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신학자료

바르트 신학에 있어서 사건

baromi 2006. 12. 28. 07:05
출처 블로그 > 신학
원본 http://blog.naver.com/pleeq/80017958737
바르트 신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용어는 "사건"이라는 단어이다.  그는 거의 모든 신학적 개념들을 사건으로 설명한다.  그에게 있어서 교회도 사건이고 계시도 사건이고 심지어 하나님도 사건이다.  사건을 독일어로는 ereignis라고 하는데 이것은 번역하기가 그리 쉬운 단어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말하는 어떤 역사적인 사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아무리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건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그 사건이 유의미한 사람에게만 사건이 될 수 있다.  바르트에게 있어서 사건이란, 어떤 존재가 자기 자신을 실재화(actualizing)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실현주의(actualism)은 바르트 신학을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Hunsinger의 How to read Barth? 가 잘 소개하고 있음)

바르트에게 있어서 사건은 진리의 개념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근대 이전에는 계시가 진리였다면 근대 이후에는 이성에 따른 보편적인 법칙이나 규범이 진리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바르트는 여기에 반대한다. 아무리 보편적인 규범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이 실재로 현실 세계에 실현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진리란 보편적인 명제가 아니라 사실(fact)이다. 즉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이 실재로 일어났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중요하지 그것이 보편적으로 맞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수학이나 과학에 있어서 진리란 법칙이다. 하지만 역사에 있어서 진리란 사실이다.  역사는 법칙을 다루지 않고 사건을 다룬다. 그리고 이 사건 속에서 진리를 발견한다.  따라서 바르트가 사건을 진리로 다루겠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역사적인 관점에서 신학을 하겠다는 의미가 되겠다.  그 결과 사건은 바르트 신학에 있어서 중심을 차지한다.  이것은 그의 신학에 있어서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나타나다. 바르트의 책을 조금이라도 읽어 본 사람은 "갑이 그 자체로는 갑이 아니지만, 오직 ---하는 한 갑이 된다"라는 표현을 수도 없이 보게 될 것이다.  즉 진리는 "이다(being)"가 아니라 "된다(becoming)"이다.  

이것을 그의 계시론에 적용시키면 다음과 같다.  성경을 예로 들어 보자.  성경은 그 자체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오직 그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는 한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  자 그렇다면 바르트에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가?"라고 물어보자.  사실, 이런 질문은 바르트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바르트에게 있어서 답은 예/아니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신학을 변증법적 신학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동일한 성경이라 할 지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차이점이 생기는가?  만약 바르트가 그 차이점을 우리 인간의 지식이나 노력 혹은 종교적 열심으로 설명했다면,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이라는 비판을 면할 길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바르트에게 있어서 그 차이점은 하나님께 달려있다. 즉,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면 말씀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의 예를 더 들어 보자.  바르트는 교회를 "모이기" "짓기" "보내기"라고 정의한다.  교회는 "모임", "건물", "파송"이라는 명사로 표현하지 않고 동명사로 표현함으로써 교회의 역동성을 강조한다.  이 역동성은 물론 인간의 활동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를 가르킨다(이 점에서 역사 바르트 신학은 자유주의 신학과 선을 긋는다).  즉, 교회 그 자체로써는 교회가 될 수 없고 하나님께서 그 속에서 역사하는 한 교회는 진정으로 교회가 된다.

이와 같은 바르트 신학은 상당히 매력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역동적 신학은 정형화된 전통신학보다 훨씬 우리에게 강한 메세지로 다가 오는 것 같다.  그에게 있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는 한, 무용지물이 되어 버리고 만다.  그것은 앞에서 잠시 살펴 보았지만 성경이나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우리는 바르트를 배우지 않더라도 그러한 신학의 역동성을 칼빈에게서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고 본다. 칼빈 역시 성령께서 조명의 역사를 하지 않는다면, 성경은 단지 죽은 문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교회 역시 교회가 단순히 어떤 제도가 아니라 우리를 낳고 기르는 신자의 어머니이다.  그러나 교회나 성경은 우리 밖에서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로 그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 선물들은 인간들을 위하여 주어진 것이나 인간들을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바르트와 칼빈은 큰 차이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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