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그

[스크랩] 하이델베르크 신앙교육서8

baromi 2007. 9. 3. 09:06
제 8 문: 그러면 우리는 너무나 부패한 나머지 더 이상 善을 행할 수 없고 전적으로 惡한 것을 추구합니까? 답: 예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하면 그렇습니다. -An vero adeo corrupti sumus, ut ad bone agendum prorsus non simus idonei, et ad omne vitium proclives? -Certe, nisi Spiritum sanctum regeneremur. (참고성구) (1)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치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롬 7:15) (2)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요 8:34) 해 설 (1) 제 8문은 타락한 인간의 도덕적 무능이 엄청나게 심각함을 보여준다. ① 자연인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善을 알지 못한다 (고후 3:5). 여기 자연인이란 성령으로 겁듭난 자 곧 그리스도인과 대조되는 인간을 의미한다. 신학에서는 자연인을 非그리스도인을 의미할 때 쓰인다. ② 자연인은 선을 원하지도 않는다(엡 2:3). 물론 여기 선이란 하나님 앞에 합당한 선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모르는 상태에서 하는 善은 지극히 피상적이고, 단시간적이며, 별 효력이 없다. 하나님 앞에 행하는 선이야말로 이웃을 결절정적으로 돕는다. 따라서 여기서 값싼 휴마니즘에서 나온 선은 성경이 가르치는 선과 다름을 강조한다. ③ 자연인의 모든 몸의지체는 전폭적으로 죄의 사역을 돕는 위치에 놓여 있다. 해적선에서 배를 수리하는 선원은 분명히 그 자체로는 선을 행하고 있다. 그런데 해적이라는 범죄 조직을 위해 일하기 때문에 그 수리하는 행위는 惡이다. (2) 그러나 절망은 없다. 하나님의 성령이 죽은 생명을 중생시키면 된다. 중생이란 위로 나는 것, 하나님에 의해 태어나는 것으로 다음과 같은 비유를 통해 조금이나마 이해된다. (ㄱ) 돌감람나무 가지를 참감람나무 둥치에 접붙이는 것에 비유되는데 이 가지는 그와 더불어 참감람나무로부터 즙을 받는다. 우리는 이것을 그리스도와 신비한 연합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중생시킬 때 그리스도와 연합시켜 그의 생명이 우리에게로 올 수 있도록 조치하신 것이다. (ㄴ) 길바닥에 잃어버린 금화(와의 얼굴이 새겨진)는 발로 밟힘을 당해 더러워졌다. 이것을 다시 새 금화로 만들려면 용광로 속에 들어가야 한다. 나중에 중생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할 것이다.
출처 : 백석대학교 권호덕교수
글쓴이 : 권호덕 원글보기
메모 :