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그

[스크랩] 하이델베르크신앙교육서 17

baromi 2007. 9. 3. 09:07
제 17 문: 왜 그는 동시에 참 하나님이어야 합니까? 답: 그의 신성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짐을 그의 육체에 견디게 하고 또 그가 우리를 위해 상실된 의와 생명을 다시 얻어 회복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욥 17:3; 히 7:26) -Quare oportet cum simul etiam vere Deum esse? -Ut ptentia suae divinitatis, onus irae divinae, carne suae sustinere, nobisque amissam iustitiam et vitam reparare ac restituere posit. (해설) 위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분석된다: 그가 참 하나님이 되어야 할 이유는 (1) 그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심판을 견딜 수 있고, (2) 의와 생명을 벌일 수 있으며, (3) 다시 이것을 우리에게 돌려 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1. 그의 신성의 능력은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원하신 진노를 그 시간에(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위해 심판을 당했을 때) 견디어 내게 했다. 이로 인해 그 진노가 죄인을 비켜간 것이다. 사 9:6에 메시아를 전능하신(강하신) 하나님으로 표시한 것은 이와 연관된다. 2. 의와 생명을 벌기 위해 그 자신이 율법을 순종하는 일에 온전해야 함은 필수적이다. 여기 義와 생명은 결국 같은 뜻이다. 생명이란 인간이 하나님의 은총 안에 있는 상태, 즉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올바른 관계에 있는 상태이다. 다른 사람을 구원하려면 그 사역을 위해 자기 자신의 생명도 거기에 내어 줄 수 있는 능력도 지녀야 한다. 이사야 53:12은 그는 자기 생명을 죽음에 내어주었고 많은 죄악의 짐을 짊어지셨다고 하며, 요 10:18에서 주님은 자기 생명을 내어줄 수도 있고 다시 취할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3. 중보자가 자기의 순종과 고난을 통해 벌어 놓으신 義와 생명은, 유용한 것이 되려면, 다시 죄인들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죄와 허물로 영적으로 죽은 죄인들에게 새 생명을 전달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사역이다. 즉 바로 이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이 발현해 나오셔서 영적인 부활과 중생을 일으키시는 것이다. 4. 중보자는 한 인격 속에 있는 하나님과 사람이어야 한다. 유일한 중보자만이 하나님과 사람에게 가까이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극히 힘든 중보자 사역속에서 신성이 인성을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인성의 행위와 고난이 완전히 효력을 발휘할 수 있기 위해서이다. 올레아비누스 曰 우리를 위해 희생제물로 죽어야 하는 중보자는 참 인간이어야 한다. 즉 그는 죄가 없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우리와 동일해야 한다. 그리고 그는 동시에 영원한 하나님이어야 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무엇보다 진실하지 않고 공의롭지 않는데서는 화해를 허용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2:17)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진리는 영육간에 아울러 참인간이신 여자의 후손이 하나님의 불변하는 진리에 대한 공의를 만족시키시고 영원한 죽음의 고통으로 몸소 받으시는 것을 요구하신다.(히 2; 고후 5). 그 다음, “(출23:7) 거짓 일을 멀리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은 이 중보자는하나님 없는 자들과 불의한 자들과 연합하거나 친교를 하지 말 것을 요구하신다. “(벧전3:18)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그 다음 중보자는 참 인간일 뿐아니라 모든 인류를 위한 희생제물을 드릴 수 있는 참 하나님이어야 한다. 첫째 그는 구원을 주시는 자이어야 한다. 하나님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구원을 주시지 못한다. “(사43:11)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고 이사야가 말한대로 그러하다. 둘째 그는 모든 피조물의 참지 못하는 고통을 자신이 담당하기 때문에 그는 참 인간인 동시에 무한하신 하나님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인성이 그의 신성의 무한한 능력을 통해 보존함을 받으며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의 짐을 참으며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출처 : 백석대학교 권호덕교수
글쓴이 : 권호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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