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신학자료

[스크랩] 성부에게 기도한다는 의미가 어떤 의미인가? (참고 바랍니다)

baromi 2008. 8. 19. 20:27

[QUESTION]

우리가 기도할 때 혹은 찬송을 부를 때 <하나님아버지> <주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등의 용어를 사용합니다. 이 때 <주님>은 하나님을 뜻하는 건가요, 아니면 예수님을 뜻하는 건가요?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하나님을 뜻한다는 답변도 있고 예수님을 칭한다는 답변도 있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동시에 뜻한다는 답변도 있군요. 아니면 문맥에서 파악해야하는가요? 예를 들어 아래의 찬양에서는 구체적인 대상이 어느 분 이시나요?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다른 어떤 은혜 구하지 않으리.
오직 주님만이 내 삶의 도움이시니
주의 얼굴 보기 원합니다.
주님 사랑해요. 온 맘과 정성 다해
하나님의 신실한 친구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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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SWER] by Grace

의문이 생길 땐, 아버지 하나님께 질문하십시요. 또, 계속 마음에 품고 계십시요. 똑똑한 학생은 계속 질문하고 선생님은 그런 학생을 이뻐하지요. 또 할수 있는 대로 답을 찾아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네이버..가 쫌 딸리기는 하겠지만..^^ (그 노력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이뻐하실지..) 저도 빈나무님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우리 주님께서 어느 순간 깨닫게 해 주십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야고보서 1:5

지금의 빈나무님과 비슷했던 시기에..이 말씀을 읽으며 얼마나 감동했던지..지혜를 후히 주신다니..저는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알게 해 주시는 그 순간의 기쁨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깨달음에서 오는 자유! 깨달음을 순종할 때 주시는 믿음!

저의 개인적인 생각은 맨 뒤로하고, 먼저, 제가 읽은(아니지 아직 다 읽지 못한..^^) 조직신학 책에서 옮겨 보겠습니다. 그다음은 좀더 이해하기 쉬운 제임스 패커 교수님의 대담기사에서 옮겨 보겠습니다.
빈 나무님의 질문은 말하자면 삼위일체에 대한 의문입니다.


조직신학 개론, 브루스 밀튼, 크리스찬 다이제스트 P.63

Ch.5. 성 삼위일체 하나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일반적인 대답은 대체로 이러하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인격적인 영이시다"
성경은 구체적인 일을 행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비인격적인 세력이나 에너지가 아니라, 뚜렷한 성품과 본성을 지니신 인격적 하나님이시다. 또한, 그는 세상 질서를 온전히 관할 하시면서도 그 질서를 초월해 계시는 영이시다. 중략..

구약에 잠재적으로 담겨 있던 가르침은 신약에 와서 그 모습을 밝히 드러낸다. 첫째로, 예수의 생애와 그의 성품, 주장과 기적, 무엇보다도 그의 부활과 승천을 통해 점차 예수를 하나님으로 예배하게 된다.
둘째로, 그들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의 실재성과 활동은 분명 하나님 자신의 임재하신이었다. 그리고 예수에 의해 주어진 삼위일체적 모형(마 28:19)은 그들의 하나님 이해를 결정지었다. 주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서로 구별할 수 있는 세 인격체, 곧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경은 성부, 성자, 성령이 한 분 하나님이시라는 특이하고도 신비로운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성부, 성자, 성령의 구별을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서 이들의 서로 다른 기능을 언급할 수 있다.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방식은 창조를 성부께, 구석을 성자께, 성화를 성령께 돌리는 것이다. 로마서 11:36은 우주와 관련된 하나님의 활동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된 전제 조건들에 기초하여 또 다른 이해를 제시한다.

"주(성부)에게서 나오고 주(성자)로 말미암고 주(성령)에게로 돌아감이라"

그러나 이런 구별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유일성에 관한 근본적 진리는 변함이 없다. 왜냐하면 각 위(位)의 활동에 삼위가 모두 관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삼위일체 교리의 이해

어거스틴은 삼위일체의 경우 "위" (位, Person) 라는 용어의 적합성을 논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

세 분의 무엇이냐는 질문이 들어올 때, 인간의 언어는 어휘적으로 큰 부족감을 느끼게 된다. 어쨋든 대답은 '세 분의 위'로 주어져 있는데, 하나님이 그런 분이시기 때문에 그렇게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호칭도 없이 그냥 놓아둘 수는 없기 때문에 그렇게 지칭하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존재와 관련하여"3"이란 숫자를 사용할 때에도 유사한 지적을 한다.

"삼위일체에서 두 위나 세위가 한 위보다 더 크지는 않다." 중략..

'하나 안의 셋'이신 하나님을 이해하는 일이란 매우 어렵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사상가들은 여러 세기에 걸쳐 이를 알기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삼위일체의 유비(analogy)를 찾기 위해 고심해 왔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이러한 삼분적 견해는 현대 심리학의 관점에서 볼 때 별로 신빙성이 없다. 뿐만아니라 그 유비는 삼위가 일체적으로 공존하면서도 또 본직적으로 각각 자신의 활동을 하고 있는 독특한 신성의 연홥과 동등한 관계를 지닐수 없다. 중략..

삼위일체 교리의 중요성

이러한 복잡성을 목도할 때, 우리는 과연 삼위일체 문제가 거론할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의심을 할 수 있다. 특히, "1 더하기 1 더하기 1은 1이다"라는 수수께끼 같은 명제를 대할 때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실제로 그리스도교에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삼위일체 진리와 관계가 있다. 중략...

하나님은 만물을 초월해 계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에, 우리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조잡한 자료들로 구성된 단순한 공식들을 통해 삼위일체를 설명하고자 할 때 많은 난점이 생긴다는 사실을 예상 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가 하나님의 본성 안에서 깊은 신비를 접할 수 없다면, 우리는 성경의 주장들에 대해 의심을 해 볼 만하다. 삼위일체 교리는 매우 어렵지만, 이 어려움은 우리에게 예배와 봉사를 명하실 수 있을 정도록 위대하신 하나님을 섬길 때 우리가 치러햐 하는 적은 대가에 불과하다.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지적하자. 셋이면서 하난이신 성부, 성자, 성령의 하나님과 각 위를 구별할 수 있는 인격, 기능, 그리고 그들의 완전한 결합과 상호조화, 영원한 사랑을 묵상하다는 것은, 말할 수 없이 영광스럽고 아름답고 매혹적인무엇을 보는 것 이라서 여러 세기동안 거듭거듭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켜
최상의 경배와 사랑과 찬미를 돌리게 하였다.

거룩, 거룩, 거룩, 자비하신 주여
성 삼위일체 우리 주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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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소금과 빛이라는 잡지에서 특별히 제작한 것인데 제가 정말 아끼는 책입니다.
많은 이들에게 선물하고 싶은데 지금은 나오지 않는답니다.


금세기 최고의 복음주의자 특별대담 , 두란노, p.86

문(피터 양목사님) :
삼위일체를 이해하시는 어렵지만, 혼동될수 있는 개념이기 때문에 정리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때에 어느 이름을 불러야 할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시겠습니다.

답(제임스 패커) :
이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성경 말씀을 간단 명료하고 지혜롭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우리는 늘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합니다. 그러나 성자 하나님이나 성령님과 온전한 신성을 갖고 계십니다. 삼위일체의 교리는 신약 성경에 근거하는데 세 위격이 상호 동등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자 하나님이나 성령님께 기도하는 것도 잘못은 아니지만, 보통 우리는 특벽한 이우가 있을 때에만 그렇게 합니다. 주 예수님께 기도 드리는 것에는 신약 성경의 여러 예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간청했습니다. 우리를 치료해 주시고 축복해 달라고 예수님께 기도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 그분께 간청했던 것과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예수님께 기도하지만, 그것은 성경 말씀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주신다고 하는 어떤 은사나 축복을 간구할 때만입니다. 치료를 예를 들자만 바울은 육체의 가시가 있을 때 주님께 세번 기도했습니다. 그분은 주 예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치료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울을 통해 치료 사역을 행하실 때 바울을 사용하셨고 또 바울은 그 동일한 예수님께 자신의 치료에 대해서도 간구했습니다. 치료에 있어서, 당연히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시만, 예수님께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영적 삶에 관해서는 성령님게 기도하는 것이 매우 적합합니다. 신약 성경에서 그것에 대한 직접적은 예는 없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논리는 매우 설득력이 있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시고 또한 성령님은 특별히 내면의 축복과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합니다. 영적 삶의 성장, 인격, 예수님의 형상으로 영적으로 변화되기. 나쁜 습관과 죄에 대항할 능력등을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것을 다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한다 해서 잘못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마음속에서 누구에게 기도하는 것인지 분명히 하고 그 위격의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은 좋은 영적 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삼위 일체 하나님의 각 분과 개별적으로 교제하며 구체적으로 삼위 중 한 분께 기도해야한다"는 청교도 존 오웬의 말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할 때 하나님이 세분이시며 그 세분이 구별된다는 사실을 잘 인식할 수 있습니다. 세 분의 신성은 동일하지만, 성부, 성자, 성령께서는 위계질서, 즉 사역의 유형이 있습니다.

그것이 신학적인 삼위일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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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성경의 말씀 중 한 단어를 고르라면 저는 주저없이 <보혈>입니다. 크리스찬이라면 누구나 그럴것이라 여겨집니다. <나 주 보혈 아래있네~마위의 어떠한 공격에도 넘어지지않네~나 주 보혈 아래있네~> 찬양입니다.^^

보혈의 은혜를 깨닫게 된 이후..(다른 말로..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후..)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해 할수 없어 이해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답답해 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조금지나서 인간의 지성으로는 답을 낼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병욱 목사님 표현에 의하면..'삼위일체를 인간의 언어로 정의 한다면 그건 이단이다.' 라고 하셨지요.

제임스 패커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각 분과 개별적으로 교제하는 것이 좋은 영성 훌련..이라고 했으나 저는 아직도 그렇게 잘 훈련되지 못하였음을 고백합니다. 또한 아직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과의 교제가 너무나 부족합니다. 그러나 더욱 하나님 알기 원하고 더욱 깊이 교제하기를 언제나 간절히 소원합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주님' 이라고 부를 때는 저는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주님' 이라고 부를 때는 저는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날 위해 보혈 흘려주신 나의 주님, 보혈로 나를 덮으사 죄와 사망권세에서 자유케 해주신 나의 주님, 부활하신, 나를 부활의 꿈꾸게 하신 나의 주님, 나팔 불며 구름타시고 내 이름 부르시며 다시오실 나의 주님. 나의 능력, 나의 힘, 나의 소망, 나의 생명, 예수님.. 정확하게 표현 할 수는 없으나 기도 할 때, 찬양 할 때, 경배드를 때, 세분이 하나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느낄수 있습니다. 느낀다는 것이 가장 정확한 표현일것 같습니다. 아니, 느끼게 해 주십니다.

이 외에도 여러가지 의문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특히 성령님이 하시는 일들에 대해 점점 더 알고 싶으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제 경험으로 비추어 볼때..^^ 도움이 될만한 책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저에게 도움이 되었던.

어떤 순간에도 주님의 이름을 부르십시요. 의심의 먹구름이 몰려올 때, 나를 넘어지게 하는 순간에,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우리들의 능력입니다.


[ANSWER] by 승우

간단하게 하나님은 하나이십니다. 삼위일체하나님이라고 하죠. 삼위 성부(아버지 하나님), 성자(아들 예수님), 성령(예수의 영)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셋이라 개념이 아닙니다. 하나입니다. 즉, 아버지 하나님 안에서 아들 예수님을 볼 수 있고 아들 예수님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각각 나타나는 시기가 다르게 표현되어 있지요. 구약에서는 아버지 하나님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 시대에도 아들 예수님과 성경님의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아들 예수님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시대에서는 성령님이 드러나십니다. 즉, 무지게의 일곱빛이라할까요? 하나지만 여러가지로 드러납니다.

요약: 우리는 성령에 도움으로 아들을 통해서만 아버지를 알 수 있습니다.

위 찬양은 모두 다 포함됩니다. 우리가 제일 처음 접하는 색깔은 아들 예수님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이땅에 돌아가셨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에게 제일 친숙한 아버지의 모습은 아들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출처 : 양무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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