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회 총회에 대한 소감
2006년 9월 18일(월)부터 22일(금)까지 고려신학대학원에서 열린 제56회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총회가 파회했다. 많은 교단들이 교회에서 모이는 총회를 하는 반면에 고신교단의 경우 교단직영신학교인 고려신학대학원에서 열린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고신교단에게 있어서 고려신학교가 갖고 있는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총회 기간 동안에 개인적인 용무로 인해서 학교에 있으면서 비록 총회를 직접 관람한 것은 아니지만, 인터넷을 통해서 총회를 보고 또한 학교를 오가는 총대들의 모습을 보면서 여러 가지 느낀 점들이 있는데, 그냥 느낌으로만 간직하려다가 최근 모 목사님과 모 교수님이 총회에 대해 쓴 글을 읽고 내 나름대로의 느낌을 적고 싶은 마음에 주일 저녁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글을 적는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한 총회였다. 우리네 교회의 수준과 현실을 돌아볼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시금석이 아닌가 생각된다. 총회의 모습은 우리 고신교단의 각 교회와 신학교 그리고 여러 기관의 모습을 단적으로 드러내 주고 있다. 교단교회가 중요시하는 것이 무엇이며, 교단의 기관들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우리의 고신교회가 얼마나 부패해있는지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총 5일동안 열리는 총회, 그런데 첫째날은 총회임원 선거와 그밖의 일로 시간을 보내고, 둘째날 오전은 여러 외빈들을 소개하는 시간이고, 마지막 날인 금요일에는 법인총회가 열리고, 그리고 경건회와 수요기도회 등을 제외하면 2-3일도 채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에 상식적으로도 너무나 짧은 기간의 총회이지만 총회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들은 역시나 “돈”과 “법”에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수요일 오전까지만 해도 사실상 임종수 총무와 직전 총회장, 부총회장이 저지른 사문서 위조 사건을 다루는 일로 소모전을 벌였다. 총회 직전에 발견된 괴문서로 인해서 총회가 시끄러워졌고 총회는 전권위원을 구성했다. (총회 임원선거를 통해서도 드러났듯이 역시나 모 그룹은 표 몰아주기를 통해서 전권위원에도 자기 세력들을 대거 뽑았다.) 전권위원들은 급하게 모여서 회의한 끝에 총무가 맡고 있던 고려학원 임시이사직 사임과 총무직 해임, 그리고 총무의 1년 생활비 5,000만원 지급 등을 결정하고 총회 앞에 보고했다. 그러나 일부 총대들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모르나 하나님의 공의와 법이 적용되기 보다는 지연과 학연 등이 적용된 듯하다. 결국 총회는 총무의 임시이사직 사임과 총무직 3개월 정직 등만으로 그 수위를 낮추고 마무리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우리네 교회의 수준과 현실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었다. 고신교단이 만약 정말로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두려움으로 총무에 대해 노(怒)를 표했다고 한다면 총무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직전 총회장과 부총회장에게도 동일한 시벌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부총회장은 새로 구성된 56회기 총회장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시벌없이 그냥 넘어갔다. 그저 임종수 총무에게만 그 죄를 다 뒤집어 씌어버렸다. 고신총회의 총대들은 왜 사문서 위조에 화를 내었던가? 왜 그것이 불법이라고 아우성을 질렀던가? 만약 정말로 공의에 대한 분노였다고 한다면 임종수 총무 뿐 아니라 권오정 전 부총회장에 대해서도 동일한 아우성을 질렀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은 총회는 하나님의 공의보다는 자기들의 감정에 충실했을 뿐이다. 총회가 정말로 공의를 위해 그러한 결정을 했다고 한다면 총회는 지난해에 이한석 목사를 총회장으로 추대하지 말았어야 한다. 사문서 위조는 단순히 윤리적 범죄라고 한다면 이한석 목사는 주의 몸된 교회를 혼란케 하는 큰 죄를 범했기 때문이다. 사실 총무의 잘못보다는 직전 총회장의 잘못에 대해서 더 화를 내어야 더 바람직했다. 그러므로 고신총회가 총무에 대해 한 결정은 하나님의 법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 나름으로 세운 기준에 따른 것이므로 절대로 잘 한 일이 아니다. 그들의 결정에 하나님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총회는 무엇보다도 교회의 영적인 일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가장 우선이고 법이나 행정은 그 다음의 일이다. 그러나 총회가 4박 5일을 보내면서 영적인 일을 토론하는데 보낸 시간은 3시간도 채되지 않는다. 우리교단 헌법은 2부와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에는 교리표준으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교리문답이 있고, 제2부는 관리표준으로 교회정치, 권징조례, 예배지침이 있으며, 부록으로는 헌법적 규칙과 십이신조가 있다. 그런데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1부 교리표준이다. 많은 사람들이 헌법을 2부와 부록의 헌법적 규칙만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은 엄청난 오해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총회가 발간한 헌법의 머리말에 보면 헌법의 구성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헌법에 있는 모든 것이 우리의 법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총회는 과연 그러했는가?
총회는 행정법규부를 비롯한 여러 상비부가 보고를 할 때에 “법”이라고 말하면서 이것저것을 아주 또박또박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총대들은 조금이라도 법에서 어긋난 부분들이 있을 때마다 법을 들고 나와서 해박한 법 지식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서 법은 “교회정치, 권징조례, 헌법적 규칙” 뿐이었다. 교리표준과 예배지침은 그들에게 전혀 법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총대들은 교회정치나 부록의 헌법적 규칙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예컨대, 임시목사가 시찰회에 속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다룰 때 그들은 헌법적 규칙을 들고 나와서 자세한 설명을 하였다. 그러면서 그 법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해서 엄청나게 화를 내었다. 강도사와 목사후보생의 관리에 대한 부분을 다룰 때에도 헌법적 규칙을 잘 적용하였다. 그러나................총회는 교리표준과 예배지침에 있는 내용들은 계속해서 어기고 있다는 사실은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예배지침의 주일성수 부분은 고신교회들에서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 이미 오래된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하나 지적하는 사람이 없었다. 중등학생 이상은 대예배에 참석해야 한다는 조항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은 이미 10여년이 되었다. 예배지침 4장 18조에 보면 성경봉독은 목사가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총회에서 마저 장로에 의해 성경봉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뿐만 아니다. 나중에 더 자세하게 다루겠지만 세례에 대한 내용을 토의하면서 그들은 단 한번도 “신앙고백서”를 언급하지 않았다.
총회는 영적인 일을 다루는데 3시간도 채 보내지 않았다. 사실 신학부에는 중요한 안건들이 많이 올라왔다. 그러나 그 중요한 일을 다룰 때에 진지한 토론을 하는 사람은 거의 볼 수 없었다. 예컨대, 충청노회가 발의한, 사직된 목사에 의해 시행된 성례에 관한 질의 건(사직된 목사에 의해 시행된 성례의 인정여부)은, 교인이 다시 세례 받기를 희망하면 줄 수 있는 것으로 확인하다. 의 문제이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해서 전남노회의 한 목사가 나와서 간단한 교회사적인 이야기를 했지만, 총대들은 신앙고백을 한번도 살펴보지 않았다. 신앙고백서 28장 7항에 보면 “세례의 성례는 어느 사람에게든지 단 한번만 베풀어져야 한다”라는 조항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총회는 결정하기를 안줘도 되지만 교인이 원하면 줄 수 있다는 애매한 결정을 했다. 목사임직을 받은지 수십년된 총대들로 가득한 총회는 “우리는 하나의 세례를 믿는다”고 하는 상식을 모르고 있었다. “교인이 원하면 준다”와 같은 애매한 결정이 어디 있는가? 그렇다면 교인이 세례를 원하면 다 줄 것인가? 어떤 총대는 “목사가 아닌 평신도가 준 세례가 어떻게 인정되느냐?”라고 하는 어리석은 말을 하기도 한 반면, 어떤 총대는 약간은 수준 높은 말을 하는 듯 하게 “성삼위 하나님으로 세례를 주었으니 사직한 목사의 세례도 세례이다.”라고 말을 했으나 바로 이어서 말하기를 “그러니까 그냥 교인이 원하면 주는 게 좋다”라고 말하였다.
동서울노회가 질의한, 정신질환자 세례 시행건은 해당 당회에서 확인하는 것이 마땅한 것으로 가결하다. 의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2명의 총대가 아니었다면 이 문제는 아예 토론도 없이 넘어갈뻔했다. 처음에는 그냥 개교회 당회에 일임하는 것으로 결정되는 순간적인 분위기에서 모 목사총대가 이 부분은 좀더 연구를 해 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였기 때문에 비로소 연구하게 되었다. 그러나 많은 총대들은 이 문제에 관심조차 없었다. 그냥 넘어가려고 했다.
가장 황당한 것은 성경의 개역개정판 채택과 21세기 찬송가 채택에 대한 부분이다. 이것보다 중요한 사안이 있을까? 내가 볼 때에 제일 중요한 사안이다. 번역성경을 사용하는 우리에게 개역개정판 채택은 단순히 대한성서공회와의 관계를 통해서 허락될 문제가 아니다. 신학의 문제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선포되느냐의 문제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철저함과 개혁주의 신학을 말하는 고신총회는 “대한성서공회의 개역개정판 한글 성경 공식 채택 청원 건은, 대한성서공회의 청원을 받되, 개역개정판의 사용은 개체교회에 맡기기로 허락하기로 가결하다.”라고 하는 황당한 결정을 했다. 성경의 사용을 개교회에 맡긴다? 그렇다면 고신교회는 서로 다른 성경을 사용한단 말인가? 개인적으로 읽는 성경이야 그렇다 쳐도 강단용으로 사용되는 성경을 어떻게 그렇게 단순하게 결정한단 말인가? 분명히 신학교는 개역개정판 성경의 번역이 그다지 좋지 않다고 의견을 내었음에도 불구하고 총회는 그냥 결정을 해 버렸다. 이제 우리는 동일한 교단에 있어도 서로 다른 성경을 사용해야 할 입장이다. 예를 들어 고려신학대학원에서의 경건회에서는 과연 어느 성경을 사용해야 할지도 의문이다. 각 교회마다 다른 성경을 쓴다고 한다면 고려신학대학원 학생들이 갖고 있는 성경이 다 다를 터인데, 고려신학대학원 경건회에서는 과연 어떤 성경을 사용해야 하는가? 황당무지로소이다.
21세기 찬송가 채택의 건도 마찬가지이다. 일사천리로 통과되었다. 찬송가의 가사는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찬송가는 그 교회의 신학을 드러낸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고신은 그냥 토론 한번 하지 않고 결정해 버렸다. 언젠가 누군가가 쓴 minority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고신교회가 갖고 있는 열등감........그런데 고신교회의 초기 출발은 그 열등감을 극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오히려 고신교회 초기 출발에 있어서 열등감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진리 앞에서 말이다. 그런데, 이번 21세기 찬송가 채택 과정에서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은 다름 아닌 “열등감”이었다. 21세기 찬송가를 채택하면서 채택의 당위성으로 제시되었던 것은 “우리만 안 쓸 수 있느냐, 늘 고신은 안 따라갈 것도 아니면서 뒷북 친다. 그것이 보수냐,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또 그럴 참이냐”라는 것이었다. 이 얼마나 황당한 것인가? 이 시대가 엉망으로 흘러가고 있는데 그냥 따라가야 하는가? 황당하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시간에 사용될 찬송가를 이렇게 황당한 논리로 결정하는 고신총회에 대해서 과연 칭찬해야 하는가?
최근들어 고려신학대학원이 매우 시끄러운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총회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런데.....................특별위원의 구성을 보면 황당하다. 고신총회의 총대들이 과연 제대로 머리가 달렸는지가 의문스럽다. 특별위원회를 구성할 때 총회장은 누차 말하기를 “객관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분들을 뽑아달라”고 말했다. 그런데 특별위원회의 구성은 전혀 객관적이지 못한 사람으로만 채워졌다. 총대들이 현재 고려신학대학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그렇게 뽑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의 당사자와 직간접으로 관련있는 사람을 특별위원회로 뽑는 일이 과연 객관적인 해결이라고 생각하는지 의문이다. 특별위원의 목사위원 4명은 모두가 특정계파의 사람이다. 세 사람은 개혁파, 한 사람은 보수파이다. 그리고 개혁파의 경우 한 명은 모 교수와 형님 동생 하는 사이이고, 또 한명은 모 교수의 복권을 위해 노력했던 분이다. 정말로 총회가 신학교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고 한다면 정말로 객관적인 사람을 뽑았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했다.
모 목사님은 이번 총회에 대해 평가하면서 덕망있는 한 목사가 임원에 당선된 것을 개인적으로 기쁜 일이라고 설명하였다. 과연 그럴까? 이번 임원회의 구성은 전적으로 정치적 계략에 의한 것이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고려신학대학원 사택에서 총회 첫날에 모여서 표몰아주기를 했다는 것이 벌써 소문으로 돌고 있다. 그 증거는 총무에 대한 전권위원 구성과 신학교에 대한 특별위원 구성의 면면을 보면 누구나 알 수가 있다.
모 목사님은 교회정치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잘못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어찌보면 맞는 말이지만 어찌보면 완전 틀린 말이다. 사실 교회정치는 우리가 부정할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것이다. 그러나 그 교회정치라는 것은 오늘날 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교회정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긍정해야 할 교회정치는 “치리회”이다. 그렇지 않은 오늘날의 교회정치는 세상에서 말하는 부정적인 개념의 정치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정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를 뒤흔들고 하나님의 교회를 다른 방향으로 몰고가는 것에 불과하다. 교단총회에 대해서 할 말이 더 많이 있지만, 총회가 아닌 총회에 대해서 더 길게 말하는 것은 시간 낭비인 것 같고 나의 영을 황폐케 하는 것 같아서 이만 줄이려 한다. 할 말은 한 마디 밖에 없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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