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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깔뱅 (요한 칼빈, John Calvin, 1509~1564) ①

baromi 2007. 11. 9. 08:29
깔뱅 (요한 칼빈, John Calvin, 1509~1564) ①
경건 인물 시리즈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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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사무엘 목사 /  미주 프린스톤한인장로교회

장 깔뱅. 그는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여러 가지 질병으로 고생을 했으나 그럴수록 경건 생활을 철저히 하고, 많은 저술 활동을 하였던 장로교회의 신학자였다.
그는 1509년 7월 10일, 프랑스 북부지방 피칼디주 노와이온 시에서 제랄 코반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학구열과 조직적 두뇌를 물려받았고, 경건한 어머니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살림이 넉넉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마음껏 공부할 수 있었다. 귀족의 자녀들이 공부하는 데서 함께 사귀며 학업을 해 깔뱅의 성격과 품위는 다른 개혁자인 루터나 쯔빙글리와는 다른 점이 있었다.

그는 파리에 유학가서도 귀족의 자녀들과 같은 대학에서 공부를 하였다. 몬케그 대학에 옮겨 철학을 4년 동안 전공하고 문학사 학위를 받았다. 이곳에서 예수회의 창설자인 이냐시오 로욜라를 만나게 되었는데, 가는 방향은 정 반대였다. 1532년에 깔뱅은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할 결심을 했다. 자기의 필생 과업은 인문주의 학문도, 법학도 아닌, 다만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것이 무엇이냐를 깨닫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로마 가톨릭은 기만과 모순된 기관이라고 판단했고, 따라서 천주교와 갈라지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느꼈다.
당시 국왕 프랑소아 1세가 기독교를 박해하자 깔뱅은 프랑스 국경을 넘어서 스위스의 바젤에 피신하였다. 그 동안 프랑스에서는 충직하고 거룩한 신도들이 화형에 처해 순교를 당하고 있었다. 1586년 3월 깔뱅의 나이 27세에 <기독교 강요>(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를 쓰기 시작하였다. 이 저술은 후에 장로교의 교과서가 되는데 그가 체득한 깊은 신앙 경험에 준하여 쓰여진 것이다.

이 책이 프랑스 왕 프랑소아 1세에게 헌정되면서 기독교에 대한 정치적 관용을 호소하는 데 매개가 된 사실은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깔뱅은 원래 고요히 숨어 은거하기를 좋아하는 평화의 사람으로 싸움을 꺼려했지만, 슈트랏스부르그로 가던 도중 제네바에서 하늘로부터 내리는 힘에 붙잡히게 되면서 전투적 삶을 살게 되었다.

깔뱅은 불경건한 시민을 징계하였다. 사교댄스를 엄금하고, 도박장을 경영하는 자는 골패를 목에 걸고 거리로 끌려 다니게 하였고, 사치한 화장을 시킨 미용사는 감금하였고, 간음한 남녀는 함께 끌고가 거리를 돌게 하고 시외로 추방하였다. 그러나 이 같은 일이 처음에는 환영을 받았으나, 후에는 반동 세력이 많아져 깔뱅은 오히려 추방을 당한다.

깔뱅은 기도의 사람이었다. “기도가 얼마나 필요한 것이며, 또한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여러 가지로 유용한가를 말로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그의 기도시 ‘순례자로서의 교회’를 음미해 보자.

교회의 외면적 상태가 제아무리 비천해 보여도,
교회는 내면의 아름다움으로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땅 위에서는 아무리 흔들려도, 교회는 하늘에 굳게 뿌리를 박고 있다.

세상사람들의 눈에는 절뚝발이처럼, 또 무너져 버린 듯이 보여도,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는 온전하게 서서 번영한다는 사실을,
육신 때문에 괴롭힘을 당해도, 영으로는 영적인 축복을 풍성하게 누린다는 것을.
그리스도께서 비천하게도 말구유에 누워 계실 때,
천사들은 구름 속에서 그의 높으심을 찬양했다.

하늘의 별들은 그의 영광을 증거했다.
먼 곳으로부터 온 박사들은 그의 권능을 체험했다.

그가 광야에서 금식하였을 때, 사탄의 조롱에 대항하여 싸웠을 때
죽기까지 수고하셨을 때, 천사들은 변함없이 그에게 수종들고 있었다.
그의 적들이 그를 투옥시키려고 했을 때,
그는 자기 목소리 하나만으로 대적들을 물리치셨다.

그는 십자가에 매달리셨을 때,
해는 빛을 잃고 그를 만왕의 왕으로 선언하였으며,
열린 무덤들은 그를 사망과 생명의 주로 고백했다.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그의 육체는 악인의 교만한 모욕으로 고통받았으며,
야만적인 폭정에 억압당했으며, 모욕에 노출되어,
이리저리 폭력에 끌려 다니셨다.

그것이 아무리 무례한 일이라도,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하진 못한다.
이제 우리는 기억하자.
교회는 세상에서 순례의 여정을 걷는 동안,
끊임없는 고난 속에서 싸워야 한다는 것을.

1564년 4월 깔뱅은 과로와 중첩한 질병으로 병상에 누워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것을 알고, 유언서를 진술하고, 28일에는 제네바 교직자 전부를 모으고 “내가 죽으면 그 사업을 굳게 지속하시오”라고 부탁하고 5월 27일에 소천하였다. 그의 나이 55세였다.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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