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요한 서신의 3위 하나님과 구원론/ (송영목 교수)
요한 서신의 3위 하나님과 구원론
송영목 교수 / 고신대 대학교회 담임, 부경성경연구원장
1. 요한 1-3서의 하나님 호칭
요한 일서에는 하나님의 이름-호칭이 다양하면서도 아주 집중적으로 등장한다. Thoes는 요한 1서에만 약 60회 이상 등장하고, Pater는 12번 등장한다. ‘아들, 하나님의 아들, 그의 아들’이라는 호칭은 20회 등장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11회(요 1-3서에는 총 15회), ‘의로운 분, 보혜사, 거룩한 분’은 1번씩 등장한다. 흥미롭게도 요 1-3서 전체에서 예수님에게 kyrios라는 호칭은 따르지 않는다. ‘주’라는 호칭은 요한복음에 41회나 등장한다. ‘심판하다’라는 단어도 요한복음에는 30회 등장하나 요한 일서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요한복음에 자주 등장하는 ‘보내다’(pempein)와 ‘찾다’(zetein)도 요한 일서에 등장하지 않는다(Du rand, 1997:159). 바울 서신에서는 ‘주’가 지배적인 기독론적 호칭이다. 요한 일서에서 성령은 to pneuma (4회), 진리의 영 (2회), 하나님의 영 (1회), 그 자신의 영 (1회) 사용되었다. 그러나 성령이 ‘보혜사’로 부리지 않는다.
성부 하나님은 예수님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가지시고, 빛이시고(요일 1-2), 사랑이시며 (4:7-5:5), 성령을 통해서 자신의 아들을 증거하시고, 악을 이기시고 성도에게 승리를 보증하신다. 요한복음과 요한 일서 사이의 차이점에 주목해 보자. 이 차이점은 동일 저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며 오히려 강조점과 수신자의 상황의 차이점 그리고 복음서와 서신이라는 장르의 차이점 때문에 발생한다.
요한복음의 대적은 공동체 밖의 회당이지만 요한 일서의 대적은 교회 안에서 발생했다. 흥미로운 것은 요한 일서는 그리스도 중심적이라기보다 하나님 중심적이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에서 그리스도에 관해서 말해진 것은 하나님에게 돌려진다: 예수님이 빛이시다(요 1:4, 9; 8:12). 하나님도 빛이시다(요일 1:5). 그리스도의 계명과 하나님의 계명을 비교해 보라(요 13:34; 14:15; 15:10; 요일 2:3-4; 3:22-23; 5:2-3; 요이 4-6).
요한복음이 영광받으시고 승귀한 그리스도를 강조한다면 요한일서는 성육신 즉 낮아지신 그리스도를 더 강조한다. 그리고 요한일서는 요한복음만큼 보혜사 성령을 강조하지 않는다. 요한복음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영광의 승리라고 보는 반면에 요한 일서는 대속적이고 희생적이라고 본다(요일 1:7; 2:2; 3:16; 4:10). 구약 인용의 빈도에서도 차이가 난다(Du Rand, 1997:159).
2. 요한 1-3서의 기독론적 고백 양식
요한의 메시지의 열쇠는 기독론에 놓여 있다(Du Rand, 1997:166). 요한은 그리스도이신 하나님의 아들은 실제로 사람이 되신 선재하신 하나님이심을 선언한다. 실제 인간이신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다(요일 2:22; 5:1).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요일 4:15; 5:5). 예수님은 인간이 되신 참 그리스도이시다(요일 4:2). 물 (세례)과 피 (죽음)로 오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요일 5:6). 강조점은 예수님은 참 사람이시며 참 그리스도이시다.
참고로 여기서 ‘물과 피’를 요 19:34절에 언급된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물과 피와 관련시키는 주장을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예수님의 창자국난 옆구리는 나중에 실제적인 부활의 확실성을 증거하는 표가 되었다. 신학적- 상징적으로는 요한복음에서 물은 성령님을, 피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한 새로운 언약을 세우시는 것을 상징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과 피로 ‘임했다’는 무슨 의미인가? ‘경험되다’ 혹은 ‘-를 통해서 도착하다’라는 뜻이 가능하다. 이 사실을 성령과 물과 피가 증거한다.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다. 신 17:6절에 의하면 구약의 증인은 2-3명이다. 요한은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가지고 계신 참 인성(humanity)과 신성을 증거하는 것은 3개라고 말한다. 십자가 위에서 흘러내린 물과 피는 메시아 예수님이 참 사람이심을 증거한다. 그리고 사도들의 복음 선포사역에 역사하신 성령님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성육하신 아들이라고 증거하셨다.
3. 성령과 구원론
아들 하나님을 증거하시는 성령님의 사역은 요일 1:1-4; 2:20-27; 4:1-6; 5:6-12절에 요약되어 있다. 그래서 성령은 진리의 영(요일 4:6; 5:7)이라고 불린다. 요일 4:1절에서 이단을 거짓 선지자로 부르기에, 요한의 대적들은 성령으로 어떤 특별한 계시적 체험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 같다. 요일 2:20절과 27절에 의하면 대적들은 성령으로 모든 것을 알고 기존 성도보다 더 우월한 체험을 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없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기름 부음 즉 성령을 소유하고 있기에 거듭난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
거듭나는 것은 곧 성령을 소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 공동체는 영을 시험해야 했다. 왜냐하면 교회는 성령으로 진리를 변증해야 하기 때문이다(참고. 요 16:13). 교회가 진리를 변증함에 있어서 시금석이 되는 것은 태초부터 있던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성육신이다(요일 1:1; 2:13; 3:11). 요한은 “옛 것이 더 좋다”라는 식으로 전통을 변증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 기독론(historic Christology)은 모든 시대의 기독교의 진리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악의 지배하에 있는 세상을 빛이신 하나님이 정복하시려고(요일 1:5-2:27)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다(요일 3:8). 그러므로 수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이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 속에 거하고, 악한 자를 이미 이겼음을 알게 된다(요일 2:14). 이런 구원을 받은 자는 요한 2-3서에 나타나듯이 순회 설교자를 환대하는 것과 같은 윤리적 삶을 살아야 한다(참고. Cotzee, 1993:218-226).
요한 일서 중심으로 윤리를 살펴보자. 이단들의 잘못된 윤리는 그들의 잘못된 신학의 결과이다: 그들은 죄로부터 자유롭다고 말한다(요일 1:8, 10). 그들은 하나님과 교제를 하지만 어둠 속을 걷고 있는 자들이다(요일 1:6).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지만 불순종하는 자들이다(요일 2:4).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형제 자매를 미워하는 자들이다(요일 4:20). 빛 가운데 거한다고 하지만 동료 그리스도인을 미워하는 자들이다(요일 2:9).
그러므로 요한은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은 곧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이고, 그것은 곧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이다(요일 2:6). 의도적으로 죄를 범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다(요일 3:3-6; 5:18). 죄를 습관적으로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 자이다(요일 3:7-10). 성도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요일 3:11-12, 17-18). 동료를 사랑하는 것을 거부하는 자는 영생을 소유하지 못한 증거이다(요일 3:14-15).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하나님을 아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다(요일 4:8-10).
이단들은 예수님의 성육신을 거부했기에 주님의 지상에서의 가르침을 무시했을 것이고 그것은 자연히 요한복음의 왜곡으로 발전했을 것이다. 요한의 대적들은 자신의 죄성을 부인하고,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총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따라서 그리스도에 관해서 바르게 가르친 지도자들의 권위를 무시하고 미워하고 말았다.
특별히 바른 기독론에 기초한 진리와 사랑이 요한 서신의 양대 주제이다. 요한 공동체는 거짓 가르침을 물리치고 바른 진리를 고수해야 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사랑을 형제 자매에게 실천하는 것은 곧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다(Marshall, 2004:5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