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그
[스크랩] 하이델베르크 신앙교육서 13
baromi
2007. 9. 3. 09:07
제 13 문: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통해 만족시킬 수 있습니까?
답: 조금도 안됩니다: 우리는 날마다 죄의 빚을 더 늘일 뿐입니다.
(욥 9:3; 롬 2:4-5; 마 6:12)
-Possumusne ipsi per nos satisfacere?
-Nulla ex parte: quin etiam debitum in singulos dies augemus.
(해설)
인간은 자기의 죄의 빚을 갚기 위해 맨 먼저 스스로 그것을 해결할 수 있듯이 자기에게 생각을 돌린다. 심지어 엄청난 죄의 빚더미 앞에서도 그것을 갚을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진다. 모든 종교는 공통적으로 바로 이런 환상과 더불어 시작된은 것이다.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 해보기를 원하는데 이것이 구원의 思考에 대한 출발점이다. 바울은 유대 종교를 통해 이런 사고를 배웠고, 루터는 로마 카톨릭 교회를 통해 배웠다. 이런 자세는 은총의 복음에 정면으로 충돌된다.
그런데 바울은 성령의 조명으로 율법을 바로 깨달아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롬 1:16)고 했고, 루터는 “죄인들은 은혜를 통해 영접을 받을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데, 그 이유는 우리 위에 축복 덩어리를 쌓으시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칼빈은 “믿음은 복음 속에 제공된 義를 받아 들인다”고 말했다. 인간은 자연인(육)의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킬 만한 행동을 못한다.
이 자연인의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앞에 합당한 선행이 있을 수 없다. 거기서는 단 하나의 순수한 행위를 자아낼 수 없다. 자연인이 하는 모든 것은 우리 내부 깊숙히 도사리고 있는 자기 중심 사상과 교만이 외부로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 우리의 본래의 영적 상태는 이 처럼 비극적이다. 이것이 바로 죄의 권세가 역사하는 사망의 상태이다.
우리는 자연인의 상태에서 바른 일을 하려고 시도하면 빚만 더 늘인다. 그 이유는 이 육의 상태에서 움직이기만 하면 그것이 모두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시도를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의존하지 않는 한 계속 하나님에 대해 빚만 늘인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인간으로부터 바라시는 것은 자기의 죄와 불완전성을 깨닫고 그에게 굴복하는 일이다. 하나님 앞에 유효한 우리의 선행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성립된 다음 그 상태에 머물때 비로서 시작되는 것이다.
출처 : 백석대학교 권호덕교수
글쓴이 : 권호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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