇다면 알파코스가 좋은 그릇(프로그램)에 한국교회가 경계 해야할 내용물을 담고 있는 한, 이것을 건전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② 알파코스가‘문화적 선교’를 한다면서,
교계가 경계를 요하는 방언, 쓰러짐, 금이빨 변화, 랩 등을 수용하고 있는데,
기독교인은 기독교문화를 창조해야할 사람들이지 모두가 선호한다고 해서 세속문화를 따라 가야하는 것은 아니다. 인류의 문화는 근본적으로 종교문화로서 세속문화는 이단이나 사이비종교나 이교문화인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바른 문화라고 보지 않는다. 바른 종교의 문화가 바른 문화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방향 선교를 이유로 아무것이나 수용하겠다는 발상은 위험할 뿐이다.
더욱이 방언, 쓰러짐, 금이빨 변화를 하나의 놀이문화처럼 체험시키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레디 M. 러셀의『기독교 교육의 새전망』은 “게토(특수지역)에 속한 어린이들의 학습 능력이 뒤떨어지는 것은 그들의 지능 때문이 아니라, 주로 게토의 빈곤과 차별 등 특수문화 때문이다.” 라고 했다.

알파코스는 그 문화적 환경을 개선해서 그리스도인 다운 삶을 살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중문화 혹은 청소년 문화의 물결을 타고 복음을 전하겠다고 하고 있으니 이것은 토했던 것을 다시 먹이는 것과 뭐가 다른가?

왜냐하면 회개하여 예수를 믿고 새로운 문화적 삶을 살게 해야 할 그리스도인들을 다시금 배척해야할 문화 속으로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는 종교적 산물이고, 바른 문화는 바른 종교의 산물이다. 잘못된 문화속에서 바른 신앙생활을 하게 하겠다는 것은 한낱 궤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마이클 그린의“알파는 교단 장벽을 넘어설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는 말이 마이클 그린 저. 유용국 역. 『Alpha 코스』서로사랑 刊. 2004. p.163.

무분별한 수용이라면 이것은 혼합종교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혹 사람은 구원할 수 있을지 몰라도, 바른 문화는 요원한 것이 되고 만다. 이것은 창녀를 구출한다면서 또다시 창녀촌에 셋방을 얻어주는 격이나 뭐가 다를 것인가?

마이클 그린의“특히 지금의 그리스도인들은 지난 250년 동안 서구에서 유행했던 이성주의 세계관에 대항하여 일어난, 현대의 감성주의와 반 이성주의의 위험에 빠져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고 했던 그 경고는, 알파코스에 참여 하는자 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특별한 경고라고 생각한다.마이클 그린 저. 유용국 역. 『Alpha 코스』서로사랑 刊. 2004. p.218.


『기독교 교육의 새전망』의 저자 레디 M.러셀 목사도“게토(ghetto, 특수지역)에 속한 어린이들의 학습 능력이 뒤떨어지는 것은 그들의 지능 때문이 아니라 주로 게토의 빈곤과 차별 등 특수 문화 때문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레디 M. 러셀의 『현대신서 42-기독교 교육의 새전망』정웅섭 역. 대한기독교서회 간. 1972. p.24.


③ 마이클 그린의 『Alpha 코스』는“신약성경에서는 교회의 구성원 모두가 교회의 주인이다.
사실 거의 모든 교단들이 이 올무에 빠져들어 성직자와 평신도를 뚜렷이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신약성경을 주의해서 보면 목회자와 일반인,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를 구분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면서,“기독교에서는 모든 성도가 같은 계급을 가지고 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이보다 서열상 높지 않다”라든가 “제사장이라는 명칭은 오직 예수님에게만 해당되는 단어이다.…피의 제사를 드리는 구약성경의 제사장은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다. 예수님은 제사장이시면서 자신이 몸소 희생제물이 되시므로 제사장직을 완성 하셨다. … 우리는 신약성경에서 성도들의 지도자를 제사장이라고 부르는 것을 결코 발견할 수 없다.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예수님께만 제사장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말한다.마이클 그린 저. 유용국 역. 『Alpha 코스』서로사랑 刊. 2004. pp.137-138.


이 문제는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원에서 봐야한다. 만일 비전문가가 전문가 노릇을 해도 괜찮다고 한다면‘꼬리가 머리 노릇을 하려고 하는 것을 용납하는 것’처럼 위험한 것이다.

④ 마이클 그린의 『Alpha 코스』는“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봉사에 관한 가장 보편적인 오해중 하나는 봉사는 교회 내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전통 교회에서는 버스 기사, 정치인 또는 공장 노동자는 단지 직업이라고 여기는 반면 선교사, 목사, 의사 또는 교사가 되는 것은 천직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이라는 분명히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라든가, “그리스도를 위한 섬김이 얼마든지 교회 밖에서도 이루어 질수 있다.”

또는 “그러므로 누구도 그리스도인의 봉사를 교회(헌금 위원, 안내자, 간사 또는 성가대원)에 한정시키려는 생각은 갖지 말아야 한다.”는 말로‘사회적 책임성’을 강조 하지만 마이클 그린 저. 유용국 역. 『Alpha 코스』서로사랑 刊. 2004. pp.154-156.

이것은 무모한 주장이다.
사회봉사를 위해 교회를 떠난 신자가 무슨 믿음으로 얼마나 지속하겠는가?
이것은 이글거리는 불덩이가 화로를 떠나면 사그라드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더구나 성직을 폄하 하는듯한 그의 주장은 교회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주장이다.

⑤ 알파토크의 ‘성령 이해’는 문제가 있다.
마이클 그린은“성령은 신자 안에 계신 하나님의 대리인이다.”라고 하는데,마이클 그린 저. 유용국 역. 『Alpha 코스』서로사랑 刊. 2004. p.254.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론에 있어서 성령을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믿고 있는지가 의심스럽고,“알파가 성령에 관한 주제를 강조하는 것은, 많은 이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령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과연 ‘성령은 경험의 대상인가?’라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며, 알파가 성령에 관한 주제를 강조하는 이유는“머리에서 가슴으로,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이라고 하는데, 과연‘하나님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고 알아야할 지적 탐구의 대상인가? ’라는 문제가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마이클 그린은 “자신들이 경험한 예수님을 다른 이들도 경험하고 발견할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이것이 알파 수련자들의 할일이라고 강조한다. 마이클 그린 저. 유용국 역. 『Alpha 코스』서로사랑 刊. 2004. p.11.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경험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主’라는 사실인데, 알파에서는 이 사실이 간과되고 경험의 대상이나 알아야 할 탐구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 문제점이다. 그는“내가 믿기는 계몽주의를 지배하고 있는 6가지의 주된 신념이 있었다.” 고 주장하고 있다,마이클 그린 저. 유용국 역. 『Alpha 코스』서로사랑 刊. 2004. p.312-.

즉 계몽주의는 인간, 과학, 사실에 대한 신념이었다. 어떤 사실은 증명할수 있으나 신앙은 증명할수 없다고 비판하면서‘하나님의 성령에 대한 경험’과‘머리에서 가슴으로,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를 강조했는데, 이것은 그가 비판하던 계몽주의에로의 회귀인 것이다.

알파코스는 모든 참가자들을 모두 이단설로 알려진 양태론자들로 만들 소지가 있다.
니키 검불은『인생의 의문점들?』의 <성령은 누구신가?>에서, “성령은 유령이 아니라 인격”이라고 하면서 “어린이들의 수준에 맞게 정의 한다면,

성령은‘예수님의 또 다른 자기’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다른’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 주시리라고 말씀 하셨다.
‘다른’이라는 말은‘같은 종류의’라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성령은 예수님과 똑 같다는 것이다.”
.라고 주장한다. 니키 검블 저 이인수 역. 『인생의 의문점들?』서로사랑 간. 1997. p.128.

만일 알파 코스 참가자들이 이 교재대로 가르친다면 현재 2,350개 교회에서 참가 교인들을 졸지에 양태론 자라는 이단으로 만들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징후는 이미 모 교회 행정자료에서 나타나 있었다.
그 교회의 <주말수양회>교안 <1. 성령님은 누구인가?>를 그대로 옮겨보겠다.

① 성령은 유령이 아니고 한 인격이시다.
성령님은 생각하시고, 그 분은 말씀 하시고, 그 분은 인도하시고, 그 분은 근심하신다.
※ 성령님은 “예수님, 그분”이지 “예수님은 그것”이 아니다.
그렇다. 그분은 또 “예수의 또 다른 자기”이다.
성령은 그리스어로 “파라크레토스” 라고 묘사되었다.
이 말은 “함께 나란히 불려 오는 자. 위로하는 사람. 용기를 주는 사람” 을 뜻한다.
예수님은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 주시마”고 말씀 하셨다.
“또 다른 보혜사”란 예수님에 대한 다른 표현이다.
다른 말로 한다면 성령은“예수의 또 다른 표현.
즉 사랑하는 백성들과 함께 하시는 또 다른 예수님”이시다.
.▶

그런데 어쩌랴! 니키 검블의 주장과는 달리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측 신앙고백에서는“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동일한 인격을 가진 영이시다.” 하고 있고, 기장의 신앙고백에서는“각 인격은 서로 혼합되거나 혼동되지 않으면서도 서로 완전히 분리될수 없다.”고 하고 있으며,
합동의 신복윤 교수의『기초교리학』에서는 “각위는 다른 위에 종속적으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존재의 질서상 성부가 제1위요, 성자가 제2위, 성령이 제3위라고 할 수 있다. 성부가 스스로 존재하심같이 성자나 성령도 자존자이시다.” 라고 하고 있다.신복윤 저『기초교리학』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교육부 간. pp.38-39.


‘다른 보혜사’를 보낸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 자신이 보혜사임을 전제로 하신 말씀이나 니키 검블의 『인생의 의문점들?』의 <성령은 누구신가?>에 번역된 표현대로 라면, 성자와 성령의 인격들 사이의 구별을 모호하게 하는 위험한 사상이다. 찰스 k. 바레트 저. 『국제성서주석 요한복음(2)』제33권. 한국신학연구소 간 1985. p.293.

성직자와 평신도를 구분없이 보려고 하듯, 삼위일체 하나님을 구별없이 말하는 것은 커다란 문제점인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터넷에 올려진 어느 교회 주말 수양회 교안을 보면, 방언 따라하기, 뒤로 넘어짐, 영무(성령춤)라는 춤추기, 생기 들이 마시기, 손수건 얹기, 찬송가 정해주기, 예언 등도 행하거나 가르쳐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가는 말.

과거의 이단들이 보수주의에서 싹튼 집단이었다면,‘알파 코스’는 진보주의적 교육 이론(이론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은 아님)을 배경으로 한 ‘교육집단 운동’으로 볼 수 있겠다.
러셀의 교육 이론을 추구하는 기장교단의 경우, 주입식 ‘일방통행 교육’에서‘쌍방 통행식’대화 교육을 추구하고 있지만, 알파코스에서 처럼 ‘방언, 쓰러짐, 금이빨 변화’등을 무분별하게 용납하지는 않고 있다.
이로 본다 하더라도 알파코스는 진보적 교육 이론에다가 한국교회가 이미 범 교단적 결정으로 경계하고 있는 것들을 혼합한 위험한 평신도 교육 운동으로 봐야 하겠다.
분별 있는 알파코스를 돌연변이 같은 알파코스와 싸잡아 보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왜냐하면 핵심교재에서 문제가 들어났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기본교리 하나에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다른 교리에 영향을 끼쳐 기본교리를 훼손하게 된다면 이단이라 규정할 수 있고, 이단이라 할 수는 없지만 이단과 다름없이 그 폐해가 매우 큰 경우에 ‘사이비’라 하고,‘사이비보다는 덜하지만 교류나 참여 금지 등 규제가 필요한 경우에 사이비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할수 있다’ 라고 예장(통합)에서 결정한바 있거니와, 이미 교리적 문제점이 들어났다.
끝.

【참고도서 목록】

1. 마이클 그린 저. 유용국 역. 『Alpha 코스』서로사랑 刊. 2004.
2. 니키 검블 저 이인수 역. 『인생의 의문점들?』서로사랑 간. 1997.
3. 니키 검불 저. 이인수 역. 『삶의 스타일에 도전하기』서로사랑 간. 1997.
4. 레디 M. 러셀의 『현대신서 42-기독교 교육의 새전망』정웅섭 역. 대한기독교서회 간. 1972.
5. 존 웸버 저. 이재범 역. 『능력전도』나단 간. 1988.
6. C.피터 와그너 저. 이재범 역.『성령의 능력과 교회성장』임마누엘 간. 1987.
7. 백진석.「선교적교회 관점에서 본-알파코스에 관한 비평적연구」장신대 세계선교대학원 논문 2006.
8. 월간《현대종교》1992년 7월-9월호 .


기독교이단사이비연구대책협회 .

연구소장 이 영 호 목사
출처 : 변하지 않는 향기
글쓴이 : 눈썹강도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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