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전도협회의 신학적 문제성과 예전의 반박문
예수전도협회의 신학적 문제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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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전도협회의 신조
1. 성서관
1. 성경은 영감된 하나님 말씀으로서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다.
성경은 성령의 특별하고 직접적인 역사(役事), 곧 성령의 영감(靈感)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완전하고 축자적으로, 또한 전체적이고 유기적으로 영감되어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음을 믿는다. 성경이 비록 인간 기록자(writer)에 의해 쓰여졌지만, 성경의 원저자(author)는 성령이시고 하나님이 도구로 사용하신 성경 기록자들은 이차적 저자들이다.
무엇보다 성경은 기독교 지식의 유일한 원천이며 규범이요, 구원에 이르게 하는 신앙과 생활의 유일 규범으로서 성경에 기록된 내용들은 모두 참이고 원본의 기록의 과정에서 모든 오류가 제거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이 영적 진리에 있어서만 참이고 역사적, 과학적 사실들은 불확실하고 오류가 있다는 현대의 비평주의자들의 주장을 물리치고 배격한다.
2. 성경은 구원을 위해 완전하고 충족한 하나님 말씀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와 뜻, 자기 자신을 알리기에 필요한 모든 것, 그리고 구원에 이르는 데 필수적인 모든 사항들, 나아가 믿음 생활에 필요한 진리들을 모두 담고 있다. 또한 성경은 파괴나 허위화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완전하게 보존되었다. 그래서 추후적인 계시나 유전에 의해 새롭게 보충되는 것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 완전하고 충족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이 없으면 바른 진리에도, 구원에도 이를 수 없으며 하나님을 바로 알 수도 바로 섬길 수도 없고, 예수를 구세주로 바로 믿을 수도 없다. 성경은 구원과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 필수적이고 또 완전하고 충족하다.
3. 성경 해석은 본문에 충실해야 하며, 깨달아 순종함을 목적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자명성을 가지고 있어서 모든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명료하고 확실하게 드러낸다. 그러므로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 무엇보다 성경은 성경의 문맥 가운데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즉 성경은 성경에 의해 해석되어야 한다. 성경은 자기 해석자이며, 성경이 성경 해석의 최종 권위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 해석은 본문이 명백하게 주장하는 뜻, 곧 본문이 말하려고 하는 근본 뜻을 존중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성경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므로 신구약 성경의 모든 부분은 이 중심에 의해서 해석되어야 하고 그렇게 한 해석이 정당화된다.
나아가 성경은 하나님의 인격이 담긴 말씀이므로 단순한 공부나 지식의 대상으로 그쳐서는 아니 되며 반드시 깨달아 순종하는 것을 지향해야 한다. 우리가 날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2. 신론
1.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지금도 살아계셔서 온 우주를 지배하고 섭리하신다.
하나님은 유형, 무형의 모든 존재들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며, 모든 피조물은 그의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지금도 살아계셔서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리시며 섭리하시고 역사를 운행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우주의 자연발생설이나 현대과학의 진화론은 물론이고 일체의 무신론(無神論)이나 이신론(理神論)을 배척, 배격한다.
2. 하나님은 영이시다.
하나님은 존재하심과 영화로우심과 복되심과 완전하심에 있어서 스스로 무한하신 영(靈)이시다. 또한 자족하시고 영원하시고 불변하시며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신이시며, 어디든지 계시고, 전능하시며, 모든 것을 아시고, 지극히 현명하시고, 지극히 거룩하시고, 지극히 공의로우시며, 지극히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시며, 오래 참으시며, 선하심과 진리가 풍성하신 영이시다.
3. 하나님은 삼위일체이시다.
하나님의 신격(神格)에 삼위가 계시니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데 이 삼위는 한 하나님이시다. 본체(本體)는 하나요 권능과 영광은 동등이시다. 삼위일체는 하나님 안의 관계로서 하나의 유일한 신적 실체에 세 위격, 곧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계시며, 영원하고 불변적으로 그렇게 존재한다. 각 위격은 전 실체를 가지고 다른 위격들과 공유할 수 없는 특성을 가진다. 세 위격은 동일 실체이고 그 동일 실체는 분할 불가하다. 한 하나님이 삼위일체이고, 삼위일체가 한 하나님이시다.
4. 구원사역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이다.
성부 하나님은 구속의 계획을 세우시고, 구속 언약의 사명을 성자에게 발하셨으며, 성자 예수님은 성부의 구속 계획에 따라 인간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흘려 죽으심으로 구속을 집행하셨으며, 성령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구속을 적용하셨다.
3. 기독론
1. 그리스도는 죄인을 구속하기 위해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셔서 다시 자기 백성으로 삼기 위해 사람이 되셨다. 죄과를 지시고 피 흘리사 사람들을 속량하사 구원하시려고, 또 구원된 백성 가운데 거하시려고 성육신하셨다. 즉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고 인류와 함께 하기 위해 성육신하여 육신이 되심으로 그리스도가 되셨다.
2. 그리스도는 동정녀의 몸에서 탄생했다.
범죄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는 성령의 역사로 잉태하사 동정녀 탄생을 하셨다. 성령은 남자의 개입 없이 마리아의 몸에 수태케 하여 하나의 인성을 조성하시고 그 인성을 성화하여 죄의 오염과 부패가 전혀 전달되지 않게 하사 죄가 전혀 없는 완전히 거룩한 인간으로 탄생하게 하셨다. 물론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는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형성되었어도 출생의 방식과 성장은 자연적이고 정상적이었다. 그렇지만 예수는 성령의 역사로 죄책이나 오염이 전혀 전달되지 아니하고 의인으로 출생한 오직 하나의 인간으로서 완전히 거룩한 사람으로 출생했다.
3.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이 연합된 신인 양성이시다.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요, 참 인간이시다. 즉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신인(神人) 인격이시다. 인간이 신으로 올라간 인신(人神)이 아니고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신인(神人) 인격이다.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을 가졌어도 인격은 하나이다. 즉 1인격 2본성이시다. 이 때 인격은 하나님으로서의 인격이시다. 그리스도의 양성은 하나님과 사람을 화해시키는 일을 하도록 되어 있는 중보자는 하나님이시면서 또한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4.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세주이시다.
죄에 빠져 영원한 형벌에 처한 인간을 구원할 존재는 아무것도 없으며, 하나님은 구세주로서 예수 외에는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구원하신다.
5.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통해 완전한 속죄 제사를 치르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죽음은 세상의 모든 죄를 담당하여 완전한 구원을 이루신 완전한 속죄제사로서 구약에서 그의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지시했던 참 속죄제사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인간을 위한 속죄임과 동시에 하나님의 진노를 진정시킨 화해이기도 하다. 극악한 수치의 죽음인 십자가 처형은 우리를 대신해서 받은 죄의 저주였다. 그의 죽음은 우리의 죄를 지고 우리 대신 죽은 죽음이다. 그 죽음을 통해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셨다.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화해제사요 속죄제사이며 대리적 속죄이다.
6. 그리스도는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 승천하셨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구속이 성취되었음을 하나님이 선포하신 것으로서 인류 구속을 위해 죽은 그리스도를 주와 그리스도로 삼으심을 뜻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가 용서되며 성령을 받을 수 있게 되어 타락한 인류가 새 인류가 되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거소가 되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십자가의 죽음과 장사 이후의 비하에서의 승귀에 이르는 과정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새 인류의 머리의 부활로서 우리의 부활을 결정하고 보장한다.
승천은 부활자가 신인 위격으로서 하늘로 장소를 이동한 것으로서 신인 위격이 완전한 신적 영광에로의 복귀하신 것이다.
7. 그리스도는 다시 오신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초림(初臨)하셔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셨던 예수는 반드시 다시 오셔서 심판을 하신다. 즉 그리스도는 재림(再臨)을 통해서 구원을 완성하고 악을 해소함으로서 역사를 종결하고 완성하신다.
4. 성령론
1. 성령은 인격을 가진 하나님이시다.
성령은 어떤 힘이나 능력이나 이런저런 사물이 아니라 지성과 감성과 의지를 가지신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성령은 항상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시며, 교회와 성도들에게 명령하시며, 믿는 이의 삶과 생활을 안내하시고, 믿는 이를 증거해 주신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이 인격적으로 하시는 말씀과 명령에 순종해야 하며, 항상 그 분의 인도를 받을 수 있도록 성령과 함께 동행해야 한다.
2. 성령은 하나님의 백성을 새롭게 거듭나게 하는 새 창조의 영이다.
성령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역사하여 그의 마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며, 새로운 인식을 하게 하며, 새로운 순종을 하게 한다. 즉 죄와 허물로 죽은 자를 살리는 중생(重生)은 전적으로 성령의 단독적인 창조적 사역이다. 이 일은 성령께서 인생의 심정에 직접 역사하여 인간의 영적 상태를 변화시키는 사역으로서 여기에 죄인의 협력은 결코 있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회개와 신앙을 가지게 하여 하나님에게로 전향하는 회심 또한 성령께서 이루신다. 성령께서는 죄인이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칭의에 이르도록 준비시키신다. 죄인의 회심은 오직 성령의 주권적 사역이다.
3. 성령은 각 사람에게 구속 사역을 적용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
성령은 인간의 구원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이루어놓으신 그리스도의 객관적이고도 역사적인 구속 사역을 성도들 각각에게 적용하여 구원을 받게 하신다. 죄인이 그리스도와 연합되지 못하면 결코 속죄의 은혜에 참여할 수 없는데, 이러한 그리스도와의 신비하고도 초자연적인 연합은 성령에 의하여 중개되고 그로 인하여 죄인이 갱신되고 칭의된다.
4. 성령은 구원적 신앙을 유지케 하시며 궁극적 구원의 완성에 이르게 하신다.
성령은 그리스도인들의 심령에 들어와 내주하사 영원토록 함께 하시면서 믿는 이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케 하며 신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쉬지 않고 역사하신다. 또한 성령은 신앙을 굳게 지키도록 인도하실 뿐 아니라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성화의 과정에 개입하시고 견인의 은총을 결코 거두시지 않으신다. 즉 성령은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듭나고 칭의되어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을 끝까지 인도하셔서 궁극적으로 구원의 완성에 이르게 하신다.
5. 그러므로 성령은 구원의 기초자요 유지자요 완성자이시다.
그리스도인의 구원은 전적으로 성령의 구속적용 사역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성령은 구원적 신앙에 있어서 주권적으로 역사한다. 즉 성령은 구원의 기초자요 유지자요 완성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소멸치 말고 근심시키지 않도록 순종할 뿐만 아니라 성령의 충만을 위해 더욱 힘써야 한다.
5. 인간론
1.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인간은 다른 존재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지음받은 피조물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따라 창조되었다는 점에서 독특한 지위를 차지한다.
2. 인간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고 범죄함으로써 타락하였다.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행위언약을 파기했고, 이러한 불순종의 죄로 인해 타락하여 영적인 생명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따라서 인간은 잃어버린 영적 생명을 다시 찾아야 하는 필연성이 제기되었다.
3.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한 무능한 존재이다. 하나님을 거역함으로써 범죄한 인간은 그 본성 자체가 타락되어 선을 행할 수도, 선을 행할 능력도, 나아가 구원을 요구할 수도 없는 완전히 무능한 존재가 되었다.
4. 인간의 유일한 소망은 오직 그리스도이다. 죄로 인해 영원히 죽게 된 인간의 유일한 구원의 소망은 모든 죄인을 위해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그리스도에게만 있다. 하나님은 행위가 아닌 은혜언약을 통해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다.
6. 구원론
1. 모든 인간은 마땅히 구원받아야 한다. 모든 인간은 죄인이며, 그 죄로 인해 영원한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마땅히 구원받아야 한다. 인류 가운데 구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인간은 하나도 없다.
2.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로만 주어진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아닌 다른 어떤 종교나 인간의 노력, 선행, 지식 등으로도 얻을 수 없다. 구원은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다. 인간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에 의해서 구원이 결정되는 것은 누구도 자신의 구원을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3. 하나님의 베푸시는 구원의 은혜는 누구도 거역할 수 없다. 구원은 인간의 힘으로 얻을 수 없을 뿐 아니라 구원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구원의 은혜를 베풀 때 그것에 저항하여 거절하거나 거역할 수도 없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은 작정과 예정을 포함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7. 교회론
1. 교회의 개념은 매우 다면적이다. 교회의 개념은 매우 다면적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관점에서 설명되어야 한다. 선택의 관점에서 보면 교회는 피택자들의 집단이요, 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교회는 하나님의 영에게 부름받은 피택자로서 유효적으로 부름받은 단체 또는 신도들의 집단이며, 세례와 신앙고백의 관점에서 보면 교회는 세례를 받고 진정한 신앙을 공언하는 자들의 집단 또는 진정한 종교를 공언하는 자들 및 그 자녀들의 집단이다.
우리는 교회가 성령이 역사하는 단체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성도의 교통을 교회의 본질로 받아들인다. 뿐만 아니라 무형교회뿐 아니라 유형교회도 성도들의 모임이요 주께서 세우신 최고의 조직체임을 인정하며, 세상에 대해 전투적인 지상교회의 중요성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한다.
2. 교회는 통일성, 거룩성, 공동성을 그 속성으로 한다. 교회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에 의해, 그리고 성령과 신앙에 의해 하나라는 통일성을 갖는다. 또한 교회는 세계에 속하지 않는 영적인 덕성인 거룩성을 가지는데, 바로 이것으로 인해 교회는 세속과 충돌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생활의 거룩함과 십자가 앞에서 그의 은혜를 의지하여 죄를 고백하고 버리는 일을 계속해야 하며, 성령이 역사하시는 증거를 위해서도 항상 거룩함을 유지해야 한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을 상실한 교회는 주님께 징계와 버림을 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공동성(보편성)을 갖는다.
3. 참 교회와 거짓 교회는 말씀과 성례와 권징으로 표징된다. 말씀의 진정한 전파는 교회의 가장 중요한 표지이다. 따라서 신앙의 근본적인 조항들이 부정되고 교리와 생활이 하나님 말씀의 관할 아래에서 벗어나면 그 교회는 거짓 교회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에 세상을 끌어들이려는 마귀의 계략을 항상 깨어서 경계해야 하고 믿음과 거룩함이 없는 거짓 교사들이 교인들을 노략하는 것을 말씀의 빛 가운데 항상 경계하고 공격해야 한다.
또한 참된 교회는 성례의 정당한 거행이 있어야 하는데, 성례는 말씀의 합법적 사역자들에 의해서 신적 제도에 따라 상당한 자격을 가진 사람들에게 거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교리의 순전을 유지하고 성례의 신성을 수호하기 위해 권징의 신실한 시행을 해야 한다.
4. 예배와 증거는 교회의 가장 중요한 임무이다.
교회의 작용 혹은 직능이나 과업으로는 예배, 건덕, 증거, 사회적 책임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예배와 증거는 가장 중요하다. 교회의 가장 본질적인 임무는 예배로서 이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신앙과 순종의 행위이다. 또한 교회의 최고의 임무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여 증거하는 일이다. 따라서 교회는 설교와 가르침을 통해 예배, 건덕, 증거, 사회적 책임을 반드시 나타내고 드러내야 한다.
8. 종말론
1. 만물의 시작이 있었듯이 반드시 종말도 있다. 온 우주 만물이 하나님의 창조로 시작되었으므로 반드시 끝이 있다. 그리고 세계의 종말은 하나님의 뜻이 성취됨으로 완성된다. 우리는 직선적, 일회적, 종말론적 역사를 믿으며, 이방 철학이나 이방 종교들이 주장하는 원환적이나 윤회적 세계를 거부하고 배척한다.
2. 신자의 죽음은 불신자의 죽음과는 다르다. 신자의 죽음은 형벌이 아니라 ‘징계’(롬8:1-2; 고전15:55)이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무조건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죽음을 통해 완전한 생의 시작을 소망하며(히12:23; 계21:27), 그 날을 장엄하게 기다리되(딤후4:7-8), 그 날을 바라보며 항상 준비하는 자세를 가지고 살아간다. 왜냐하면 구원받은 성도의 죽음은 곧 영생과 천국으로의 통로임을 믿기 때문이다.
3. 인간의 죽음 후에는 내세가 있다. 인간은 죽음 후에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유무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가게 된다. 카톨릭에서는 연옥을 인정하나 우리는 그것이 비성경적이기 때문에 거부한다. 나아가 내세는 선행이나 다른 어떤 것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해 결정된다.
4.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최후상태가 전개된다. 온 인류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해 맞게 되는 최종심판에 의해 그 운명이 결정되어 최후 상태가 전개된다. 최후 상태는 영벌이나 영생 두 가지 중의 하나인데, 악인은 영벌로 가고 의인은 영생으로 갈 것이다.
5. 종말을 고하는 재림의 때는 아무도 모른다. 종말을 고하게 되는 그리스도의 재림은 성부 하나님 외에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일체의 시한부 종말론을 부인한다. 그러나 재림의 때를 인자도 모른다고 하였으나, 재림은 반드시 있을 것이기에 주님을 사랑하고 그의 뜻을 준행함으로 재림을 기다려야 한다.
9. 본 협회관련 논란 부분에 대하여
본 회가 몇몇 교단으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부분은 크게 세 가지로 알고 있습니다. 본 회가 외침전도만을 가르친다는 것과 지나치게 기성교회와 목회자를 비판한다는 점, 그리고 공개적인 죄자백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모두 오해와 편견, 사실 왜곡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 회의 진의와는 전혀 다릅니다. 또한 분명히 지적할 것은 비록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기는 하지만, 본 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본 회를 이단이라고 못박게 하지는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그러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본 회의 훈련을 받은 일부 목회자나 성도들이 잘못 적용해서 발생한 현상적인 문제점이지 근본적으로 본 회 자체가 성경적으로, 신학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귀 회의 요청에 따라 본 회에 대한 오해로 빚어진 부정적인 이미지에 대해 간단히 해명합니다.
1. 외침전도에 대하여
본 회는 평신도와 목회자를 대상으로 전도훈련을 실시해오고 있습니다. 훈련 과정에서 이미 우리가 믿고 고백하고 있는 복음을 불신자들에게 어떻게 전할 것인가에 관한 복음전도의 내용을 교육하고, 실제로 노방전도와 축호전도를 통한 현장 전도실습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전도강의를 통해 경건한 삶을 통한 복음 전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 회가 외침전도만 강조하고, 외침전도만 전도의 유일한 방법으로 주장한다는 항간의 이야기는 사실과 다릅니다.
간혹 발생하고 있는 외침전도의 문제점은 본 회가 훈련하고 가르친 본의와는 달리 단순히 외치는 외적인 모양만 취하고 그 본의를 깨닫지 못하고 잘못 적용한 데서 오는 실수요 오류입니다. 본래 외침전도는 개인전도를 돕기 위한 것이요, 그 내용도 불신세계를 향한 회개를 촉구하고 복음을 선포하는 데에 목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본 회는 외침전도보다는 우리가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사랑을 지속적으로 나누고 보여주는 것을 통한 개인전도와 영혼 사랑에 초점을 맞추어 교육하고 있습니다. 이 점은 훈련의 취지와 목적을 제대로 교육받은 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자신이 섬기는 교회에서 지속적인 전도 열매를 맺음으로 증명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본 회가 외침전도만을 가르친다는 주장은 본 회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악의적인 비난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 데는 본 회에서 훈련받은 사람들의 잘못된 적용과 실수도 일조했다는 점을 본 회도 인식하고 전도훈련시에 각별한 주의를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은 훈련받은 사람들의 신앙의 성숙과 함께 자연스럽게 해소되리라 믿습니다.
2. 기성교회를 지나치게 매도하고 비판한다는 오해에 대하여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결코 비난의 대상이 아니고 또 비난의 대상이 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피값으로 산 교회는 주님의 거룩하심과 같이 거룩해야 합니다. 교회는 마땅히 교회다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본 회는 한 번도 교회 자체를 비난하거나 매도하여 정죄한 적이 없습니다. 교회가 바람직한 모습으로 변화되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면서 갱신되어야 할 한국교회의 현실에 대해 아픔을 가지고 이야기했을 따름입니다. 세간에 떠도는 본 회가 한국교회를 지나치게 매도하여 비판한다는 지적은 이에 대한 오해일 뿐입니다.
얼마전 장로교 통합측에서도 말했듯이 본 회의 그러한 개혁과 갱신의 부르짖음은 새로운 것이 전혀 아니며 한국교회의 자성의 소리이기도 합니다. 본 회만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또 교회가 교회다워지기를 바라는 신실한 신앙인들은 누구나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내용입니다. 본 회의 주장은 한국교회의 개혁과 갱신을 위한 자성의 소리와 같은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본 회는 교회를 섬기기 위해 일하는 단체입니다. 그런데 어찌 주님의 몸된 교회 자체를 비난하거나 매도할 수 있겠습니까?
3. 목회자를 비판한다는 오해에 대하여
본 회의 대표인 이유빈 장로가 문화를 부정함으로써 문화생활을 하는 목회자들을 비판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주장입니다. 아무리 경건하게 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해도 삶 속에서 세상과 단절하고 살지 않는 한 어떻게 삶의 환경이고 조건인 문화를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이유빈 장로가 주장하는 것은 각종 스포츠 활동이나 TV나 컴퓨터나 오락 등을 즐기는 데 시간과 마음과 물질을 빼앗겨서 세상에 빠지고 죄에 빠져 그로 인해 마땅히 지키고 지녀야 할 거룩함을 잃어버리고 성령의 깊은 영적 교통과 영적 생활에 지장을 초래한다면 그것들을 과감하게 자르고 버리는 것을 통해 주님과의 교제를 더 깊이 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유빈 장로는 빌립보서 3:8-9의 말씀이 우리에게 교훈하는 바, 곧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라는 말씀에서 벗어나서 말하거나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만일 본 회가 문화를 부정한다면 대표인 이유빈 장로가 문화의 산실인 KBS에 17년 동안 재직하면서 수많은 직원들을 변화시키고(그들 중에는 6명이나 선교사로 헌신한 사실이 있음) 퇴직을 한 지 10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방송국 동료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또한 만일 문화를 부정한다면 어떻게 본 회가 인터넷이란 첨단문화를 활용해서 복음을 전하고 있겠습니까?
무엇보다 본 회는 목회자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 목회자 속에 있는 죄와 세속적인 것을 책망한 것입니다. 만약에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라 일컫는 그리스도인이 죄와 세속에 물들어 있다면 그가 목회자이냐 평신도이냐를 떠나서 그는 마땅히 책망받고 또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말씀으로 교훈하고 가르치고 훈련하여 주님의 제자로 만들기를 바라시며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를 위임하사 목양하게 하신 주님의 두렵고 떨리는 부르심을 생각하면, 그 누구보다 목회자는 죄와 세상을 멀리하고 주님의 거룩한 인격으로 목양해야 한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을 강조하며 교회의 영적 지도자인 목회자들의 거룩함과 주님과의 깊은 영적 교제를 부르짖은 것을 어떻게 목회자에 대한 비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4. 공개 죄자백에 대하여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로만이요, 죄용서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라는 것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삼척동자라도 믿고 고백하는 성경적 진리입니다. 그러한 복음적 진리를 거부한다면 그것은 복음과 성경을 일탈한 것입니다. 항간에 본 회가 공개적인 죄 고백을 강요한다느니, 사람 앞에서 죄를 자백해야만 죄를 용서받는다고 가르친다느니 하는 것은 그야말로 본 회의 신앙고백과는 너무도 다른 헛소문입니다.
그러나 물론 죄를 자백하는 것은 지극히 성경적인 사실입니다. 죄의 자백은 하나님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로마교회는 죄고백을 해야 죄를 용서받는다고 하여 고해성사를 죄를 용서받기 위한 방편이요 수단이라고 말하지만, 본 회가 말하는 공개 죄고백은 칼빈이 말했듯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그 죄를 사하시고 용서해주신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와 은혜를 선포하고 드러내는 것을 말합니다. 죄의 용서는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예수께서 흘리신 십자가의 피로 가능한 것이지 결코 사적이든 공적이든 죄고백을 해야만 용서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속 곧 죄 사함은 오직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으로만 받을 수 있으며, 우리의 죄는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만 씻을 수 있음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공개적인 죄의 고백은 장로교 헌법에서도 발견됩니다. 첫째는 장로교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기본 교리로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결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15장 ‘생명에 이르는 회개’가 그대로 받아들여져 교리화되어 있습니다. 둘째, 예배중의 공식기도에 관한 규정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이것 역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에 예배 모범에도 공식 기도의 내용으로서 죄를 자백할 것이 명문화되어 있습니다. 셋째, 공개적인 죄자백은 교회의 권징에서도 발견됩니다. 교회의 징계, 즉 시벌(施罰)과 해벌(解罰)의 과정에서 죄의 공개적인 자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칼빈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사제에게 죄를 고백해서는 안 되지만,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고백을 하는 사람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자기의 죄를 언제든지 고백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칼빈은 ‘사제에게 고백’이라는 잘못된 로마교회식의 회개론을 비판하고 성경적인 회개론을 밝히면서 공개적인 죄자백에 대해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공개 죄자백에 관한 이러한 신학적인 정당성을 뒤로하더라도 죄자백의 열매가 그것의 정당성과 유익함을 웅변합니다. 공개적인 죄자백을 잘못 오해하여 부작용을 일으키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지만, 성령의 조명을 통한 거룩함의 회복이 죄자백을 통해 나타났을 때 깨어진 가정이 다시 하나되고, 어그러진 인간관계가 회복되어 목사와 교인, 아내와 남편, 부모와 자식이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서로 용서하고 화목된 사례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에 대해 설명하자면 지면이 부족할 것입니다.
공개적인 죄자백에 관한 부분은 첨부한 연구서를 참고하시면 이에 관한 잘못된 오해들이 시원스럽게 풀리리라 확신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