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역사자료

금식: 개혁교회에서 사라진 전통

baromi 2006. 12. 28. 06:53
출처 블로그 > 신학
원본 http://blog.naver.com/pleeq/80022177614
개혁신학에 있어서 금식은 거의 잊혀진 주제가 된 것 같다. 내가 이곳에서 만난 개혁 교회의 목사들이나 신자들 중에서 금식을 한 경험이 있는 사람을 한 명도 만난 적이 없다. 오히려 금식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였고 금식이 좋은 것은 분명 하지만 기도와 같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라는 견해를 보였다.  사실, 칼빈에 대한 연구가 엄청나게 많이 진행되었지만, 칼빈이 가졌던 금식에 대한 견해에 대해서는 단 한 건의 연구논문도 나온 적이 없다.  이것은 금식에 대하여 개혁신학이 얼마나 무관심한 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라 할 것이다.

종교개혁 당시의 문헌들을 대강 살펴보면, 개혁가들은 금식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부정적이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특히 그들은 습관적이거나 미신적인 중세 카톨릭 교회의 금식을 거부하였다. 무엇보다 금식 안에 내포되어 있던 공로사상에 대해서 공격하였다. 그 결과 대표적으로 사순절 기간에 행하여진 금식의 관습을 금지시켰다.  이것은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의 금식에 대한 공격과 유사한 점이 있다. 바리새인들은 금식을 통하여 자신들의 의를 드러내려고 하였고, 예수님은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가증스러운 지를 설교하셨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올바른 금식을 강조하였을 뿐이지 금식 자체를 거부한 것은 아니다.  예수님 스스로가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금식하셨다. 또한 성경에 볼 때 금식은 기도와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마가복은 9장에서 제자들이 자신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이유를 물었을 때, 예수님은 기도와 "금식"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답하셨다[한글 성경에는 금식이라는 말은 빠져있지만 대다수의 사본에는 금식이라는 말이 들어 있다].

개혁가들도 중세시대의 잘못된 금식을 비판만 한 것이 아니라, 참된 금식을 가르쳤다는 사실이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칼빈에 따르면, 금식은 그리스도인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을 맺는다. 칼빈에 있어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자기부인", 즉 십자가를 지는 삶으로 한 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  이것은 세속주의가 참된 인간의 삶을 "자아실현"으로 규정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대비가 된다. 그런데 이 자기부인의 삶은 훈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 중의 하나가 바로 금식이다. 즉, 금식은 하나님께 기도 응답을 더 잘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죽이므로 더욱 하나님께 의지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금식을 통하여 자기 의를 드러내는 바리새인의 기도는 금식의 근본정신을 부정하는 것이다.  어느 목사 중에는 40일 금식을 자랑하거나 심지어 이력서에 넣는 경우가 있는데 배리새인의 금식과 다를 바가 전혀 없다고 할 것이다.

금식이 개인적으로도 그리스도인의 자기 부인의 삶을 훈련시키는데 좋은 수단이 되지만, 금식은 공적으로도 교회에 큰 유익을 가져다 준다. 초기의 개혁주의자들은 공적인 금식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다.  공적인 금식의 대표적인 예는 2가지를 들 수가 있다. 하나는 국가에 큰 재난이나 핍박이 올 경우에 교회나 노회가 교회 전체에 금식을 명한 경우이다. 하나님의 섭리를 강하게 믿는 개혁신학은 재난을 단순히 우연한 결과라고 보지 않았다. 그들은 재난이나 핍박을 통하여 자신들을 돌아보고 회개의 기회를 삶았고 이것을 공적인 금식을 선포함으로 실천하였다. 공적인 금식의 다른 하나는 목사 임직을 위한 경우이다. 개혁신학의 말씀의 신학이기 때문에 말씀의 선포자인 목사를 임직하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목사 임직을 위해 교회 전체에 금식하는 것을 권면하였다. 물론 이것은 사도행전에서 교회가 지도자를 세울 때 행하였던 모범을 따른 순종하는 것이다.

개혁신학에서 금식의 중요성이 사라진 것은 심히 가슴 아픈일이다. 다행히 우리 한국 교회에서 금식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금식은 자기부인을 위한 금식이라기 보다는 "자기 실현" 혹은 기도응답의 수단으로 행하여 지고 있다. 만약 우리가 개혁신학이 이해한 금식을 교회에 잘 가르친다면, 개혁신학은 한국교회에 큰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한국에 큰 수해가 있었다고 한다. 교회가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가 스스로 자성과 회개를 한다면, 또한 금식으로 거두어 들인 성미를 모아 재난을 당한 이들을 돌아 본다면, 얼마나 세상의 빛이 될 수 있겠는가?  또한 목사를 청빙을 할 때, 온 교인들이 기도와 금식을 한다면 목사의 청빙의 과정이 얼마나 신중하게 되겠는가?  지금 목사들이 넘쳐 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성도들은 참된 목사에 굶주려 있다. 오직 기도와 금식하는 교회에 주께서는 참된 목사를 파송하실 것이다.

주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자.  "기도와 금식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마가복음 9장 29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