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깔뱅 (요한 칼빈, John Calvin, 1509~1564) ①
깔뱅 (요한 칼빈, John Calvin, 1509~1564) ① |
경건 인물 시리즈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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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사무엘 목사 / 미주 프린스톤한인장로교회 장 깔뱅. 그는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여러 가지 질병으로 고생을 했으나 그럴수록 경건 생활을 철저히 하고, 많은 저술 활동을 하였던 장로교회의 신학자였다. 그는 파리에 유학가서도 귀족의 자녀들과 같은 대학에서 공부를 하였다. 몬케그 대학에 옮겨 철학을 4년 동안 전공하고 문학사 학위를 받았다. 이곳에서 예수회의 창설자인 이냐시오 로욜라를 만나게 되었는데, 가는 방향은 정 반대였다. 1532년에 깔뱅은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할 결심을 했다. 자기의 필생 과업은 인문주의 학문도, 법학도 아닌, 다만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것이 무엇이냐를 깨닫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로마 가톨릭은 기만과 모순된 기관이라고 판단했고, 따라서 천주교와 갈라지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느꼈다. 이 책이 프랑스 왕 프랑소아 1세에게 헌정되면서 기독교에 대한 정치적 관용을 호소하는 데 매개가 된 사실은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깔뱅은 원래 고요히 숨어 은거하기를 좋아하는 평화의 사람으로 싸움을 꺼려했지만, 슈트랏스부르그로 가던 도중 제네바에서 하늘로부터 내리는 힘에 붙잡히게 되면서 전투적 삶을 살게 되었다. |
깔뱅은 불경건한 시민을 징계하였다. 사교댄스를 엄금하고, 도박장을 경영하는 자는 골패를 목에 걸고 거리로 끌려 다니게 하였고, 사치한 화장을 시킨 미용사는 감금하였고, 간음한 남녀는 함께 끌고가 거리를 돌게 하고 시외로 추방하였다. 그러나 이 같은 일이 처음에는 환영을 받았으나, 후에는 반동 세력이 많아져 깔뱅은 오히려 추방을 당한다. 깔뱅은 기도의 사람이었다. “기도가 얼마나 필요한 것이며, 또한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여러 가지로 유용한가를 말로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그의 기도시 ‘순례자로서의 교회’를 음미해 보자. 교회의 외면적 상태가 제아무리 비천해 보여도, 세상사람들의 눈에는 절뚝발이처럼, 또 무너져 버린 듯이 보여도, 하늘의 별들은 그의 영광을 증거했다. 그가 광야에서 금식하였을 때, 사탄의 조롱에 대항하여 싸웠을 때 그는 십자가에 매달리셨을 때,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그것이 아무리 무례한 일이라도,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하진 못한다. 1564년 4월 깔뱅은 과로와 중첩한 질병으로 병상에 누워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것을 알고, 유언서를 진술하고, 28일에는 제네바 교직자 전부를 모으고 “내가 죽으면 그 사업을 굳게 지속하시오”라고 부탁하고 5월 27일에 소천하였다. 그의 나이 55세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