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그

[스크랩] 하이델베르크 신앙교육서 32

baromi 2007. 9. 3. 09:10
제 32 문: 그런데 왜 당신은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어집니까? 답: 그 이유는 나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한 지체이고, 또 그로 인해 내가 그의 ‘기름 부으심’에 참여해서 나도 그의 이름을 고백하고 그리고 나를 그에게 살아있는 ‘감사 제물’로 드리며 자유로운 양심으로 이 세상에서 죄와 마귀에 대항해서 싸우고 또 장래에 영원토록 그와 더불어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기 때문입니다.(골 3:17; 벧전 2:9). -Cur vero tu Christianus appellaris? -Quod per fidem, membrum sum Iesu Christi, et unctionis ipsius particeps, ut et nomen eius consitear, meque sistam ipsi vivam gratitudinis hostiam, et in hac vita, contra peccatum et Satanam, libera et bona conscientia pugnem, et postea aeternum cum Christo regnum in omnes creaturas Christo regnum in omnes creaturus teneam. (해설) 제 32문부터는 그리스도께 속하는 그리스도인에 대해 다룬다. 제 32문은 그리스도의 기름 부음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의 자격을 (1) 그리스도의 한 지체이고, (2) 그의 기름부음에 참여하고, (3) 그의 이름을 고백하며, (4) 그에게 감사 제물로 드리고, (5) 세상과 마귀에 대항해서 싸우고 나아가 영원토록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다스리는데 에 있음을 말한다. 이것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그리스도인의 삼 직분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인이라 자처한 다면 이런 내용이 삶 속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I. 그리스도인의 상태와 그의 이름 (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신자들을 보고 “제자, 친구, 형제”라 부르셨다(요 13:35; 15:14; 20:17). 초대 교회 성도들도 자신을 그렇게 불렀다(행 6:7; 9:30; 약 2:15). (2) 안디옥 교회 성도들이 맨 먼저 “그리스도인”이라는 모욕의 별명을 받았는데, 그들의 머리가 되시는 영광스러운 주님을 바라보며 기꺼이 받아들였다. 헬라어로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자를 말한다. (3)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처럼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이다. 즉 그리스도의 영(靈)이신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이다(갈 4:6; 고후 1:21,22; 요일 2:20).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성령(기름부음)을 한량없이 받으실 때, 그 몸 된 교회에는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기름을 동시에 받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세례를 받을 때, 이 기름부음을 받는 것이다. (4) 형식적인 세례만으로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믿음으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막 16:16). 그리스도인은 포도나무의 가지로서 그 원둥치인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생명의 진액을 계속 받아먹으며(요 15) 성장하고, 그리스도가 그 마음에 거하셔서(엡 3:17) 그의 지체가 되어야 그리스도인인 것이다(고전 12:17; 엡 5:30). (5)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와 한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기 때문에 그와 한 영(靈)인 것이다(고전 6:17). 그와 다른 것은 정도의 차이이다(요 3:34; 15:26; 고전 12:11: 엡 4:7). (6) 참 그리스도인과 피상적인 그리스도인 a) 피상적인 그리스도인: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그 능력을 부인하는 자(딤후 3:5), 교회에 다니기는 하고 더러 봉사를 하나, 그의 중심에는 자기가 주인이 되어 하나님의 뜻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자이다. 이런 자에게는 아직 세상의 낙이 그의 즐거움이다. b) 참 그리스도인: 그리스도 안에 거하며,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며, 하나님께 그의 즐거움을 두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그것을 이루려고 애쓰는 자를 말한다. 이런 자는 말과 행동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나타내며, 마침내 필요한 경우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자기 생명도 마칠 수 있는 자이다. 그리스도인은 인침을 받고, 하나님의 아신 바 되며, 주(主)의 이름을 부르는 자로서 불의에서 떠난 자이다(딤후 2:19). II. 그리스도인의 세 가지 직분 그리스도의 삼직분을 처음으로 교의학에 도입한 칼빈은 직접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삼직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이것은 하이델베르크 신앙교육서에서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이 교육서의 저자들 중에 한 사람이 우르시누스는 이것을 해설하면서 그리스도의 삼직분을 거론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 가지 직분은 가졌듯이 그를 닮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세 가지 직분이 주어진다. 말하자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기름부음을 통해 그의 인격 뿐아니라 그리스도의 세 가지 직분에 상응하는 직분으로 부름을 받은 것이다. 성령께서는 그의 은사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이 직분을 감당케 하신다(벧전 2:9). A. 선지자 직분 이것은 위의 “나도 그의 이름을 고백하고..”에 나타나 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고백하는 것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영과 육에 아울러 사나 죽으나 그의 것임을 선언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이런 고백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지식을 전제하며 거룩한 삶과 하나님의 진리를 전파하고 변증하는 삶을 통해 분명해진다. 그리스도의 영(靈) 안에서 사는 것은 넓은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고백하는 것이 된다(마 10:22; 롬 10:10; 벧전 2:12; 딤후 2:2). 이런 신앙고백적인 행위 속에는 진리를 전파하는 역할이 포함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자로 오셔서 하나님의 비밀을 선포하셨듯이 그리스도인 역시 그의 비밀인 복음을 전파한다. 2) 고백한다는 말의 반대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인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다고 하면서 불리하면(자기 개인의 명성에) 부인해 버리는 경우가 있다. 입으로는 예수를 主로 시인하면서 그의 삶이 불신자와 다름이 없으면 이는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런 식으로 부인하는 자들을 성경에서 찾아보자. B. 제사장직분 “나를 그에게 살아있는 감사제물로 드리며”. 이 직분은 두 가지를 포함한다. 하나는 자기를 제물로 바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행위이다. 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대제사장으로서 자기 생명을 우리를 위해 희생제물로 드리셨다. 따라서 우리는 내 육(肉)을 죽이며 나의 전 생명을 그의 영광을 위해 감사 제물로 드려야 한다(벧전 2:5; 롬 12:1). 2) 감사제물의 내용 ㄱ) 자기의 모든 소원과 성품을 다해 마음을 그에게 온전히 바침(창 22:2). 우리의 가치 척도의 제일 위에 하나님이 있어야 한다. 그의 삶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쏠려 있으면 감사제물로 드려지게 된다. 칼빈의 손에 심장이 쥐어진 그림이 있다. 이것은 그의 신학 전체를 나타낸다. 그는 주여 내 심장을 지금, 그것도 즉시 드립니다고 말했다. ㄴ) 기도는 감사제물이 된다: 이것은 내 입의 제물이다. 주기도의 전반부의 기도는 바로 이 감사제물과 연관되어 있다. ㄷ) 찬양도 제물이다. 그리스도인은 진실 된 마음으로 찬양함으로써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것이다.(시119:108; 히 13:15) ㄹ) 사랑과 선행은 감사 제물이 된다(빌 4:8; 히 13:16). 3) 그리스도인은 이 제사장장 직분을 수행함으로써 이웃에 사랑을 나타낸다. 만일 어떤 사람이 선지자 직분을 수행하면서 즉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전파하면서 제사장으로서 선행을 행하지 못하면 겉과 속이 다른 삶, 이원론적인 삶의 오류에 빠지게 된다. C. 왕의 직분 “자유로운 양심으로....”. 이 구절은 왕의 직분을 수행하는데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전제함을 가르친다. 여기서 우리는 백성들 위에서 군림하는 그런 왕에 대한 통상적 관념을 제거해야 한다. 1) 우리들의 왕의 직분은 시간과 그 양태에 따라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ㄱ) 영적인 전투--이 세상에서, ㄴ) 다스림--이후 영원히. 2) 왕은 그 원수에 대항해서 바른 전쟁을 수행한다. 그러면 우리의 원수는 무엇일까? 성경은 크게는 세 가지로 나누어 언급한다: 세상, 사단, 육신의 정욕. 죄는 다시 우리를 포로로 삼으려고 한다. 세상 쾌락 때문에 자꾸 다시 육의 상태로 돌아가고자 한다. 죄로 “죽을 우리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한다(롬 6:12,13). 우리 몸을 하나님의 의의 병기로 사용한다(롬 13). 선한 싸움을 싸운다(딤전 1:18). 내 육을 쳐 복종시킨다(고전 9:27). 3) 이 세상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고백하기 때문에 우리와 원수가 되었고, 다시 우리를 자기에게 이끌려고 한다(딤후 2:3; 고후 6:7; 롬 12:2). 4) 사단은 우리의 원수이다(고후 11:14; 엡 6:11,12; 약 4:7). “(고후11:14)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 )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약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찌어다 ( )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5) 영적인 전투의 승리의 비결: 죄 아래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양심을 가지는 것, 말하자면 참 자유를 가져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마땅히 해야 될 일을 하며 하나님을 위하는 쪽으로 항상 결단을 내리면 된다. 영적인 전투는 반드시 바른 무기와 방법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 세상 전쟁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정정당당하지 않게 싸우는 경우 결국 마귀의 포로가 되기 때문이다. 현대 교회는 편법을 써서 자기 교회 교세를 확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정당치 못한 영적인 싸움이며 이런 교회가 앞으로 세속화한다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영적인 전투의 무기: 엡 6:10-18에 보면 ‘말씀의 검’ 이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방어무기이다. -전투 방법도 영적으로 해야함(고후 10:3,4; 딤후 2:5; 고전 9:26). 로마 카톨릭이 인디안들을 전도할 때, 믿지 않는 자들은 다 무기로 죽여 버렸다. 이것은 지극히 세상적인 방법이다. 이들은 중세 마녀들을 처벌할 때도 그런 방법을 사용했다. 이들은 사단의 세력을 제거하는 일이 말씀과 기도에 있음을 모른 것이다. 우리는 진리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과 인간이 마땅히 행해야 될 내용을 알고 기도함으로 우리의 의지가 성령의 조정을 받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는 쪽을 향함을 통해 매 순간 이기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의 방향이 어느 쪽으로 행해야 될 것에 관심을 집중시켜야 한다. 성화는 이런 순간들을 통해 이루어 지는 것이다. 6) 이긴 자에게는 상급이 있다(딤후 2:12; 계 3:21; 고전 6:2,3). 예수 그리스도는 시험을 받을 때 항상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그 쪽을 방향을 향했다. 마 4자에 나오는 그의 시험에 대해 상고해 보자. “(계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하리라” “(고전6:2) 성도가 ( )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 )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치 못하겠느냐” 7) 지상에서 잘 싸워 이긴 자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원히 다스리는데 이것은 아담이 타락 이전에 만물을 다스리던 것보다 더 영광스러운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 가지 직분을 잘 수행함으로써 그의 신앙 인격이 향상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막연하게 적당하게 이 세상 사람들처럼 사는 것이 아님을 주시해야 한다. 말하자면 각자에게 주어진 영적인 직분을 있다는 사실이다. 이 세 가지 직분을 잘 모르고 세상 사람들과 비슷하게 사는 경우 열매 없는 임종을 마지하게 되는 것이다. 성공적인 그리스도의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은 이 세 가지 직분을 잘 수행하는 길이다. 빛과 소금의 역할은 다른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이 세 가지 직분대로 살면 불신자들은 그리스도인으로부터 영적인 향기를 감지할 것이고 전도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나아가 훌륭한 지도자란 이 세 가지 직분을 잘 수행하는 자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의 지도자(구역장도 포함)란 이 세 가지 직분을 다른 사람들 보다 더 깊이 알고 또 수행할 수 있는 자를 말한다. 진정한 자유인이 되려면 이 세 가지 직분을 수행할 줄 알아야 한다.
출처 : 백석대학교 권호덕교수
글쓴이 : 권호덕 Herma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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