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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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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조 하나님에 관하여
우리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고백하며 또 인정하며 그에게만 의뢰하며 섬기며 그만을 예배하며 그만을 믿는다. 하나님은 영원, 무한, 불가해, 전능 및 불가시하신 분이며, 본질에 있어서는 하나이면서 동시에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三位)로 구별된다. 우리는 이 하나님이 천지에 있는 모든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전부를 창조하시고 보존하시며 측량할 수 없는 섭리로써 지배하시며, 그 자신의 영광이 나타나도록 하나님은 만물을 그의 영원한 지혜, 선, 정의로 정하신 것을 고백한다(창1:1; 행17:28; 잠16:4).
제2조 인간의 창조에 관하여
우리는 우리의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것을 고백하며 또 인정한다. 즉 그는 우리의 시조 아담을 자기의 형상을 닮게 지으시고 그에게 지혜와 주권과 정의와 자유의지와 자기자신에 대한 분명한 지식을 주셔서 사람의 본성 안에 불완전한 것이 없게 하셨다(창 1:26,27,28 ; 골 3:10 ; 엡 4:24). 이 영광과 완전에 위배되게 남자와 여자가 다같이 타락하였다. 여자는 뱀 때문에 타락하였고 남자는 여자의 말에 따라 타락하였다. 아무튼 말씀으로 금단의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죽으리라고 분명히 위협하셨던 하나님의 주권적인 존엄에 반역하게 되었다(창 3:6 ; 2:17).
제3조 원죄에 관하여
일반적으로 원죄라고 불리는 죄로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완전히 파손되어 인간과 그 후손은 하나님에 대적하는 자, 즉 사탄의 노예로서 죄악에 봉사하는 자가 되었다(시 51:5 ; 롬 5:10 ; 7:5 : 딤후 2:26 ; 엡 2:1,2,3). 그 결과 영원한 사망이 위로부터 중생하지 못하였던 자, 또 현재 중생하지 못한 자와 또 장래에도 중생하지 못할 자들을 지배하며 주관할 것이다. 성령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자의 마음 속에 그의 말씀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고한 신앙을 창조하심으로 우리를 중생시키신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믿음으로 그리스도 예수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축복과 은사들을 굳게 붙잡는다(롬 5:14 ; 6:23 ; 요 3:5 ; 롬 5:1 ; 빌 1:29).
제4조 약속의 계시에 관하여
하나님은 인간이 그에게 대한 복종으로부터 무섭게 타락한 후 다시 아담을 찾아 그의 이름을 불러 그의 죄를 책망하시고 죄를 선고하시고 마지막에는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깨뜨릴 것이다"는 기쁜 약속을, 즉 그 후손이 악마의 일을 타파하리라는 약속을 그에게 주셨음을 우리는 믿는다. 이 약속은 종종 반복되었고 차차 분명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기쁨에 넘친, 믿음이 돈독한 신자들이 부단히 이 약속을 이어받고 믿어 온 것이었다. 즉 아담으로부터 노아에게, 노아로부터 아브라함에게, 아브라함으로부터 다윗에게,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리스도 예수의 성육신에 이르기까지 율법 아래서 믿음이 독실한 선조들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의 기쁜 날을 바라보고 기쁨에 넘쳤었다(창 3:9 ; 3:15 ; 12:3 ; 15:5,6 ; 삼하 7:14 ; 사 7:14; 9:6; 학 2:7,9; 요 8:56).
제5조 교회의 지속과 증가와 보존에 관하여
우리는 항상 하나님은 아담 이후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을 입고 오실 때까지 모든 시대에 있어서 그의 교회를 보존하시고 인도하시고 증가시키기고 교회에 영예를 주시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불러내셨다고 믿는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그의 고국으로부터 불러내셔서 그를 인도하시고 그의 자손을 번성케 하셨다. 이상하게도 하나님은 그를 지키시고 바로의 노예와 억압에서 구하셨고 그리고 그들에게 율법과 제도와 의식을 주셨다. 또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셨고 판관들 시대를 거쳐서 사울 다음에 왕으로서 다윗을 주셨고 그의 자손에게서 나온 한 사람이 영원히 왕좌를 차지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하나님은 이 백성에게 계속 예언자를 보내셔서 그들이 우상숭배에 기울어졌을 때 하나님의 정도(正道)에로 인도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완고하여 정의를 경멸하였으므로 그들을 적군의 손에 넘기셨다. 옛날 모세의 입으로 위협을 받은 대로 거룩한 도성이 파괴되고 궁전은 불타고 모든 땅은 70년간 황폐하였던 것이다. 하나님은 은혜로써 다시 그들을 예루살렘으로 이끌어 내셨고 도성과 궁전이 재건되었다. 그러나 약속에 따라 메시아가 오실 때까지 그들은 사탄의 온갖 유혹과 공격을 참고 견디었다.
제6조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관하여
때가 차서 하나님은 성자, 곧 영원한 지혜, 하나님 자신의 영광의 본체이신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다. 성자는 성령의 역사로 여자 곧 처녀의 본질에서 인간성을 취하셨다. 이렇게 하여 다윗의 후손, 하나님의 약속의 천사, 약속된 메시아가 탄생하셨다. 우리는 그를 임마누엘, 즉 하나님과 사람의 두 완전한 본성이 한 품격으로 통일되어 결합된 참 하나님, 참 사람으로 고백하고 인정하였다. 우리는 이 고백에 따라 아리우스, 마르키온, 유티케스, 네스토리우스를 배격될 해로운 이단으로서 벌하였고, 또 그의 신성의 영원성을 부인하거나 인간성의 진실성을 부인하거나 그 두 가지 본성을 혼합하거나 분리시키는 사람들을 벌하는 것이다.
제7조 왜 중보자, 화해자는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어야 하는가 ?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는 신성과 인간성 사이의 신성한 결합은 하나님의 영원불변한 뜻에 따라 된 것이며 우리의 모든 구원은 여기서 생기며 그것에 의존하는 것으로 믿는다.
제8조 선택에 관하여
하나님의 은혜에만 의지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신 영원하신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은 창세 이전부터 그를 우리의 머리로 삼으시고 또 우리의 형제이며 우리의 목자로서 우리 영혼의 위대한 감독으로 정하셨다. 하나님의 정의와 우리의 죄의 적대관계 때문에 육적 인간은 아무도 하나님에게 능히 이를 수 없었다.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에게 내려오셔서 자진하여 우리의 몸과 살과 뼈를 취하셔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와 화해자가 되시고 그를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권리를 주셨다. 그가 친히 다음과 같이 증거 하셨다.
"나는 내 아버지이며 너희의 아버지 곧 내 하나님이며 너희의 하나님이신 분에게 올라간다"고. 아담 안에서 우리가 가졌던 가장 거룩한 하나님과의 교제가 다시 우리에게 회복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또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분이므로 멸망할 우리와 같이 계실 수 없다. 하나님은 그의 독생자를 우리의 형제가 되도록 우리에게 주셨고 이미 말한 대로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로서 그를 인정할 때 받을 은혜를 우리에게 주셨다.
또 구주, 속죄주, 참 하나님, 참 사람이 되는 것이 필요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의 죄 때문에 지셔야 할 형벌을 대신 받아야만 되었고 심판자이신 하나님 앞에 친히 나타나서 우리의 인간성에 따라 우리의 죄와 불순종 때문에 고난을 받으셨고 그의 죽음으로써 사망의 창시자를 정복하고 승리해야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유일하신 하나님은 죽음을 당할 수 없고 또 인간성만으로는 사망을 정복할 수 없기 때문에 그는 두 본성을 하나의 품격으로 결합시키신 것이다. 한 쪽은 죄 때문에 우리가 받을 사망의 약점이고, 다른 쪽은 무한한 능력, 즉 사망을 정복하시고 우리에게 생명, 자유, 영원한 생명을 획득해 주신 신성이다. 이렇게 고백하고 결코 의심하지 않고 믿는다.
제9조 그리스도의 죽음, 고난, 그리고 장사에 관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자진하야 희생물로서 그의 어버지에게 바쳐 죄인의 고뇌를 경험하시고 우리 죄 때문에 상처를 입으시고 고난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죄 없는 어린 양으로서 세상의 심판에 따라 정죄 되었고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법정에서 우리의 죄가 용서를 받는다. 그는 다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저주를 받고 십자가 위에서 잔인한 죽음의 고통을 받으신 것만이 아니고 그는 죄인이 당연히 받아야 할 아버지의 진노를 일시적으로 받아 고통을 받으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몸과 영혼으로 고통을 당하시고 사람들의 죄를 위한 완전한 변상을 치르신 그 고난 가운데서도 아버지의 사랑하시는 유일한 아들이었음을 확신한다. 또 우리는 우리의 죄를 위한 다른 희생이 있을 수 없다고 확신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죽음을 손상시키는 것이며 죄의 용서와 변상을 그의 죽음으로 우리가 영원히 획득한 것임을 우리가 확신하고 의심하지 않는다.
제10조 부활에 관하여
우리는 의심 없이 다음과 같이 믿는다. 즉 사망의 슬픔이 생명의 창시자를 속박할 수 없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어 매장되어 음부에 내려가셔서 우리를 의롭게 하시기 위하여 다시 살아나시고 사망의 창시자를 정복하시고 우리에게 다시 생명을 주셨다. 그리하여 우리는 사망과 사망의 속박을 이긴 것이다. 우리의 구주의 부활이 실로 그의 원수의 증거에 의하여 또 무덤이 열리고 죽은 자가 살아남으로써 또 예루살렘 거리에 많은 사람이 나타난 것으로써 확증된 것을 알 수 있다. 또 이것은 천사의 증거와 사도들과 그리고 회개한 사람들로서 구주의 부활 후에 그들과 같이 먹고 마신 사람들의 증언으로 확증되었다.
제11조 승천에 관하여
우리는 처녀에게서 나서 십자가에 달려 장사되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주님의 몸이 모든 것의 성취를 위하여 승천하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또 주님은 우리의 이름과 위로를 위하여 천지의 모든 권세를 받으셨다. 또 주님은 아버지 우편에 앉아서 그의 나라에서 왕으로 취임하셨고 우리를 위해서는 변호사이시며 유일한 중보자 이시다. 형제들 가운데서 주님만이 영광과 존귀와 특권을 소유하시다가 마침내 그의 모든 원수들이 그의 발을 올려놓는 대가 될 것이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그 원수들이 최후의 심판을 받을 것으로 확신한다. 또 그 심판의 집행을 위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먼저 승천하신 모습으로 눈으로 보이게 재림하실 것을 믿으며 그때 모든 사람들이 새로 회복되어 의를 위하여 학대와 굴욕과 악에 시달려 고난을 받은 사람들이 처음으로 약속된 축복의 불멸의 생명을 이어받을 것을 믿는다.
그러나 반대로 강팍하고 불순종하고 잔인한 박해자들과 더럽혀진 자들과 우상숭배자들과 여러 가지 불신하는 자들은 완전한 암흑 속에 던짐 받을 것인데 거기서는 구더기는 죽지 않을 것이며 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그 날과 그날의 심판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는 다만 우리의 욕망을 억제하는 한가지 구속일 뿐 아니라 무한한 위로가 된다. 이것으로 세상의 왕들의 위협과 현세의 위험과 죽음의 공포도 우리를 우리의 머리이신 유일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축복의 결사를 포기하게 만들지 못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약속의 메시아, 변호자, 중보자 임을 고백하고 확신한다. 주님의 영예와 직책에 맞서서 사람이나 혹은 천사가 스스로 교만을 부린다면 우리는 우리의 주권자이시며 최고의 지배자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모독하는 것으로 보고 그들을 혐오할 것이다.
제12조 성령의 신앙에 관하여
우리의 이 신앙과 신앙의 확신은 육과 혈, 즉 우리 인간 안에 있는 자연의 힘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감동으로 생기는 것이다. 그 성령을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동등하신 하나님으로 고백한다. 성령은 우리를 깨끗하게 하여 그의 역사를 통하여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신다. 성령 없이는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원수이며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연 그대로는 죽는 자이며 눈이 어두우며 강팍하기 때문에 만일 주 예수의 성령이 죽은 자를 되살리시며 우리 마음에서 암흑을 제거하시고 그의 기뻐하시는 뜻에 복종하도록 우리의 완고한 마음을 쳐부수지 않으시면 우리는 찔려도 느끼지 못하며 빛이 드러나도 보지 못하며 계시되어도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성부 하나님이 우리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을 때 우리를 창조하셨고, 또 우리가 아직 원수 되었을때 예수그리스도가 우리를 속량 하시게 하셨다고 위는 고백한다. 이처럼 우리는 또한 성령이 우리의 중생 이전이든 이후이든 간에 우리에게서 나오는 아무런 공로 없이 우리를 성화 시키시고 중생 시켰음을 고백한다. 이것을 다음과 같이 분명한 말로 설명할 수 있다. 즉 우리는 창조와 속죄의 존귀와 영광을 스스로 취할 수 없는 것처럼 중생과 성화를 위해서도 그 어떤 영광이나 영예도 쾌히 포기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우리 스스로는 선량한 생각을 한 가지도 못하며 우리 안에서 계속 역사하시는 하나님만이 우리를 그의 과분한 은혜의 영광과 찬양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제13조 선한 행위의 원인에 관하여
선한 행위의 원인에 관하여 우리는 그것이 자유의지에 있는 것이 아니고 주 에수 그리스도의 영에 있다고 고백한다. 그의 영은 참된 믿음에 의하여 우리 마음 안에 들어와 살며 우리가 그 안에서 걷도록 하나님이 준비하시는 대로 선한 일을 주신다. 그러므로 성화의 영이 없는 사람에게도 그리스도가 그 마음 안에 계신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으로 우리는 굳게 믿는다. 그러므로 살일, 억압자, 잔인한 박해자, 불륜한 자, 불신앙자, 우상숭배자, 술 취하는 자, 도둑질 하는자, 불의를 행하는 자는 참된 신앙을 갖지 않으며, 그들이 악을 계속하여 행하는 한 예수의 영을 절대로 갖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자녀들이 참된 신앙으로 받는 주 예수의 영은 모든 사람의 마음의 소유가 되어서 그들을 새로 지으신다.
그리하여 그들이 전에 사랑했던 것을 미워하고 전에 미워했던 것을 사랑하게 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녀들 안에서 영과 육 사이의 영원한 투쟁이 벌어진다. 그것은 육적이며 자연적 인간이 자기 자신의 타락으로 스스로 쾌락과 향락에 도취하여 고난을 당할 때는 불평을 품으며, 번영할 때는 의기양양하며, 언제나 하나님의 존엄을 파손하는 경향을 갖는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임을 우리의 영혼에서 증거 하시는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우리는 불순한 쾌락에 저항하며, 이 타락의 속박으로부터 구출되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애통하여 마침내 우리의 죽어야 할 몸에서 왕 노릇 못하게 죄를 정복한다. 하나님의 영이 없는 육의 사람에게는 이러한 투쟁이 없고 탐욕을 품으면서도 회개하지 않고, 악마처럼 죄를 따른다. 또 그들의 타락한 욕망이 그들을 부패시킨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위에서 말한 대로 죄와 싸우며 불의에 유혹되었음을 알면 크게 슬퍼한다 . 만일 그들이 넘어지면 열심히 회개하여 다시 일어난다. 그들은 이러한 일을 자기 자신들의 힘으로 행하지 않고 주 예수의 힘으로 한다 . 주 예수 없이는 아무 일도 해낼 수 없다.
제14조 어떠한 행위가 하나님 앞에 선한 것으로 인정되는가?
우리는 하나님이 거룩한 율법을 사람에게 주셔서 그것으로 하나님의 신성한 존엄에 반역하는 모든 행위를 금지하실 뿐더러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보답하여주시기로 약속하신 모든 일을 행하도록 명령하셨다고 고백한다 . 또 그러한 행위는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일, 다른 하나는 이웃 삶을 위하여 행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 둘을 하나님의 계시히신 뜻에 따라 확신하는 바이다. 유일하신 하나님을 소유하고 유일하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 우리의 모든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아 부르며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성례전을 통한 교제를 가지는 일은 십계명의 첫째 부분에 기록되어 있는 행위이다 . 부모, 왕후, 지배자, 위에 있는 권위를 존경하는 일, 그들을 사랑하고 도우며, 또 하나님의 명령에 어긋남이 없이 그들의 명령에 복종하며, 죄 없는 생명을 도우며, 억압자를 진압하며, 압박하는 자를 막으며, 우리의 몸을 정결하게 가지며 진실과 절제로써 생활하며, 모든 사람과 더불어 말과 행위에 있어서 올바르게 행하는 일,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이웃 사람을 해치려는 욕망을 억제하는 일, 이러한 것은 십계명 둘째 부분에 기록된 선한 행위일뿐더러 그런 일은 그들이 스스로 행해야 할 일로써 명령된 것으로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행위들이다.
여기에 반대되는 것은 가장 혐오할 죄이며 그것은 언제나 하나님이 싫어하시며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할 일이다. 즉 우리가 필요할 때 하나님만은 불러 구하는 일을 하지 않고, 또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의 말씀을 듣지 않고 그 말씀을 경멸하는 일, 우상을 갖는 일, 혹은 그 것을 예배하고 우상숭배를 지키며 그것을 변호하는 일, 하나님의 존귀한 이름을 생각하는 일이 적은 일, 예수 그리스도의 성례전을 더럽히며 남용하며 경시하는 일, 살인하거나 혹은 그 일에 동의하며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며, 우리가 그 일을 반대할 때 피를 흘리게 하겠다고 말하는 일, 마지막으로, 첫째와 둘째 부분 이외의 다른 어떤 계명이라도 범하는 것은 죄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고백하고 확신한다. 이것으로써 하나님의 진노와 불만이 오만하고 감사하지 않는 세상에 대하여 불붙게 된다.
그러므로 율법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로서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계명을 신앙을 가지고 행하는 행위만이 선한 행위임을 우리는 확신한다. 반대로, 악한 행위는 단순히 하나님의 계명에 어긋나게 행하는 일일뿐더러 신앙과 하나님 예배에 있어서 단순히 인간적인 발견과 고안 이외에 아무런 확신도 없이 행하는 일임을 우리는 확신한다. 이러한 일을 하나님은 예언자 이사야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에 의하여 다음과 같이 가르치시고 거부하신 것이다. "그들은 나를 헛되이 예배하며 사람의 계명을 하나님의 것인 양 가르친다."
제15조 율법의 완전과 인간의 불완전에 관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이 가장 올바르고 가장 신성하고 가장 공정하고 가장 완전하며 또 가장 완전하게 지켜지도록 명령된 것이며 생명과 영원한 행복을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것으로 고백하고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의 성질은 타락하여 극히 약하고 불완전하여 우리는 결코 완전하게 율법의 행위를 완수할 수 없다. 만일 우리가 중생 한 후에도 죄를 갖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며 하나님의 진리가 우리 안에 있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의가 되며 속죄의 주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한다. 그는 율법의 마지막이며 완성이시다. 그의 공로로 우리에게 자유가 주어졌고 모든 점에 있어서 우리는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지만은 하나님의 저주는 우리 위에 내리지 않는다.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비춰서 우리를 보시며 우리의 불완전한 복종을 완전한 것으로 간주하시고 받아들이시고 성자의 의를 가지고 많은 허물을 가진 우리의 행위를 가리워주신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자유를 얻었다고 해서 율법에 복종할 의무가 없음을 의미하지 않고 오직 인간은 그리스도에게 있어서만이 율법이 요구하는 율법에 대한 복종이 요청되는 것이며 또 지금도, 또 장래에도 요청 될 것이다(율법 제3용법). 그러나 우리가 모든 것을 행했을 때 겸손하게 무익한 종임을 고백해야 한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의 행위의 공적을 자랑하거나 자기의 공적을 신뢰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헛된 것을 자랑하며 저주받을 우상숭배에 신뢰하는 것이다.
제16조 교회에 관하여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의 한 하나님을 믿듯이, 처음부터 있었고, 지금도 있고 또 세상 끝날에도 있을 하나의 교회, 즉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신앙으로 예배하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의 하나의 공동체를 믿는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는 교회의 유일한 머리시며 교회는 또 그리스도 예수의 몸이며 신부이다. 이 교회는 가톨릭, 즉 보편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모든 나라, 모든 국민, 유대인, 이방인을 막론하고 말이 다른 사람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에서는 성부 하나님의 성자 그리스도 예수와 교제하며 성령의 성화가 이뤄진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속적인 사람들의 교제가 아니고 성도의 교제라고 불린다. 교회는 하늘의 예루살렘의 시민으로서, 측량할 수 없는 이익의 열매, 즉 한 하나님, 한 주 예수, 한 신앙, 한 세례를 가진 이 교회 밖에는 생명이 없고 영원한 행복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것을 모독하는 자들을 극도로 혐오하며, 공평과 정의에 따라 사는 사람들, 또 고백하는 신앙을 믿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다고 우리는 확신한다. 그리스도 예수 없이는 생명도 구원도 없다. 그러므로 성부가 성자 예수그리스도에게 주신 사람들 아니고는 아무도 교회에 속할 수 없고, 그리스도 앞에 나아온 사람들이 그의 교리를 고백하고 그를 믿는다. 우리는 신앙이 독실한 부모와 함께 그들의 아이들을 이해하게 된다. 교회는 눈에 보이지 않고 유일하신 하나님만이 알고 계시며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람들만이 교회를 알고 있다. 또 교회는 이미 세상을 떠난 선택된 사람들도 포함한다. 이것을 일반적으로 승리의 교회라고 부르며 죄와 악마에 대항하여 싸우며 앞으로 세상에 살 사람들도 포함한다.
제17조 영혼의 불멸에 관하여
선택된 사람들로서 죽은 사람은 그의 노고로부터 풀려서 평안과 휴식을 얻는다. 그들은 어떤 환상가가 주장하듯이 자는 것도 아니고 또는 망각에 빠지는 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선택을 입은 우리 모두가 이 세상에서 받는 공포, 고통 및 유혹으로부터 구원을 받는다. 이렇게 하여 승리의 교회의 이름을 지니게 된다. 반대로 악하며 불신앙한 자들로서 죽으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과 어려움을 받는다. 그들이 기쁨과 고통을 느끼지 않는 잠에 들어가지 않는 것은 누가복음 16장의 예수 그리스도의 비유와 강도에 대한 그의 말씀과 제단 아래서 울부짓는 영혼이 "거룩하시고 진실하신 주님, 우리가 얼마나 더 오래 기다려야 땅위에 사는 자들을 심판하시고 또 우리가 흘린 피의 원수를 갚아 주시겠습니까?"고 증거 하는 말에서 밝혀진다.
제18조 무엇으로 참된 교회는 거짓된 교회와 구별되며, 교회의 교의의 바른 판단은 무엇인지에 대하여
사탄은 처음부터 해로운 유대인 회당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가장하기 위하여 노력하여 잔인한 살해자의 마음을 불붙여서 참된 교회와 그 회원들을 박해하여 괴로움을 더하게 하였다. 그것은 마치 가인이 아벨에게, 이스마엘이 이삭을, 에서가 야곱을, 그리고 유대인의 사제들이 그리스도 예수와 그 후의 사도들에게 행한 일과 같다. 가장 필요한 것은 참된 교회가 분명하고 완전한 징표에 의하여 추악한 회당과 구별되어서 우리가 어떤 것을 버리고 다른 것을 용납할 때 스스로 속여서 우리 자신이 정죄 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정결한 신부가 무서운 창부, 즉 악의가 찬 교회를 식별할 수 있는 징표와 증거는 결단코 역사가 오래 된데 달리지 않으며 또 잘못된 칭호에 달린 것도 아니며 또 영원한 감독직의 세습에 달린 것도 아니고 또 어떤 약속된 지위에 달린 것도 아니고 또 어떤 한가지 과오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수에 달린 것도 아니다.
가인은 나이와 지위로서는 아벨과 셋을 능가하였다. 예루살렘은 지구상의 모든 장소를 능가하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서는 또한 사제가 아론으로부터 이어져 있었다. 또 많은 사람이 학자와 바리세인들과 사제들에게 복종하고 있었고 또 그리스도 예수와 그의 교훈도 믿고 인정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깊이 생각하는 사람도 전날에 한때 이름이 붙었던 그 어느 것도 하나님의 교회였다고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참된 교회의 표지는 하나님의 말씀의 참된 설교라고 우리는 고백하며 확신한다. 예언자들과 사도들의 책이 진술하듯이 하나님은 자기 말씀 가운데서 자신을 계시하신 것이다. 둘째는 그리스도 예수의 성례전의 올바른 집행이다. 이것으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에 결합되어서 마음에 그것을 새기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회의 훈련이 올바로 시행되며 하나님의 말씀의 규정으로 악덕이 억제되고 선행이 육성되는 것이다(권징). 이러한 징조가 보이고 어떤 때이든 두 세 사람의 소수가 아니고 많은 사람이 그 규정을 지키는 곳에는 의심할 것 없이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약속대로 그들의 교회 안에 계신다. 앞에서 말한 바 세계 교회만이 아니고 특히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의 역할을 전파하여 심은 고린도, 갈라디아, 에베소 및 그 밖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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