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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회심자료]손양원목사의 가정교육(6)/나두선

baromi 2006. 9. 25.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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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절 손양원 목사의 교육 사상

1. 교육사상의 교육적 기저

1) 아동 이해

부쉬넬이 활동하던 시기에 부흥 운동가들의 주장은 부모의 일차기능이 자녀들에게 죄에 관하여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었던 반면에 부쉬넬은 부모가 자녀에게 신앙에 관해서 가르쳐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부쉬넬의 요청은 부모들이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순종이 훈련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식으로 자녀의 마음을 형성하고 육성하는 것이었는데 이 이론적 토대 위에서 실제적인 지침으로 아동에 대한 부모의 모델 역할 개념을 강조하면서도 정직한 모델이 되라고 경고했다.
손양원 목사는 부쉬넬과 달리 죄와 신앙 양쪽에 대하여 다같이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손양원 목사의 아동이해는 아동은 전적 선인도 전적 악인도 아닌 영적 가능성의 존재로서 죄의 참혹성과 선의 가치를 함께 배워가면서 성장하는 존재로 본 부쉬넬의 아동관과 비슷하다. 손양원 목사는 "나는 지금 수금(囚禁)중에 있어도 어릴 때부터 주의치 않은 습관 죄악과 아직도 싸우고 있다"고 하였다. 손양원 목사는 회심이 중대한 순간적 체험이 되어야 한다고도 믿었고 또한 반면에 과정적 체험으로도 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정적 체험의 의한 회심에 더 기울어져 있다고 본다. 손양원 목사는 어린이는 선한 삶을 살아감으로써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권리를 얻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아이들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자 중에서 가장 가까운 자이요 천국에 들어갈 자의 모형이 될만한 자이다"라고 했다. 여기서 손양원 목사의 아동관을 발견한다. 즉 아동들은 완전한 선인도 악인도 아니다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자 중에서 가장 가까운 자"의 표현에서 "가장 가깝다"는 표현은 "온전하지 못함"을 뜻한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말의 뜻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지으신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 받은 것을 가리킨다. 즉 인간이 불완전하고 한정적이긴 하지만 전달 가능한 하나님의 속성(생명, 인격, 진리, 지혜, 사랑, 거룩함, 공의)을 공유하고 있으며 따라서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가질 수 있는 영적 가능의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존엄한 하나님의 형상을 많이 잃어버렸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죄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의 가장 완전한 형상인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어 이 땅위에 오셨다(골로세서1:15). 따라서 우리인간이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 간다면 결국 우리인간은 점점 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되는 셈이다(롬8:29) 그러나 인간이 아무리 하나님의 형상을 닮는다 하여도 그것은 희미한 그림자에 불과하기 때문에(고전13:12) 손양원 목사는 어린아이를 "하나님의 형상의 가장 가까운 자"로 표현하였다.
"하나님의 형상 회복"은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까지 이르는 것(에베소서4:13)"으로 보는데 이것은 저절로 자연적으로 이루어 가는 것이 아니라 칸트의 말대로 "사람은 교육에 의해서만 사람이 된다"고 한 것처럼 신앙 성장도 지속적인 교육에 의해서만 바람직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에서 손양원 목사는 가정에서 교회에서 학교에서 교장임무 수행시나 감옥에서도 자녀들과 어린이들이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도록 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가도록 성심전력을 다하여 신앙교육과 훈련을 시켜 나갔던 것이다. 어린이는 "육체만이 아니라 심령도 자란다"고 하였는데 이 말은 어린이는 영적 성장의 가능성을 지닌 존재라는 뜻이다. 즉 어린이는 유전에 의한 죄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면서부터 본질적으로 절대적 선이 어린이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손양원 목사는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새 생명의 씨를 받아 자라 나아가...나의 자라가는 분량의 표준이...나의 현재 신앙의 생활에 소망이 되었다"고 했다. 즉 손양원 목사는 영적으로 갱신될 수 있는 존재가 아동이며 아동을 교육과 훈련에 의해 형성되는 질을 가진 존재이며 따라서 계속 자극되고 개발되어야 할 존재라는 것이다. 어린이는 단순한 호기심의 본능 또는 지식의 본능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자신의 실험으로 악에로 빠져들 수 있다.
손양원 목사는 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죄를 범치 말아야 되나니 죄를 지으면 죄의 종이 된다. 범죄하고는 신앙의 위대한 인격자가 못되는 것이다. 죄는 어릴 때부터 절대로 시작 계속되지 않아야 되나니 어릴 때부터 배우게 된 죄의 버릇은 장성한 후에는 도저히 고치지지 않게 되나니라"고 하여 성결의 삶을 강조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새 생명의 거룩한 씨(씨앗)를 받아 자라 나아간다고 손양원 목사 자신이 말했듯이 어린이는 어려서부터 계속적인 관심 속에서 새 생명의 거룩한 씨앗이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햇빛과 비를 맞으면서 개발(cultivation)되고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손양원 목사는 "예수는 영적 인간으로 되는 획기적인 중생의 종자(씨앗)가 되는 법이다" 그리고 또한 그는 계속해서 "우리는 날마다 성경을 배워 자라간다. 기도하며 성경 읽고 우리 신앙이 자라 우주 속에 역사 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한다. 사도바울의 신앙도 자라감을 우리는 볼 수 있다. 처음에는 "나는 사도 중에 작은 자"라고 하더니, 다음에는 "신자 중 작은 자"라 하고, 나중에는 "죄인 중 괴수라"고 하였으니 이는 신앙장성의 표이다라고 했다. 또한 "수목(樹木)도 재배 안 하면 잘되지 않고 금수도 길 안들이면 안 되는데 어찌 사람인들 배양(cultivation)하지 않을 수 있으리요"라고 했다. 이러한 손양원 목사의 주장은 부쉬넬의 양육 이론인 어린이는 기독교인으로 양육되어져야 한다는 것과 같은 이론으로 보아야 한다. 반면에 손양원 목사는 돌변적인 회심의 경험을 가지는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순간적 급변적 일회적 회심보다도 긴 시간의 과정적 회심을 의미할 수도 있다. 손양원 목사는 "우뢰의 아들이 사랑의 아들이 되고 돈을 사랑하는 이가 돈을 버리게 되고 포악하던 박해자가 온유하고 겸손한 핍박당하는 자가 되었다"고 했으며 또한 "주 안에서는 본성도 고쳐질 수 있다" "신앙은 인위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니라"고 했는데 단계적 경험에 의한 회심의 의미가 큰 것 같다.
손양원 목사는 회심에 있어서는 부쉬넬의 교육이론과는 유형을 달리했다. 부쉬넬은 과정적 체험으로서의 회심을 양육으로 정의했지만 손양원 목사는 과정적 회심을 강조하면서도 돌변적인 회심의 체험을 부정하지 않고 인정했다. 즉 손양원 목사는 양육과 회심의 양면적인 교육 이론을 정립하였다. 손양원 목사는 "인생관에 있어서 낙관적 비관적으로 양극으로 치우치게 보는 자가 있아오나 낙관적으로 혹은 비관적으로 양극으로 치우칠게 아니라"고 하였다. 이 말의 의미는 인간이 비관주의나 낙관주의 어느 한쪽에만 극단적으로 치우치지 말라는 것이다. 즉 인간은 연속성 비연속성의 양면을 가진 존재이므로 양육과 회심의 양면을 다 중시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손양원 목사는 어린이들에 대하여는 비관주의가 아니고 낙관적 견해가 강하다. 그는 "장래의 선생도 오늘에는 학생이며 앞날의 위인도 오늘에는 아동이니 장래의 인물은 오늘부터인 것이다. 장래의 성인(聖人)만들고 싶으면 오늘부터 잘 수양시켜야 한다"고하여 부쉬넬과 같이 과정적 체험의 회심을 강조하면서 기독교적 양육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실존주의나 근본주의 신학 대각성 운동이 주창한 비관주의는 인간 존재를 비연속성(discontinuity)의 존재로 이해하였고 따라서 인간의 개혁 구원은 교육과 훈련에 의해서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관주의는 절망 불안 죄 타락 돌발적 회심 등을 중시한다. 이에 반하여 낙관주위는 시간과 역사 인간 존재를 점진적으로 진화하는 연속성(continuity)의 존재로 이해함으로써 인간은 교육에 의해 개혁과 구원이 이루어 질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서의 존재로 이해한다. 따라서 인간과 사회는 교육에 의해서 갱신되고 구원되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부쉬넬의 신학은 비관주의 낙관주의 양자의 긴장을 유지하면서도 이 양자를 '경험'과 '가정'이라는 매개를 통해 연결함으로써 비연속성의 신학보다는 연속성의 신학으로 기울어졌고 그리하여 돌변적 회심 회개의 경험보다는 '가정'이라는 신앙 유기체를 통해서만 영적 성장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손양원 목사는 인간은 연속성과 비연속성의 양면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주장하면서 인간의 개혁과 구원은 회심과 양육의 두 가지 유형의 경험을 통해서 이루어지며 이것들은 '가정'이라는 매개만이 아닌 가정 교회 학교 등의 기관들을 통해서도 가능하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물론 신앙교육의 중심은 먼저 '가정'이라는 것은 손양원 목사는 부인하지 않았고 오히려 강조했다.

2) 부모 이해

부모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이 땅에서 왕적 직무를 감당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에 자신의 대리자로 부모를 세우셨다.
제임스 파울러(James W. Fowler)의 신앙발달론은 피아제나 콜버그의 구조주의적 방법과 에릭슨의 심리 사회적인 관심을 기초로 하여 전개되어진 이론이다. 파울러에 의하면 신앙이란 어느 한 순간에 생겨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 속에 있는 하나의 가능성을 가진 씨와 같은 것으로 서인간이 가지고 태어나서 몸과 정신이 성장하고 발달해 감에 따라서 서서히 자라서 성숙한 신앙에로 발달해 가는 것이라고 하였다. 신앙생활은 인간에게 있어서 평생 계속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녀의 성장 발달에 따라 신앙도 계속적으로 성장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책임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기독교 가정이란 신앙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기독교 가정의 부모들은 신앙을 지닌 공동체로서 하나님 안에서 그 가정을 잘 다스리고 훈계하고 훈련하고 가르쳐야한다. 부쉬넬에 의하면 부모는 하나님과 아동사이에서 올바른 관계형성과 신앙을 매개하는 입장에 서서 기독교 신앙교육자로서의 사명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교육의 성패는 교사인 부모가 그 사명 책임을 다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했다. 그리고 기독교 신앙교육자로서의 부모가 갖추어야 할 자격중의 하나가 부모자신이 "신의 가르침"과 "그리스도의 빛"안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즉 부모자신들이 신의 가르침 안에 있음으로서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신앙적 관계를 가짐으로서 자녀들을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삶으로 인도하게 한다는 것이다.
손양원 목사는 부쉬넬과 같이 부모의 신앙적 모범을 강조하였다. 손양원 목사는 "아이들은 꼭 어른들 하는 대로 본받는 모방의 그릇이요 거울 같은 그림자니 조심하고 주의하라"고 하였다. 어린이는 이성으로 행동하기보다는 본능, 충동, 모방으로 행동한다. 가정에서의 신앙교육이란 부모가 자녀에게 하나님은 이것을 원한다라든가 저렇게 하면 벌받는다는 것으로는 양육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부모자신이 스스로 하나님의 돌보심 안에 사는 것을 보여주고 느끼게 해주고 부모들이 하나님의 은총의 빛 아래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즉 부모들이 먼저 철저한 기독교적 신앙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손양원 목사는 "기독자의 생활이란 예수의 생명을 받아 예수그리스도의 생활화 그대로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바로 생활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손양원 목사는 신앙의 생활화를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기독교는 바로 생활의 실행이다 기독교는 두말할 것도 없이 말의 종교, 교훈의 종교, 철학의 종교, 이론의 종교, 학문의 종교가 아니라 실제적 종교이며 능력의 종교이다. 기도만도 아니요 남을 잘 가르치는 것으로도 불만이요 바로 그대로 받는 대로 사는 그것이 참 힘이요. 실제요 크리스챤의 생활이 되리라...좋은 목사가 되는 것 보다 먼저 신자(信者)가 되어서 그리스도의 생활 그대로가 내게서 나타내어지게 하는 것이 문제이다.

이것은 자기 자녀들을 올바로 훈련시키기를 원하는 부모들은 자기가 먼저 자기 자녀가 가야할 길을 모범으로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가 참 기독교인이 되는 이것이 자녀를 교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예수님의 교육 방법도 생활 중심이다. 그의 가르침과 비유를 볼 때 실제 생활중심이다. 손양원 목사는 가정교육은 생활중심이어야 하며 부모가 가정생활이나 사회생활 교회 생활 속에서 모범을 보여야 함을 강조했다. 즉 부모자신이 신앙을 생활화하여야 한다.
부쉬넬은 ‘그리스도의 빛’안에 있지 아니한 무자격 부모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교육은 엄숙한 기독교 교육의 책임을 왜곡시키는 죄악을 범하는 것이며 무자격 부모의 그릇된 교사상은 내적 능력상실로 광적인 신앙, 완고함, 경건한 체 함, 남의 흠만을 찾아내려는 습관과 그리고 불안 등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손양원 목사는 극한 고난을 겪는 감옥에서도 그의 아들 동인 군에게 "아버지 항상 몸 성히 상관의 애호를 잘 받으니 내 걱정은 단념하라. 너의 간절한 기도의 응답인 것으로 믿고 감사한다"고 하면서 자녀에게 불안감을 주지 않고 안정감을 주었다. 손양원 목사는 "나는 절대로 타인을 비평치 말고 교만치도 말고 섰다고 자랑도 말고 자력과 결심을 믿지도 말고 큰소리도 말고 그저 절대로 겸손하고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만 앙망하는 신앙생활자만 되고저한다."고 했다. 이것은 자기자신이 그리스도의 빛 안에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손양원 목사가 말하는 바른 부모상이다. 이러한 신앙을 가진 부모라야 그 부모의 삶이 마치 줄기의 수분이 가지로 스며들 듯이 유기적 법칙에 따라서 어린이에게로 항상 흘러 들어간다는 것이다.
손양원 목사는 가정에서 자녀들 자신이 비기독교인이 아닌가를 생각지 못하게 하며 처음부터 출생 때부터 기독교인 것으로 느끼도록 가정의 분위기를 이끌어갔다. 손양원 목사 가정의 분위기는 경건과 사랑과 인내로 이끌어 가는 분위기다. 손양원 목사에게는 이러한 것이 가정교육에서 신앙의 방법인 것이다. 이러한 신앙방법의 교육은 이론에 그치지 않고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우상숭배(신사참배)거부로 감옥에 들어가면서도 불굴의 신앙을 보여 주었고 그의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여 주고, 사랑하여 양자로 삼았으며 극한 고난 속에서도 인내로 소망을 잃지 않았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손양원 목사가 이끌어 가는 신앙교육이며 가정의 분위기이다.
손양원 목사는 "무엇보다 더 좋은 것은 신앙의 위대한 인격생활에 힘쓰라" 라고 하였으며 또한 "주는 광명의 빛이시니 빛이 임하시여 우리의 영안이 열리면 보고 믿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손양원 목사는 늘 광명의 빛 되시는 주님 안에 거하기를 희망했으며 평생을 그렇게 살면서 가르치고 실천하다가 일생을 마쳤다.
부모의 경건한 삶과 사랑의 삶 그러한 가정의 분위기 속에서 자녀들은 기독교인으로 성장해 간다.

3) 세례론 이해

어린이들은 그들의 부모가 하나님과의 언약의 관계에 있음을 전제할 때 자녀들도 그 계약의 분담자(partaker)로서 부모의 믿음과 함께 한다. 이와 같은 근거에서 어린이는 부모와 함께 믿음의 인 치심인 세례를 받고 하나님은 자녀들이 그리스도인으로 또는 영적으로 새로워진 존재로 자라게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신다. 또한 하나님은 자녀들이 부모의 삶의 영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부모의 모든 선한 것들로 사랑 속에서 자라게 되리라는 것을 인정하신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기독교 교육이란 이러한 것을 확고히 하는 것이며, 이것을 제외한 어떤 것도 기독교 교육이라 불리워질 수 없다는 것이다. 유아세례는 부모와 자녀간의 성격의 유기적 연관의 사실을 전제하는 의식이다. 손양원 목사는 그의 제1회 피의자 심문조서에서 기독교 입교 상황과 신앙경력 여하의 질문에서 그는 "아버지 대촌종일이 장로교회 장로이기 때문에 나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지도로 해서 자연히 기독교를 신앙하게 되었으나 정식으로 세례를 받기는 17세때 고향 칠원교회에서 받았읍니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정식으로 세례 받기는 "의 표현은 세례를 받음으로 정식 기독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손양원 목사는 세례를 받음으로 하나님과의 언약의 관계를 맺게 되었으며 거룩한 자가 되었으며 주님의 몸되신 칠원교회의 정식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즉 이 세상에 있는 교회(the visible church)의 충성스러운 일꾼으로 자라게 됨을 인정하는 고백으로 본다. 또한 피의자 의견서에는 손양원 목사가 "칼빈의 교리와 예정설을 절대 진리로 인정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손양원 목사는 존 칼빈(John Calvin)의 유아세례론 즉 유아세례를 하나님의 예정과 언약에 의한 것이며 동시에 자녀를 계속 양육해야 할 부모와 교회의 신앙적 교육적 책임이 동시에 주어진다는 견해를 인정하는 것이다.
손양원 목사는 "어린이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으며 예수님의 총애를 받는 자이니 삼가 조심하여 기르자"고 하였는바 이는 어린이는 이미 언약공동체의 맴버라는 견해를 가진 것으로 본다. 손양원 목사의 자녀들도 유아세례를 받았다. 손동인은 1928년 5월 30일 맹호은 선교사에게서 손동신은 1931년 6월 3일 예원배 목사에게서 손동희는 1935년 12월 22일 권남선 목사에게서 각각 유아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칠원교회 최초의 유아세례는 1911년 5월 28일 이치수 목사가 손종일 집사(손양원 목사 父)의 셋째 아들 손의원 어린이에게 주었다.
또한 칠원교회는 "그리스도를 실제로 믿고 복종을 고백한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부모가 다 믿거나 한편만 믿는 자와 유아라도 세례를 받을 수 있다(Not only those that do actually profess faith in and obedience unto christ, but also the infants of one, or both, believing parents, are to be baptized) 라는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에 따라 성도의 자녀는 지체없이 유아세례를 받아야 옳은 일이다"라고 권고하였다.
부쉬넬은 "유아는 부모성격의 테두리 내에 있으며 부모의 모든 은총, 신앙, 기도 및 약속이 유아의 것이 된다. 유아는 부모 안에서 살고 숨쉬며 거의 자기자신의 일부임과 동시에 부모의 일부이다"라고 하였다.
손양원 목사 가정의 자녀들이 부모의 신앙 안에서 그리고 그 부모의 신앙에 따라서 세례를 받았고 그 부모의 신앙으로 숨쉬고 성장하도록 하기 위해서 세례를 받게 했다. 그리고 그 자녀들이 세례를 받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부모와 함께 교회의 구성원으로 간주되며 부모의 신앙에 참여하여 믿음의 인(seal)을 가지는 것으로 손양원 목사는 확신했다.
부쉬넬은 중생의 가시적 표식이 세례라고 했다. 손양원 목사도 이와 비슷한 견해를 갖고 있다. 그는 말하기를 "중생치 않고는 아무리 해도 죄악의 자식이다"하여 세례를 중생의 가시적 표식으로 보았다.

2. 교육 사상

손양원 목사의 교육사상은 그의 신앙의 기초 위에 서 있다. 손양원 목사에 있어서 신앙과 교육은 불가분리의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 오직 하나님의 은총사상

손양원 목사는 다만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은혜와 축복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다. 하나님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더 많은 복을 받기 위한 감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손양원 목사는 "기독자의 선행은...구원받고저 해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얻은 복과 이미 받은 사랑에 감사해서 나타나는 표현인 것이다"라고 했다. 여기서 그가 말한 "이미 얻은 복과 이미 받은 사랑"이라는 것은 파멸의 죄악에서 구속하여 주셔서 구원 얻게 한 하나님의 사랑을 뜻하는 것이지 물질적 축복과 사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손양원 목사에게는 하나님의 크신 은총은 인격적 변화이고 그 인격적 변화의 토대 위에서만 신의 축복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손양원 목사는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신앙의 위대한 인격생활에 힘쓰는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그는 "구속받은 자는 겸비하여지고 온유하여 진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적 인격의 변화를 의미한다. 손양원 목사는 잘 산다는 물질적 육체적 복의 의미보다는 바르게 산다는 성서적 의미가 강하게 나타난다.
손양원 목사의 하나님 은총사상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뜻과 목적만을 위해서 자기자신의 명예와 출세의 욕망을 버리고 자기자신을 하나님의 사랑에 온전히 응답하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손양원 목사 자신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존중히 여기는 삶을 의미한다. 손양원 목사는 "주여 내가 세상의 무슨 명예심으로 주를 사랑하거나 말세의 무슨 상급을 위하여 사랑하는 무슨 욕망적 사랑도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만 그리스도의 사랑의 내용에서 되는 사랑으로서 이 불쌍한 영육들(나환자들)만 위하는 단순한 사랑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고백함으로서 하나님의 은총 사상은 이미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로서 앞으로의 삶은 육적인 출세와 명예 이익을 위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위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삶이라고 결론지었으며 그 하나님 사랑에 응답하는 삶으로서 심신의 모진 고난도 극복하고 하나밖에 없는 생명도 기꺼이 주를 위해 바쳤던 것이다.

2) 하나님 중심 사상

손양원 목사의 하나님 중심사상은 그의 설교와 교육과 삶의 기초가 고된다. 하나님 중심사상은 하나님의 주권을 그의 피조물인 인간으로서 무조건 인정하고 복종하는 삶의 자세이다.
손양원 목사의 교육원리는 하나님 중심사상이다. 그 하나님은 아버지요 천지만물을 만드신 창조주이시며 구속주이신 하나님을 지칭하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 안에서만 가르침이 가능하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니 하나님 없이는 모든 것이 존재치 않는다. 목회와 교육과 사랑과 순교의 출발점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회복인 것이다.
손양원 목사의 하나님 중심사상은 그의 목회와 교육 그의 삶 전체의 시작과 끝이었다. 손양원 목사는 "하나님께서 영광 돌리는 일에 손해되는 일이라면 다 버려야 할 것이요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이라면 나의 생명까지도 바쳐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음 받은 이 몸이니 주 위해 살다가 주 위해 죽는다면 이 이상 더 성공이 있겠는가. 이것이 인생의 고귀한 생활이라 할 수 있다"라고 하여 철저한 하나님 중심사상을 강조했다. 손양원 목사는 만물과 인간이 하나님께로부터 지음 받은 것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한 목적이니 교육과 목회 생(生) 과 사(死)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고 그 하나님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손양원 목사 자신의 생명도 창조주 하나님이 바치기를 원한다면 그 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으며 더 큰 성공이 어디에 있겠는가 라고 반문한다. 손양원 목사는 더 나아가 "자신의 명예나 지위나 세력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 것은 죄이다"라고 했다.
손양원 목사는 계속해서 "바울같이 그리스도만을 영화롭게 하면 된다. 주의 뜻이 아니면 천만금이 생겨도 거절해야 할 것이요 주의 뜻이면 물불을 헤아리지 말아야 한다. 오! 주여! 나의 뜻 계획 생각은 다 깨어지고 당신의 뜻, 계획, 생각만이 성취케 하소서. 내 것, 인간의 것, 땅의 것 다 바벨탑 같이 여기게 하소서"라고 했다.
손양원 목사는 삶의 전체의 걸음걸이가 하나님의 목전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자였다. 경건하고 부끄럽지 않게 살려는 그의 노력이란 바로 끊임없이 하나님을 그의 심중에 모시고 죽기까지 순종하며 사는 생활이었다.
손양원 목사는 "내 눈을 빼고 내 코를 배고 내 입이 찢기 우고 내 손이 잘리우고 내 발이 떨어지고 내 목이 끊기워서 석되 밖에 안 되는 피가 다 쏟아지고 내 뼈가 부셔져서 가루가 되어도 내 주의 사랑을 다 갚을 길이 없다"고 하면서 죽고 또 죽고 뼈가 가루가 되어도 하나님만을 중심으로 살겠다는 그의 사상을 확인할 수 있다.

3) 성경중심 사상

손양원 목사에게 있어서는 성경의 위치가 매우 중요하다. 손양원 목사의 교육사상은 한마디로 하나님 제일주의이며 성경주의라고 할 수 있다. 손양원 목사에게는 별도의 학문적인 교육이론과 원리가 없고 성경에 있는대로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관계와 피조물된 인간으로서의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의무를 가르치고져 필사의 노력을 기울였다. 손양원 목사는 "아이들을 사랑하라 영접하라, 노엽게 말라는 것은 오직 성경에서만 가르친 말씀이니 꼭 성경진리와 원리대로 교양 시킬 필요가 있다"고하여 성경에 있는 대로 성경진리와 원리대로 어린이들을 교육시켜야 함을 강조했다. 손양원 목사에게 있어서 성경은 모든 것의 표준이 된다. 그는 "성경에서 성경으로 전부를 삼고 성경으로 성경을 풀고 싶다. 성경에 묻고 성경에서 대답하고 싶다. 서론도 성경이요 내용도 성경이요 결론도 성경이 되게 하고저 한다. 즉 성경으로 시작하여 성경으로 마치고 싶다"는 그의 설교 원리가 성경에 기초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손양원 목사에게는 성경을 떠난 도덕교육이나 도덕적 행위도 있을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성경에 하나님 말씀으로 표시되어 있는 것은 전부가 의요 성경이외의 것은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 기록한 것이라도 불의한 것이다" 라고 하여 성경만이 도덕적 윤리적 규범임을 밝혔다. 그러면 교육 칙어는 어떻게 생각하는 가라는 심문관의 질문에서 손양원 목사는 "교육칙어라도 성경에 쓰여 있는 취지에 합치하면 의로운 것이로되 합치 아니하면 불의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손양원 목사는 교육원리와 내용 방법등 교육의 모든 것이 성경에 일치되어야 참교육임을 강조한다. 교육은 '의'를 가르치는 것인데 '의'는 '바른 것'으로서 성경에 표시되어 있어야하고 그 이외의 것은 아무리 훌륭한 사람의 기록이라도 전부가 불의 하다는 것이다.
손양원 목사는 무턱대고 어떤 사람을 따르는 것을 거부한다. 성경의 확증 없이는 누구도 따르지 않는다. 그는 "누가 성경을 의심한다면 나는 그와 상종하기도 싫다"고 하였다. 그는 성경이 가는 곳까지 가고 성경이 멈추는 곳에서 멈춘다. 그는 성경이 침묵하는 곳에는 침묵하고 성경이 진리와 정의를 부르짖는 곳에는 그도 목숨걸고 정의와 진리를 부르짖는다. 그는 성경에 있는 대로 성경말씀을 현실 생활에서 교육을 통하여 확증해 나갔다. 손양원 목사의 교육의 내용과 방법 원리는 성경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그러기에 그는 무한한 능력과 영광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분명히 명확하게 강조했던 것이다.
손양원 목사는 모든 것에서 언제나 어디서든지 성경을 우선 순위에 놓았고 성경을 생활의 원칙으로 삼았으며 성경을 신앙과 교육의 중심으로 삼고 실천하였다. 손양원 목사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붙들고 정확무오한 성경을 붙들 때 그의 일생은 모든 진리와 경건함으로 참된 인도함을 받았다. 손양원 목사는 가정 일이나 교회일 교육이나 목회 등 모든 영역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서 행하였고 그의 전 생애와 활동범위는 성경에 의해서 정돈되어졌다.

3. 교육의 목적과 내용의 정의

1) 교육의 목적

부쉬넬의 교육목적은 어린이는 가정에서 그리스도인 부모에 의해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영 안에서 살고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살아가는 부모들의 그리스도인다운 삶과 영은 어린이의 마음속에 흘러 들어가서 발달하기 시작하여 반쯤 형성된 그의 훈련에 섞이게 하는 것 그래서 어린이 속에 자신의 선이 생기도록 하는 것인데 그래서 가정은 기독교적 양육에 매우 중요한 장이 되는 것이다. 손양원 목사도 마찬가지로 어린아이들은 가정의 경건함과 사랑의 분위기 속에서 부모에 의하여 성경의 교훈대로 성장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손양원 목사에게 있어서 경건의 의미는 주의 뜻대로 사는 것을 말하는데 주의 뜻이란 "예수를 믿는 자, 성결된 자, 사랑하는 자로서 사는 자가 되는 일이다"라고 하였는데 부쉬넬도 경건의 의미를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과 영적 은사와 도덕적 생활의 변화의 통칭인 거룩한 덕으로 보았다.
손양원 목사는 "백지 같은 아이들이니 물들이기에 따라서 여러 가지 인물이 될 것이요 속 빈 것 같은 아이들이니 안에 넣는 것 따라서 이름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어린이는 전적으로 공판의 백지 같은 마음이어서 그 위에 무엇이든지 쓸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어린이의 마음은 어느 누구나 똑같은 백지 같은 상태여서 그 공백을 무엇으로 어떻게 매우느냐에 따라서 경험과 지식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즉, 어린이는 교육(양육)행위에 의해서 훌륭하게 되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존재로서 하나님 말씀에 의한 경건함과 사랑으로 양육(교육)되어질 때 장성한 분랑의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손양원 목사가 위에서 말한 "백지 같은 아이들에게 물들이고 속 빈 것 같은 아이들에게 안에 넣는 것 따라서..."라는 표현은 양육(교육)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그는 "삼 사십년전 아이들이 오늘날의 목사 장로 집사 선생이 되었고 또 다시 삼 사십년 후이면 오늘의 아이들이 선생도 장로도 목사도 위인도 성인도 될 것이 아닌가"라고 한 것으로 보아 어린이는 양육에 의해 장성한 기독교인이 될 수 있으나 급진적인 회심은 필요하지 않고 오직 말씀의 장에서 가정과 교회, 학교 등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과정적 회심이 이루어짐을 주장한 것이다. 손양원 목사에 있어서 교육적인 접근은 내용의 충실한 전달이나 교리 주입보다는 체험이나 모방 그리고 교육실천에 더 큰 관심을 두었다고 본다.
손양원 목사의 교육 목적을 단적으로 말하면 어린이로 하여금 "성경요람 안에서의 성장"을 말하는데 즉 아동들은 가정에서 부모에 의하여 성경의 교훈과 하나님의 사랑으로 양육되어질 때 아동들은 그들의 삶이 진리와 경건함으로 인도함을 받아 하나님의 나라에 봉사할 수 있는 인간이 되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2) 교육의 내용

손양원 목사 가정의 교육 내용의 주요원천은 성경이며 교육의 중심주제는 그리스도적 인격이다. 그리고 교육 내용을 전달하는 행위자로서의 교사의 임무와 자격은 가르친 교육 내용에 일치하는 실천적 삶이 그 평가 기준이었고 그 가르침과 실천의 결과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었다. 손양원 목사는 "가르친다는 것도 그대로 지식을 전해준다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을 보여 준다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손양원 목사에게 있어서 교육원리는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 교육의 열매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손양원 목사의 교육 내용은 성서를 기본과목으로 생각하고 교육의 방편으로 간주하였다. 즉 성경이 교육의 교과서였다. 성경을 통해 아이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는 것이 부모의 근본과제로 보았으며 성서 외에도 인간과 인간사이의 윤리도덕교육을 강조했다. 손양원 목사는 그 당시의 요리문답 성경암송 등 어떤 가르침이나 도구들을 무시한 것은 아니지만 그 보다 생활 속의 신앙 즉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실천의 삶을 더 중시했기 때문에 지적이고 논리적인 가르침보다 삶으로서의 진리가 무엇인가를 보여 주는 것이 진정한 교육 내용이었다.

출처 : ImagoDei
글쓴이 : Ho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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