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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Re:통치신학, 저주인가? 축복인가?(4-한글자료)

baromi 2006. 9. 2.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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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교회는 한국교회의 모델?
팻 로벗슨을 중심으로 보는 미국 복음주의가 한국 복음주의에 미친 영향

   
▲ ⓒ복음과상황 자료사진
한국 복음주의의 새로운 양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 복음주의의 정치참여를 고찰하는 것이 매우 현실적이고 유익하다. 미국과 한국의 다양한 역학관계를 고려할 때, 특히 미국교회와 한국교회의 내용과 형식상의 친화성을 염두에 둘 때, 충분히 가능한 발상이다. 미국 복음주의 우파의 정치적 특성을 검토함으로써, 현재 진행 중인 한국 복음주의의 정치적 행보를 보다 거시적인 맥락에서 바라보자.

미국을 건설한 청교도들은 뉴잉글랜드 지역에 성서에 입각한 신정사회의 건설을 꿈꾸었다. 그들이 부르짖던 ‘언덕 위의 도성’(City upon a Hill)은 이 같은 신성한 꿈을 대변하는 상징적 구호였다. ‘기독교적 미국’(Christian America)을 건설하기 위한 정치와 종교 간의 협력은 제1차 대각성의 영웅인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의 후천년설에서 신학적 비전을 발견했고, 찰스 피니(Charles Finney)를 중심으로 전개된 사회개혁운동에서 실천적 동력을 확보했다.

그러나 미국 복음주의 사회참여 혹은 정치활동은 1920년대에 절정에 달한 근대주의-근본주의 논쟁을 기점으로 막을 내렸다. 기독교의 개혁운동은 ‘사회복음’(Social Gospel)을 축으로 한 주류교단들의 관심사로 제한되고, 근본주의를 정점으로 한 보수적 복음주의 계열은 사회에서 개인으로, 현세에서 내세로, 그리고 정치에서 종교로 그들의 일차적 관심을 이동하며, 사회적・문화적 변두리로 퇴각하였다. 이 같은 복음주의의 비정치화 현상을 종교사회학자 데이빗 모벅(David O. Moberg)은 ‘대반전’(Great Reversal)으로 규정하였다.

낙태합법화로 정치적 동면에서 깨어나

복음주의의 비정치화 경향은 1970년대를 기점으로 새로운 반전을 겪었다. 1973년에 미대법원이 낙태를 합법화함으로써 복음주의자들이 정치적 동면상태에서 깨어났고, 1976년 대선에서 ‘거듭난 그리스도인’(a born-again Christian) 지미 카터가 당당히 백악관의 주인이 되었으며, 1980년에는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가 레이건의 대통령 당선에 일등공신으로 활약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50여 년간 변방에서 은둔하던 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이 미국의 정치 1번지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그들은 내부의 신학적・교파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낙태반대(pro-life), 동성애 반대, 진화론 반대, 세속적 인문주의 반대, 반공주의, 가족의 중요성을 근거로 한 여권운동 반대(pro-family), 미국의 군비축소 반대, 공립학교에서 기도하는 권리 쟁취 등과 같은 종교적, 윤리적, 그리고 정치적 사안들에 대한 공통된 이해를 근거로 대연합을 형성하였다.

새로운 정치그룹으로서 이들은 대략 세 가지 측면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구체화시켰다. 먼저, 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을 축으로 구성된 정치단체들이 출현하였다. 1979년에 보수 복음주의자들 뿐만 아니라, 가톨릭과 유대교의 보수주의자들을 연합하여 구성된 ‘도덕적 다수’(the Moral Majority), 캘리포니아에 본부를 두고 미 의회에도 진출한 ‘기독교의 소리’(Christian Voice), 버지니아 주 알링턴에 소재한 ‘종교적 원탁의 기사단’(Religious Roundtable), 버지니아 주에서 탄생하여 전국적 조직망을 완성한 ‘기독교 연합’(the Christian Coalition), 그리고 워싱턴 D.C.를 근거로 복음주의 여성들의 보수적 정치활동을 지휘하는 ‘미국을 걱정하는 여성들’(Concerned Women for America) 등이 대표적 예이다. 이 단체들은 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의 정치적 여론을 주도하고, 모든 주요 선거에서 낙선 및 당선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함으로써, 미국 정계에 심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둘째, 미국 복음주의 계열의 대형교회 목회자들 가운데 미국 정계에 영향을 끼치는 인물들이 점증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복음주의적 신앙과 소위 네오콘(neocon)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보수적 정치노선을 동일시하면서, 미국 공화당의 든든한 정치적・종교적 후견인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이 현상을 주도하는 인물들로는, 미국 버지니아주 린치버그에 소재한 토마스 로드(Thomas Road) 침례교회의 담임목사인 제리 폴웰(Jerry Falwell), ‘가족 초젼(Focus on the Family)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가정 사역을 전개하면서 미국 보수정치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는 제임스 돕슨(James Dobson), 그리고 세계 최대의 기독교 방송국인 CBN(Christian Broadcasting Network)을 중심으로 1988년 미국 대선에도 출마했던 팻 로벗슨(Pat Robertson) 등이 있다.

끝으로 미국 대통령들과 미국 보수적 복음주의 간의 밀월관계이다. 1976년도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던 지미 카터는 미국 최초의 공인된 ‘거듭난 그리스도인’ 대통령이었다. 1980년도 선거에서 카터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된 로날드 레이건(Ronald Reagan)은 공립학교에서 기도하는 권리, 성경에 대한 존중, 그리고 낙태 반대 등의 구호를 외침으로써 제리 폴웰을 중심으로 한 보수 기독교인들의 표를 독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작년에 재선에 성공한 조지 부시 2세는 독실한 신앙인으로서의 종교적 정체성을 확고히 함으로써, 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기독교 우파의 상징적 인물, 팻 로벗슨

   
▲ 팻 로버슨.
미국 복음주의 우파를 상징하는 대표적 인물로 팻 로벗슨(Marion Gordon ‘Pat’ Robertson)을 꼽을 수 있다. 그의 아버지 윌리스 로벗슨은 오랫동안 민주당 소속으로 미 하원과 상원에서 명성을 날린 거물급 정치인이었으며, 그의 어머니 글래디스 처칠 로벗슨은 대통령을 두 명이나 배출한 명문가의 후예였다. 팻 로벗슨은 예일대학교 법과대학원을 졸업한 뒤, 변호사 시험 낙방과 사업의 연속적 실패로 생의 위기에 직면하면서 극적으로 회심했다. 그 뒤 뉴욕신학대학교에 입학, 그곳에서 은사주의자가 되었다. 1960년 1월, CBN을 설립한 그는 대표적 프로그램인 ‘700클럽’을 통해, 이 방송국을 미국 최대의 기독교 방송국으로 성장시켰고, 1976년에 CBN 대학교(현, Regent University)도 설립하였다.  

CBN을 중심으로 방송선교에 주력하던 로벗슨은 1980년부터 자신의 관심을 정치 분야로 확장했다. ‘700클럽’을 뉴스형식으로 개편하면서 정치적 색채를 드러내기 시작했고, 1987년에는 미국 대통령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했다. 1989년에는 가족중심의 논제들을 대표하고, 비판적 문제들에 대해 미국을 교육할 목적으로 ‘기독교 연합’(the Christian Coalition)이란 정치로비단체를, 그리고 1990년에는 가족, 생명, 그리고 자유를 수호할 목적으로 ‘미국 법률 및 정의 센터’라는 기독교 우파계열의 법률회사를 각각 설립했다.
 
이런 배경과 경력을 지닌 로벗슨의 사상적 특징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범주로 구분하여 설명할 수 있다. 먼저, 로벗슨의 신학적・정치적 사상은 그의 독특한 종말론에 근거한다. 그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으며, 동시에 신자들도 대환란의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는, 소위 ‘환란통과설’을 주장한다. 이런 묵시적 종말론에 근거하여 미국의 역사를 건국시조들의 기독교신앙이 세속화의 광기 속에서 몰락하는 과정으로, 이슬람을 비롯한 동양종교의 발흥을 종말의 징조로, 그리고 UN을 중심으로 한 세계의 협력 체제를 미국의 지위를 위협하는 악마적 음모의 증거로 해석한다.

둘째, 로벗슨은 분파적 성향이 강했던 기존의 보수적 복음주의자들과는 달리, 교회의 적극적 사회참여를 강조한다. 교회와 세상의 벽을 제거하려는 그의 노력은 소위 ‘통치신학’, 혹은 ‘재건주의’로 알려진 보수적 정치신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로벗슨은 “인간은 하나님의 대표자로서 땅과 피조물을 지배하도록 창조되었다”고 믿으며, 특별히 기독교인들이 세계의 평화를 위해 세상의 정상에서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의 정상에서 다스릴 수 있는 정당한 자리를 얻기까지, 결코 세상에 평화는 있을 수 없다. 술주정뱅이․마약판매상․공산주의자․무신론자․뉴에이지 사탄숭배자․세속적 인문주의자․간음자․ 그리고 동성애자들이 정상에 있는 한 어떻게 평화가 도래할 수 있다는 말인가?” 로벗슨의 말이다.

끝으로, 이처럼 묵시적 종말론과 통치신학의 영향아래 형성된 로벗슨의 정치신학은 전체적으로 미국의 보수주의, 보다 구체적으로는 네오콘으로 상징되는 공화당의 정치노선과 궤도를 같이 한다. 예를 들어 로벗슨은 공산주의를 기독교와 양립할 수 없는 ‘적’으로 규정하고, 이에 근거해서 미국의 복지제도 자체를 부정한다. 낙태운동․여성운동․동성애 운동․평화운동․ 환경운동에 대해서도 강력히 비판하며,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대단결’을 호소한다. 특별히 전쟁문제에 대해서 억압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기도 외에 구체적 행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전쟁의 현실적 필요를 긍정하고 미국의 군비축소를 반대한다.

이런 로벗슨의 의식은 그가 보유하고 있는 기구들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는 지금도 CBN의 ‘700클럽’을 통해 매일 자신의 정치이념을 수백만의 시청자들에게 전파하고 있다. 200만 명의 회원을 보유한 그의 ‘기독교연합’은 시의원선거에서 대통령선거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정치판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 결과 로벗슨이 1988년 미 대선에서 패하긴 했지만, 오히려 미국 정계에서 그의 영향력은, 누군가 그를 ‘팻 로벗슨,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로 평가하며 경계할 정도로, 폭발적으로 증대되어 왔다.

미국교회는 한국교회의 모델?

지난 반세기 동안 여러 면에서 미국은 한국에 심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그 영향의 흔적은 교회 안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지금도 한국교회는 미국교회를 모델로 선정하고, 그들의 문화를 신속히 수입하여 한국에 적용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소개되는 기독교 서적들, 우리나라에 초청되는 학자나 목회자들, 우리나라에 새로 도입되는 프로그램들의 절대 다수가 미국에서 수입되는 것을 보면 현 상황의 심각성을 가늠할 수 있다.

특별히 지난 총선 이후, 한국 복음주의 진영의 정치적 행보에 가속도가 붙었다. 한국기독당의 창당, 주한미군철수반대와 보안법철폐 반대를 위한 시청 앞 대규모 집회, 뉴 라이트 전국연합의 출범, 그리고 최근 사학법 개정 반대투쟁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조직은 더욱 정교하고 거대해지고 있다. 그러면서 이념과 행동양식 면에서, 한국 복음주의자들과 미국 복음주의 우파 간의 유사성이 더욱 뚜렷이 부각되고 있다.     

이미 여러 영역에서 영향을 받아 왔고, 또 정치참여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한국 복음주의자들이 미국 복음주의자들의 전례를 학습하고 적용하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절차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한국 복음주의자들은 스스로 삼갈 필요가 있다. 한국과 미국의 문화적・역사적 차이를 충분히 고려함으로써, 미국의 것을 무분별하게 도입하거나 모방하는 우를 범치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보수 복음주의 정치참여를 관찰하면서, 그들만의 고유한 문제들, 그 문제들을 풀어가는 그들의 독특한 방식, 그리고 그들이 제시하는 특이한 해결책 등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한국적 상황에 탄력적으로 적용해야, 문화적 사대주의를 극복하고, 진정한 의미의 한국의 정치적 대안세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예일대에서 팻 로버슨을 연구한 배덕만 교수. ⓒ복음과상황 신철민
특히 한국 복음주의는 미국 복음주의 정치참여 속에 내재한 심각한 문제점들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에 대한 비판적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무엇보다 미국 복음주의 우파들은 복잡하고 난해한 문제들을 너무 단순하게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단순한 문제의식 때문에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이 부정되고, 일방적 자기선언으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결국, 미국 사회에서 건전한 경쟁과 긴장 대신, 극단적 대립과 분열을 초래할 위험성을 안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복음과 이데올로기 간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도 자주 균형감을 상실한다. 그들이 성경에 기초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를 발전시킨다고 주장하지만, 많은 경우 그들의 주장들이 성경보다는 자신들의 보수적 정치 이념에 지배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복음이라는 보편적 진리가 이념이라는 제한적 욕구를 통제하는 대신, 제한적 이념이 보편적 복음을 압도하는 경우, 그것은 더 이상 복음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배덕만 / 복음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holyjoy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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